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nial of the Mother: Denial of the People어머니에 대한 부정: 인간에 대한 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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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5-05-23 14:47 조회92회 댓글0건본문
Denial of the Mother: Denial of the People
어머니에 대한 부정: 인간에 대한 부정
기독교는 남성이라는 하나의 성을 통해 구원을 제공했다. 기독교는 인간을 여자로부터 태어나지 않게 구원해야 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은 그가 남성신의 아들이라는 사실에서부터 시작한다. 기독교인은 죽음을 통해 어머니 대지로 돌아가서 우리 모두를 새롭게 하고 또 신성하게 만들던 그 옛날 신화속의 신들과는 다르다. 기독교는 생명의 순환을 거부하는 신화속의 신이다. 대지로 돌아가는 대신에 그는 하늘로 올라가서 그의 아버지 편에서 심판자로 앉는다.
도마복음(The Gospel of Thomas)에서, 아래의 일들이 막달라 마리아 앞에서 일어났다. 베드로는 그들에게 “마리아를 우리들로부터 데려가라. 여성은 영생을 누릴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예수가 말한다. “나는 마리아를 남자와 같은 수준이 되도록 이끌겠다. 그래서 그녀가 남자와 같이 살아있는 영혼이 되도록 할 것이다. 스스로 남자가 되고자 하는 여성들만이 하느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베드로는 유대 기독교회의 창립자이고 사도의 대변인이다. 그리고 여자가, 여자라는 것이 그에게 행운이었다.: 로마에 있는 성베드로 대성당의 위대한 돔은 매음굴의 세금으로 지어졌으니까.)
한때 그리고 모든 경우에도, 기독교는 어머니를 통한 재탄생의 종말을 보여준다. 그는 그의 어머니를 부정한다.: “여자여, 내가 너와 무슨 상관이냐?”(요한 2:4). 분명히 아무것도 없다. 이제 인간은 기독교 남성 어머니인 그리스도를 통해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리고 여성은 심지어 “영생을 누리기 위해” 다시 남성으로 태어나야 한다. 아주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리스도는 이렇게 말했어야 한다. “나는 어머니를 파괴시키겠다, 아버지의 일을 하기 위해서” 외경(apocryphal) 텍스트에서 예수는 말한다.: “나는 여성을 멸하려 왔느니라. 너희 여자가 아이들을 낳는 한, 죽음이 널리 퍼지리라.”
초기 삶의 가치에 대한 이런 허무적인 부정, 특히 여성의 재생산을 통제하고 그 삶을 통제하려는 기독교 교회의 제국주의적인 충동은 인류가 존재한 지난 2천년 동안의 생명 공포증(biophobic)이라는 광기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과거 4천 여 년 동안의 가부장제에서, 약 3백 년 정도의 비교적 평화로운 시기가 있었다. 소위 말하는 "평화의 왕자“인 기독교 아래에서, 서구세계는 그 ”적들“ 그리고 기독교 내부와도 지속적인 전쟁을 해왔다.
기독교계는 ”우수한 종족“과 ”열등한 가문“ 이론, 어리석은 메커니즘에 의한 옹졸한 삶, '무의식'에 대한 기괴한 편집증, 세계에 대한 공포와 혐오 그리고 내재된 악으로서의 모든 것들. 특히 기독교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배신의 존재로서의 여성, 남성의 여성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에 불을 지폈다. 지구상에서 인류가 존재한 이래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일관되게 추악한 방식의 삶을 경험하면서, 오십 만년보다 더 오랫동안 살아남고 진화했는가?
인간은 어머니를 통해 서로 연결된다. 우리는 모든 창조물과 혈연으로 연결되고, 우리는 모두 동일하게 만들어진다. 하지만 가부장제 아래에서 그녀의 몸, 욕망, 꿈 등 신비로운 혈연관계는 깨어졌다. 우리의 혈연관계는 모든 악의 근원이 되었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 그리고 공산주의체제, 서구 이 네 가지의 중요한 가부장적 종교 아래에서, 육체 또는 다른 것을 통제하거나 파괴하려는 강박은 역사적으로 "형제애"라는 욕구보다 더 강하다. 이 끊임없는 전쟁의 성공과 평화의 실패는 '인간의 상태'라고 말해진다. 그러나 그것은 가부장제하에서의 인간 조건일 뿐이다
가부장제 아래에서, 모든 생명들은 남성이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문자 그대로의 믿음이 있다. 그리고 가부장적 남성들이 쓸모 있는 것 또한 경멸스러운 것으로 나눈다. 원자 또는 핵탄두 폭발은 태양신을 가진 남성의 최후의 동일시가 될 수 있으며, 물질/어머니의 최후 소멸- 이것이 모든 가부장적 종교가 함축하고 있는 목표라고 우리는 주장한다. 만약 그들이 우리의 삶을 완전히 통제 할 수 없다면, 그들은 그것을 파괴할 것이다. 핵 기술자는 하나님 아버지의 궁극적인 제사장이다, 그들에게는 은총, 희망, 재탄생, 혹은 마법적 불멸은 없다. 단지 객관적인 숫자에 불과한 엄청난 희생을 불러오는, 냉혹하고 비창조적인 죽음을 가져다주는 신성치 못한 버섯구름으로 우리를 조종할 것이다.
아버지와의 완벽한 동일시는 어머니에 대한 의존을 부인한다. 어머니는 항상 궁극적으로 어머니이다. “취하는 것(taking)"은 어머니에 대한 의존을 부정하는 것이고, 또한 그 부채(빚)에 대한 죄책감을 공격성으로 변형시킨다. 남성성의 콤플렉스와 과도한 여성성의 부정은 본질적으로 허무주의적이고 공격적이다. 왜냐면 기독교 교회는 '경건한', '겸손한', '온유한' 등의 단어들을 그리스도의 품성을 묘사하는 용어로 사용하는데, 이 단어들은 인간의 몸과 마음에 반대되는 교회의 실질적이고 역사적인 공격성을 가리게 하는 역할을 한다.(사실, 동방 정교회 그리스도 팬토크레터Pantocrator는 항상 격렬한 분노와 명령하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기독교 제국주의 개념의 ”경건함“과 ”온유함“은 대중들에게는 수세기동안 복종을 조건으로 사용되어져 왔다. 그러는 동안 지배계급은 자신들만을 위해 아주 오만하고 공격적으로 이 지구의 보물을 움켜쥐었다.)
