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간 대화로 성평등한 세상만들기】개신교: 차별 너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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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3-07-13 15:38 조회809회 댓글0건본문
세상의 모든 아이는 성령으로 잉태했다.
사람들이 기독교를 궁금해할까? 국보급 불상을 부수고, 이슬람 사원 앞에서 돼지고기 바비큐를 하고 성소수자 혐오를 하면서 그들은 사뭇 진지하다. 요즘 기독교는 배타적이고, 자기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듯 비친다. 그러니 쉽게 언론의 조롱거리가 된다. 그런 가운데 서울 은평구 갈현2동 주민센터 앞에 있는 광현교회가 종교간의 대화의 장을 펼치는데 선뜻 자리를 내주었다.
대예배실에서 배드민턴을 하자
가수 김창환은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고 했지만, 광현교회는 대예배실에서 배드민턴을 하잔다. 노래가 아니다. 사람들은 의자를 접어놓고 테니스도 하고 운동회도 한다. 교회 공간을 주민들에게 개방했다. 초기에는 5층 식당에서 칠순 잔치도 허락했는데 소주와 맥주가 박스로 유입되어 곤란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지역주민들이 함께 삼계탕데이도 하고 주민총회도 한다. 2층에는 지역 도서관을 열고 싶었지만 육아문제로 고생하는 여성들의 어려움을 살펴 지역아동센터를 열기로 결단했다. 지하에는 오케스트라 연습실이 있고, 청소년들이 놀고 쉴 수 있는 장소도 있다.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은 1층 카페 운영비에서 충당한다. 특별히 관리하는 사람들이 없고 층마다 사용하는 사람들이 청소한다. 1주일에 한 번만 왁자지껄하다가 굳게 닫혀버린 여느 교회와는 다른 모습이다. 참가자들에게 교회를 안내하며 소개해주던 서호석 목사는 이 모든 것이 교회 교인들과 함께 결정한 것이라고 했다. 요즘은 기독교인이라 말하기 부끄러웠는데 왠지 뿌듯했다. 오스카 와일드는 <이기적인 거인>이 담장을 헐어버리자 꽃이 만발하고 예수님이 아이들과 함께 놀고 있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고백의 언어, 성경
첫 강의는 필자가 맡았다. 차별금지법을 반대하고, 이웃종교에 폭력을 저지르는 일부 기독교인들은 성경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셨다고 주장한다. 성경은 일 획도 틀린 것이 아니라며 신념에 차 있어 보인다. 종교학자 정진홍은 사람들이 과학적언어와 고백의 언어를 헷갈려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연인을 세상에서 유일하며, 가장 아름답다고 표현하는 것은 고백의 언어다. 그 말은 다른 사람의 사랑이 잘못되었다고 부정하는 말은 아니다. 신과의 사랑을 기록한 성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사람들은 성서를 들먹이며 이웃종교를 폄훼하고 다른 사람을 혐오한다. 성서를 강조했던 마틴 루터도 하나님의 계시는 나무들, 꽃들, 구름들, 별들에도 기록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성소수자 육우단이나 변희수 하사의 죽음에서 신은 우리에게 무슨 이야기를 할까? 성서를 문자 그대로의 과학적 언어로 여긴다면 그것은 지적 게으름이다.
이미 1980년대 후반에 변선환 교수는 <문학과 신학>이라는 과목을 개설해서 성경을 과학적 사실처럼 받아들이는 신학생들에게, 무궁무진하게 다양한 해석을 훈련했다. 문학적 해석은 누가, 어떤 마음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상징과 은유로 가득한 성경은 새로운 공동체를 만날 때 마나 새롭게 해석되어오고 있다. 흑인신학, 남미신학, 민중신학, 여성신학, 퀴어신학이 나온 이유다. 이제 포스트휴먼시대에 인간 중심적이지 않은 성서해석은 중요한 화두다. 성서는 죽은 언어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과 연결되어 역동적으로 해석되고 있다.
