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초의 왕비 신덕왕후의 능침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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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5-04-25 23:18 조회6회 댓글0건본문
조선 최초의 왕비 신덕왕후의 능침사찰: 경국사(慶國寺)
-서울 성북구 삼각산(三角山)에 있는 고려 후기 율사(律師)인 정자(淨慈)가 창건한 사찰, 정토사상에 바탕을 둔 기도 도량.
조선 억불정책으로 법당을 비롯한 모든 건물이 퇴락했다가 1545년 왕실 도움으로 중건함
-1546년 명종의 즉위로 문정왕후가 섭정하게 되자, 왕실의 시주로 건물 중수하고 호국 대법회를 열었다.
그때 ‘부처님의 가호로 나라에 경사스러운 일이 항상 있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경국사라 개칭.
-1696년 조선 태조의 계비이자 조선 최초의 왕비인 신덕왕후(神德王后) 강씨의 묘인 정릉을 복원하면서 근처에 있던
이 사찰이 능침사찰로 지정됨
*능침사찰
-누군가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절은 원찰(願刹), 혹은 원당(願堂)이라고 하는데, 왕릉을 모시는 경우는 따로 능침사찰이라고 함.
후궁이나 왕자, 공주의 무덤은 능(陵)보다 격이 떨어지는 원(園)이나 묘(墓)라고 하는데, 이런 무덤을 모시는 경우는 원찰이라고 부름
-왕릉 근처에 절을 세워 왕릉을 모시게 하는 것은 중국으로부터 유래, 삼국시대부터 조선 초까지 승하한 왕과 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재나 예불을 올리는 사찰,왕릉을 조성하면 바로 옆에 새로 만들거나 왕릉 인근의 사찰을 지정하여 중수하기도 함.
-능침사에는 승하한 왕이나 왕비의 영정이나 위패를 모신 어실이 따로 마련, 조석예불과 때마다 재가 치러짐, 땅과 노비를 하사하기도
-숭유억불을 했던 나라였지만, 조선 초까지만 해도 왕실 내에서는 왕비나 왕대비 같은 왕실 여성들이 불교를 믿었기에, 조선 초까지 능침사 제도는 유지됨. 문정왕후가 불교에 심취하여 승려 보우를 불러들이는 과정에서 유생들은 불교에 심한 적개심을 품었고, 문정왕후 사후 유생들이 절에 찾아가 불상의 목을 베고, 절을 불태워 버림.
-선조 이후로는 능침사를 따로 정하지 않고,조포사(造泡寺)라고 하여 왕릉에 지내는 제사에 쓸 두부를 만들거나, 제수용품을 공급하는 일을 하는 사찰을 따로 지정함.
-극락보전, 영산전, 명부전, 관음전, 시방선원 등 17동의 건물이 있으며, 관음성전에는 1703년 제작된 관음보살좌상,
극락보전에는 아미타삼존불을 비롯하여 목각 탱화주 및 신중탱화 · 팔상탱화 등이 봉안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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