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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nstrual Rites: Rights and Taboos 생리 의례; 권리와 금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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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5-05-23 15:54 조회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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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enstrual Rites: Rights and Taboos

생리 의례; 권리와 금기들

 

시간을 처음 측정하기 시작한 것은 여성들의 생리 주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여성들이 음력과 고대 천문학을 발전시켰다. ‘해라의 달무리들’(moon colleges of Hera: 법적인 자궁수여자)은 꿈을 통제하면서 임신과 출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꿈을 통한 몸과의 친밀한 소통은 이 생리주기를 통해 여성 자신을 알 수 있게도 해주었다. 예를 들면 신체적인 증상이 나타나기도 전에 임신이 되었다는 것을 꿈으로 알 수 있게 되었고, 저자들 가운데 한 사람은 임신이 되었을 때 꿈을 통해 태아의 성별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경험을 했다(세 번 가운데 세 번 모두!). 전기화학적 정보기관으로서 우리 뇌는 이러한 모든 화학적 정보들에 접근할 수 있다. 화학적 정보를 의식으로 변화시켜 꿈과 소통하도록 하는 수용성과 기술, 그것이 확실히 작동하기 때문에 고대 여성들이 실천했던 기술임이 틀림없다.

『현명한 상처』The Wise Wound에서 셔틀Shuttle과 레드그로브Redgrove는 원시 여성은 새롭게 차올라오거나 점차 어두워지는 달을 통해서 생리를 배웠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들은 마음을 확장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인간의 성호르몬과 연관된 스테로이드물질을 억제하기 위해서도 약을 사용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자궁 안에서 작용할 수 있는 스테로이드는 여성에게 성적 민감성을 높여주고 또한 원치 않는 임신으로부터, 남성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우리 몸에서 달의 조수를 느끼게 하거나, 우리 몸에 있는 물이 크리스탈처럼 투명해서 달을 ‘볼 수 있도록’ 해주거나 혹은 달이 머리위로 지나가면서 공명하도록 해준다.

 

가부장적인 금기에 길들여지지 않은, 생리 주기를 받아들이는 여성들은 생리의 주기들과 조화를 이룰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몸과 꿈을 통해서 달의 가능성을 알았다. 어떤 것을 안다는 것은 그것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성 의례를 경시하였고 그 대가를 지불했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의 주기를 가지지 못하게 되었고, 가부장제와 원치 않는 임신의 지속적인 공포 아래에서 생리를 두려움, 부끄러움, 분노 등으로 묶어버렸다.

가부장제하에서 생리는 선물(혹은 이익이나 재능)이라기보다는 처벌이었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 그리고 다른 아버지신의 종교에서 생리는 여성이 악이라는 흔적이었다. 생리는 여성의 몸에서 나타나는 가시적인 뱀, 악마의 피의 흔적이었다. 가부장적 존재론에서 모든 악은 이러한 원초적인 여성 악마로 연결된다. 매달의 피. 성경에 의하면 생리는 에덴동산에 있던 여성이 죄를 지어 신의 저주를 받은 것으로, 오늘날까지도 생리는 “저주”로 불린다. 유럽의 마녀사냥에서 신령스러운 경험을 한 여성들은 불태워 죽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여성들의 꿈과 최면의 경험들을 고문했다.

 