잭슨John G. Jackson.의 말처럼, “유럽 암흑기의 이야기는 인류사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공포의 연대기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 스토리의 가장 슬픈 부분은 유럽에서 기독교로 개종이 되는 시기이다.” 그는 브리파울트Briffault를 인용한다.
“유럽에서 기독교로 전환되는 과정의 모든 역사가 기록 될 수 있다면, 그것은 스페인이 종교 재판에 의해서 기독교화되는 과정에서의 공포보다 더 소름끼치는 이야기를 보여줄 것이다. 기독교라는 종교는 멕시코와 페루사람들에게 행한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유럽 사람들에게 강요되었다. 라스 카사스(Las Casas)는 종교 개종 과정에서 1천 2백만 명의 사람들이 도살되어 죽었고, 산 채로 화형당하거나 고문당했다고 추정했다.”
기독교 개종과정에서도 살아남았던 사람들은 노예가 되었다; 잭슨Jackson은 이렇게 썼다.
“교회는 노예 제도를 영속시킬 뿐만 아니라 로마법도 없던 곳에서 창조를 했다. 베로나의 라트리우스 주교(Bishop Ratherius of Verona)는 심지어 ”신은 그가 볼 때 자유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자를 위해서 자비를 베풀어 노예라는 운명을 만들어주었다.” 라고 말할 정도였다.
유럽의 중세와 르네상스 교회의 아버지들은 사유 재산, 강압적인 정부, 계급 제도, 노예 제도조차도 이 “악마 지구”에게 불가피 한 것일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원하는 제도라고 생각했다. 인간의 '부패'를 치유하기 위해 질서를 만들고 엘리트가 집행을 하는 구제책으로 보았다. 교회의 철학적 가치관과 교부철학적인 이론은 자연의 나라(자연적인 법과 “신의 이상”을 표현하는 데 기초한; 자연의 질서에 보다 반응하지만 가부장제가 파괴시킨)와 관습적인 나라(관습에 의해 제제를 받는 보다 현실적인 세계이자 합리적인 세계) 사이에 구분을 지었다.
신의 변호인들에 의하면, 이 관습적인 나라는 신이 본래 의도한 것은 아니었고, 인간이 타락한 결과 나타난, 인간의 죄에 기인한 것이다. 그래서 ‘현실적인 세계’의 부자연스러움과 착취를 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비난이었다. 이 세계의 상태가 원래 인간의 존재를 넘어선 '신의 의지'를 강요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주장은 아니다. 기독교인 혹은 성경속의 신은 “세계의 질서와 무질서”를 위해 결코 비난을 받지 않았고, 그의 절대적인 의지는 그 연속성을 인가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원죄에 의해 타락한 인간은 그 본성 때문에 평등주의적인 질서를 찾을 수 없고, 그래서 “제지”가 필요했다. 이러한 “제지”는 부, 신분, 힘, 그리고 그 결과 여러 가지를 다스리는 소수의 정당한 "권리"로, 인간의 죄의 대가를 결정지을 뿐만 아니라 그 죄에 대한 구제 방법도 정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익 때문에 착취당하고, 처벌받고, 그리고 억압받았다. 그리고 우리는 “신의” 전문적인 설명으로 이해한다. 매우 잔인하고 불공평하고 욕심 많은 가부장적 제도들은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자녀가 순종하지 않아 나락으로 떨어진 상태에서 가해지는 하나님의 채찍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악마와 같은 “사고방식”들과 함께, 교회 아버지들은 그들의 기독교 제국을 건설했다. 유럽 초기 기독교에서 사제들과 학자들은 이러한 사고방식을 만드는 유일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교육을 허락받은 유일한 사람들이었다. 많은 대중들에게 그들의 토착 신석기시대부터 내려오던 지식을 파괴하거나 금기시하고, 우매한 상태를 유지하게끔 만들었다. 교회는 그들의 마음이 단지 기독교 이론, 죄책감, 공포, 그리고 악마-미신으로 채워지도록 노력했다.
영국의 거석문화의 달과 태양- 천문대를 만든 건축가와 프랑스의 브레톤 계급Breton(켈트족)의 존재는 B. C. 3500 ~ 2500 년경 이들이 달의 미세한 주기적인 0.5도 진동을 측정하였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들은 축하 의례를 위해 거대하고 아름다운 건물을 만들었음을 우리는 안다. 하지만 기독교 교회의 지배 아래 유럽인들의 지적이고 문화적인 천박함은 소름끼칠 정도로 끔찍했다(비록 불행하게도 또한 특이하게도, 동일한 정신적, 물질적 궁핍화가 교회가 가는 곳마다 따라다녔다).
잭슨John G. Jackon은 교회가 필사적으로 막으려 했던 아랍의 우수성을 유럽이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정신적 어둠에 갇혀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유럽의 비정상적인 기독교인의 암흑기는 그레코-로마의 르네상스를 통해 들어온 것이 아니라 스페인으로 쳐들어온 무어(Moors, 아프리카 북서부에 살았던 이슬람 종족. 8세기에 스페인을 점령함)로부터 영향을 받았으며, 그 결과 지중해와 남유럽은 무어인 방식의 문명화로부터 구원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그는 맥카베Joseph McCabe의 말을 인용했다.
“현대의 궤변 가운데 어느 것도 5세기에서 11세기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부패함을 변명 하지 못한다. 그리고 다시 문명을 복원한 사람들은 남쪽의 어두운 피부색의 남자들이 다. 만약 우리가 유럽인이 아니라면 솔직하게 만행이라고 부를 수 있는 행위, 즉, 당시 스페인, 시실리, 시리아, 유럽은 A. D. 1000년 경 까지 이들의 발전 상태가 아랍문화보 다 수준이 낮았고, 이집트와 페르시아는 매우 문명화되어 있었다. 우리는 유럽역사 혹은 중세시대의 매뉴얼을 좁고 지저분한 지역으로 제한하면서 쓰고,... 그리고 포르투칼 로부터 중국해에 이르기까지의 뛰어난 문명을 무시한다.”
