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섹슈얼리티 :초기경전에 나타난 여자의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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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종교와젠더연구소 작성일23-03-03 16:25 조회761회 댓글0건본문
<초기 경전에 나타난 여자의 탄생>
1) 여자의 탄생
기독교 성서의 창세기 1장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7일 동안 지(地), 수(水), 화(火), 풍(風)과 그 외 온갖 종류의 동식물을 창조해 낙원과도 같은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남자 인간 아담과 여자 인간 이브를 만들었으니, 여자는 천지만물 가운데 가장 늦게 창조된 셈입니다.
불교 경전에는 창세기가 없습니다. 붓다는 천지를 창조하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만물이 인연과 조건으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붓다 자신은 신적인 존재가 아니요, 인간으로 태어나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하는 방법을 깨달은 자입니다. 깨달은 존재이지만, 다른 인간들과 똑같이 늙고 병들어 고통을 겪다가 결국 열반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또 남녀가 어떻게 생겨났는가에 대해 『디가니까야』 제3품 ‘세계의 기원에 대한 경’에서 설명합니다. (『디가니까야』, 2011: 1164~1185) 이 경에 따르면 인간이 살고 있는 이 우주의 생성, 파괴 및 소멸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경전에서 종종 등장하는 시간 단위인 ‘겁(劫)’을 생각하면 우주의 생성과 소멸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천 리나 되는 돌산에 백 년에 한 번씩 부드러운 옷을 입은 하늘사람이 찾아와 한 번 그 돌산을 스치는데, 그 돌산이 닳아 없어져도 끝나지 않는 시간을 ‘겁’이라고 합니다. 또한 이 우주가 생겨나는 기간은 ‘성겁(成劫)’, 생겨난 모습 그대로 존재하는 기간은 ‘주겁(住劫)’, 파괴되거나 변해가는 기간은 ‘괴겁(壞劫)’, 파괴도어 텅 빈 채로 있는 기간은 ‘공겁(空劫)’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불교에서의 시간 개념은 너무나도 길고, 우주는 생성과 파괴, 소멸의 과정을 거치므로 우주의 시작과 끝은 알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미령 『붓다 한 말씀』, 2013: 145~160)
‘세계의 기원에 대한 경’에 따르면, 처음 우주가 생기고 수십억 년이 지나고, 어떤 생명체가 생기고 수십억 년이 지나며, 하늘과 땅이 생기고 수십억 년이 흐릅니다. 그 후에 인류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생명체가 등장하지만 오늘날의 인간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음식을 먹지 않고 온몸에서는 빛을 발하며 공중을 날아다니고 성별의 구분도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때인가 문득 우유의 얇은 막과 같은 맛있는 흙이 땅에서 저절로 생겨났는데 어떤 중생 하나가 이 흙을 한 입 먹어보고 그 맛에 반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다른 중생들도 이 흙을 먹기 시작했고, 흙을 먹으면 먹을수록 몸에서 나오던 빛은 사라졌으며 몸은 거칠어졌습니다.
그리고 중생들 사이에 외모 차이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들 가운데 자신의 외모가 더 낫다고 자만하는 사람이 생겨나자 그 맛있던 흙이 어느 순간 사라졌고 그 후 질 좋은 버터 같은 색을 가지고 꿀처럼 달콤한 맛을 주는 땅 조각이 생겨났습니다. 중생들은 그것을 먹을거리로 삼고 살아가면서 또다시 외모의 차이가 생겨났고, 일부 중생들이 자신의 외모가 다른 중생들보다 더 낫다고 교만심을 가지자 땅 조각은 또 사라졌습니다. 그 후 바달라타 풀이 생겨났다가 똑같은 이유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나서 경작하지 않아도 저절로 여문 쌀이 나타나 중생들은 그 쌀을 먹을거리고 삼고 오랜 세월을 살았습니다. 그 후는 다움과 같습니다. (『디가니까야』, 2011: 1174)
그런데 중생들이 저절로 여문 쌀을 먹으며 오랜 세월 살아갈수록 그들의 몸은 더욱 딱딱해지고 용모에 차이가 생겨났다. 그리고 여자에게는 여자의 특징이, 남자에게는 남자의 특징이 나타났다. 그러자 여자와 남자는 서로를 오랜 시간 물끄러미 지켜보게 되었다. 그렇게 한참을 물끄러미 지켜보는 가운데 그들에게 탐욕이 생겨났다. 몸은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고 그들은 달아오르는 열 때문에 성관계를 갖기 시작했다.
이처럼 초기 경전에서는 먹는 음식에 의해 인간이 출현하게 되었으며 시간이 지나며 사람들의 외모에 차이가 생긴다고 말합니다. 시간이 더 지나면서 어떤 사람에게는 남자의 특징이, 또 어떤 사람에게는 여자의 특징이 생겨나 드디어 남녀가 탄생한 것입니다. 즉, 창조주가 남자를 만들고 그 남자의 배우자로 여자를 만든 것이 아니라, 먹거리에 의해 외모와 성별의 구분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이때 성별은 우열 관계가 아닌 남녀의 특징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남자에게는 남자의 성기가, 여자에게는 여자의 성기가 생기면서 중생들은 이성의 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만져보고 결국 서로의 몸을 탐하며 성행위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직 성행위에 익숙하지 않았던 중생들이 공개적인 장소에서 이러한 행위를 금하면서 담과 지붕이 있는 집들이 생겼다고 합니다.
성적 욕구와 함께 또 다른 탐욕이 나타났습니다. 남녀의 탄생이 계급의 탄생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처음에는 매일 필요한 만큼의 쌀을 가져가서 먹었는데 이를 귀찮게 여기기 시작하면서 한꺼번에 많은 쌀을 가져가 집에 쌓아두게 됩니다.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 어리석음이 생겨난 것입니다.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쌀을 쌓아두며 욕심을 부리자 저절로 열리던 쌀은 사라졌고, 사람들은 해마다 땀 흘려 씨를 뿌리고 농사를 짓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내 땅과 남의 땅의 구분이 생겼고, 모든 물건에 주인이 생겼으며, 그러한 탐욕은 경쟁을 불러와 세상이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이에 나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가려내고 감시, 감독하는 사람 즉 권력자가 등장했습니다.
이처럼 먹을거리를 통해 외모 차이와 남녀의 몸이 생겨났으며, 성적 욕구와 탐욕으로 사적 소유몰과 계급이 탄생했다고 전해집니다. 남녀는 서로 다른 신체 구조는 단지 구조의 차이일 뿐 결코 우열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세계의 기원에 대한 경’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출처: <불교와 섹슈얼리티>, 한울출판사, "제2장 초기 경전을 통해 본 '여자의 일생' "중에서(옥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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