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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사당: '단군신화'가 아니라 '웅녀신화'의 서사를 찾아가는 길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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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5-03-26 09:22 조회5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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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사당: 단군신화가 아니라 웅녀신화의 서사를 찾아가는 길목

 

*‘고마나루’

-충남 공주의 무령왕릉 서쪽으로 펼쳐진 낮은 구릉지대와 금강변 일대

 한자로는 웅진(熊津), 공주의 옛 지명으로 현재 웅진동

 

-백제 문주왕이 웅진으로 천도할 때 이용하던 교통로, 660년 나당연합군의 당나라 장군

 

소정방이 백제 공격을 위해 금강을 거슬러와 주둔했던 곳, 백제 멸망 후 웅진도독부 설치   

=> 백제 역사의 중심무대이자 국제적 교통의 관문

 

-곰사당은 고마나루(곰마루) 솔밭에 자리 잡고 있는 곰을 모신 사당, 

금강의 수신(水神)에게 제사를 올리던 웅신단(熊神壇) 또는 웅사당(熊祠堂)이 있었다고 함

 

-고마나루와 곰사당, 곰굴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

: 옛날 고마나루 북쪽에 있는 연미산 동굴에 살던 암곰이 나무꾼과 결혼해서 자식 둘을 낳고 살다가 강을 건너 도망을 갔다.  이를 본 암곰이 두 아이를 들어 보이며 돌아올 것을 애원했지만 나무꾼은 냉정하게 떠나버렸고, 결국 암곰은 결국 두 아이와 함께 강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그 후부터 강을 건너는 배가 뒤집히는 일이 자주 일어나, 죽은 곰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나루터 인근에 사당을 세우고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곰나루의 수신제는 계룡산 산신제와 함께 진행, 일제강점기 직전까지 웅진단과 계룡산 중악단이 함께 모셔짐

 

-1972년 곰사당 자리에서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돌곰상 발견되고 원래 사당터임이 밝혀짐. 

 돌곰상은 공주국립박물관에 보관하고, 이를 본뜬 상이 있음

 

-곰사당은 백제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공식적인 국가의 제사 공간, 

 일반 서민들의 주요 생활 터전이자 수상 교통로로서 민중의 정서와 애환이 짙게 서려 있는 역사적 가치가 깊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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