기독교교회는 처음에는 아랍의 뛰어난 문명에 공포를 느끼고 신성한 십자군을 보내서 이와 싸우려고 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십자군전사들이 "이교도의 땅"으로부터 감각적인 신성한 구름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것들로부터 남프랑스의 화려한 무지개 빛깔의 트루바두르Troubadour (중세 남부 프랑스의 음유 시인들)를 창조해냈다. 우리가 본 것처럼, 가톨릭교회는 1,200년 경 이러한 서정적인 아랍의 영향들을 파괴하면서 “이교도”를 처벌하는 종교재판을 500여 년에 걸쳐 진행했다. 마녀사냥은 기독교 제국주의자들이 조금이라도 “이국적인” 가능성이 있는 조각들 혹은 토착적인 지식의 흔적을 찾아서 고문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모두 회색 재만 남기고 태워버렸다. 즉, 유럽의 정신이 어두워지면서 모든 바깥세상의 빛이 비춰지는 것이 금지되었고, 교회는 제도화된 선동과 공포로 유럽을 천 년 간 통제하였다.
거의 모든 기독교의 “자선”은 영적인 자아-관심에 의해서 동기가 부여되었다. 교회는 잘사는 사람이 가난한 자를 돕는, 그래서 가난을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빈곤은 결국 방치되고, 선한 기독교인이 천국에 가는 것을 돕기 위한 것이었다. 물론, 교회는 사회 질서를 그러한 방식으로 유지했다. “신의 힘”은 기독교 역사를 통해 볼 때, 세속적인 현실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이는 위대한 제국주의적 교회가 행했던 잔인한 반동적 역할이었고, 교회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보호자가 될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사람들을 속이고 착취할 뿐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고통을 받을 때, 교회는 그것은 단지 그들의 죄 때문이라고 비난했다.
기독교인의 노동 기록은 똑같이 끔직하다. 그들은 매우 힘들고, 구제할 수 없으며, 계급 차별적이었고, 인간들의 죄를 처벌하기에 적합했고, 인간의 천성적인 반항심을 길들이고자 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볼 때 교회는 항상 이데올로기적으로 노동자에 반대되는 지배자로 스스로 위치 지었다. 푸코의 주장에 의하면, 1621년과 1639년 사이 프랑스에서 커다란 세 개의 폭동이 있었는데, 유럽의 30년 전쟁은 엄청난 사회적 대변동과 경제적 불황이 그 원인이었다.
이러한 폭동의 중심에는 도시의 자본의 집중화와 공장제 수공업의 엄청난 규모의 발전이라는 새로운 경제적 구조가 있었고, 노동자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중세 가내 길드의 힘을 약화시키면서 노동자의 권리를 억압했다. 프랑스의 “일반 규정General Regualtions"은 모든 의회, 법, 혹은 노동조합을 금지하는 정부중심의 법이었다. 노르만디Normandy 의회와 같은 프랑스 의회가 싫어하거나, 정치적인 저항을 하는 길드의 멤버를 기소하거나, 교회는 그 특유의 방법으로 억압의 편에 섰다.
“...교회는 노동자의 비밀 집회에도 개입하고 구속했다. 1655년 소르본느의 판결에 의하면, 소위 비밀집회에서 발견된 모든 사람들은 ”신성모독과 원죄에 있어서의 유 죄“를 선언했다. 16세기까지 교회는 가톨릭교회였다. 그 과도한 부패와 억압은 프로테스탄트 개혁을 불러왔다. 하지만 더 많은 아버지 교회의 출현으로 인해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든 혜택을 입는 모습을 보기 힘들었다. 루터는 교황권만 저항하기위해 싸운 것은 아니었다. 그는 1500년 농민폭동 기간 동안, 루터는 “도둑질, 살인자의 농민 범죄자들”의 처벌을 위한 목적의 격렬한 팸플릿을 썼는데, 이 당시 10만 농민들이 학살당했다(도시에 강제로 들어가거나 빈곤한 도시 노동력에 투입되었던 농부들은 개신교 아래에 들어갔어도 별 혜택이 없었다. 오히려 개신교는 인간의 노동적인 관점에서 “신의 징계”와 “신의 처벌”로 훨씬 청교도적이었다.)
농민들, 그리고 노동자들은 민중이었다. 그리고 기독교는 항상 민중들을 엄격한 신체적, 정신적, 경제적 통제 하에 두지 않으면 두려워했다. 1348년 흑사병이 유럽을 덮쳤을 때, 이는 몸의 정신병, 즉 사방에서 몸을 지배하는 강력한 제도를 증오함으로써 나타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사람들이 건강하고 자유로움을 추구하기 위해 반란을 일으킬 정도가 되었고, 교회 국가는 신속하게 그들을 '악마 같은'으로 규정하고 그 반란을 빠르게 진압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인간의 섹슈얼리티와 창조적인 심리적 가능성의 지속적인 억압은 세대로 이어지면서 기괴한 사회적 현상을 불러왔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스스로 춤을 추며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는 “춤 역병”(예를 들면 ‘분홍신’처럼).
봉건제도하에서, 농민들은 그들의 억압과 함께 안전에 대한 어떤 갈망이 있었다. 그들은 공동체 마을에서 살았고, 고대 토착적인 관습과 의례의 전통들을 유지하였다. 교회-법정이 중심이 됨에 따라 이러한 시스템이 깨어졌을 때, 농민들은 거대한 규모의 기근, 전쟁, 빈곤, 그리고 뿌리째 뽑히는 것과 같은 정신적인 방황 등을 경험했다. 유럽은 악마와 그의 검은 무리들, 부패한 사회경제적 시스템을 위한 악마의 희생양에 대한 믿음이 퍼져나갔고, 억압적이고 무서운 인간성으로 채워졌다. 봉건시대동안 세속적인 권력은 많은 봉건 군주들 사이에서 퍼졌고, 흔히 사람들이 말하기를 교회는 민중들, 특히 도시 농민이 그들의 토속적인 종교를 거스를 정도로 강하지 않다고 여겼다.
