다시 팔경계를 소환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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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6-07-08 15:15 조회3,527회 댓글0건첨부파일
- [논단] 다시 팔경계(八敬戒)를 소환하며.hwp (31.5K) 10회 다운로드 DATE : 2017-06-14 16: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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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국가가 주도하여 성차별을 금지하는 각종 법을 만들고 성평등을 강제하는 여성정책을 적용하고 있다. 이처럼 사회의 성평등 수준이 향상되면서 종단 내에서도 종법의 성차별성을 비판하거나, 열등한 여성관을 포함하고 있는 왜곡된 교리의 재해석을 요구하거나, 여성을 차별하는 계율 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팔경계는 이부승가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비구니승가에게 해당되는 계율이므로 매우 중요하다. 또한 팔경계는 변화하는 현대 사회에서 공동체의 단합과 기쁨을 위한다는 계율의 제정 목적에 합당한지, 깨달음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계율 제정의 기준에 합당한 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오늘날 비구니승가 내에서 팔경계에 대한 비판이 매우 높음에도 불구하고 팔경계가 유지되고 있는 이유는 비구니승가의 계율위반에 대한 공포가 크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설문조사 결과 비구승가의 절반 정도는 팔경계를 반드시 지켜야 하는 계율로 인식하는 반면, 비구니승가와 남녀재가불자는 팔경계가 성차별적인, 비불교적인 계율로 인식하고 있었다.
또한 출·재가자 모두 팔경계가 성차별적이라고 인식할수록 종법이 성차별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므로 비구니차별적인 종법을 개정하기 위해서는 팔경계에 대한 재해석이 필수임을 짐작할 수 있다.
붓다는 깨달음을 이룰 수 있는 당당한 주체로서의 여성상을 정립했지만, 네 집단 가운데 비구니집단은 성별 만족도가 가장 낮아 여성으로 태어난 것에 불만이었고, 비구집단은 남성으로 태어난 것에 가장 만족한 집단이었다.
비구니집단의 낮은 성정체성 만족도는 여성불성불론이나 변성성불론 등과 연결될 수 있어 깨달음에 대한 공포를 가중시킬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며, 비구집단은 ‘여성업설’과 ‘변성성불론’에 기반한 부정적인 여성관을 가장 믿고 있어 비구중심의 종단 운영이 성별 위계라는 가부장성을 고착화할 가능성이 크다.
팔경계가 비구니차별적인 종법을 정당화하는 기재로 작동하면서 그 결과, 비구니집단이 부정적인 여성관과 낮은 성정체성 만족도는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출가자뿐만 아니라 재가자 다수가 팔경계를 성차별적이며 비불교적인 계율로 인식하고 있지만, 종단은 ‘전통’과 ‘관습’이라는 미명하에 2,500여 년 전의 계율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계율은 승가가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 만들어진 규칙이자 생활규범이지만, 팔경계는 이부승가 내에서 계율갈등과 젠더갈등이라는 이중적인 갈등을 노출시키며 소극적· 폐쇄적· 수동적인 비구니상을 강요하고 있다. 이는 종단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평등을 절대화한 붓다의 가르침에도 적합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불교는 전파되는 과정에서 각기 다른 사회문화적 환경에 적응하기 위하여 계율을 재해석하기도 했고, 만약 계율이기 때문에 절대 불변라고 한다면 현대적 규범인 ‘청규’(淸規)를 제정해서 적용한 사례도 있지만, 종단은 이러한 변용이나 재해석조차 거부하고 있다.
비록 계율이라고 할지라도 계율정신은 살리면서 현실에 맞게 재해석하는 것은 교단 발전을 위한 길일 것이다.
종단의 비구니차별을 극복하고 성평등한 종법 개정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또한 인간 평등을 강조한 붓다의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팔경계의 재해석이 시급하다. 아울러 붓다의 가르침을 제대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왜곡된 교리에 나타나는 부정하고 열등한 여성관을 바로잡아 긍정적인 여성관을 확립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비구니승가와 재가여성불자는 종단 내 성평등 담론의 생산자 ․ 유포자 ․ 실천자로서 주체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출처: 불교평론(2015), 2015 여름, 제 17권 2호, pp.31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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