이러한 생각은 또한 성서에서부터 출발한다. 구약성서 가부장제는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여신과 여신종교를 없애버리려고, 매우 의도적으로 여성을(그리고 반쪽은 여성인 남성들)의 달의 정신과 반대되는 위치로 만들었다. 이 때문에 생리를 하는 자궁은 가부장제하에서는 악마가 되었고, “유일하게 좋은 여성들은 임신한 여성이다”등, 3백년 이상 진행된 유럽의 기독교 마녀사냥은 정확하게 “9백만의 생리하는 살인자들”이라고 불렀다. 자연의 달을 활용하는 기술을 가진 여성들, 산파, 최면술사, 치료자, 수맥을 찾는 사람, 약초와 약 사용자, 꿈 연구자, 그리고 성적 쾌락을 추구하는 여성들은 불태워졌다. 신령스러운 이러한 기술들은 석기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5만 년 동안 어머니에게서 딸로 이어져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박해로 인해 유럽여성들은 최소한 그들 내부에서 달에 대한 공포와 함께 극도의 혼란을 겪게 되었다. 유럽과 미국여성들은, 그들이 힘들게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달의 생리화학적인 정보와 거의 연결할 수 없었다. 왜냐면 우리는 각자가 개별적인 존재로 분리되고 또 달로부터 분리되어 살고 있고, 달과 적대적인 환경에서 단지 달을 로켓의 착륙 기지나 하늘에 있는 거대한 네온판으로만 간주했기 때문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은 성적, 정신적, 신체적으로 충분히 진화되었으며, 여성이 스스로 자신의 몸에 대해 긍정적인 의식을 가지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여성들로부터 엄청난 질투심과 공포심을 배우거나 혹은 겉으로 이를 드러냈다. 생리에 대한 터부는 남성들이 여성의 삶의 투사를 통한 공포나 원한의 결과이다. 가부장제하에서 모든 삶은 이중적이으로, 여성은 착한 여성과 나쁜 여성으로 나누어진다. “좋은, 배란하는 아내”는 수동적이고 무성적인 존재인데, 화장실 변기를 청소하고 있는 여성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는 것은 쉽지 않다. 그리고 나쁜 여성은 적극적이고 다이내믹하며 생리를 하는 성적인 여성인 색마, 매춘부, 간통녀인 “마녀”이다!

『여성 주기』 Female Cycle와 『현명한 상처』The Wise Wound 둘 다 여성 섹슈얼리티의 두 극단을 보여 준다. 배란을 하는 한 극단은 정복당하기를 원하는 경향이 있고(이 희고 깨끗한 부류는 “삶의 강”이라고 부르고, 수용적이고 임신이 가능하기 때문에 가부장제에서 수용된다). 그리고 생리하는 다른 극단은 처음, 중간, 마지막에도 에로틱한 출발을 원하고, 지배하고 요구하는 그 자신을 표현한다(붉은 흐름은 “죽음의 강“이라고 부르고, 여성의 멀티오르가즘과 적극적인 섹슈얼리티는 가부장제에서 금기시 된다). 생리와 관계있는 섹슈얼리티는 생식과 관계없는 성숙한 여성에게 문화적인 공포심을 느끼는 프로이드 추종자들에 의해서 ”남성적이고 거세당한“ 여성으로 불린다.

 

초기 가부장제에서, 그리고 여성혐오적인 종교에 의해 정복당한 시대의 문화 속에서 생리 터부는 종종 징벌적이다. 그것은 여성들이 남성들의 소유물로 치부되는 사회에서 성적 적대감으로도 나타난다. 생리가 터부시되는 사회에서 성적, 재생산의, 그리고 영적인 여성들의 능력은 처벌의 대상이 된다. 생리 오두막으로 쫓겨나고, 남성들이 만든 법과 신으로부터 불결하고 위험하다고 정의된다. 어떤 부족 사회에서는 첫 생리가 시작되면 어두운 케이지나 방에 몇 달, 혹은 3년 동안 갇혀 있기도 했다.

이와 달리, 북미인디언 문화에서는 생리하는 여성은 그녀가 누구인지 알고, 힘을 가진 여성으로 살아가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구릿빛 여성의 딸들』 Daughters of Copper Woman은에 의하면, 북미원주민 여성들은 사춘기가 되면 몸과 마음을 강하게 하도록 수년 동안 신체적 훈련을 하고, 또 세대를 이어가며 여성들끼리 확고한 유대관계를 바탕으로 축하하는 관습을 유지하고 있다. 여성의 피(생리) 관습을 항상 “야만적”, “악마적‘으로 보는 기독교 선교사와 목사들의 지속적인 방해에도 불구하고. 여성혐오의 기독교 식민 지배국과 이슬람교에도 불구하고, 흑인아프리카 여성들은 여성들에게 힘을 부여해주는 고대의 사춘기와 생리 관습들을 유지해왔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여성의 상처 난 피 제의와 마술적인 의례 대부분은 가부장제에 의해 도난당하거나, 흡수되거나, 아니면 억압된 것으로 나타난다. 남성이 주도하는 제의는 피를 흘리는 여성 성기를 모방하여 남성의 성기를 자르거나 상처를 입혀서 여성에 대한 부러움과 두려움을 표현한다. 이러한 제의는 출생과 생리 현상에서 재현되지만, 그들은 또한 여성, 지구, 그리고 모성 등과 진심으로 연대하지 못하고 여성의 것을 훔쳤다는 죄의식으로 인해 이를 폭력적으로 분리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마가렛 미드와 다른 학자들이 주장한 것처럼, 전쟁을 선호하고 권위적인 사회일수록 생리 터부가 강하다. 이러한 사회에서 생리는 여성이 “부패하고 쇠약하도록 만드는 요인”으로 편집증적으로 대처되고, 남성에게는 과도한 힘, 지배, 여성 경멸을 요구한다. 남성들이 공격성을 훈련하는 것은 터부와 관련 있는데, 남성과 소년들은 모두 여성의 자연적인 기능들과 접촉하거나 여성의 능력을 아는 것을 금지시킨다. 남성들이 여성의 피에 대한 아무런 지식이 없을 때, 남성이 행동으로 보여준 의례와 폭력적인 유혈 상태는 전쟁으로 대체된 것으로 보인다.