소수자의 시선
지금 교회는 가난한 사람이 불쌍하니 도와주자며 적은 돈을 보낼지언정, 가난한 사람, 정치적 소수자가 적응하기 어렵다. 교회를 섬겨야 한다며 장로 자격은 성공한 사람들에게 주어지고 부자들이 큰소리친다. 뼈아픈 현실이다. 그러나 예수는 천국의 주인은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선포하였다.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살아온 경험 때문일까? 흥미롭게도 이 말은 페미니즘의 인식론을 발전시킨 산드라 하딩의 이론과 만나고 있다. 산드라 하딩은 잘 배우고 똑똑하고 이성적이며 삶의 여유가 있는 사회의 중심세력이 아니라, 차별당해 낯선 이방인(Stranger within)처럼 사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제대로 아는 강한 객관성을 가졌다고 주장한다. 여성, 유색인종, 장애인, 성소수자, 소수민족이 우리 사회를 제대로 보고 있다는 말이다. 페미니즘은 소수자와 연대하며 더 아래로 더 변방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페미니즘을 불편해하는 일부 기독교는 뭔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페미니즘의 딜레마
페미니즘은 비판의 학문이다. 우리 사회를 다른 관점에서 보는 훈련을 한다. 가족제도, 모성, 결혼, 국가도 비판한다. 소수자들의 관점에서 보니 기득권자 중심의 사회제도가 불편한 것이다. 고립되어 집에 있지 말고 사회로 나가 싸워 이기고, 따라잡으라는 메시지도 준다. 필자는 페미니즘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도 그런 삶을 산 것 같지 않았다. 가족이 소중했고, 때론 분노했지만 싸우기보다 타협하고, 참고 견디는 시간도 많았다. “나는 무지한가? 겁쟁이인가? 나의 안일만 추구하는 이기주의자인가?”
내게 용기를 준 흑인 페미니즘
페미니즘을 공부해 백인 페미니스트들처럼 힘이 있고 싶었다. 서양의 어려운 페미니즘 이론을 능숙하게 활용하고 싶었다. 내겐 너무 힘든 그 일을. 나를 깨뜨린 것은 바로 흑인 페미니즘이었다. 흑인 페미니스트들은 백인 여성들을 따라가려 애쓰며 주눅 들지 않았다. 오히려 백인 여성들에게 왜 흑인 여성을 동원해 놓고 자신들의 권리만 이야기하냐고 따져 물으며 그들을 기회주의자라고 비난했다. ‘당신들은 여자들이 약하니 강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난 여자가 아닌가? 남자들만큼 먹고, 남자만큼 일해야 한다. 모성이 억압 이데올로기라고? 차별당하고 매 맞는 흑인 아이를 지키는 모성은 저항이데올로기다.’ 흑인 여성의 솔직함은 나의 목소리를 찾도록 했다.
차이의 메커니즘
여성들은 서로 다르다. 페미니즘은 차이를 인정하자고 말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할지 몰랐고, 그저 소 닭 보듯 상관없이 살아가자는 것으로 들렸다. 인식론적 허무주의다. 흑인페미니스트 법학자 킴벌리 크렌쇼(Kimberly Crenshow)는 흑인 여성이 백인 여성과 다른 억압경험을 하는 이유는 그들이 성차별 뿐 아니라 인종차별을 교차적으로 겪기 때문이라며 법적 사례를 통해 주장했다. 그 당연하고 쉬운 주장은 서로 다른 여성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연대하는 길을 열어주었다. 공통의 억압경험을 강조하며 똘똘 뭉치고, 다른 사람들을 배제하는 그런 연대가 아니라 서로에 대한 공감과 이해가 연대의 기반이 된 것이다. 사람들은 사회적 억압 때문에 노동자, 성소수자, 아시아, 이주민 등 다양한 소수자 정체성을 자각하게 된다. 이것들이 다양한 배열로 교차할 때, 여성들은 다른 경험을 하지만 서로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종종 차이가 공존하는 다양성을 우려한다. 다양성의 사회는 결국 불의한 권력자들까지 허용하자는 것이냐고 되묻곤 한다. 다양성은 불의한 권력자들이 장악한 획일화된 사회를 흔드는 전략이다. 눌리고 억압받아 자신의 소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목소리가 회복될 때 비로소 우리 사회는 관용적인 다양성의 사회로 나갈 수 있다. 차이의 정치학은 소수자, 억압당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회복하자는 운동이다. 페미니즘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고 예수님이 가르쳐준 작은자를 더욱 사랑하는 것이다.
