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부탄불교, 비구니승단 탄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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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3-07-13 15:43 조회823회 댓글0건본문
[기고] 부 탄 불 교, 비 구 니 승 단 탄 생 하 다
부탄 비구니 수계식
전세계의 여성 불자들과 비구니스님들은 격년마다 한 번씩 국가를 바꿔가며 열리는 "샤카디타 세계대회"에서 반갑게 만난다. 1987년 인도에서 동·서양의 재가여성불자와 비구니들에 의해 조직된 "샤카디타"는 '붓다의 딸들'이라는 뜻에 걸맞게, 여성의 관점에서 불교 교리나 계율을 재해석하거나 교단 내 젠더 이슈에 대해서 불교페미니즘적으로 해석하는 담론의 장이 형성되기도 한다.
지난 6월 23일 개최된 제18차 샤카디타세계대회는 '위기의 세상 속에 깨어있기'라는 주제로 서울 코엑스에서 개최됐는데, 세계 30여 개국에서 온 600여 명의 비구니/여성 수행자들과 한국의 불자 등 전체 3000여 명이 함께한 엄청난 규모로 치뤄졌다. 코로나19로 인해 만나지 못한 때문인지, 베트남은 200여 명의 비구니가 함께 했고, 전세계 비구니들의 스승이신 텐진 팔모스님 등 유명 비구니스님들은 물론, 동·서양의 불교페미니스트들과 단체 활동가들이 대거 참석했다.
서울 강남 한복판 '코엑스'에서 각양각색의 승복을 입은 수 백 명의 비구니들을 한 자리에서 보는 것은 감동이었다. 한국 비구니스님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대회 내내 자부심과 긍지가 대단했고, 각양각색의 승복을 입은 외국의 비구니/여성수행자들도 최첨단 시설에도 움츠리지 않고 당당하고 적극적으로 참가하였다.
불교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볼 때 이번 대회에서 획기적인 주제 발표는 부탄불교의 비구니승단 부활이었다. 국민 행복지수가 높기로 유명한 부탄은 인구 80만 정도의 작은 국가로, 지정학적으로 티베트와 접해있어 일찍부터 티베트불교를 받아들여 국민 대다수가 불자이다. 티베트불교는 여성부처로 불리는 예세 초겔, 따라보살, 그리고 수많은 다키니 등 여성성이 강력한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서구불교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티베트불교는 대승불교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출가자인 비구니승단이 없다. 2600여 년 전, 붓다는 여성 출가자를 받아들여 비구니승단을 설립했지만, 오래 전 상좌불교권의 비구니승가는 소멸했다. 비구니는 비구승단(남성출가자)과 비구니승단 양쪽(이부승)으로부터 수계를 받아야 하는데, 비구니승단이 사라져버려 수계를 받을 수 없게 됐다. 그리하여 오늘날까지도 상좌불교권에서 여성 출가자는 비구니가 아니라 매치(Mae-chi) 또는 다사실라마따(Dasasilamata) 등으로 불리며 '출가 수행녀'로 살아간다. 이들은 승단 내에서 출가자로 인정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비구보다 훨씬 낮은 사회적 지위로 경제적인 어려움도 겪고 있다.
비구와 동일한 황금빛 가사를 걸친 부탄 비구니
동․서양의 불교 여성들은 상좌불교 국가의 비구니승단을 복원하는 문제가 큰 과제로 오랫동안 논쟁적이었다. 1980년대 이후 세계 여성운동이 발전하면서 여성들간의 연대가 강조되었고, 서구에서 불교페미니즘이 등장하면서 이 문제는 세계 불교여성의 전지구적인 연대를 촉발시키는 매우 중요한 이슈가 됐다. 전 세계의 불교여성들은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존경받는 '달라이라마 성하'께 티베트 비구니수계를 허용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답변은 실망스러웠다.
