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x And The Matriarchy 막스와 가모장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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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5-05-23 17:08 조회97회 댓글0건본문
Marx And The Matriarchy
막스와 가모장제
고대 여성 중심의 그룹들은 원시 공산주의사회였다.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와 칼 맑스(Karl Marx)는 이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Friedrich Engels, “The Early Development of the Family(Boston:New England Free Press, n.d); 이 책은 원래는 1994년 Zurich에서 출판된 『가족의 기원』The Origin of the Family, Private Property and the State, American edition by International Publisher, New York , 1942, 1972 의 첫 두 챕터에서 인용했다.). 특히 엥겔스는 바호헨(J. J. Bachofen)의 모권 개념을 인용하였고, 이 두 남성의 사회 발전 분석이론은 최초에 존재했던 고대 모권, 즉 원시 공동의 모권중심제도를 기초로 하고 있다. 그들은 미국의 인류학자인 루이스 모르간(Levis Morgan)의 저술에 영향을 받았다. 모르간은 이로쿼이(Iroquois) 부족사회에서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연구했는데, 그들의 친족 구조나 언어, 관습에서 그는 초기 원시사회의 증거들과 집단혼의 또 다른 단계에 기초한 혈연관계를 발견했다.
1880년대에 저술한 모르간의 『고대 사회』Ancient Society를 보면, 고대사회는 집단혼 구조로 아이의 부모는 오직 아이를 낳은 어머니만 분명하기 때문에 모계혈족 중심주의, 그리고 모계중심이었다고 결론지었다. 이와 유사한 증거가 세계 곳곳에서 지금도 발견되고 있다. 예를 들면 많은 친족 시스템은 아이의 생물학적 아버지와 사회적 아버지, 보통 어머니의 남동생이나 다른 남성 친족, 을 구분한다. 사회적 아버지는 일반적으로 “진짜 아버지”로 여겨지고 정체성이나 상속은 여성 혈연을 통해 이어진다.
그러나 모르간이나 엥겔스, 맑스와 같은 선구자들은 과거 문명에서 여성의 실질적인 기능과 성취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다. 초기 인류의 전체적인 삶의 형태를 통해 이해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이론적인 해설자와 추종자들은 경제와 계급 분석이라는 편협한 영역에만 엄격하게 초점을 맞추었고, 그 결과 경제보다 더욱 심오한 영적인 존재로서의 원래의 인간 존재에 대해서는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이러한 맑시스트의 편협한 관점과 인간의 영적인 경험에 대한 부정의 결과는 전세계적으로 비극이 되어 되돌아온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했는가? 칼 맑스(엥겔스 또한)는 동정심이 많은 사람이다. 결코 분명하게 인용되지 않았던 그의 “인민의 아편" 이라는 발언이 그 증거이다.
“종교적인 고통은 동시에 진정한 고통의 표현이며 진정한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저항하는 것이다. 종교는 억압받는 창조물의 탄식이며, 애정없는 세상에서의 애정이며, 영혼 없는 상태에서의 영혼이다. 이것은 사람들의 아편이다. 그 상황에서 환상을 포기하 라고 요구하는 것은 환상이 필요한 상황을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비판은 사슬로 부터 상상의 꽃을 빼앗는다. 사람들은 어떠한 판타지나 위로도 없이 사슬에 묶이지는 않을 것이고 사슬을 부수고 살아있는 꽃을 딸 수도 없다.”
그 누구도 “영혼 없는 상태”에서 “영혼”으로, “애정 없는 세계”에서 “애정”으로 이끄는 인간 존재의 완전한 권리를 이보다 더 잘 표현하거나 분명하게 인식할 수 없다. 왜냐면 영혼과 애정은 실재하고, 생존할 수조차 없는 상황에서도 수백만 인류의 생존을 돕기 때문이다. 맑스와 맑시스트의 비극은 제도종교와 영혼을 동일시해서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기성종교가 지배계급, 왕정, 사회 경제 시스템 등 억압자와 함께 결합되어 있음을 역사적으로 분명히 보았다. 그들은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위계, 빈부의 위계에 기초한 사회제도에 “하느님의 도장”을 찍어줌으로써 탐욕과 잔인한 폭군의 죄가 사면되고, 빈곤과 노예화를 합리화하는 종교 교리에서 억압의 씨앗을 보았다. 그들은 부와 교회의 힘과 신도들의 비열한 소극성을 보았다.
