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페미니즘] 제4강 생태적 레퓨지아 건설하기 : 트러블과 함께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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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종교와젠더연구소 작성일22-12-14 15:58 조회987회 댓글0건본문
<반다나 시바, 상처받은 지구를 위로해> 저자이며 감리교 신학대학 객원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최형미 강시님의 ‘도나 하러웨이’와 에코페미니즘 이야기 ‘함께 살아가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배울 수 있었던 알찬 시간이었습니다.
에코페미니즘은 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요
첫 강좌 ‘불교로 만나는 에코페미니즘’을 통해 불교가 체코페미니즘 그 자체임을 배웠고 두 번째 강좌 ‘지구 위기, 왜 에코페미니즘인가?’를 통해 에코페미니즘 운동과 이론에 대한 흐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시간에는 ‘모르고 짓는 죄 : 자본부의 세계에서 양심 찾기’를 통해 식민주의와 여성, 자연 착취를 통해 이루어진 자본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지요. 오늘은 세계적인 과학자이자 철학자인 도나 하러웨이의 이론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에코페미니즘은 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할까요?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일까요? 먼저 우리에게는 보다 넓은 시선이 필요합니다.
도나 하러웨이는 ‘에코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여성과 생태가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은 범주로 나누어 봅니다.
첫째, 여성이 더 많은 피해를 당한다. 둘째, 하지만 그러한 여성이 인식론적 우위와 문제해결력을 가지고 있다. 셋째, 그렇기 때문에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새로운 존재론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존재론이란 인간이란 무엇이고 세계란 무엇인지,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들에 대한 재 물음이 필요하다는 관점에서 에코페미니즘은 진행된다.
도나 하러웨이의 <Stying with the Trouble> 서문을 보면 인간 중심적인 것을 비판하고, 주변에 있는 크리터들-미생물, 생물 등 살아있는 존재-과 함께 해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반려종들-개, 고양이를 넘어서 함께 살아가야 하는 모든 것-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서로 실뜨기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세계를 관조자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있는 우리에게 도나 하러웨이는 실뜨기를 직접 함으로써 세계를 파악하고 관여해야 한다고 합니다. 인간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크리터들과 공존하고 퇴비가 되어야 한다고요.
인류세, 냉소주의는 변화를 일으킬 수 없다
도나 하러웨이는 생각의 도구를 사용하며 개념을 창시하는 철학자입니다. 동시에 과학자로서 세상의 원리를 설명하며, 신학자로서 인간과 생명, 세계관과 존재론 등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인간과 생명, 또한 해석, 은유, 감정을 표현하는 영문학자이기도 합니다.
그런 도나 하러웨이가 제시하는 방법론은 SF입니다. String Figures, Science Fact, Science Fiction, Speculative Fabulation, Speculative Feminism, So Far.
무슨 이야기가 이야기를 하는지, 무슨 생각이 생각을 하는지, 무슨 세상이 세상을 구성하는지가 중요하다는 도나 하러웨이의 이야기는 불교에서 ‘달을 가리키는데 왜 손가락을 보는가’ 하고 묻는 것과 같은 맥락이지요.
2000년대에 대두된 인류세라는 말에 사람들은 박수를 보냈습니다. 연구자들은 유진 스토머가 만든 용어인 인류세라는 프로젝트로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벌어들였습니다. 인류세를 이야기하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인류세는 냉소적이고 우울한 이야기입니다. 변화를 야기하지 못하는 게임오버 스토리입니다. 또한 인류세는 여러 존재들의 합작품인 지구 안에서 여전히 인간 중심의 이야기를 합니다. 인류세를 대비하겠다는 여러 장치들은 관료주의적이며 인간에게 이익이 되는 것만 찾습니다. 현재를 유지하겠다는 시스템적인 인류세 이론은 부자들과 지식인들이 인용하기에 좋은 말입니다. 어떠한 해결책도, 변화의 역동도 주지 않은 채 누가 잘못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 냉소주의는 변화를 일으킬 수 없습니다. 인류세는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지구를 망가트린 건 모든 인류가 아닌 소수의 자본주의자들입니다. 자신들의 땅을 파라다이스로 만들기 위해 다른 땅을, 지구를 죽이고 있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프로젝트를 통해 인류세, 자본세, 농장세를 이야기할 때 그것들이 ‘희망을 낳을 수 있는가’ 묻고 싶습니다. 인류세, 자본세, 농장세를 이야기하며 곧 지구가 망할 거라고 협박하며 희망을 이야기할 틈을 주지 않습니다. 도나 하러웨이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기에 인류세, 자본세, 농장세가 아닌 쓸루세를 이야기하며 희망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쓸루세(Chthlucene), 희망이 있는 라이프 스토리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은 끈임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학자 패터린 깁슨은 노동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여성의 노동 착취를 넘어서는 새로운 노동의 방법, 돌봄 노동이나 자급 노동 등 여성의 노동이 얼마나 긍정적인지 더 많이 이야기합니다. 이는 페미니즘의 특징이기도 하지요.