하지만 도시화된 중심부 내에서는 국민들이 반대하는 왕실의 힘은 분명하게 강화되고 교회는 점차 정치적으로 도전받지 않게 되었다. 교회는 즉각적으로 국민을 반대하는 왕과 결탁했다. 국민들과 연대하는 것을 고려할 시간은 필요치 않았다. 대신 라이벌 종교의 믿음을 폭력적으로 제거하는 것을 통해 그들의 힘을 안전하게 움직였다. 이것은 토착 종교가 유럽에서 최소한 천년의 기독교 지배를 통해서도 어떻게 살아남았는가를 설명해준다. 시골에서 남아있는 힘. 선교사들은 로마교황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는 토착종교를 수용할 것을 권고했다. 그래서 유럽을 통틀어서 기독교교회는 토착종교의 사원지역에 세워졌고, 토착종교의 신과 기독교 신은 초기 많은 유럽교회의 부조에 그려졌다. 영국, 특히 아일랜드의 많은 곳에서 쉬라-나-기아(Sheela-Na -Gia)로 불리는 그녀는, 다리를 넓게 벌리고 생명의 기원을 보여주는 벌거벗은 여신이고, 교회 문, 심지어 수녀원의 상인방(문틀・창틀의 일부로 문・창문을 가로지르게 되어 있는 가로대)에 장식되어 있다.
유사한 방식으로 기독교 상징들은 고대 토착 페스티발을 편입시킨다. 크리스마스는 겨울의 최고점을 축하하는 것이고(로만 스투르나리아Roman Sturnalia-진탕 마시고 노는 로마인의 잔치); 나무와 선물 교환은 여신 의례에서 유래된 토착종교의 관습이다. 산타크루즈는 시베리아에서 유래되었고, 네르투스/헤르타Nerthus/Hertha라는 이름의 노르웨이여신에서 따왔다.스칸디나비인의 줄Jul 계절(섹슨족의 크리스마스)은 원래 “일 년의 한 바퀴”(Wheel of the year)로서 겨울 최고점을 축하하는 것으로, 태양은 최북단 지점으로 되돌아갔으며; 줄hjul 은 스웨덴에서 ”바퀴Wheel“를 의미한다. 부활절은 토착종교의 봄 페스티발로, 한 해의 재탄생 혹은 부활을 의미한다.
이 명칭은 봄의 섹슨Saxon족 여신인 오에스트레‘Oestre’로부터 유래되었는데, 그녀의 이름 역시 여성의 배란주기(estrys-cycle)에서 유래했다(그녀의 이름은 신석기시대 동양 여신인 Ostarte, Astarte, Ishtar, Ashtortt 와 관련이 있다). 부활절 토끼, 풀밭에 숨어 있거나 잔디밭을 굴러다니는 색깔있는 계란, 은 여신의 생식력의 상징들이다. 마침내 부활절의 "움직이는 축제일“를 세기 위한 황금수Golden Number는 음력 계산에 기초하고 있으며, 19-19-18년의 일식 주기는 드루이드(고대 켈트족 종교였던 드루이드교의 성직자)와 초기 거석문화를 만든 사람들에 의해 사용되었던 것이다. 동일한 숫자는 한 때 겨울의 동짓날과 연관된 크리스마스의 날짜를 계산하기 위해서도 사용되었다.
기독교 선교사들은, 시골 사람들이 그들의 자연적인 나무, 갈라진 틈, 동굴, 그리고 성스러운 돌들을 경배하는 것을 최대한 금지시켰다. 그러나 그들은 초기에는 이러한 타부를 금지시킬 실질적인 힘이 없었다. 그리고 농부들은 착한 본성 때문에 기독교인의 일말의 기준들을 자신들의 토착 의례에 계속 포함시키기도 했다. 전세계적으로 보면, 토착민들은 자신들의 것만 고집하는 광신도가 아니라 영적으로 다른 것을 포함하려는 포괄적인 경향이 있다. 그리고 결국, 유럽 토착민들은 이미 지모신과 그녀의 경이로운 아이를 경배하였다. 기독교는 초기에 이러한 경배를 그 자체로 아무런 문제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수세기 동안 그것은 다른 선택이 없었다.
그러나 봉건제도의 파괴로 인해- 교회가 유럽에서 그들의 조국을 통제하기 위한 책략을 꾸미기에 바쁜 와중에, 봉건 영주들을 광범위하게 멀리 “성스러운 땅”의 십자군 전쟁터에 보내려는 교회의 의도로, 권력은 시골/봉건제도가 해체되고 도시/법정으로 집중되었다. 봉건 영주들은 십자군전쟁으로 인해 파산했고, 그들은 그들의 성곽 입구에서 도시의 대부업체를 찾기 위해 돌아가야 했다. 그들은 왕의 출현에 저항할 수가 업었고, 그들의 법정은 로마와 그 사제들에 의해 장악되었다. 13세기와 14세기에 교회는 몇 세기 후에 유럽 인구의 엄청난 숫자가 사라질 정도로 불태워진 세속적으로 허용된 무장된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구석기 시대의 동굴에서 물려받은 고대 마녀 지식과 함께.
이러한 잔인하고 전환적인 세기에, 구원과 관련된 많은 세기적인 운동들이 사람들 사이에 나타났다. 비록 그들이 기독교 교리와 종말론적 이미지에서 볼 때는 매우 느슨하다고 할 수 있지만, 이러한 운동의 대중적인 특성으로 인해 그들은 “악마적”이라며 비난받으며 교회로부터 파문되었다. 많은 다른 운동들은 되살아나는 토착종교의 에너지로 동요하고 있었다. 현실적이든 상징적이든 마녀, 템플 기사들, 그노시스학파(그리스 철학을 신앙과 결부시키려고 했음), 신비주의, 고행주의와 빈민들과 초기 십자군 사이에 다양한 연결이 있었다.