그들은 “교회”가 사실은 영혼의 실재와 관계없는 물질적인 요구로 사람들을 착취하면서 힘을 얻고 또 유지하는, 사실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기구라는 사실을 알았다. 사람들은 “물질적인 부”와 “세속적인 기쁨”을 비난하는 설교를 듣지만, 성직자들과 그들의 부유한 지지자들은 풍요롭고 안전하게 사는데 비해서 신도 대중들은 냉혹한 현실에서 누더기를 걸치고 산다. 그리고 그들은 이러한 상황들이 “인간을 위한 신의 계획”으로 정의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종교 제도들은 항상 이를 만든 사람들이 자신을 엘리트적인 용어로 “영혼”, “신”, “인간의 운명”으로 정의하고, 그들 자신의 세속적인 이익을 위한 것임을 안다.
이러한 일들을 보면서, 맑시스트는 인간 존재의 역사적인 억압 속에서 만들어진 종교의 공모를 분명하게 비난한다. 비극적이게도, 그들은 또한 인간 영혼의 존재와 그 진실된 갈망을 부정한다. 그들은 종교적인 착취로부터 인간성을 구하기를 분명히 원하지만, 그들의 경제적이고 계급 환원적인 협소한 관점으로 인해 인간 존재를 물질적인 존재 대 영적인 존재로 분리시키고 대립하게 만든다. 이 분리는 이미 존재하는 종교 이원론의 거울 이미지에 불과하다.
교조적인 맑시스트 공산주의로서 국내외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났던 이 분열은 맑스가 그토록 해결하기를 원했던 “소외”라는 인간 상태와 동일하게 나타낸다. 국가는 사람들을 지루할 정도로 기계처럼 일하게 만들고, 인간의 삶을 영혼 없는 기계로 정의하도록 만들면서 소비에트 러시아와 그 위성 국가들은 음산한 “국가자본주의”를 만든다. 이는 모든 국가의 반작용 시스템을 선전하는 엔진에 연로를 제공하는 것처럼 되었고, 세계는 “신이 없는 공산주의”와 “신성한 자본주의”라는 잘못된 이분법으로 나누어졌다. 만약 공산주의가 무신론자를 위한다면 그 상대쪽은 신에 의한 위임통치하에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십중팔구는 속임수이다.
결국, 이는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또 변화시키기를 원했던 사람들, 그러나 그들의 영혼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수많은 억압받는 사람들을 외면했다. 아무리 세계의 기성 종교가 부패하고 권력과 담합했다고 할지라도, 종교는 “영혼 없는 세계에서 영혼”이라는 유일한 성역을 제공하며 여전히 거기에 서 있다. 불행히도 맑시즘은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의 인식 속의 영적인 실재를 완전하고 광적으로 거부하면서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맑시즘의 이러한 인식은 오늘날 전 세계에서 종교 근본주의자들의 광적인 부활에 연료를 제공하는 것과 같이 역할을 한다.
맑스와 엥겔스의 이론적인 추종자들이 계속 나타나면서 제도화된 종교와 영혼을 거부한다. 왜냐면 서구 백인남성으로서 그들은 고대 여성들의 최초의 공산주의라는 전체 패러다임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계보, 파편, 그리고 축소된 서구 전통으로부터 나타나는, 예를 들면 유대 기독교 성서, 아리스토텔리안과 플라톤 추종자, 그리스 로마의 초합리주의 등은 지구상에 인간 경험의 근원적인 전체론을 이해할 수 없다. 그 결과, 맑시즘은 서구 자본주의의 악명 높은 소외의 전략으로 인해 적대시되기 보다는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 맑시스트 분석가는 일반적으로 경제적/생산적 발전으로부터 신비한/종교적인/성적인 발전을 분리한다. “자유론자”인 폴 가단(Paul Cardan)은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막시스트의 가정은 인류사회의 역사를 통해서 생산과 소비의 증가가 항상 최우선의, 그리고 가장 중요한 목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류는 태어날 때 그(그녀)의 삶에서 이러한 최종 목적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소비의 확대... 혹은 신성함의 힘은 태어나는 아이에게 유전적으로 경향성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그(그녀)에게 “필요”한 일들을 그(그녀)에게 가르치며 키우게 하는 것이 지배적인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맥시코 부족민 사이에서 옥수수 경작, 혹은 인도네시아 마을들에서 쌀의 경작은 음식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농업 노동은 여신과 아이들 숭배나 페스티발, 댄스로도 남아있다.
