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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벌(daṇḍa): 메두사의 눈으로 종교지도자 성폭력을 처벌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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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8-01-19 12:30 조회3,97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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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키 남부 소도시 디딤 아폴로 신전 입구에 있는 메두사 유적.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메두사는 머리카락이 살아 꿈틀거리는 뱀이고, 눈이 마주치면 돌로 만드는 끔찍한 괴물이다. 하지만 그녀가 처음부터 괴물은 아니었다. 

아테나신전의 사제로 그리스 최고의 미녀였지만,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등장하면서부터 그 후의 스토리는 두 가지 버전으로 전해온다. 하나는 포세이돈과 메두사가 서로 사랑에 빠졌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포세이돈의 구애를 거절하자 포세이돈이 그녀를 성폭행했다는 것이다. 

애인이냐, 성폭력 가해자냐에 따라 이야기 결말이 달라질 것 같지만, 놀랍게도 두 버전의 그 후 스토리는 동일하다. 분노한 아테나가 메두사를 괴물로 만들고 외딴 섬에 유배시켰다가, 페르세우스를 도와 그녀의 머리를 잘라 죽게 한다. 

그렇다면 포세이돈은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아무런 처벌이 없었다.

메두사는 본래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는 지혜의 상징인 뱀을 머리에 두르고 신과 인간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볼 수 있는 지혜의 여신이었다. 생명 창조와 죽음을 관장함으로써 남성이 할 수 없는 창조 영역을 주관하는, 남성의 지혜를 뛰어넘어 여성 고유의 지혜를 가진 위대한 여신이었다. 

반면 그리스 신화에서는 남성신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난,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아테나가 지혜의 여신이다. 그녀는 잘린 메두사의 머리를 자신의 방패에 장식으로 붙여서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메두사의 죽음을 통해 여성신의 몰락과 남성신, 남성중심사회가 도래했음을 신화는 보여준다. 

가부장적 남성중심사회는 남성의 성욕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여성은 무조건 순결해야 한다는 남녀 이분화 된 성규범이 적용된다. 

성폭력 피해자도 순결을 잃은 여성으로 낙인찍고 처벌하고, ‘술 때문에’ 혹은 ‘여자가 유혹해서’ 순간적인 실수를 했다는 남성 가해자는 정상 참작이 된다. 술이 나쁘고 유혹한 여자가 잘못이라는 것이다. 

특히 이 가해자가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종교 지도자일 경우 사건은 쉽게 은폐되거나, 피해자를 유혹자로 낙인찍어 공동체에서 쫒아 내거나, 피해사실을 폭로하면 조직의 배신자 취급을 하기도 한다.

최근 우리 사회는 ‘우월적 지위’에 있는 종교지도자와 ‘복종하는’ 신도라는 절대적인 위계 관계에서, 종교지도자에 의한 여신도 성범죄가 증가하고 있다. 불교도 예외가 아닌데, 이는 종교인 개인의 일탈도 있겠지만 종교 조직 내 남성중심의 문화도 큰 역할을 한다. 

예를 들면 ‘큰스님이 되는 과정에서 막행막식은 그럴 수 있지’라며 출가자의 성범죄를 덮어두려 한다거나, ‘여성은 수행자를 유혹하는 악마’라며 교리를 왜곡하여 부정적인 여성관을 유포하거나, 봉사와 희생이 여성의 미덕이라며 무조건적인 순종만을 요구하거나, 평소 출가자에게 무조건적인 존경을 강요하는 분위기라면, 성폭력 피해자가 양산될 수밖에 없다.

종교 지도자에 의한 성폭력은 가해자가 절대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거나, 사적 고민을 호소하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때문에 위계나 위력에 의해서도 발생하기 쉽다. 

그러므로 한 번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발생하거나,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피해자가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신도인 여성피해자들은 성폭력으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 질뿐만 아니라, 자신이 믿고 따르는 종교 지도자로 인해 폭력을 당하기 때문에 신앙적으로도 혼란스러워하며 더 큰 정신적인 충격을 받게 된다. 

그래서 종교지도자에 의한 성폭력은 가중 처벌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종교지도자에 의한 성폭력의 심각성은 재단법인 선학원 이사장 법진스님의 여직원 성추행사건 재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1년이 넘게 진행된 재판 과정에서 가해자 법진스님은 거짓과 위선으로 일관했고, 고통을 호소하는 피해자를 비정상으로 몰아붙였으며, 피해자를 지원하는 여성 활동가를 고발하기도 했다. 

한국선불교의 전통을 유지 계승하며 600여 사찰이 소속되어 있는 선학원의 수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민망한 재판이었다.

그런데 만약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말하지 않았더라면, 가해자가 사회적 지위와 돈으로 사건을 은폐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피해자는 나쁜 여자로 낙인찍혀 일생동안 고통 받았을 것이고, 또 다른 피해자들이 계속 나왔을 것이다. 

이 사건에서 재판부는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의 유죄판결을 내렸다. 또한 신상정보를 공개하며 재발방지를 위한 치유프로그램을 수강하도록 명령했다. 가해자의 직업, 연령, 경력 등을 볼 때, 그 죄질이 매우 나쁘고 또 피해자도 용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성의 성에 관대한 남성중심사회에서, 성범죄를 줄이기 위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붓다께서 라훌라에게 신체적, 정신적, 언어적 행위를 하기 전에 먼저 선업인지 악업인지 깊이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가르침이 초기경전인 『맛지마니까야』의 ‘암발랏티까에서 라훌라를 가르친 경’에 나온다. 

즉, 어떤 행위를 하려고 할 때 그 행위가 나를 해치거나 남을 해치거나 나와 남을 해치는 것이 아닌지 살피고, 악하고 불건전한 결과나 과보로 괴로움을 초래하는 것은 아닌지 먼저 성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 행위의 결과나 과보가 스스로를 해치거나 남을 해치거나 나와 남 둘 다를 해치는 악업이라면, 예를 들면 성폭력과 같은 행위라면 하지 말고, 반대로 그 행위가 나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이로운 선업이면 행하라는 것이다.

모든 생명을 창조하고 죽음을 다스리며, 과거와 현재, 미래를 살펴서 현명한 판단을 하는 메두사야말로 선업을 만들어내는 여신이며 보살이다. 

새해에는 지혜의 여신 메두사의 날카로운 눈으로 종교지도자의 성폭력을 단호하게 처벌하고, 교단과 사회에서 악업이 줄어들기를….


옥복연(불교포커스 '여시아사'중에서, 2018.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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