공격적인 남성사회에서 전쟁은 여성과의 경쟁에서 가장 놀라울 정도의 피를 흘리는 남성을 보여준다. 전쟁은 여성의 출산과 생리 능력에 대한 남성의 응답이다. 이 셋 모두는 피를 흘리는 제의이다. 여성의 피 제의는 생명을 준다. 하지만 남성이 피 제의는 죽음뿐이다. 이것을 보상하기 위해, 어떤 사회에서는 살인적인 전쟁이 성스러운 행동으로 격상되는 동안, 여성의 피 제의들을 문화적으로 억압하고 경멸한다. 여성의 생리가 “영감을 주는 미스터리들”라면, 전쟁신을 숭배하는 가부장제에서 “지식에 저항하는 미스터리들”은 억압, 혹은 광기가 된다.

 

가부장제사회는 프로이드가 믿었던 아버지 살해가 아니라 강간과 어머니 경멸이라는 범죄가 만들어진다. 이는 남성의 “거세 공포”와는 달리, 무의식적으로 개별 소녀들에게 계승되는 강간 공포로, 종종 강간의 공포에 의해 일상에서의 행동들이 강요된다(남성의 소위 “거세 공포”는 단지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 동지애’로 여성의 지배와 동등하게 나타나는데, 이는 여성에 대한 주도권을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공포를 나타낸다. 만약 서구 남성이 거세에 대해 공포를 느낀다면, 이는 남성 유아기에게 무서운 기억을 주었던 할례로부터 기인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습은 성경의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유래된 것이지 여성이나 어떤 위대한 어머니신앙으로부터 온 것은 아니다). 가부장제가 낳은 범죄라고 할 수 있는 여성혐오라는 강력한 지붕 아래에서 살아가면서, 여성은 묶이고, 수용되고, 처벌당하고, 테러당하고, 남성의 편집증적인 투사로 인해 다양한 아픔을 강요당한다. 여성이 가진 힘 때문에 처벌받는 공포를 가지고 있는 한, 그리고 남성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한, 우리는 여성의 몸이 부정하고 열등하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가부장제하에서 남자들은 어머니를 여성의 힘과 여성의 나약함 양 측면에서 매우 두려워하고 꺼려하고, 남성이 용납하지 않는 모든 것들은 그의 어머니나 아내에게 투사했다. 심지어는 거리를 걷고 있는 모르는 여성들에게도 무작위로 투사를 한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여성들의 치안은 전문가들이 맡았고, 또한 “여성성”의 규칙들에 대해 문화적으로 체화되어버린 산부인과의사와 정신과의사들이 여성의 질병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 예를 들면 생리 우울증이나 통증 등은 “여성이 되는데 실패”한 것이라고 정의했다. 얼마나 많은 남성들이 여성들이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말해지는 영역과 관련된 사업에서 부자가 되었는가! 분명히, 가부장제는 여성들을 위한 것이 아니며, 여성들을 부자연스럽게 되도록 만든다. 달리 말하면 여성들은 남성들에 의해 강요된 대로 살아가기 위해 애쓰면서 점차 미치거나 혹은 아프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얼마 전만 해도, “한 달에 한 번 마녀”들은 현대적인 진단으로 약과 전기충격 처방을 받았다. 이제, 페미니즘과 여의사, 생리증후군을 포함한 생리 우울증과 생리통은 전통적인 경멸이 아니라 지식과 관심을 가지고 심도 있게 연구되고 치료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바로 어제도, 남편과 심리학자들에 의해 정신병동으로 던져졌는지 모른다. 왜냐면 우리의 문화적인 생리 터부로 인해 많은 사람이 기초적인 여성 삶의 기능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이다.