어떤 맑시스트 이론가가 이처럼 남겨진 것들을 직접적인 생산 노동이 아니라 신비화, 환상 혹은 “교묘한 속임수(cunning reason)”라고 주장한다면, 이는 그자신이 어떤 지도자보다 더욱 완벽하게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체화되었다고 말하는 것과 같이 억지스러운 지적일 것이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역사에서 인류가 행하고 찾은 모든 것이 단지 공장 시스템의 조잡한 원형들일 뿐이라는 것이다.(Paul Cardan, “History and Revolution, Critique of Historical Materialism”, Solidarity 38,(London: 1971); 15
이 경우 만약 맑시스트가 사실에 대한 권위와 특성을 강조하며 가부장적 종교를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거나 신비화를 반대한다면, 혹은 인간 노동력과 섹슈얼리티의 착취를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거나 이를 반대한다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는 인간의 실재, 진실 그 자체를 부정할 뿐만 아니라 여성의 집단적인 평등주의에 기초한 심리적/생산적/성적/우주적 힘과 활동력의 경험적 단위인 원시적인 모계사회의 존재를 부정한다. 이는 정확하게 말하면 가부장제가 출발하면서 나타난 것이다. 영적인 경험으로부터 물질적인 생산으로, 신비로움으로부터 과학으로, 약초의 지식과 영매/계절적 환경으로부터 의약으로, 성스러움으로부터 섹슈얼리티로, 직조로부터 예술로, 점성술로부터 천문학으로, 시로부터 언어가 분리되었다. “특화된” 결과, 서로 분리 되고, 남성 엘리트가 권위를 가지는 전문적, 위계적, 그리고 계급적인 조직으로 대체되었다. 근육, 혈족, 영혼에 의한 황홀한 댄스가 공장의 조립 라인, 생산 출고 계획, 국가 총생산으로 축소되었다.
가부장제는 삶을 “영혼” 대 “자연”, “마음” 대 “물질”로 상대적으로 높고 낮은 영역으로 분리했다. 그리고 이 분리는 전형적인 상징주의에 기초해서 우등한 “영혼/마음”은 남성(그리고/혹은 백인)이 되고, 열등한 “자연/물질”은 여성(그리고/혹은 흑인)이 되었다. 이 잘못된 이분법적인 상징주의는 남성 지배의 강화로 나타난 질서였다. 남근심리학의 주장처럼 남성은 자연을 강간하기 위해 지구 곳곳으로 전진했고, 자원과 노동력을 착취했으며, 기술적 - 기계적인 발명과 “진보적인 목표들”을 가지고 자연을 소위 “발전”시키거나 “조작”했다.
가부장제하에서 남성은 지구로부터 분리되었으며, 일정 부분 멀리 떨어져 연결되지 않은 채 그 자신의 창조물인 하늘신을 모방하였다. 이러한 지적인 분리는 그가 “자유”를 느낄 수 있겠지만 그 자신도 같은 생태계에 속해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자연의 세계를 황폐화시켰다. 그는 “그것”을 착취했으며, 그 자신의 나라인 “그것”으로부터 완전히 소외되었다. 적은 이익을 얻기 위해 많은 실존적인 고통을 만든 가부장제는 기원적인 전체론을 망가뜨리면서 존재해왔다.