비록 비구니 수계에 대해 우호적인 '달라이라마 성하'였지만, 티베트에서는 역사상 한 번도 비구니계단이 설립된 적이 없었고, 각 종파 원로들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이 문제는 해결이 쉽지 않다는 입장을 전해온 것이다. 그러나 2006년 9차 샤카디타 대회에서 잠파 쵸드론스님은 '달라이라마 성하'께서 "티베트 비구니 계단 설립을 암묵적으로 허용했으며, 계단이 설립될 경우 지지 의사를 선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그리하여 2007년 독일에서 세계 각국의 종단 대표와 불교여성 등 300여명이 모여서 달라이라마성하의 답변을 기다렸다. 결국 티베트불교 비구니승단의 설립에 대한 당위성은 인정하지만 현실 적용은 힘들다고 결론지었다. 대신 여성출가자도 불교 지도자가 될 수 있도록 겟쉐(박사학위와 유사함)를 취득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지난 2014년 부탄에서 국제불교여성대회가 열렸고, 이 기간에 부탄불교 내 여성출가 수행자의 열악한 처지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다. 국왕의 어머니와 왕비 등 왕실여성들은 여성출가수행자들의 교육과 복지 향상에 관심을 가지며 여성 수계를 지지했고, 국왕 또한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 결과 부탄불교에서 처음으로, 144명의 출가 여성수행자들이 사미니(예비 비구니)수계를 받게 되었다.
비구니 수계식에 나타난 무지개
놀라운 것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서구의 현대식 대학교육을 받은 부탄국왕은 부탄 최대 불교종단의 수장에게 비구니수계를 요청하는 왕실 청원을 올렸고, 2022년 부탄비구니재단의 왕실 후원자인 왕대비 생일날에 역사적인 비구니 수계식이 열렸다. 티베트 불교권에서 144명이 한꺼번에 비구니가 되고 비구니승가가 부탄에서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 날은 하늘에 무지개가 둥글게 나타났으며, 비구니수계를 받은 한 스님은 울먹이면서 형언할 수 없는 벅찬 감동을 전하기도 했다. 비구니가 된 이들은 비구와 동등하게 황금색 가사장삼을 입을 수 있고, 대법당에도 들어갈 수 있으며, 탁발(음식을 보시 받음)도 할 수도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신기해서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로 행복하다고 했다.
불교페미니스트인 리타 그로스는 모든 존재의 평등과 해방을 강조하신 붓다의 가르침은 페미니즘과 다르지 않다며, 불교와 페미니즘의 만남은 "상서로운 만남"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불교계에서 가장 추앙받는 달라이라마조차도 현실의 벽에 부딪혀 못했던 티베트불교의 비구니승단 복원을, 비록 작은 나라이지만 한 나라의 국왕과 왕실 여성들의 의지로 완성했다는 것은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계율이나 교단법이 아니라 권력자의 의지로 비구니승단이 복원될 수 있으며, 우연이나 행운이 아니라 지난한 노력의 결과다.
2600여 년 전 만들어진 불교 경전은 붓다의 가르침을 담고 있지만, 남성출가자인 비구에 의해 암송되고, 전승되고, 기록됐다. 그 과정에서 계율은 가부장적 가치관에 의해 오염되거나 왜곡될 수도 있을 것이고, 뛰어난 불교여성들의 역사가 지워지거나 축소되기도 했을 것이다. '돈을 소지하지 말라', '살생을 피하도록 농사를 짓지 말라'는 붓다 제세시 계율을 오늘날 출가자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 계율 정신을 담아서 이를 해석해야 한다.
젠더 위계적인 종단법을 강요하고 교단 내 성차별을 정당화하는 계율은 붓다의 가르침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의식 있는 여·남 불자들을 불교로부터 떠나가게 만들고, 젊은 세대의 불교 유입을 가로막는다. "모든 것은 상호 연기적으로 존재한다"는 붓다의 가르침을 되살려야 교리와 계율을 성평등하게 재해석하고 적용해야 할 때다.
옥복연 종교와젠더연구소 소장출처: https://n.news.naver.com/article/310/0000108494 여성신문 2033.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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