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 미래 100년의 비전 : 교단 운영, 승가 공동체의 성차별 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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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5-05-23 14:24 조회102회 댓글0건본문
<특집 100호, 한국불교 미래 100년의 비전 : 교단 운영>
승가 공동체의 성차별 해소
1. 왜 지금 비구니 참종권이 문제인가
2013년 6월, 조계종 중앙종회에서 중앙종회 비구니의원 전원이 퇴장하는 종단사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다음날 종회 출석도 거부하면서 “비구니의원들의 역할을 존중해 줄 것을 중앙종회에 강력하게 요청”하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사건의 발단은 〈호계원법〉 제5조 ‘자격’ 관련 개정안이었다. 사회의 검찰과 유사한 호계원의 호계위원은 비구로만 구성되어, 비구니가 비구위원으로부터 조사받는 것에 대해 비구니 승가는 오랫동안 어려움을 호소해 왔다. 그래서 비구니만 조사하는 ‘비구니 초심호계위원’을 두는 것에 대해 ‘종법개정특위’에서 합의하고, 본회의에 개정안을 상정했다.
하지만 정작 본회의장에서 비구의원들은 “비구니는 법을 잘 모른다” “비구는 비구니를 보호하지만 비구니는 비구니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등 성차별적인 발언이 이어졌다. 이에 비구니의원 전원이 퇴장하였는데, 남은 비구의원들은 〈총림법〉의 “임회의 선출직 위원은 법계 대덕/혜덕 이상인 재적승 중 비구 8인, 비구니 8인 동수로 교구 종회에서 선출한다.”라는 사전 합의안을 번복하여, ‘승려 10인’으로 개악해서 통과시켰다. 중앙종회에서의 비구니 차별을 보여주는 한 예이다.
비구니 승가는 종단 성립부터 정화운동이나 법난, 각종 분규 등에서 종단의 위기마다 이부승가의 한 축으로서 종단을 위해 헌신해 왔다. 하지만 종단 구성원들이라면 누구나 지켜야 할 행동 규범인 ‘종법’은 총무원장, 포교원장, 교육원장 등 모든 종단 지도부는 ‘비구(比丘)’로 제한하고, 중앙종회의원 81명 중 비구니는 10명만 할당하는 등 비구니 차별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비구 승가와 비구니 승가를 새의 두 날개나 바퀴의 두 축으로 비유하곤 하지만, 종법으로 인해 승단은 날지 못하는 새이자 움직이지 못하는 바퀴로 전락하였다.
이처럼 비구니를 차별하는 종법은 비구니 승가의 발전을 저해하고, 재가 여성 차별을 정당화하는 기재로 작동하며, 전 세계 비구니 승가의 위상 정립에 앞장서야 할 한국 비구니 승가의 발전을 가로막는다. 또한 국가가 각종 법 · 제도로 성차별을 금지하는 현실에서, 종법은 불교가 사회의 모범이 되기는커녕 문화지체(文化遲滯)로 이끌고 있다. 그러므로 종법상 비구니 참종권 확대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이며, 성평등한 종단으로 나아가느냐 아니면 쇠퇴하느냐의 시험대라고 할 수 있다.
2. 비구니 차별이 화합 승가의 길인가
비구니 참종권이 종단에서 공식 담론으로 등장한 것은 1962년 한국불교조계종단의 성립부터이다. 비구니 승가는 해방 이후 정화운동에 적극 동참하는데, 1954년 ‘전국 비구 · 비구니대회’에 비구와 비구니가 각각 221명씩 참가할 정도였다. 이때 비구니 승가는 중앙종회 종회의원 60명 중 비구니 6분의 1 할당제, 본사(本寺)인 대구 동화사에 전국비구니총림 개설, 주지 자격을 ‘수행승’으로 명시해 비구니 본말사 주지 임명 등, 다양한 대책을 제안했다.
하지만 1962년 공표된 최초의 통합종단 종헌(宗憲)은 종단의 고위직을 ‘비구(比丘)’(종헌 28조)로 명시해서 비구니를 배제했고, 중앙종회에 소수 비구니만 허용하여 종단 내 성별 위계를 분명히 하였다. 이에 비구니 승가는 전국 조직인 ‘대한불교비구니 우담바라회’(1968년)를 결성하여 참종권 확대를 요구했지만, 종단 지도부는 이를 비구 승가의 권위에 대한 위협이나 팔경계의 계율 파기로 받아들이며 거부했다. 이후 정화운동과 종단 분규가 지속되었고, 1980년 10 · 27법난 등 외부 상황이 더해지면서 종단 안정이라는 ‘대의’ 앞에서 비구니 차별 이슈는 부차적인 문제가 되었다.
1983년 출범한 ‘비상종단’은 진보적인 불교개혁안을 수렴하여 6부대중 제도(비구 · 비구니 · 남/여 불교신자 · 중간 교역자층인 교화 비구/비구니)를 발표했지만, 총무원장 등 지도부는 ‘비구’로 한정하면서 비구 중심 종단으로 종법은 개악되었다. 비구니 승가는 ‘대한불교조계종 전국비구니회(1985년)’를 결성하여 비구니 참종권 확대를 요구했지만, 권력승 간의 계속된 종권 다툼으로 인해 그 동력을 상실했다.