이러한 십자군은 태생적으로 혁명적이었다. 부자와 세력가들의 성들과 저택이 종종 불타고 약탈되면서 이들의 마음속에 공포감을 심어주었다. 이들은 초기 감리교도, 디거스(Diggers, 영국의 청교도 혁명 때에, 좌익 성향이 가장 강했던 당파), 카타리테스Catharites(“이단“으로 처음으로 불태워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남성/여성 베긴회-”자유 정신의 형제자매들 Brethren and Sister of the Free Spirits- 공동의 삶과 재산, 그리고 자발적인 가난을 옹호하는 여성과 남성들이다. 여성베긴들은 결혼을 거부하고, 그들의 성스러운 권리로 섹슈얼리티와 영혼의 자유를 선언했다. 베긴여성 공동체는 12세기 유럽에서 찾을 수 있고, 많은 여성예술가, 철학자, 그리고 신비주의자들은 그들과 연관되어 있었다. 이러한 여성-도시, 플랜더스에 위치한 가장 큰 이 공동체는 자립이 가능했다. 그들은 기술을 개발하고 소녀들을 교육했다.
베긴여성들의 공동체는 명목상으로는 기독교인이지만 교회 권위에 복종하는 것을 거부하였는데, 그들의 성공적인 독립 때문에 처음부터 무거운 세금이 부과되었고 경제적 부담을 져야만 했다. 많은 남녀 베긴들은 양성애자였다; 우리말로 하면 새끼buggering(욕설, 남성 동성애자들)들이 이 남녀 베긴회로 왔다...(표준화 된 사전보다 더 오래 전에 살았던 사람들). 성스러운 부모(아버지가 아니라)의 우주적인 아이들이 되고자 한 그들을 느끼면서, 심지어 그들은 “살아있는 신”이 될 수도 있었고, 남녀 베긴들은 성스러운 우주 안에서 살아가는 상호 환상적인 존재를 제외한다면 “나의 것과 당신의 것”을 알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여성 메시아의 도래에 대한 믿음이 광범위하게 전파되어 있었다. 아마도 이것은 잔다르크가 교회의 세속적이고 신성한 계시로서 제거된 이유일 것이다. 그녀는 사람들이 따랐다. 대부분의 이 그룹들과 운동은 종교재판에 의해 사라졌고, 혹은 그들의 신념과 관습의 기억들은 지하로 들어갔고 또한 오늘날 지워졌다. 그러나 그들의 정신적 후계자는 오늘날까지도 모든 곳에 항상 꽃피우기를 계속하고 있다. 분명히 그들은 항상 “사람들”사이에서 꽃피운다. -가난하고, 젊고, 따돌림 받고, 여성과 소수자, “미친 사람”, 예술가, -그리고 그들은 항상 기존의 가부장적 질서에 위협적인 존재로 보였다. 분명히 그렇다: 그들은 지모신의 아이들이며, 다시 모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고대인들에게, 감각과 직관에 의해 인식된 모든 일과 사건들은 궁극적으로 다양하게 변화하는 현실에 상호 연결되어 있음이 감지된다. 우주는 하나이며 분리가 불가능한, 그리고 분리된 개인 자아는 자아 착시라는 생각, 의례적인 황홀경과 쿤달리니 명상에 의해 초월되어야 하는 현상이다. 기독교 종교 재판과 마녀화형의 불은 서구인들의 관점에서는 태워서 없애버리려고 했던 자연적인 총체론적인 관점이다. 아이로닉하게도 종교재판의 과도함은 “지적인 남성”들조차 불쾌하게 만들어서 교회를 외면하며 돌아세게 했고, 종교를 거부하게 했고, “성스러운 불”의 연기나는 재로 완전히 세속적인 세계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불로부터 프란시스 베이컨이 나타났고, “진정 남성적인 탄생의 시간”을 요구했다. 베이컨을 찬미하는 사람들이 “경험주의 철학의 창시자”라고 부르는 그는, 매우 정확한 언어로 현대적 과학을 선언하고 자연의 “비밀”-항상 여성 생식기를 위한 메타포- 을 공격하는 저돌적인 남성으로 취임했다. 베이컨은 그가 사고의 “엔진” 즉, 남성에게 “힘으로 자연을 심문하는” 것을 허락하는 과학적인 방법의 수단을 얻고자 했다. 자연의 숨겨진 과정과 ‘뛰어난 사용상의 비밀’을 찾아내서 그녀를 '선반’에 두기 위해... 여전히 (그녀의) 자궁에 들어있는. 이러한 은유는 우연이 아니었다.
베이컨이 살았고 기록했던 것처럼, 종교재판의 엔진들은 24시간을 조직적으로 작동했다. 마녀사냥을 할 때 여성의 몸을 벌거벗기고 심문하는 것처럼 자연을 위험하다고 심문하면서, 고문이라는 종교적 -법적 권력을 가지고 모든 유럽인들의 삶을 심문하면서. 베이컨이 마녀들의 "고백"이 너무 환상적이어서(즉, 너무 비과학적이어서) 믿을 수 없다며 마녀의 기소를 반대하기도 했지만, 영국의 일반적인 변호사로서 그 자신은 마녀로 체포, 구금, 고문, 그리고 화형을 처하도록 승인하는 데 관여했었다.
영국의 수학 물리학자이고 서구 과학의 남성중심적인 경향성에 대한 비평가인 브리안 에스리아Brian Easlea는 베이컨주의 이론을 일컬어 여성 본성을 “윤간이 예측되는(‘prospective gang rape')”것으로 언급했다. 17세기 베이컨의 방식으로 시작된 합리주의적 통제와 자연 과정에 대한 착취는 생명 탄생의 대체물인 생산품produces의 탄생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모든 계몽화된 유럽 남성의 정신을 기독교 고유의 전체주의holism의 황폐화로부터 회복시킬 수 있다. 어떤 고귀한 목적으로? 베이컨의 주장은 “나는 진실로 당신 자연을 그녀의 모든 자녀들과 함께 묶어서 당신에게 봉사하게 하고, 그녀를 당신의 노예로 만들겠습니다.”