인류의 영적인 존재의 실제를 반대하거나 논박할 때, 맑시스트 공산주의는 이 파괴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다. 단지 다른 논리로 혼합했을 뿐이다. 즉, “국가”, “기계”, “정당” 혹은 “생산량”이라는 다른 폭군들로 대체하면서 “신”과 “교회”를 제거하였다. 이는 진실로 인간의 자유 실현이 아니며, 단지 인간을 얽어매는 사슬의 브랜드 이름만 바꾸었을 뿐이다. 진실로 인간을 위한 정책들은 세계의 종교와 영적인 믿음의 역사를 관통하는 연구이어야 한다. 이는 뒤로 후퇴하기 위해, 혹은 앞으로 전진하기 위해 노력하는 영적인 시스템으로, 창조적인 공동체라는 삶의 안목을 가지고 우리 모두에게 조화로운 것이어야 한다. 왜냐면 “세계 힘들World Powers”과 창조적인 공동체적인 삶의 경쟁 아래에서 인류는 이 둘을 모두 다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서구 자본주의와 러시아 공산주의라는 두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공동체적인 협동을 부정한다. 발전을 축하하는 것은 영혼을 위한 유희라고 할 수 있지만, 인류의 공존을 위해서는 아무런 이득이 없다. 그러나 인간 혁명, 인간 창조는 진정한 기적이며, 광대무변의 사실이다. 우리는 신체적 - 영적인 이러한 진보에 참여하는 정치가 필요하다. ‘달라(Dollar)의 신’도, ‘국가의 신’도 아니고, 그들이 계승하고자 하는 소외된 가부장제도 아닌, 이러한 동참으로 나아가야 한다.
빌헬름 라이히(Wilhelm Reich)는 일반적으로 맑시즘과 연결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의 초기 작품은 파시스트적인 가부장제 사회의 발전에서 성적 억압의 중요성에 대한 심리 분석적 이해를 기반으로 한 맑시스트의 경제적 - 계급적 이론과 연결을 시도했다. 이러한 시도의 대부분은 성공적이었다. 그는 유럽 공산주의 정당과 프로이디안 심리분석 그룹 양쪽과 교류하며, 둘 다 속해 있었다. 1930년대 라이히의 저작인 『파시즘의 대중 심리』“The Mass Psychology of Fascism”에서 그는 나찌 이데올로기로 성공적으로 조종된 독일 사람의 연대기를 썼다. 그는 심리학적이고 생리학적 수준의 매우 깊이 있는 연구에서 사람들이 이미 신앙으로 조건화되어 있었고, 문화적으로는 심리성적 억압에 고분고분하게 반응하도록 관리되고 있었고, 새디즘, 폭압정치, 그리고 인종 청소에 대해 의문 없이 협조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주장했다. 반(anti) 성적인 종교적 도덕성, “순수 혈통”에 대한 편집증적 인식, 그리고 인종 우월의식은 고문하는 사람의 신경 시스템과 “네트워크”가 연결되어서 검은 장갑과 부츠 안으로 미리 근육을 긴장시키고 있었다.
라이히가 보여준, 사실은 예견한, 히틀러와 같은 “최면 상태의” 지도자가 이러한 상태를 만든 것은 아니다. 그는 단지 사람들을 착취한 것 뿐 이다. 파시즘은 “문명”의 한가운데 이유 없이 갑자기 나타나거나 “야만적인” 거친 현상이 아니다. 이것은 오랜 기간 조건화된 과정의 결과이며, 조건화했던 도구들은 “문명” 그 자체이다. 라이히의 중요한 포인트 가운데 하나는 경제적이고 계급적인 관계에 중점을 두며 “객관적인” 범위를 좁히는 맑시스트 공산주의와 일반적인 유럽 사회주의이다. 이는 잔인한 억압으로 사람들을 병적으로 조건화해서 광범위하게 폭발하게 만들도록 예견하거나, 분석하거나, 나찌 승리를 방해하는 것은 아니었다. 더욱이 파시즘 신드롬은 “독일인”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었다. 파시스트의 생각과 행동은 국가적인 탈선도 아니고, 서구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역사에서 뿌리 깊은 “문명화된” 서구인들의 모습도 아니다.
라이히의 정치적인 요점은 이것이다: 역사를 통해 보면, 주관적인 경제적 - 사회적인 시스템은 그 자체만으로 작동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억압적인 행위자, 새디스트적인 권력 관계, 경쟁적인 착취를 위한 탐욕, 지배, 굴욕- 그리고 우리의 축적된 이러한 모욕들- 은 우리의 “문명화된” 사회의 각 구성원의 불안한 시스템 속에서 억압자와 피해자가 둘 다 이 경험들에 의해 피해를 입으면서 현실에서 조건화된다. 이러한 불안한 시스템의 억압적인 연결은 성적, 그리고 영적인 가장 초기 수준에서 나타난다. 만약 우리가 진실로 인류 변혁을 욕망한다면, 인류의 재창조는 단지 경계만을 바꾸는 것보다 더 광범위해야 한다.
