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페미니즘 따라잡기 3강] 법은 남자도 여자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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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종교와젠더연구소 작성일21-03-18 12:43 조회2,288회 댓글0건본문
주관: 종교와젠더연구소
출처: 옥복연 (종교와젠더연구소) 불교페미니즘따라잡기 강의자료
및 리타 그로스 저, 옥복연 역(2020), 『불교페미니즘: 가부장제 이후의 불교』, 동인출판사 책
사회: 전나미 / 초청게스트: 김영란(세첸코리아)
2021.03.17.(수)
<불교페미니즘 따라잡기>
3강
법은
남자도 여자도 아니다
: 불교의
주요 개념인 무아, 공, 불성
사상에 대한 페미니스트적인 분석
*강연 현장 혹은 강의 사진과 함께 본 강의 내용을 요약한 글을 공유합니다.
강의를 참석하지 못한 분들은 다음을 통해 강의 현장을 대신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불교 혹은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으신 분, 불교는 좋아하는데 페미니즘은 쫌 거북하신 분, 특히 『불교페미니즘』 책을 사두고 한 번도 읽지 않은 분을 위해 3월 3일부터 3월 24일까지 매주 수요일 저녁 8시 4주간 <불교페미니즘 따라잡기> 강좌를 준비했습니다.
불교에 대한 이미지는 어떠한가?
보통 불교는 자기성찰, 정적인 수행적 이미지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실은 불교는 탐진치를 어떻게 끊어내는지와 연관된 것으로 어떻게 보면 이 생을 거는 정도로 도전적이고 혁명적인 종교다.
불교 교리가 불교페미니즘에 훌륭한 자원이 될 수 있는가?
성평등과 관련한 경전 해석시 여성신학의 해석학적 방법론 차용하는 경우가 많다. 여성교회, 여성 여성운동, 여성신학에서도 어떻게 페미니즘적으로 종교를 해석하는 가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고 했다. 이를 참고 삼아 불교와 페미니즘 ‘불교와 페미니즘이 양립할 수 있는가?’는 카톨릭이나 다른 이웃 종교에서도 물어볼 수 있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성평등한 불교로의 구축은 가능한가?
불교페미니즘은 사실상 1960년대 이후로 등장했는데 불교페미니즘이 가능한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 했을 때 불교의 근본적인 가르침과 상징은 평등주의기 때문에 불교 안에서 성평등한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 리타그로스는 이야기한다. 옥복연 역자 역시 이에 동의한다. 따라서 3주차 본 강의는 어떻게 성평등한 불교로 재구성하고 재구축할지, 불교의 무아사상, 공성, 불성에 대해 풀어볼 예정이다.
불교는 페미니즘이다: 불교와 페미니즘의 상호 변혁
업 때문에 여자로 태어났다? 이 말이 내려오는 이유는 여성으로서 태어나고 싶지 않음을 보여준다. 가부장제 하 여성으로 태어나기를 원치 않는 것은 현재 상태를 유지하려는 남성들의 자기중심적, 고정적, 습관적인 패턴 때문이라고 보인다. 반대로 ‘다음 생에 남자로 태어나기’는 사람들이 가부장제를 억압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가부장제 사회여서 남성들은 편하기 때문에 이를 바꾸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전통불교에서 젠더 위계와 특권적인 젠더 관행을 방해하는 요소: 업(Karma)인데 업설을 통해 업 때문에 여자로 태어났다는 자체는 가부장제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업을 억압이라고 말할 용기가 필요하다.
어떤 가르침도 남성우월주의 사상을 인정하지 않는다. ‘중생’이란 개념은 성중립적인 핵심 교리로 제공되지만 사실은 남성지배적인 원리에 의한 것이다. 리타그로스는 불교 교리는 가부장제보다는 페미니스트와 훨씬 더 양립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를 한다.