 

여성은 터부의 대상임과 동시에 또한 강렬한 열망의 대상임을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생리혈은 파워풀한 성적 요소이고, 고대 남성들은 여성의 신체 리듬에 감응했다. 그러나 굴복하지 않은 가부장적 남성, 여성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심하는 자아 개념을 가진 남성들에게, 여성의 피와 주기에 대한 초기의 반응은 공포였다. 그는 “통제력”을 잃을까 두려워했고, 그의 “에고”의 손실을 두려워했고, 여성과 공감하는 것을 두려워했고, 성적 행위에서 여성에게 빨려들어 갈까봐 두려워했다. 그는 다양한 공포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이성애적 행위는 공포가 되어, 폭력과 강간으로 나타났다. 그는 두려움을 억제하기 위해서 군대 용어를 만들어냈다. 여성의 몸을 “침범하는” 자이고, 그녀는 “전쟁에서의 죄수”로 그의 성적 희생자가 되었다. 간단히 말하면 그녀는 그와 성관계를 했기 때문에(전쟁에서, “그녀 자신을 허락하는 것은 침범당하기를 원하는 것이고”), 그는 그녀를 “패배자”로서 경멸했다.

 

가부장제사회에서 소수의 남성들은 여성과의 거래에서 성적 쾌감을 포함하는 것들을 잃어버린다고 인식하는 수준에 있었다. 남성은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훼손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그들 자신의 섹슈얼리티도 훼손한다. 사정은 오르가즘과 반드시 같지 않다. 라이히(Reich)는 성기의 반응과 몸과 마음 전체의 반응 사이의 차이를 연구했다. 중국과 인도 모계사회에서 유래된 고대 도교와 딴트리즘 테크닉은 여성에게 더 이로운 남성의 성적 테크닉을 가르친다. 고대 여성들은 성기에 대한 강한 자부심과 지식을 가졌고,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하거나 남성을 모방하지 않았다. 여성은 성적 지식의 창시자였다.

여성들은 그들의 생리 주기에는 남성들로부터 떠나서 명상을 하고, 레즈비언 사랑을 하고, 온몸으로 기도하면서 신과 함께 소통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여성에게 있어서 섹스와 정신 사이에 분리는 없었다. 가부장제는 섹스와 정신을 극단적으로 분리하고, 명령하는 것처럼 여성을 억압하고 처벌하고 부정하게 만들었다. 생리 오두막에서조차 가부장제에 의해 관습이 강요되었고 뒤틀려졌다. 여성은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하기 위한 이야기를 노래하고 말하기 위해 함께 모였다. 최소한 그들은 자신들의 생리적인 “불결함”은 여성혐오적인 타부임을 알았다. 그러나 파울라 위데거Paula Wiedeger가 쓴 『여성의 주기』Female Cycles에서 그녀는 말했다.

 

현대 서구 세계에서 생리 터부에 대해 드러난 의례 형식들이 없었기 때문에, 여성들에게 이것은 좋지 않은 것이라는 터부가 은밀히 퍼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젊은 “현대” 소녀의 초경은 그녀의 문화에서 관심 밖의 영역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몸과 생리 주기가 “자유”와 “즐거움”을 빼앗는 신체적인 장애물로 느꼈다. 그녀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녀의 문화에서 받은 메시지는, 적절하게 기능하는 몸은 남성이고 생리주기가 없어야 했다. 일터에서(혹은 학교에서) “일”은 남성의 활동으로 규정되었고, 만약 그녀가 일에서 “동등한” 것을 원한다면 그녀는 남성처럼 기능해야 함을 느꼈다. 즉 주기적이지 않게(그녀가 임신을 하거나 직장에서 육아를 하거나, 혹은 공적으로 육아를 하거나, 모든 일터에서, 모든 공공장소에서, 서구사회는 주기적이지 않은 남성 몸이 정상이고, 여성의 몸은 모든 법적 문화적 걸림돌이라는 용어로 규정된다. 여성은 그들의 몸이 남성으로 기능한다는 것을 동의하는 것처럼 행동하지 않으면 “일터에 진입” 혹은 “공적 생활에 진입”할 수 없다).

