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간 대화로 성평등한 세상만들기-가톨릭】 마리아, 신의 어머니, 우리들의 큰언니를 다시 이야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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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3-08-09 14:20 조회768회 댓글0건본문
<종교간 대화로 성평등한 세상만들기 제 6강 -가톨릭>
마리아, 신의 어머니, 우리들의 큰언니를 다시 이야기하다
가톨릭 하면 정의구현사제단이 떠오른다. 불의한 일에 분노하며 정치적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톨릭은 유일하게 여성 사제가 없다. 체코에서는 공산치하에서 남자들이 나서지 않을 때 여성에게 사제직을 주었지만, 안정기에 접어들자 주교를 정신병원에 보내고 다시 해체하였다. 가부장제 사회는 상황이 급하면 여자들을 독립군으로, 노동자로 불러 쓰지만 여유가 생기면 여자들을 침대로, 우물로 부엌으로 내쫒았다. 오랜 전통의 가톨릭이 제도종교가 되면서 이미 행했던 일이다.
가톨릭은 어디서부터 성평등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까? 참가자들은 수유리에 위치한 봉쇄 수도원인 가르멜수도원을 찾았다. 묵직한 대문이 열리고 아기자기 가꾸어진 정원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여러 가지 떡과 과일을 차려놓고 우리를 반겼다. ‘여자들이 있는 곳이라 역시 먹는 것부터 다르다.’ 어디선가 들리는 소리다.
<생각하는 여자, 마리아>
역사 속에서 수많은 여자는 아이를 낳게 해달라고 신에게 기도해왔다. 그러나 신이 여자에게 내 아이를 낳아달라고 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마리아 사건이다. 오랫동안 이 사건은 착하고 말 잘 듣는 어린 처녀 마리아가 두려움에 떨며 신에게 순종했다고 해석해왔다. 자궁만 빌려주었지 권위는 없는 어머니의 이야기며 이스라엘판 대리모 사건이다. 마리아의 덕목은 ‘순결과 순종’ 이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을 통제하고 옥죄는 그 두 단어.
첫 번째 강의를 맡은 최우혁(가톨릭대 겸임교수)박사는 마리아 이야기를 에디트 슈타인(Edith Stein)의 현상학적 해석에 기반해 소개했다. 철학도 어려운데 현상학이라니, 해석은 자주 주류 담론에 의해 장악된다. 그러나 현상학은 그것에 휩쓸리지 않고 내가 나의 삶 속의 만 가지 경험에서 오는 직관을 사용해 분석하고 해석하는 작업이다. 즉, 최교수는 마리아에 대한 가부장적 해석을 멈추고, 현재 여성으로서 영성학자로서, 성서비평가로서, 페미니스트로서, 신앙인이라는 그의 자리에서 해석했다.
최교수는 마리아 사건을 한 여성의 순종사건이라고 보지 않는다. 남자가 아무리 매달려도 여자가 ‘No’ 하는 순간 결혼은 깨져버린다.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신의 메시지를 전했을 때 마리아는 순순히 따르지 않고, ‘잠깐, 나는 처녀인데요?’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가브리엘은 늙은 엘리사벳도 아이를 낳았는데 하나님은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설득했고, 그러자 마리아는 곰곰이 생각하였다(루카 1:29)고 강조했다. 곰곰이 생각하다라는 뜻은 희랍어로 디에로기세토(διελογιζετο)로 철학하다 성찰한다는 뜻이란다. 날마다 성경을 읽는 필자는 한 번도 이 구절에 눈길을 준 적이 없었다. 마리아가 그랬단 말인가? 마리아는 생각하는 여자였다. 그리고 ‘Yes’,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라고 결단의 응답을 하였다. 만약 마리아가 ‘No’ 했다면 천사는 다른 여자를 찾아갔을지도 모른다. 당시 이스라엘의 젊은 처녀들은 <구세주 탄생> 예언을 믿고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의 뜻을 알아차린, 마리아>
마리아의 부른 노래(루카 1: 46-55) 를 보면 그녀가 어떤 여성이었는지 가늠할 수 있다. ‘ 내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를 불리시고….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이 글은 겁먹은 어린 소녀의 노래가 아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운명을 염려하는 선지자의 노래다. 마리아는 신의 뜻을 알아차린 여성이었다. 가톨릭은 초대교회 때부터 지금까지 날마다 저녁기도에 마리아의 노래를 부른다. 신의 뜻에 참여한 마리아를 통해 새로운 종교, 그리스도교가 열린 것이다.
<마리아, 인류사의 새로운 인간원형>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삶의 목적을 행복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행복해지려고 공부도 하고 결혼도 하고 돈도 번다. 인간의 행복을 위해 신도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니 신의 이름을 앞세워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한다. 식민지도 만들고, 유대인 학살도 하고, 마녀사냥도 하고, 소수자 차별도 하지 않는가? 그러나 톨스토이는 인간의 삶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고 신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제도종교의 가스라이팅 이야기가 아니다.