자본주의는 이야기할수록 두려운 존재가 되는데 깁슨은 저서 <그따위 자본주의는 벌써 끝났다>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알고 보면 자본주의는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 ‘그까짓 것’이 되는 것입니다. 아이스버그 꼭대기를 차지하고 있는 자본주의가 세상을 차지하는 것 같지만 수면 아래의 더 많은 비자본주의 경제 이야기를 발굴하고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봉사활동, 협동조합, 친인척 돌보기, 함께 아이 돌보기, 품앗이…. 비자본주의로 인간을 살리는 경제 이야기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비자본주의에 대한 발굴로 자본주의를 시시하게 만드는 것처럼 도나 하러웨이 역시 쓸루세(Chthlucene) 발굴로 희망이 있는 라이프 스토리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쓸루세를 새로운 세계관으로 제안합니다. 노동과 생산은 인간만이 할 수 있다, 생명은 인간만 잉태한다, 인간만 언어를 사용한다 등 인간이 최고라고 생각했던 인간 중심주의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방법으로ㅆ의 쓸루세 제안입니다.
인간은 순수한 인간일까요? 인간 유전자는 10%뿐, 나머지는 세균, 박테리아 등 반려종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미 혼종적인 존재입니다.
쓸루세는 트러블과 함께 살기와 죽기를 배우는 공간입니다. 함께 되기 위하여 ‘두터운 현재’를 만들어야 합니다. 인류세나 자본제와 달리 세계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여러 복수종과 함께 되기와 실천을 구성해야 합니다.
쓸루세로 만든 것은 비인간적인 관계에 대한 확장입니다. 구체적인 경험을 통해 관계를 맺어가는 것을 ‘친척 만들기’라고 표현하며 이것이 이 세계의 문제들을 인식하는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사유를 위해서 촉수적 사고는 중요합니다. 그래서 도나 하러웨이는 ‘실뜨기’를 이야기합니다. 세계는 단순한 컨테이너 형태가 아니라 실뜨기와 같이 연결하고 주고받는 관계라고 설명하면서요. 물론 이 관계는 Companion Species, 반려종과 함께하는 관계입니다. 인간과 인간이 아니라 모든 반려종들과, 인간과 인간 사이의 경제 이야기를 넘어서는 인간과 비 인간과의 실뜨기로 인간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반려종과 함께 더불어 주고받으며 세상을 이해해야 합니다.
사람들끼리도 함께하기 어려운데 어떻게 동물들과 크리터들과 세균들과 오징어들과 함께 하냐고 질문합니다. 이에 하러웨이는 회절적 시각을 제시합니다. 빛이 입자일 때 직진하지만 파동일 때 직접 비추지 않아도 주변이 밝아지듯이 동물들과 크리터들과 함께 할 때 우리가 겪는 문제는 해결될 거라고 이야기합니다. 여성문제를 해결하면 사회문제가 해결됩니다. 여성문제가 해결되면 경제문제, 안보문제, 사회문제의 실마리가 풀려갑니다. 인간이 아닌 반려종의 시각에서 보면 문제는 다른 실마리가 보이게 됩니다.
쓸루세 이야기는 이러한 촉수를 가지고 친척을 만들고 그 친척들과 더불어 함께 실뜨기를 하자는 이야기입니다. 추상적인 존재가 아닌 구체적인 경험, 구체적인 삶의 감각을 가진 존재로서 세상을 감각하고 인간 중심적인 것이 아닌 함께 더불어 잘 살고 잘 죽는 존재로서 함께 주고받으며, 세상을 오가며 이해하는 것, 그것이 쓸루세이며 그러한 실뜨기의 방식으로 이 세상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쓸루세 과학, 함께 되기의 희망 제시
하와이 부테일 오징어의 생존은 유명한 쓸루세 과학 이야기입니다. 비브리오균에 감염된 부테일 오징어는 감염되는 순간 형광물질을 뿜어내기 시작했는데 이 물질이 밤이 되면 달빛처럼 빛나 다른 생명을 현혹시켰고 사냥이 수월해졌습니다. 세균감염이 된 이후 유리한 오징어가 되었어요.
생물들이 서로 협력하면서 생명을 유지한 것처럼 인류가 함께 되기, 함께 실뜨기를 하면서 어떤 희망을 만들어가는지의 사례도 찾을 수 있습니다. 산호 뜨개질 공예품은 오염되고 망가진 산호로 뜨개질을 해서 전시함으로써 산호의 오염을 알리고자 했습니다. 산호가 죽어가는 문제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산호 살리기 생태에 참여한 이 일이 바로 Make Kin, 친척 만들기 작업입니다. 낯설지만 서로 공존하면서 매력을 느끼고 결국 서로를 살려주는 일이 되었습니다.
여우원숭이 동화 만들기도 있습니다. 마다카스타의 여우원숭이에 대해 알리기 시작하면서 예술가들이 모여 동화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 무서운 이야기, 우정 이야기 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담은 동화가 만들어졌습니다. 이것도 실뜨기, 함께 하기입니다. 이 일로 인해 2013년 국제 원인류 전문가 컨퍼런스가 열렸을 때 참석한 절반이 마다카스타르 출신이었습니다. 여우원숭이에서 시작된 함께 되기의 사례이지요.
제인구달과 원숭이의 사진은 다들 아실 거예요. ‘너를 멸종에서 구해줄게’라는 메시지로 보이는 사진은 백인 인간이 구제하는 식민지의 시선,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함께 하기, 함께 되기가 아닙니다.
강의를 마무리하며 여러분께 묻습니다.
당신이 새롭게 관계를 맺은 친척은 누구입니까? 당신이 함께할 반려종은 누구인가요?
인간 중심이 아닐 때 우리의 삶은 어떻게 바뀔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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