이는 서구에서 새로운 수레바퀴 굴리기라고 표현한다. 선은 성 중립적이고 종교적인 구속이 없어 1960년대 이후부터 Ruth Denison(미국에서 여성불교를 이끈 1세대 지도자들의 리더)처럼 다수 여성이 불교페미니즘에 동참하고 관련 활동이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불교와페미니즘과의 차이/공통점
페미니즘은 성별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알게 해주는데, 불교와 페미니즘 둘 다 정신적 구조의 패턴이 어떻게 개인의 해방을 막거나 향상시키는지를 탐구하다는 데서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불교는 자아의 습관적인 패턴을 알아차리고 반성하는 것을 가장 중시하지만 자아의 한 측면으로서 젠더 개념이나 젠더 정체성을 고려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차이가 발생한다.
불교가 정의한 자아와 무아의 논의에 대한 페미니스트적 공헌
초기 페미니스트적 분석에서 가부장제에 의해 구축된 부정적이고 무능력한 여성성을 드러내는 것, 즉 가부장적 성역할 고정관념에 의해 여성의 자아관 손상이 된다고 했는데, 실제로 여/남성다움은 고정관념에 불과하고 고정된 여/남성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불교의 무아와 유사하다.
후기 페미니스트적 분석에서 전형적인 여/남성적 자아 사이에서 중요한 차이를 발견한다. 남성은 대체로 자율적 자아 추구, 여성은 가부장적인 투영을 통해 종속적 자아 형성하는데, 즉 여성은'다른 존재’로 간주되면서 비-이원론적,사회적 관계속에서의 상호 의존적인 자아를 추구함을 나타낸다.
공성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성냄, 탐욕, 어리석음 등이 대상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나타나므로, 상호 의존하지 않는 어떠한 법도 존재하지 않는다. 상호의존에도 불구하고 대상에 끊임없이 집착하는 것은 분별망상 -> 탐진치-> 선업과 악업을 끊임없이 짓게 만듬-> 이로 인해 두려움, 공포, 시기, 질투를 하며 끊임없이 혼란스러워 하고 힘들어 하는 과정으로 전개된다.
1) 젠더의 특성은 실제로 존재 않음
-> 성전환경: 상대적 진리 수준(관습과 외모로 성역할 고정관념 요구), 절대적 진리 수준(모든 사람은 본질적으로 여/남자 아님). 여/남성성은 고정적인 실체가 아니라 편리한 명칭과 표식으로만 존재. 젠더의 고정불변의 특성은 실제로 발견될 수 없다.
-> 공성만이 아니라 ‘공성의 공성’을 깨달아야: 빈 공간을 포함한 모든 것에 자기의 본질적인 존재가 결여되어 있음
그 속에서 세계관을 구축하기 위한 대안적 개념
예) 남/여성성을 넘어서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유마경>의 여신은 실제 자신이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2) 법은 여자도 남자도 아니다(기독교 바울의 복음서의 ‘남성도 여성도 없다’와 유사)의 해석 경계
-> 당신이 여성일지라도 해낼 수 있다(‘당신이 남자일지라도 해낼 수 있다’는 아님, 여성이 남자답게 되어야 한다는 의미,성중립적이 아님)
-> why? 가부장제하인간 규범은 남성이 기준, 여성적이지 않은 사람이나 비인간적인 사람이 아니라 ‘남자다운 사람’이 되라고 요구함
여성신학에 비해 불교페미니즘은 1960~1980년대에 등장했기 때문에 역사가 굉장히 짧다. 불교페미니즘을 바라볼 때 여성신학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불교는 젠더적 관점이 부족한데 이를 더할 필요가 있으나 집착할 필요는 없다. 위대한 여성들을 알리고 여성의 자존감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리타그로스가 이야기했듯이 불교의 ‘공성’을 아는 이라면 젠더위계나 성차별은 있을 수 없다. 불교는 공성, 무아, 연기법이 불교 교리의 핵심이고 이는 고통에 대한 해방을 위함이다. 불교의 공성을 제대로 정확히 이해한다면 불교페미니즘을 구축할 수 있고 성평등한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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