최우혁교수는 <삐아트, Fiat>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최초의 Fiat는 창조 때 ’빛이 있으라‘라는 말이었다. 세상이 신의 뜻을 받아들이는 순간이다. 최교수는 <주님의 뜻이 저에게 이루어집니다> 라는 마리아의 고백을 또 다른 fiat라고 말한다. 마리아는 자신의 욕망, 자신의 행복이 아니라 신의 뜻이 이뤄지는 걸 선택한다. 신이 인간욕망 도구가 아니라 인간이 신의 뜻을 이루는 도구가 되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의 순간이다.
이런 마리아에 대해서 여신이냐, 신의 어머니냐는 논쟁도 있다. 최교수는 마리아를 신의 어머니라 부른다. 역사적인 존재에게 붙인 최고의 호칭인 고백의 언어다. 마리아는 여신이 아니라 인간이기에 우리의 롤모델이고, 큰언니가 될수 있다고 말한다.
<아들을 더 잘 아는 어머니>
’이럴 줄 몰랐다. 이 남자와의 삶이 이럴 줄 몰랐다‘ 결혼한 여자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최교수는 마리아도 그렇지 않았을까? 청중에게 물었다. 신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이고 마리아가 제일 처음 했던 일은 이집트로 탈출이다. 그러니 예수의 성가족은 양아버지가 있는 이주민 가족이 되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너무 오랫동안 정상가족이데올로기에 갇혀 성가족을 상상하지 않았는가? 마리아는 예수가 성장할 때 주의 깊게 관찰하고 기억해두었다. 태어날 때부터 유별난 아이가 아닌가? 때론 예수의 일에 관여하기도 하였다.
마리아가 예수와 그의 제자들까지 이끌고 가나 혼인 잔치에 갔을 때 일이다. 당시 로마의 식민치하에서 유다 청년들은 빈곤한 지식인이며 힘없는 혁명가들이었다.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달랐을까? 잔치집에 포도주가 떨어지자 마리아는 예수에게 부탁하라고 한다. 주저했던 예수는 등 떠밀려 큰 항아리 물을 포도주로 바꾸었다. 이 기적 사건으로 평생 술꾼이요 먹보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예수의 제자들은 이 일로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전한다. 최교수는 마리아는 아들을 더 잘 아는 어머니였다고 설명한다.
< 예수의 참가족 마 3:31-35>
마리아의 일생은 예수보다 먼저 그리고 예수보다 나중에도 있다. 죽어가는 아들의 모습을 본 어머니다. 십자가에서 매달린 예수와 눈이 마주쳤을 때 마리아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예수는 그런 마리아에게 말했다. 제자를 가리키며 ’당신의 아들입니다‘ 라고. 그리고 제자에게는 ’이분이 네 어머니다‘라고. 제자는 마리아를 자기 집으로 모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의 어머니이고 모든 이의 어머니인 마리아는 최근 자식 잃은 어머니들을 떠오르게 한다. 그 이후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여러 여자와 형제들이 함께 한마음으로 기도에 힘썼다. (사도 1:14) 그리스도교가 꿈틀대며 등장한 것이다.
마리아 영성 연구자 최우혁 교수의 강의는 그냥 평범한 상식을 갖고 성경을 다시 읽었을 뿐인데 변혁적이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생각해봐‘ 라고 말하는데 마리아의 용기, 당당함, 위엄, 그리고 통찰이 드러났다. 가부장제의 때가 벗겨지는 경험이다. 이런 것이 현상학적 방법일까? 개신교는 마리아를 잃어버렸다. 심지어 가톨릭이 마리아를 신으로 섬기니 이단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뿐 아니라 여성들에게 마리아처럼 순결하고 복종하라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불평등은 폭력의 메커니즘이다. 신학자 폴틸리히는 마리아를 잃어버린 개신교가 가톨릭보다 가정폭력이 더 심각하게 일어난다고 말한다.
예수의 여성 제자들은 도망간 남자 제자들과 달리 예수가 죽는 그 자리에도 있었고, 부활의 최초 증인이 되었고, 그 이후 초대교회 공동체에도 있었다. 최교수는 바울이 배타적으로 남성들 것만 기록했고 그것은 너무나 열성적인 여성들을 제압하고 살아남으려는 교회의 전략이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탄압받던 그리스도교가 제국 종교가 된 이후, 여성을 교회 성직에서 배제하고 평신도로 규정했다. 829년 파리 공의회에서는 여성의 전례 활동 참여까지 금지했다.