1994년 ‘개혁종단’의 발족으로 종단 개혁에 대한 열기가 높아졌다. 비구니 승가는 ‘비구니 정혜도량’(1995년)을 창립했는데, 이 시기가 한국 불교사에서 비구니 승가의 자율 역량이 가장 높았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비구니 승가의 위상 정립을 위한 2회에 걸친 토론회에서 비구니 승가의 역량을 결집하며, 팔경계를 ‘소승 계율에 갇혀버린 대승 정신’으로 비판하며 팔경계를 재해석할 것, 종법상 종단 지도자의 자격 요건에 ‘비구’로 한정된 것을 ‘승려’로 고칠 것, 그리고 교구본사에 비구니 참여 보장 등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종단이 안정되자 종법은 중앙종회 81인 가운데 비구니 10인 할당 등으로 또다시 개악되었는데, 비구니 승가는 “개혁회의가 비구니의 참종권을 극도로 제한하는 것은 승단을 대립과 갈등의 구조로 만들어 종단의 이원적 체계를 고착시키므로 반개혁적 발상”이라며 강력히 비판하였다. 하지만 비구 승가는 비구니 승가의 참종권 요구를 종단의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로 간주하며 외면하였다. 중앙종회 본회의장에서 ‘문중 어른들의 반대’ 운운하는 가부장적 종단 문화와 ‘팔경계’로 인해, 토콘적 지위에 불과했던 비구니 종회의원들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면, 2007년 원로회의 의장 스님이 비구니가 비구와 똑같이 25조 가사(袈裟)를 입는 것을 두고 “어찌 비구니와 같은 가사 입겠나”라며 ‘팔경법’을 거론하며 공개적으로 반대하였다. 또 종단 성립 42년 만에 총무원에서 비구니 부장이 문화부에서 탄생하였지만, 이마저도 일부 비구들은 반발했다.
2010년 이후 비구니 참종권은 종단의 입법기구인 중앙종회를 중심으로 공식담론화하기 시작했다. 중앙종회가 사회변화에 맞게 종법 조항들을 개정하고자 한 이유도 있었지만, 더 중요한 점은 비구니 승가의 조직적인 목소리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2011년 ‘비구니 승가의 위상 제고’라는 공약을 내걸고, 종단 사상 최초로 직접 투표에 의해 전국비구니회장이 선출되었다. 이 회는 중앙종회 비구니의원들과 연대하여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비구니 참종권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켰다.
중앙종회 비구니의원들은 ‘중앙종회비구니연구회’를 발족하여 법안을 연구하고, 참종권 확대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불교나 사회 공로자에게 상을 주는 〈포상법〉 추천자로 ‘전국비구니회장’도 포함시킬 것을 요구하거나, 〈산중총회법〉이나 〈호계원법〉 등에서 비구니 승가의 진입을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까지 호계원에 비구니 진입은 불가하고, 산중총회 구성원은 비구니에게 5분의 1만 허용하고 있다.
3. 비구니 참종권 담론화의 필요성
2020년 종단 출가자 수는 비구 5,544명, 비구니 4,900명으로 나타났지만, 비구니가 되려는 여(女)행자의 숫자는 2018년 52명, 2019년 46명, 2020년 39명으로 급감하였다. 종단의 형태와 종단 운영에 대한 법규범 체계인 종법으로 비구니를 차별한다면 비구니 숫자는 앞으로 더욱 줄어들 것이며, 이는 비구니 승가의 쇠퇴로 이어질 것이다. 그동안 중앙종회에서의 비구니 참종권 확대 요구는 종단의 견고한 젠더 위계에 균열을 가하고는 있지만, 그 변화는 쉽지 않다.
소수 비구의원들은 ‘비구니 동등 참여론’을 주장하지만, 다수는 ‘단계론’이나 ‘시기상조론’을 내세우기도 하고, 계율에 어긋난다는 ‘불가론’도 여전하다. 팔경계는 사문화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비구니 참종권을 제약하는 장치로 작동하기에,9) 비구니 승가는 이를 현실에 맞게 재해석해야 한다.
그리고 비구니 차별적인 경험들을 증언함으로써 억압과 배제의 피해자로서의 경험을 비구니 승가 내부적으로 공유하며, 붓다의 성평등 사상을 되살려야 한다. 이와 함께, 실제 종법의 조항과 종단의 제도 등에 내재되어 있는 성차별성을 드러내고, 비구니 참종권 확대를 위한 종법 개정을 공식 담론화하며 성평등한 종단으로 나아가야 한다. ■
옥복연
미국 코네티컷주립대에서 여성학 석사를 취득하고 서울대에서 여성학을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여성연구소 선임연구원, 국민대 강사를 거쳐 현재 불교아카데미 원장과 종교와젠더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공저서로 《불교와 섹슈얼리티》 《붓다의 길을 걷는 여성》 둥과 역서로 《불교와 페미니즘》 등이 있다.
출처: 불교평론 100호, 202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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