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섹슈얼리티: 일곱가지 아내의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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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3-05-04 18:44 조회679회 댓글0건본문
III. 여성친화적인 교리의 왜곡과 전승
경전은 붓다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데, 전해오는 가르침 가운데는 한편으로는 남녀평등의 가르침을 담고 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을 차별하는 가르침을 담고 있다. 예를 들면 여성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며 여성교단을 설립했지만, 동일한 경전에서는 교단에 여성수행자를 받아들여서 불법의 지속 기간이 500년 감소할 것이라는 가르침도 있다.
왜 그럴까?
여성불자의 입장에서는 도대체 무엇이 붓다의 진심인지, 붓다의 가르침 가운데 무엇이 진실인지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붓다께서 열반에 드신 지 2,600여 년이 지났고, 그의 가르침을 직접 들은 제자들 또한 계시지 않기 때문에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다 .
이처럼 전해오는 경전 내용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앙굿따라니까야』3권의 ‘깔라마경’에서는 이러한 혼란에 대해 붓다는 대답을 하신다. 즉,
“세존이시여. 우리는 수많은 종교인들 가운데 누가 진리를 말하고 누가 거짓을 말하는지 의심스럽고 혼란스럽습니다.”
“깔라마인들이여.
그대들이 의심하고 혼란스러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의심스러운 것을 대하면 그대들의 마음속에 혼란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대 깔라마인들이여.
거듭 들어서 얻은 지식이라 해서, 전통이 그렇다고 해서, 소문이 그렇다고 해서,
성전에 써있다고 해서, 추측이 그렇다고 해서, 일반적 원칙에 의한 것이라 해서,
그럴싸한 추리에 의한 것이라 해서, 곰곰이 궁리해낸 견해로 인해서 생긴 편견 때문에,
다른 사람의 그럴듯한 능력 때문에 그대로 따르지는 말라.
그대 깔라마인들이여.
스스로 이것들은 나쁜 것이고, 이것들은 비난받을 일이며, 이것들은 지혜로운 이에게 책망 받을 일이고,
이것들은 행해서 그대로 가면 해롭고 괴롭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것들을 버리도록 하라.”
붓다는 거듭 들어서 얻은 지식, 전통, 소문, 성전의 기록, 추측, 일반적 원칙, 그럴싸한 추리, 편견, 그리고 타인의 그럴듯한 능력만 믿고 진리로 따르지 말 것을 가르치고 있다. 심지어는 경전에 있다고 해서 그대로 믿지 말라는 붓다의 말 속에는 현세의 삶에서 유익한 것이 아니고, 시간을 초월하는 것이 아니며, 와서 보라고 할 만한 것이 아니고, 최상의 목표로 이끄는 것이 아니며, 슬기로운 자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가르침(Dhamma)이 될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붓다의 입장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경전을 직접 읽어야 하고, 경전에 비추어 관찰하고 사색하고 해석해야 한다. 왜냐면 오늘날까지 전승되어 오는 경전은 오래 세월동안 불교가 전파된 나라의 사회문화적 배경에 따라 첨가되거나 삭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장에서는 여성과 관련된 경전의 내용이 특정 시대와 문화에 따라 어떤 방식으로 변하는가를 구체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여성의 규범이나 가치관에 관한 내용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는『옥야경』을 살펴볼 것이다. 왜냐면 『옥야경』은 여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대표적 경전으로 불교의 여성관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초기경전인『앙굿따라니까야』7권「일곱 가지 아내의 경」에는 쑤자타라는 여성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리고 인도불교가 중국으로 전파되면서 이『앙굿따라니까야』는 『증일아함경』으로 번역되었는데, 이 『증일아함경』 제 49권 제 51「비상품」(非常品)에 는 ‘선생’이라는 이름의 여인이 등장한다. 또한 오늘날 한국불교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옥야경」에는 옥야라는 여인이 주인공이다.
그런데 「일곱 가지 아내의 경」의 쑤자타, 「비상품」의 선생 여인, 그리고 「옥야경」의 옥야는 ‘부유한 집안 출신의 예의없는 며느리’라는 여주인공의 신분, 시아버지가 붓다께 이 며느리의 버릇을 고쳐달라고 부탁하는 배경, 그리고 붓다의 가르침을 통해 여인이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내용이 유사하므로, 동일한 가르침이 초기불교와 중국불교, 그리고 한국불교에서 보여 진다고 짐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세 버전의 경전을 비교해서 여성관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가를 비교분석할 수 있다.
또한 이를 통해서 여성과 관련한 내용이 경전에 기록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그 내용이 붓다의 가르침에 합당한 지 의심하고 비판하고, 붓다의 올바른 의도를 찾아서 오늘날에 맞게 재해석해야 함을 알 수 있다.