남자처럼 행동하는 것은 실제로는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억압하는 것이다. 생리 오두막은 마을의 한쪽 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성이 자신의 모든 여성 기능을 돌볼 수 있는, 아주 비밀스러운 장소로 여성 자신의 심장과 마음에서도 오두막이 만들어진다. 생리가 다가오면 우리는 비밀리에 여성이 되고, 공적 영역에서는 남성처럼 행동한다. 사실 생리대를 사용하며, 배란으로부터 생리혈이 나타나는 이 모든 주기는, IBM의 부사장이든 어떤 여성이라도 ‘조심스러움(숨김)’을 유지해야 한다. 생리 오두막을 통한 우리들의 비밀스러운 마음과 생각은, 남성(남성 세계, 남성 소유인 세계)들이 여성들의 생리주기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징벌적으로 반응하게 만들기 때문에 현실적인 공포를 지속하게 만든다. 섹스 대상으로서의 여성의 몸은 다양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남성이 만든 것이다. 당신이 털 많은 팔뚝과 털 많은 다리를 가진 여성을, 그리고 생리혈을 잡지 화보에서 본 것이 언제인가?

 

현대 서구사회에서 어린 소녀들은 여성의 잠재적인 능력을 믿을 수 없게 되었고, 좋아하지 않고, 다른 여성들처럼 그녀 자신의 몸과 감정을 창피하게 여기는 것을 배웠다. 남성이 원하는 여성성이 더욱 향상되고 공적으로 과시되기 위해서는 그녀가 알고 있는 여성성- 체모, 땀, 생리, 생리 냄새, 배란- 은 숨겨야 하는 것이고 비밀로 해야 하는 것이다. 그녀가 이것들을 정말로 좋아하건 그렇지 않건 간에 그녀는 모든 다른 여성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알고 있다. 이 말인즉, 그녀도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자신의 외부(남성, 남성 취향)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으로부터 소외된다. 현대 “여성의 공동체”는 어떻게 그녀의 여성스러움을 숨기는가를 보여주는 것으로만 존재한다. 생리는 상처, 흉터, 쓸모없는 몸, 부적응, 창피, 그녀의 자유를 차단하는 것과 연관되면서, 그녀에게 무조건 혹은 스스로 체념케 하면서 다가온다. 그녀는 가부장제의 억압과 남성 공포로부터 발생한 직접적인 결과가 아니라 자연적, 신체적 요인으로부터 기인한 “자유의 결핍”으로 믿는다. 

그리고 생리 터부는 여성의 자아 수용, 자아 이해, 그리고 자아 신뢰를 감소시키기 위해 남성에 의해 고안된 가장 성공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텔레비전의 “개인적인 생산품”, 예를 들면 생리대 광고에 대해 가장 불만을 표하는 것은 여성들이다. 불행히도 그들의 불만은 남성 산업에 의해 만들어진 여성의 몸에 대한 상업적인 착취로 곧바로 향하지는 않는다. 아니다. 이러한 광고에 대한 여성의 불만은 “나쁜 반응”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창피함, 비밀스러운 여성성이 공적으로 논의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러한 광고들은 생리적 오두막에 속한다.

 

단지 모성애에 속하는 것은 가부장제사회에서 “합법적으로” 축하받고 드러나고,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감정적인 경험을 심화시키기 보다는 임신(혹은 음탕한 죄)으로 나타난다. 우리 문화에서 성적 열정은 “여성스러움”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다루어지는 곳은 만화경의 거울로 당신의 얼굴을 보여주는 것처럼 가부장제하의 순결이데올로기와 남성중심의 관점에서 여성을 엄청나게 왜곡하는 포르노그래피와 같은 것에서이다. 