베이컨은 물질과 정신, 영혼과 육신 사이의 이론적인 분리를 더욱 확대하고, 물질적 과학의 영역에 지성을 첨가하여 노예 상태로 만든 르네 데카르트Rene Descartes로 이어졌다. 정신과 물질은 두 개의 완전히 분리된 영역이 되고, 하나는 “살아있는” 것이고 하나는 “죽은” 것이 되었다. 이 데카르트적인 분리는 과학자들이 물질을 완전히 비활성적인 “물건”으로 취급하게 했고 그들 자신으로부터 완벽하게 분리했다.
그리고 물질적인 세계는 다양하게 분리된 물체가 조립되어 만들어진 거대한 기계 -우주론적 관점으로 보면 “작동하는” 기계, 조립할 수 있다는 완벽한 논리를 통해- 로만 보게 했다. 데카르트의 이론적인 우주에는 살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칼 스턴Karl Stern이 쓴 것처럼, 데카르트의 합리주의는 “사고의 순수한 남성화를 보여준다. 남성의 관점에서는 어린 애같은 것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지혜의 편에서, Sophia, 여성적인 것은 거부당했고, 지성이 자랑스럽고 전능하다고 주장한다.”
스턴Stern이 주장한 것처럼, 데카르트의 어머니는 그가 한 살 가량이 된 어린이였을 때 죽었고, 그는 짧은 생애를 신체적 유약함과 우울감으로 보냈다. 극심한 슬픔은 데카르트 듀얼리즘의 핵심이다; 그는 그 자신의 마음을 제외한 모든 것은 죽음으로 간주하였고, 추론이라는 정교한 도구를 가지고 상실이라는 존재론적 의식과 싸웠다. 여기에서 그는 고대 위대한 어머니를 박해하고 화형시킨 유럽의 살아있는 상징이었고 차가운 재, 그 자신의 남성적인 정신 기능, 그리고 살아있는 생명의 대체물로서의 건축을 위한 모든 믿어지지 않는 작은 기계들 말고는 아무것도 남겨진 것이 없음을 발견한다.
뉴턴은 기계적인 세계관의 거장으로, 고전 물리학의 기초를 만들었다. 17세기부터 19세기 말까지, 이 “기계로서의 세계(world-as-machine)” 철학은 과학적인 사고를 지배했으며, 대부분의 사회적이고 종교적인 사상의 모델이 되었다. 논리적이고 테크노크라트적인 신(God)은 위로부터는 그의 ‘법’, 즉 뉴터니안의 물리학과 기하학의 비인간적인 법의 시행을 통해 세계를 지배했다. 비록 무신론자와 자칭 명망있는 운동가라도 이 “신”에 대해 거의 문제 삼지 않는다. 마술적인 신비로운 술수도 없고, 헌신을 요구하지도 않고, 완벽한 기계로서 기능하며- 다양한 적용이 가능한, 그리고 가끔 뇌에 기름을 떨어뜨려주면 된다.
이 “계몽된‘ 세계를 보는 방식은 아주 최근까지도 모든 서구에 큰 영향을 미친다. 서구 ”남성“은 그의 정체성이 몸의 모든 기관 대신에 그의 마음과 함께 창조되었다. 마음은 분리된 어떤 것으로서 그 자신이 경험하는 동안 몸을 ”통제“한다. - 이것은 데카르트가 어떻게 그의 슬픔을 조절하는가, 그리고 이것은 ”서구 남성“이 어떻게 그의 슬픔을 조절하는가를 알게 한다. 정신세계뿐만 아니라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유기체적인 세계에 대한 놀라운 파편화와 소외를 일으키는 방법이다.
선형주의 -논리적인 시간과 진화의 개념을 가진 완전한 선형- 는 신석기 여신 종교인 토착종교의 주기성에 반대하는 히브리 역사성이 있고, 이미 성경의 세계관에 내재되어 있다. 17세기부터 유럽 선형주의는 상품- 빈곤, 물질적인 생산품들, 지식, 테크닉들 -의 혁명적인 축적을 가져온 ‘진보’속에서, 신God의 남성적인 의지에 의해서 결정된, 합리적인 믿음으로 발전했다. 남성들은 그들 자신을 위대한 어머니의 몸으로부터 완벽하게 해방시켰다. 위대한 어머니 그들이 증기 엔진을 갖고 있지 않아서? 그들이 계산기와 공장 생산이 없어서? 진정한 ‘남성’은 “운명을 넘어서”, 영혼의 창조적인 에너지를 어린이 장난감처럼 던져버렸다. 자연은 이후로 논리적인 마음- “기술(know-how)”을 가진 남성- 의 다루기 쉬운 하인이 된다. 우리들에게 주어진 그 유명한 서구의 기술은 다른 것들 속에서 사회적, 생태적, 그리고 정신적인 재앙과 “우리의 현대세계”에 위기를 주었다.
푸코가 『훈련과 처벌』Discipline and Punish에서 발견한 것처럼, “자연의 과학은.... 태어났고, 중세 말에 어느 정도연구 관행을 통해.... 종교재판에 의해 발전되었다. 5백 년 동안 지속된 몸, 마음, 그리고 근본적인 여성의 정신에 가해진 가학적 고문인 ”종교재판의 기술”, 푸코는 종교재판을 “우리 기억의 어두운 곳에 인간의 유순함을 각인되게 만드는 엄청난 발명품”으로 부르고, 이것이 경험적인 연구를 위한 “과학적인 테크닉”이 되었다고 말했다.
한 세기가 넘게 우리의 “인간성”을 기쁘게 한 이러한 남성의 과학은 훈련과 연구는 사소하고도 악의적으로 세밀한 기술적인 모태matrix를 가지고 있다. 이 연구는 아마도 심리학, 정신의학, 교육학, 범죄학, 그리고 많은 다른 이상한 과학에 적용되었으며, 이 연구의 무서운 힘은 동물, 식물 혹은 지구를 조용한 지식으로만 이해하게 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권력, 또 다른 지식...