이 요점은 위계적인 남성의 행동이 정치적인 스펙트럼을 따라, 좌측에서부터 우측까지, 모든 영역에서 나타나는 성차별주의를 관찰한 페미니스트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억제, 통제, 그리고 여성 섹슈얼리티의 착취는 가부장제의 중요한 도구이다. 왜냐면 이는 여성 노동력의 착취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노동력 착취와 성적 착취 사이에 어떤 연관도 없는 남성들은 이 둘의 통합적인 분석을 하는데 실패했다. 라이히의 용어를 빌리자면, 그들은 여전히 억압하기를 열광하는 단세포 수준이므로 전체적인 혁명을 진행하는데 실패한 것이다.
1930년 라이히는 남성지배 사회에 만연한 남성의 성적인 판타지는 강간의 일종이라고 지적했고, 이것은 개인적인 판타지가 아니라 정치적인 영향을 가진 정치적인 것임을 그는 알았다. 그는 증가하는 사회적 범죄들 속에서 여성을 어떻게 성적으로 억제할 것인가가 가장 강력한 가부장적 무기라는 것을 매우 분명하게 주장했다. 나약하고, 의존적이고, 공포를 느끼며, 자신의 몸에 대해 창피함을 느끼고, 어떤 육식동물이 더 좋아하는 기능을 갖기 위해 스스로 벌을 가하고, 그들의 성적 - 심리학적 먹잇감이 된다. 이러한 창조물은 정치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착취당하기 쉽고, 자신의 성(sex)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들 자신의 노동도 가질 수도 없다. 불행하게도, 라이히는 엄격한 이성애자였으며 동성애자에게 동정심이 없었다. 프로이드의 주장에 너무 많은 영향을 받았기에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해 그는 충분히 알지 못했다. 라이히는 양성애와 영혼의 일치 사이에서 그 연결을 놓쳤지만, 성적 억제와 정치적 억제 사이에서 심오하고 전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해설을 한 것은 정확하게 옳았다.
맑스는 말했다. “인간의 힘...은 그 자신의 한계이다.” 라이히는 정치적으로 유용한 유일한 목표로 자유와 건강한 인간의 힘의 향유를 위해 헌신했다. 그는 “신체적인 것”과 “영적인 것” 사이에서 만들어진 근본적인 차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억압받지 않고 왜곡되지 않은 신체적인 에너지를 우주적 에너지의 연속체로 보았다. 그는 이 둘이 하나의 에너지의 형태로서- 그는 이를 오르곤(Orgone)이라고 불렀다- 동시에 우주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별이나, 인간 의식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신경세포와 동일하게 보았다. 이러한 혁명적인 에너지는 모든 삶의 형태를 통해 드러나고, 공간에서는 에너지장으로서 나타난다. 그는 영적인 실재로서 뿐만 아니라 신체적인 힘으로서 정의하고, 이러한 근원적인 창조적 흐름을 가지고 억압받는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위한 정치를 주장한다. 즉 라이히는 기계론적인 몽상가가 아니고, 정치적인 신비주의자이다. 그러므로 그는 공산당과 유럽의 정신분석 교수 모임에서 추방당했고, 나찌 독일을 탈출했다. 미 연방정부는 그의 책을 파기했으며 그의 연구는 불법이 되었다. 그는 연방 정부 감옥에서 사망했다.
맑시스트 사이에서 보여주는 다른 문제적인 영역은 아주 낮은 생산 단계인 “원시적인” 상태에서 나타났었고, 또 존재했던 모계중심 사회에 대한 가설이다. “다른” 시·공간에서는 모든 문화를 “다른 것”으로 보는 경향성이 있는데, 이 가설은 “현대로의 발전”을 향한 길목에서 한낱 예비적인 단계일 뿐이었다거나 혹은 고속도로나 볼베어링을 성취하려고 시도하다가 슬프게도 실패한 단계로 받아들이면서, 일반화된 직선형 계보와 서구 역사의 광적인 애국주의와 맥락을 같이 한다.