1) 『앙굿따라니까야』의 ‘일곱 가지 아내의 경’
붓다 재세시 많은 재산을 가진 부호이자 불교신자인 장자 아나타삔다까가 있었다. 그는 싸밧티 시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핀디까 승원에 계신 붓다를 찾아뵙고, 부잣집에서 시집온 며느리 쑤자따에 대해 고민을 털어놓는다. 며느리로서의 본분인 시부모와 남편을 모시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세존을 공경하지도 않아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붓다께 조언을 청한 것이다. 그러자 붓다께서 쑤자따를 부르시고, 일곱 가지 유형의 아내에 대해 설명하는데,
“쑤자타여,
남편을 연민하지 않고, 다른 남자에 빠져서 남편을 경멸하고, 악한 마음으로 재물을 사서 살해하고자 열망하는,
이런 아내는 살인자와 같은 아내라고 부른다.
기술, 상업, 농사에 종사하며, 남편이 아내를 위해 노력해 얻은 재물을, 조금이라도 아내가 빼앗고자 한다.
이런 아내는 도둑과 같은 아내라고 부른다.
일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게으르고 게걸스럽고, 거칠고 포악하고 조악한 말을 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남편을 제압하며 지낸다.
이런 아내는 지배자와 같은 아내라고 부른다.
항상 남편의 이익을 위하여 연민하고, 어머니가 아들을 돌보듯 남편을 돌보고, 그리고 남편이 저축한 재산을 수호한다.
이런 아내는 어머니와 같은 아내라고 부른다.
어린 누이가 손윗누이를 섬기듯, 자기의 주인으로 존경하고, 부끄러워하며 남편에게 순종한다.
이런 아내는 누이와 같은 아내라고 부른다.
친구가 멀리서 오면 친구를 보고 기뻐하듯, 여기 아내가 남편을 보고 기뻐한다. 고귀한 계행을 지닌 그녀는 남편에 충실하다.
이런 아내는 친구와 같은 아내라고 부른다.
폭력으로 위협을 받아도 분노하지 않고, 악한 마음 없이 남편에 대하여 인내한다. 분노하지 않은 그녀는 남편에게 순종한다.
이런 아내는 하인과 같은 아내라고 부른다.
여기 살인자 같은 아내, 도둑 같은 아내, 지배자 같은 아내라고 불리는, 계행을 지키지 않고 거칠고 불경스러운 아내는 몸이 파괴되면 지옥에 떨어진다.
여기 어머니 같은 아내, 누이 같은 아내, 친구와 같은 아내, 하인 같은 아내라고 불리는, 계행을 지키고 오랜 세월 자제하는 아내는, 몸이 파괴되면 좋은 곳으로 간다.
쑤자따여, 이와 같은 일곱 가지 아내가 있다. 그대는 이들 가운데 어떠한 아내인가?”
“세존이시여, 오늘부터 저를 남편에 대하여 하인과 같은 아내로 새겨주십시오.”
당시 인도사회에서 여성은 어릴 때는 아버지, 결혼하면 남편, 나이 들면 아들에게 의존해야 하는 것이 여성이라면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따라야만 하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하지만 부유한 가문에서 시집온 쑤자따는 달랐던 것 같다. 시부모나 남편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시부모가 존경하고 따르는 붓다도 공경하지 않았으니, 아집이 대단한 여성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얼마나 걱정되었으면 시아버지가 붓다께 하소연을 했을까?
붓다는 이러한 쑤자타를 불러, 아내의 종류를 살인자, 도둑, 지배자, 어머니, 누이, 친구, 하인과 같은 일곱 가지 아내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일곱 가지의 아내의 유형 가운데는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아도 살인자, 도둑, 지배자는 나쁜 아내라고 할 수 있고, 반면에 항상 남편을 연민심으로 돌보고, 분노하지 않고 순종하고, 주인으로 존경하는가 하면, 고귀한 계행을 지닌 친구같은 아내는 좋은 아내이다. 그리고 좋은 아내는 죽으면 좋은 곳으로 가고, 나쁜 아내는 죽으면 나쁜 곳으로 간다.
붓다는 이러한 아내의 유형 가운데 수자타가 어떠한 아내인가를 물었다. 어떤 아내가 되라고 가르치고 설교하기 보다는 수자타 스스로 어떤 아내가 될 것인가를 생각하고 결정하라고 되물은 것이다. 이처럼 붓다께서 재가여성을 대할 때는 권위를 내세운다거나 무섭게 꾸짖거나 강요하기 보다는 대화를 통해 스스로 깨닫게 하였다.
이러한 붓다의 가르침에 승복한 수자타는 분노하지 않고 인내하며 순종하는 하인과 같은 아내가 되겠다고 스스로 결심한다. 이는 아마도 과거 자신의 모습을 참회하기 때문일 것이다.
출처: 옥복연 외, 불교와 섹슈얼리티, 한울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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