기독교나 여성학이나 종종 무엇인가를 지키는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아니다. 기독교와 페미니즘은 주변에 변방에서, 주류와 다른 자신의 관점을 갖는 것이다. (Be different, Be your Self.) 가장 멀리 날아가는 씨앗이 봉숭아꽃에게 효녀이듯 말이다.
예수만 성령으로 잉태했다고?
두 번째 시간은 성매매 여성들이 낳은 아이들을 기르는 ‘자립지지공동체’ 김미령 대표를 만났다. 그는 청중들을 향해 “예수님만 성령으로 잉태했다고? 세상의 모든 아이는 성령으로 잉태했다”고 말한다. 기독교는 오랫동안 모든 인간은 잘못된 욕망 때문에 원죄를 안고 태어난다고 가르쳐왔다. 그를 바꾼 것은 무엇일까? 그가 마흔아홉이 되던 어느 날 18살의 임신한 소녀가 찾아와 방을 내놓으라고 떼를 썼다. 힘들고 어려운 여자와 아이들이 빽빽하게 모여 사는 그곳에서. 김대표가 ‘빈방 없어’라고 말하려는 순간 이천 년 전 사람들에게 박대받았던 임신한 마리아 생각이 났단다. 그가 머물렀던 방을 ‘마굿간’ 이라 이름 붙였다. 그 아이는 남자들의 성기 모양이 어쨌느니 성관계를 가질 때 어떤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녀의 일상이었으리라. 해산한지 한 달이 지나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는 말을 하자 애 엄마는 그다음 날 떠나 버렸다. <나도 입양아였어요. 우리 아기 입양 주지 마세요>라는 편지 한 장을 써놓고는. 친권을 포기하지 않고 애미가 돌아오길 기다리다 세월이 흘러버렸다. 처음에 쉽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들을 기르며 그들이 성령으로 잉태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지마세요. 동거하세요”
최근 대통령 부부가 텔레비전 동물 프로그램에 나와 “사지 마세요, 입양하세요”라는 말을 했다. 김 대표는 그것을 보자 “사지 마세요, 동거하세요”가 생각났다. 입양된 아이들이 겪는 어려움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회성 성관계는 폭력이다.” 그 귀한 성을 팔며 살아가는 여자들이 만난 폭력을 사람들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돌봄, 취약함으로 가능성을 열다
제 몸으로 밥벌이할 수 있는 여자들은 떠나고 지능이 떨어져 혼자 살 수 없는 여자들, 그리고 버려진 아이들만이 김 대표 옆에 남았다. 취약한 아이들은 서로를 돌본다. 사람들은 돌봄의 시장가치를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돌봄을 그냥 노동이라고 하기는 억울하다고 말한다. 돌봄을 그림자 노동이라고 한다면 그건 흰색그림자다. 천사의 빛깔인 그런 흰 그림자. 아이들을 돌보며 나이 들어가는 그는 말한다. 여자들은 태어나는 순간 이주민이다. 시집가면 이주하고 그렇게 나이 드는 여자들의 삶이 얼마나 쓸쓸한가? 자기 가족만 챙겼던 노아의 방주에서 미세스 노아는 얼마나 고달파했을까? 노아는 장마속에 술로 우울증을 달랬지만, 이름도 없었던 미세스 노아는 닭똥 치우기, 가축 돌보기로 우울증 앓을 시간도 없었을 것이다. 그는 노래했다. “서러워 말아요 꽃이 지는 것을 그 향기 하늘 아래 끝없이 흐를 텐데.” 노래하는 그의 눈은 분노에 찼고 평화로웠으며 지쳤으며 힘이 넘쳤다.