터부를 받아들이지 않거나 터부시하지 않는 여성, 레즈비언, 미혼모, 철학자, 예술가, 마녀들은 2천년 동안 이어진 가부장제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처벌받고 있다. 처벌의 한 형태는 문화적으로 위임된 강간으로, 여성이 자유를 위해 투쟁하면 분명히 처벌이 가해진다. 이 메시지는 분명하다: 여성들이 성적 자치권과 독립적이고 창조적인 권리를 포기하면, 그리하여 가부장적 남성이 정의한 수동적, 부정적, 수용적 “여성성”을 받아들이면, 비로소 여성들은 인간으로 대접받는다. 남성보다 모자란 존재여서 남성이 여성의 보호자가 되어, 남성이 미소를 짓고 문을 열어준다. 남성 공포, 혐오, 부러움은 오랫동안 여성의 능력을 무기력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진취적인 서구 문화”의 상냥한 겉치장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남성의 여성에 대한 공포, 혐오, 그리고 부러움이고 여성들이 이를 되돌려놓기 위해 싸워야 할 것들이다.

『여성 주기』 Female Cycle와 『현명한 상처』The Wise Wound 두 책에서는 “생리 유행병”이 “근대화되고, 문명화된” 여성들 사이에서도 많이 나타남을 보여 준다; 90%에 달하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생리와 관련하여 어떤 형태로건 고통(통증, 경련, 우울)을 겪는다. 생리 중 심각한 경련은 프로스타글란딘(prostaglandin)과 연관이 되고, 우울감은 생리적 부종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생리 중 우울증은 생리에 대해 내부로 향하거나 억누른 분노의 결과이다. 폭력이 우리의 본성에서 일어날 때, 우리 자신이 그것으로부터 분리되기 위해서 질병이라는 몸 언어, 바디랭귀지가 나타난다. 불규칙적이고 조화롭지 못한 방법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생리를 할 때 우리는 신체적으로 더욱 열려있고 예민해진다. 이로 인해 불의, 속임수, 그리고 왜곡 등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되며, 우리의 분노와 성적 당혹감은 이 시기에 폭발하는 것 같다. 페네로페 셔틀Penelope Shuttle은 고통스러운 피 흘림, 요통, 그리고 경련은 오르가즘적인 경험으로 완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생리 터부와 남성들의 여성 피 흘림에 대한 공포로 인해 대부분의 이성애 여성들은 생리 주기 동안 그들의 고도의 파워풀한 오르가즘 상태를 경험할 수 없다.

생리 주기는 몸, 영혼, 그리고 마음과 깊게 연결되어 있지만, 전통적으로 남성의사들은 여성을 호르몬 로봇으로 간주했다. 그들은 여성이 영혼/마음을 가진 존재로 인식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생리적 긴장은 또한 꿈꾸기와 명상이 증가하는 원인이 되었다. 이것은 고대 여인들이 예지적인 꿈과 초월 상태로 들어갈 때의 기억이다. 이것은 매월 자기 자아의 변화이자 재탄생이고, 우리는 매월 어머니의 피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우리는 어머니의 불행과 혼란을 두려워하고, 우리 아이들이 우리의 불행과 혼란을 두려워한다. 남성들 또한 그들 어머니의 주기에 의해 어린 시절 영향을 받는다. 만약 생리가 터부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열려있는 기본적인 삶의 경험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긍정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생리(생리 주기도)에 대한 남성의 행동과 성적 태도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다. 이러한 자연 그대로의 경험들을 만드는 심리적, 문화적, 그리고 종교적 태도는 고려하지 않고 소년 소녀들에게 사춘기, 생리, 섹스, 그리고 임신을 교육하는 것은 좋지 않다. 인간의 섹슈얼리티가 병리학과 악몽을 만드는 것으로 가르치는 종교는 공립학교 어린이들이 섹스에 대해 배우지 못하게 한다. 미국의 대부분의 여성혐오, 특히 생리적 “불결함”에 대한 생각은 성경에서부터 왔다; 이 때문에 여성을 비방하는 중요한 문화적 근거가운데 하나인 공립학교에서 “하느님”이 어린 소녀들을 ‘청결하지 않게’ 만들었기 때문에 매달 ‘정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가르치고 있는 성경으로부터 소녀들을 분리해야 한다. 미국 수정헌법 제 1조에서는 분명히 종교와 관계없이 소녀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생리전 증상에서 피임약과 IUD 자궁내 피임기구의 효과, 그리고 일반적인 생리 주기에서 나타나는 경험 등,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여성들은 효과적인 피임을 위해 어떤 생리적인 변화도 참아왔고, 이것은 사실일 것이다. 우리는 아직 임신 기술의 영역에서 여성의 몸, 마음, 그리고 영혼에 미치는 장기적인 영향은 알지 못한다. 완경기는 생리 주기의 끝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이것은 또한 여성으로서의 성적 정체성이 끝났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가부장적 영장류의 뇌에서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어떻게 재생산과 동일시되는가를 보여주는데, 이는 여성 진화의 사실과는 반대이다. 