인간에 대한 기독교 종교재판은 모든 자연을 과학적으로 심문했고, 분석적인 목적으로 자연과 인간 양쪽 모두를 유용한 기계들, 혹은 기계들의 기능으로 간주했다. 악명 높은 서구의 “규율”은 기독교 수도원의 기술로 시작되었다. 계절적 리듬의, 몸의 내부 리듬과 순환을 “함께”하는 훈련도 아니고, 몸의 쿤달리니 척추에너지를 통한 빛을 찾는 훈련도 아니었다. 아니다: 기독교 수도원 훈련은 딱딱하고 신중한 반자연적인 프로그램이고, 금욕적이고 처벌중심적인 영혼에 몸을 맞춘다. 수도사들은 달, 태양, 계절, 그리고 별 등을 관념적으로 혐오하며 일정표를 만든다.; 그것은 불멸의 육신이 그 자신의 신체적인 경향성에 반대되도록 강요하면서 “두려운” 것으로 만드는, 기독교 정신의 이데아에 기반하고 있다.
이 수도원의 일정표와 금욕적인 실천은 곧바로 교회에 의해서 학교와 가난한 자들에게 제도로 전파되었다. 이 취약한 사람들이 수도원 밖에서 첫 번째 유럽시민이 되었고, 제도적으로 그들의 뇌와 척추에 새벽부터 저녁까지 "신"의 생체혐오증(biophobic)을 느끼게 만들었다. 젊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은 절제가 필요한 사람들이다. 만약 몸이 충분히 처벌받으면 자연으로부터 떨어져 나가게 되고, 그 결과 “기독교 정신”에 영광스럽게 복종하는 꽃을 피우게 된다. 그래서 인간의 몸이 복종하는 기계가 되도록 성공적으로 디자인된 이러한 수도원 프로그램은 17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 비정상적일 정도로 엄격하게 감시하는 유럽의 거대한 산업 공장에 광범위하게 퍼지게 된다.
17세기, 산업 시대의 활력에는 종교적인 분위기를 포함하고 있었다. 큰 공장은 규율에 의해서 하루의 업무를 분리했다. “아침 몇 시에 도착해서, 일을 하기 전에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손을 씻고, 신에게 기도를 드리고, 성호를 그었다“(Sant -Maur, Article 1, Reglement de la Fabrique de Saint-Maur) ; 그러나 19세기에, 업계에서 농촌 인구가 필요할 때, 그들은 종종 일터에서 능률을 올리기 위해 ”신도조합“을 만들기도 했다; ”공장-수도원“의 프레임은 노동자들에게 도입되었다.
누구에게는 이로울 수 있겠지만, 우리는 확신한다. 수도원의 일상은 병원이나 교도소에서의 제도적인 방식에서 더 나아간 제도로,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궁극적인 성공을 얻고자 한다.; 군대의 삶. 17세기 스웨덴 프로테스탄트 군대. “군대 훈련은 규칙적인 시간이 정해지고 정확한 훈련에 의해서 성취된다.” 기도와 전쟁을 기독교적으로 혼합하여 스웨덴 핸드북을 썼던 보사넬레Boussanelle는 군대와 수도원은 똑같이 “완벽함”을 추구하는 동일성이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국가는 “농부를 제거”하고 그에게 “병사의 태도”를 만드는 속임수를 완성했다.
동시에, 공장은 “노동자”인간을 제거하고 “도구”로 만들었다. 그래서 수도원 훈련, 즉 몸을 예속상태로 두고 영혼의 “자유”를 추구하는 기독교 실천은 서구 자본주의세계를 통해 제도화되었다. 그래서 몸의 기계화가 곧바로 메커니즘이 되었고, 인간은 일, 놀이, 사랑, 그리고 전쟁에서 기계의 부속품, 자동 제어장치로 변했다. 정신은 이 과정에서 말할 필요도 없이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이것은 푸코가 ”결코 그 한계를 알 수 없는 종속“으로 불렀던 것처럼, 몸처럼 예속되어 있었다. 그 스스로가 종속을 실천함으로서 그 한계는 결코 도달하지 않았고- 이러한 훈련으로 인해 인간은 제도와 메커니즘에 만성적으로 복종하는 것이 이익의 기능, 즉 세계 권력의 기능이 되었다.
“프로테스탄트 정신”은 기독교정신에 기능으로서 합리적인 세속적인 이익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첨가되었다. 근본주의-프로테스탄트 교리 즉, “부는 신이 호의를 보이는 표시로, 신은 당신이 부유해지기를 원한다.”는 완벽한 논리이다; 많은 사람들에게서 ’도덕성의 이익‘을 갈아 엎어버리는 동안, 소수에게는 ’이익의 도덕성‘이 되었다; 기독교 자본주의, 신이 빈틈없는 세계은행이 되어버리는 천국에서, 달러를 위해 영혼을 교환하고.. 그 교환은 무서운 비율로.
푸코는 19세기 원형감옥의 디자인과 건축을 제레미 벤담Jeremy Bentham이 디자인한 서구 기독교 자본주의의 상징적인 유토피아 건물로 묘사했다. 이 모든 보이는 건물은 영원한 감시를 위해 지속적으로 통제하는 죄수들, 군대캠프들, 작업장들, 그리고 공장들의 필요성에 기반하고 있다.
"완벽한 규율 기구들은 단 하나의 시선으로도 모든 것을 지속적으로 볼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중심부가 모든 조명의 시작은 물론 반드시 알아야 할 모든 것들을 위한 집합점의 위치가 된다.; 어떤 것도 탈출할 수 없고 모든 보이는 것이 통제될 수 있는 중심인 완벽한 눈."