<여성, 왜 신비를 말하나?>
1000년경에 대학이 생기자 남자들은 신학을 공부했고 성직자가 되었다. 마치 세습무처럼 사회 제도를 통해 성직을 이어갔다. 여자들은 강신무처럼 종교체험을 통해 인정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중세 11-14세기 여성신비가들이 등장하는 이유다. 빙엔의 힐데가르트 (1098- 1179), 아시시의 글라라 (1194-1253), 노르위치의 줄리안 (1343-1416), 시에나의 가타리나 (1347-1380) 등이 알려져 있다. 노르위치 줄리앙은 하나님을 어머니라 표현했다. 제도종교와 다른 언어를 사용한 것이다. 시에나 카타리나는 교황을 로마로 되돌아오게 하는 힘이 있었다. 그러나 신비가라는 지위를 얻기 어려웠고 여차하면 마녀로 처형당하기에 십상이었다.
제도교회의 방해와 박해속에서도 여성들은 신과의 동행을 포기하지 않았다. 최교수는 수도원의 신비가들 뿐 아니라 수공업 경제 활동을 했던 평신도 여성들의 공동체 베긴회 소개도 놓치지 않았다. 그들은 함께 모여 기도했고, 자신의 재산을 팔아 공동체를 이뤄 살았다.
<여성, 여전히 신비를 말하다>
가르멜회를 창립한 성녀 데레사는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 그 무엇에도 너 마음 설레지 말라. 그 무엇도 너 무서워하지 말라. 모든 것은 다 지나가고 님만이 가시지 않나니, 인내함이 모두를 얻느니라. 님을 모시는 이 아쉬울 것이 무엇이랴. 님 하나시면 흐뭇할 따름이니라. (예수의 데레사, 1515-1582)”
마치 연애편지 같다. 아가서처럼 인간의 사랑을 통해 신과의 사랑을 표현한 것이다. 최교수가 연구에 집중했던 에디트 슈타인(1891-1942)은 성녀 데레사의 글을 읽고 가톨릭 신앙에 입문했다. 그는 유다인으로 아우구슈비츠에서 선종하기 전까지 여성들을 교육하고 많은 연구물을 남겼다. 그는 “모든 여성은 하느님 어머니를 닮은 존재인 동시에 그리스도의 신비이며 성심의 제자다’ 라고 말한다. 강의가 끝나자 참가자들은 ‘부라보’ 환호성을 질렀다. 한쪽에는 최우혁교수의 어머니가 우리들의 어머니가 되어 활짝 웃고 있었다.
두 번째 시간에는 가르멜 수도원 수녀들을 만났다. 커튼이 열리고 그 너머 수녀들은 성가를 부르고, 첼로 삼중주로 ‘생명의 양식’을 연주했다. 그들의 몸은 봉쇄되었는데 영혼은 더 자유롭다고 말한다. 앵콜을 외치자 수녀들은 평화의 기도를 불러 이 땅의 평화를 기원했다. 음악을 전공한 사람은 없다지만 스스로 성학도 공부하며 훈련해 신에 대한 사랑을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수도원에 들어온지 44년이 되었다는 마리아 로렌스 수녀를 만났다. 이제 고희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은 아이처럼 맑았다. 수녀원은 실연당하면 가는 곳이 아니냐는 엉뚱한 질문을 하자, 웃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했다. ‘인간의 사랑은 20대의 사랑이 다르고 나이 들어가면서 그 사랑의 의미가 바꾸지 않나? 신을 사랑하는 것도 그렇다. 내겐 신에 대한 풋 열심이 있었던 시기도 있었고 자신이 적나라하게 벗겨지는 시간도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가며 사랑도 바뀌었다.’ 신을 사랑한다는 말은 수없이 들어봤지만, 그 의미를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사람은 몇이나 될까? 수녀들은 남북한을 위해 정해놓고 기도를 하고 지금 전쟁이 일어나는 지역을 위해 기도한다고 말한다. 사랑하는 신을 향해 그리고 신과 함께 걷고 있는 그들이다.
필자는 신비주의에 관심이 없었다. 신비주의를 굳이 말로 표현해야 하나 싶었다. 어쩌면 그들만의 자기만족이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최교수 강의는 ‘신앙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게했다. 자신의 욕망이 아니라 신의 뜻을 따르는 삶은 어떤 것일까? 되묻게 되었다. 인간이 스스로 완벽하다고 판다고 하는 순간, 그 틈새 없는 생각 속에 얼마나 많은 갈등이 생겨났는가? 전쟁, 자연파괴, 그리고 기아는 힘 있는 자들의 삶의 결과다. 봉쇄 수녀들은 기도할 뿐이다. 서로 이기겠다고 하는 세상에 신이 이겨야 한다고 기도하고 있다. 수도원을 나올 때 수녀님들은 참가자들에게 성마리아에게 헌화했던 꽃을 나눠주었다. 영성은 신과의 사랑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이 아닌가. ***
출처: 당당뉴스 2023년 08월 09일, 최형미(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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