사실, 기술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발전한 고대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사회들 가운데 일부는 모계중심이었다는 증거들이 있다. 즉, 여성중심으로 여성에 의해 이끌어져 왔다. 초기 크레타인들은 여신을 숭배했고, 크레타 여성들은 사제, 판사, 의사, 예술인, 체육인, 사업가도 있었고, 문화적 영역에서 여성지도자들은 모든 수준에서 분포했다. 크레타는 당시 중요한 문화적 상업적 중심지였다. 금과 주석을 위해 선박으로 아일랜드, 스페인, 아프리카, 그리고 근동 지방과 교류했으며, 수출품 가운데 하나는 그리스에서 페니키아에 이르기까지 전달된 크레타인의 선형문자(lineal script)였다. 크레타인들은 가정에서 세라믹 파이프를 통해 찬물과 뜨거운 물이 나오는 실내 욕조를 사용했으며, B. C. 1700년 크레타인의 배관설비는 A. D. 1700년 이후 까지 유럽에서 만든 어떤 것보다도 우수했다. 우아하고 예술적인 고대 에트루리아인이나 초기 이집트인도 또한 모계중심이었고, 이집트의 모계중심의 흔적은 후대 제국과 왕조 까지 전해졌다.
이러한 문화 속에서, 많은 다른 사람들처럼, 가족 그룹은 어머니에게 일률적으로 속해 있는 땅에서 살았다. 여성의 남편 혹은 연인은 그녀의 친척 그룹이나 아이들과 함께 살았고, 아버지의 정체성이나 법적 관계는 상관이 없었다. 고대 이집트인의 법은 모든 가족 재산, 땅과 집안 도구, 들은 여성에 속해있음을 분명히 밝혔고, 결혼을 하건 하지 않건 여성은 그녀 자신을 포함해서 모든 재산의 총체적인 수탁인이었다. 크레타인, 에트루리아인, 혹은 이집트인을 연구함에 있어 이러한 문화는 “기본적인”임을 알 수 있다. 매우 진보된 문화들은 또한 모계중심적인 다호메이(Dahomey)와 서부 아프리카의 아산티(Ashanti)종족, 남부 인도의 케랄라의 나야(Naya)종족에 의해 발전되었다.
인디안들 사이에서, 푸에블로인은 거대한 어머니중심사회였다. 그들 사이에서 건축 기술이 뛰어났는데 오래된 이 방식을 유지했다. 이동식 풀로 만든 오두막에서부터 여러 층의 “아파트” 빌딩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거주지는 여성에 의해 단순히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에 의해 이 건물들이 지어졌다. 어디든지, 주거지 기술은 기본적으로 여성의 영토로 보인다. 우리는 “모권제”가 큰 막대기로 모든 사람을 지배하는 시스템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모권제는 지배 원리로 건설된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우선권을 포함하는 혈연-친족이 중심이었다. 여성은 그들 자신의 신체, 아이들, 그리고 살아있는 자산들을 소유하였고, 사람들의 행복과 생존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결정을 했다. 남성 엘리트 그룹이 여성의 활동, 생각 혹은 성적 행위에 대해 제한하는 법을 만들지 않았다. 경제적인 관계가 종교적이나 사회적 관계와 분리되는 일은 없었고, 기본적으로 상호 연관된 기능을 제공하면서 물물 교환을 했고, 경쟁이나 이익을 내기 위한 행위도 없었다. 그들이 쓰는 물질적인 상품들은 사회적 혹은 영적 관점에서 가치가 부여되었다.
만약 맑시스트가 고대 모권중심 문화를 “원시적인” 혹은 “저개발된” 것으로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면, 이는 “발전”에 대한 서구 편견을 맑시스트들이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고대와 현대의 모든 문화에서 추측한다. 이미 검토된 문화들에서의 삶의 질과 관계없이 어떻게 대량 생산과 근대 공장 시스템과 근접하게 되었는가에 따라 판단하고자 한다. 이러한 편견으로 인해 맑시스트와 주식 시장의 남성들은 유사하게 보인다.
출처:Monica Sjöö,Barbara Mor(1981),The Great Cosmic Mother: Rediscovering the Religion of the Earth.Harper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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