이것은 신의 눈- 영원히 죄수를 가두는 자, 도덕의 관음증적인 판사, 빅브라더big brother이다. 이러한 건물의 목적- 그리고 이러한 신의 목적- 은 푸코의 말처럼 “위계적 관찰”; 그리고 우리는 “위계적”이 hieros, 즉 “성스러움‘을 의미하는 말에서 왔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그 첫 번째 정치구조적인 용도는 인간 위에, 인간을 넘어선 권위를 가진, 요원들- 어떤 원격 조정이 가능한 '신'의 스파이들로 간주되는 가부장적 사제들로 추측할 수 있다. 신의 경찰. 이 ”모든 보는 것“ 신의 구조적인 눈은 재빨리 이익의 모든 것을 통제를 하는 구조적 눈이 되었다.
이것은 커다란 일터와 공장에서 복종하는 새로운 형태를 조직하는 문제였고...“대규모 공장에서 모든 것이 시계에 의해 규제되었다. 노동자들은 엄격하고 철저하게 취급당했다. 우월감과 명령하는 태도로 그들을 취급하던 서기는 모질게 혹은 경멸적으로 그들을 다루면서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그들을 대했다...(백과사전Encyclopedie, manufacture 관련 논문에서). 그러나 노동자들이 이 새로운 감시 체제에 길드 유형의 틀을 선호하더라도 고용주는 사업의 생산성, 개인적인 자산과 이익 증대의 시스템을 위해서는 불가피했다.
막스Marx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감시란 생산기계의 내부 영역뿐만 아니라 특별한 메커니즘에서 규율하는 권한을 가진 결정적인 경제운영 장치가 되었다. 지도하고 감독하고 조절하는 일은 자본의 한 기능이 되었다....
일종의 눈의 파시즘 - 전체적인 구조적인 감시를 통한 영원한 시체 애호증- 은 히틀러가 나타나기 이전에 서구의 많은 국가에서 강력한 시스템을 만들었다. 몸을 훈련 도구로 만드는 데 일조한 “진보”를 만든 서구, 노동의 움직임, 성적 움직임, 사회적 움직임 등 몸의 움직임의 지속적인 시각적인 단속을 통해 종교적-정치적-경제적 기계를 구축하고, 이 기계화 과정의 성공을 확신하면서 몸을 복종하는 기계의 한 부분으로 사용했다. 성공은 대다수 사람들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내면화되었다.
오늘날 현대 서구에서, 기계 감시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삶의 한 부분”으로 영향을 미친다, 고용주, 사회적 대리인, 정부 기구들, 정치적 군사적 지도자들은 1) 통제를 유지하는 방법 2) 통제를 강화시키는 데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는 방법을 지속적인 기계 감시에 의존한다, 노동자들과 시민들은 이러한 사용으로 거의 완벽하게 통제된다. 즉, 극소수의 사람들이 그 “정상성”에 대해 질문한다.
포르노그래피는 공상과학의 기술을 적용한다. 기계적인 눈에 의해 모든 것이 감시된다. 우리는 근대 빛의 미디어를 가지고, 사실- 사진, 영화, 텔레비전, 비디오 게임- 모든 서구, 대부분의 전 세계는 판옵티콘(Panopticon) 시스템으로 묶여져 있다. 사람들이 “단 하나의 시선”인 근대 전자 감시의 “완벽한 눈”을 피할 수 있는 장소는 거의 없다. 광학optics은 서구의 “천재적”이고 서구의 주요 통제 메커니즘이다. 전지구적 혹은 다국적 협조, 그리고 제 3세계를 통한 “자유무역 지대”의 건설(그리고 곧 미국의 “저개발” 빈민 이웃들에서), 경제적-정치적 판옵티콘은 완성될 것이다. 평균 이하의 임금을 받는 여성노동자들이 80-90%인 “자유무역지대”는 종종 철조망 울타리가 쳐진 시멘트벽으로 둘러싸인 이 지역 내 감옥과 같은 기숙사에서 산다. 이 여성들은 일터뿐만 아니라 작업 시간이 끝난 후에도, 그들의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행동을 위해 지속적으로 감시당한다.
심지어 미국에서 일하는 첨단 기술을 가진 남성 노동자나 그들의 옷에 컴퓨터 센서를 달고 있는 다른 중요한 산업도시에서 일하며 높은 보수를 받는 사람들에게도 이것이 일반적인 현실이 된다. 이러한 전자 센서들은 각자 임무와 관련된 몸이 기능하는 움직임을 속도와 효율성으로 기록한다. 땀, 피부 전도센서, 혈압과 체온, 근육 긴장과 반응 시간 등은 “신의 눈”에 의해서 모두 기록된다. 서구가 매우 거만한, 혹은 제정신이 아니기 때문에, 그 눈을 믿는 것을 실제로 신의 눈을 믿는 것이 되고, 완전한 지배를 위한 의지는 진실로 신의 의지가 되고, 완벽한 관찰과 통제를 하는 기계는 신의 기계가 되고- 그것은 “진보”를 만들었다. 서구 지도자들, 정치적, 종교적, 그리고 경제 엘리트들은 공적으로 그들의 이익을 신의 이익과 합치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서구 사람들은 13세기 기독교 종교재판 시작부터 조건화되고 지속적으로 연마되어, 그들의 도덕적인 제물로서 이 유익한 기계에 복종하는 것을 받아들였다.
어머니 신(the Mother)에 대한 가부장적 부정은 자본주의를 통한, 인간 몸의 총체적인 메커니즘이 되었다. 그리고 몸이 움직이면 하나님도 움직였다. 기독교적 자본주의 서구는 신을 살아있는 우주가 아니라 죄수 감시자로, 공장 주인으로 창조했다. 춤 대신에 조립 라인을 만든 신, 이 기계적인 신, 그리고 이 신의 메커니즘은 사람들의 세대와 세대를 이어서 신경계에 연결되었다.
푸코는 말했다; “모든 징벌 체계의 중심에는 작은 형벌 메커니즘이 있다.”
참으로, 신의 형벌의 눈, 징벌적이고 하나님 아버지에게 이익이 되는 기계적인 '“단 하나의 시선”
출처: Monica Sjöö,Barbara Mor(1981),The Great Cosmic Mother: Rediscovering the Religion of the Earth. HarperOne, pp. 315-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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