완경기 여성은 서구문화에서 대부분 슬프고, 기괴하고, 권위가 사라진 모습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다른 많은 문화에서는 그렇지 않다. 미국 인디언, 힌두, 아프리카 등 나이 많은 여성들은 매우 존경을 받고, 사실 가임기가 지난 중년부터는 충분한 자유, 독립, 권위, 그리고 공동체의 영향력을 즐긴다. 페미니즘과 함께, 유럽과 미국 완경기 여성들은 또한 새로운 직업을 시작하거나, 학교로 돌아가거나, 여행, 전통적이지 않은 생활 스타일의 경험 등 일종의 르네상스를 즐긴다. 새로 깨어나고 새로운 힘의 기쁨을 그녀의 섹스 생활로 연장하고... 그러나 우리 문화에서 모순은, 여성이 젊고 임신이 가능할 때, 정확하게는 여성이 생리를 하고 성적으로 위험하게 보이는 기간 동안에, 남성에게 성적으로 매력 있게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성은 생리 주기 혹은 생리를 방해하는 어떤 징후도 알 수 없다. 우리들은 임신을 할 수 있는 기능과, 우리가 임신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가치가 있다는 것을 배웠다. 임신 가능한 기간 동안 남성이 느끼는 모든 억압된 공포와 여성에 대한 부러움은 나이든 여성에 대한 남성의 조롱과 노골적인 혐오로 나타난다, 중년의 남성은 대조적으로, 종종 그들의 전문적, 경제적, 그리고 문화적 권위의 정점으로 묘사된다. 성적으로 그들은 중년 여성보다 훨씬 권위를 덜 잃으며, 종종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자기중심적이고 지배적인 가면을 쓴다. 혹은 문화적이고 경제적인 권위로, 그들은 젊은 여성이나 젊은 아내를 “산다”. 완경기 여성이 덜 섹슈얼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 반대이다. 그러나 남성이 그 여성들에게 성적 관심을 잃어버린다. 남성의 섹슈얼리티는 여전히 영장류의 섹슈얼리티이고, 영장류의 섹슈얼리티는 과도하게 재생산적이다. “지배적인” 생식 가능한 여성은 마초 영장류의 ‘배지’가 된다.

 

전통적으로 나이든 여성은 결국 무성적인 척 했고, 성적으로 보이지 않는, 혹은 문화적으로도 무성적인 존재가 되었다. 최근 사람들에게 페미니즘과 나이든 여성에게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만약 나이든 여성이 젊은 남성과 커플이 되는 것을 대세로 항상 받아들인다면, 이것은 트렌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아주 고대의 토착종교 상황이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유익하다. 다른 선택은 레즈비언 관계, 그리고 다른 여성과의 오랜 기간 동안의 관계 맺음이다. 이는 유럽 토착종교적인 해법이고, 항상 서구 문화에 잠재의식으로 남아있다.

최근 수명이 길어지면서 서구에서 여성들은 임신가능한 주기의 끝과 마지막 난자로부터 평균 약 25년이 성적으로 활동하는 시기이다. 여성, 그리고 사회는 이것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삶의 가장 성적인 시기에, 우리 삶의 완경 이후의 4분의 1을 무성적인 좀비로서 소비하면 안된다. “우리의” 문화 -만약 우리의 것이라면- 는 또한 여성의 매월의 리듬과 성적, 감성적 변화, 여성 존재 그 자체와 가능성의 모든 범주에서 적절하게 긍정적으로 반응해야 한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 여성들은 물론, 반드시 삶과 사회를 완전히 변혁시켜야 하고, 다시 한 번 우리들 내부에서 여신에 선율을 맞추어야 한다. 이러한 변혁은 진실로 피를 흘리는 것에서 나와야 하는데, 이것은 분명히 여성의 피가 되어야 할 것이다.

  

출처:Monica Sjöö,Barbara Mor(1981),The Great Cosmic Mother: Rediscovering the Religion of the Earth, HarperOne,pp. 191-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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