여자면 어때!
세 번째 시간은 성공회 민숙희 신부와 대화시간을 가졌다. 그는 성공회 광명교회 관할사제다. 교회는 여자들로 차고 넘친다. 그런데 성직자 여성은 드물다. 오랫동안 교회는 성경을 근거로 생리하는 여성을 부정하게 여겼으며,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번지르르한 변명으로 여성성직을 밀어왔었다. 민 신부는 사제 입성과정과 목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신대원에 여자 셋이 입학하자 남자들이 불평했다. 이전에는 빤스만 입고 다녔는데, 이젠 그러지도 못한다고. 니들이 빤스만 입든 벗든 눈에 차지도 않는다고 응대했다.” 민 신부가 무례한 것일까? 그는 당당했으며 남자들에게 잘 보이려 애쓰지 않았다. 여자들과 함께 생활하니 투덜대던 학생들은 음담패설도 조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자들을 받아들였던 학교는 성직자 후보 자격시험을 남자들에게만 허용했다. 민신부는 학교에 찾아가 부끄러운 줄 알라고 항의했다. 신문에 내고 교회여성협의회에 말하겠다고 했다.
대한 성공회는 100년 안에 여성 성직자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그는 1998년에 입학을 하고 2001년에 서품을 받았다. 졸업하고 전도사 발령을 받아야 하는데 담당자가 교회에 여자인데 괜찮겠냐고 물었고 그곳에서 거절했다. 민신부는 왜 남자도 괜찮냐는 질문을 하지 않느냐고 항의했단다. 발령받은 후보자가 문제가 생겨 갑자기 자리가 비어 민숙희 신부가 가게 되었다. 딸만 둘 키우는 고용근 신부는 “여자면 어때!”라고 응원했다.
여자들도 신부님과 목욕탕에 간다!
이후 지방발령을 요청했던 본부에서 민통선 저 끝 작은 교회로 보냈다. 시골교회에서 남자들은 교육관에서 식사를 하고 여자들은 밖에서 한다. “그들은 귀한 사제인 나를 남자들과 함께 먹으라고 했다. 난 여자들과 먹었다. 귀한 사제이니.”
시골교회는 가난하고, 늙어가는 교인들은 새로 온 신부에게 정주고 떠나보내기 어려워 경계한다. 민 신부는 그들과 함께 목욕탕에도 가고 화장실에도 같이 갔다. 여자들은 함께 오줌싸는 사이가 된 신부에게 자신들의 속 이야기를 털어놨다.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이 된 것이다.
솔직한 저항
민 신부는 지금 성공회 광명교회의 관할 사제다. 여성 사제가 오면 교회가 기울까봐 몇몇사람이 불편한 내색을 했다. 성공회는 술을 허용하니, 민신부는 함께 술을 먹을 기회가 있을 때 그들에게 말했다. “목회를 방해하는 것은 바로 당신들이다. 당신들 때문에 성직을 그만두고 싶었다’. 지금은 그들과 함께 반려동물 축복식도 하고, 성소수자 환영도 한다. 어떤 교회 원로는 교회에 개털이 날린다고 불평했다. 민신부는 그들에게 말했다. “이 교회의 미래는 새로 들어온 사람에게 달려있다. 새로 들어온 사람들의 귀에 들리는 소리를 내지 마라.” 지금 광명교회는 어떤 사람이 오든 환영한다. 이주노동자, 성소수자, 타투한 사람…. 그들의 성 정체성이 무엇이든, 어떤 옷을 입든 개의치 않는다. 임신한 채 강단에 설 수 있겠냐는 어느 분의 말에 아이를 갖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는 민 사제는 더 큰 사랑을 펼치기 위해 싸웠고 지지받는 자랑스러운 신부로 살아간다. 대화와 끝나자 그가 더 궁금해졌다. 이렇게 멋있어도 되는 것인가.
최형미(객원연구원) 출처: 여성신문 (womennews.co.kr) 2023.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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