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계 미투, 성평등 위한 전지구적 여성연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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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9-11-12 12:41 조회3,014회 댓글0건본문
불교계 미투, 성평등 위한 전지구적 여성연대로
옥복연
(종교와젠더연구소 소장, 성평등불교연대 공동대표)
지난 10월 20일, 인도에서 열리는 제 19회 국제참여불교연대(INEB) 컨퍼런스에 참석했다. INEB은 ‘평화와 비폭력, 정의와 인권’을 추구하는 세계 불교인들의 연대체로, 올해 주제는 “깨달음의 문화-지혜의 개발과 결실”이었다. 18개국 160여 명이 인도 다람살라에서 자비로운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존경받는 달라아라마존자님을 뵙는 일정부터 시작했다. 그는 온 인류의 “하나됨”을 강조하며 소중한 가르침을 주셨다.
사실 내가 이번 행사에 참석하기까지 고민이 많았다. 그동안 한국에서 일어났던 미투운동은 불교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는데, 몇 년 전에 교단의 지도자적 위치에 있던 한 비구스님이 여직원을 성추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하여 3개 여성단체들이 가해자의 처벌을 위한 서명받기, 수요 시위, 재판정 증인 등으로 강력 대응했고, 해당 비구는 법적 처벌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연대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성평등한 교단 문화의 정착을 위해 15개 불교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해서 “성평등불교연대”를 결성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경험을 통해 불교계 성평등을 위한 연대의 필요성에 대해 토론하면 어떠냐고 주최 측에 제안했고, 내가 발표까지 해야 할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이 주제가 과연 참가자들에게 관심이 있을 것인가 하는 걱정이 커져만 갔다. 왜냐면 INEB에 속한 많은 동남아불교국가는 오래전에 비구니승단이 사라졌기 때문에, 해당 국가는 물론 불교페미니스트들은 비구니승단의 복원을 교단 내 가장 중요한 젠더이슈로 삼고 있다. 또한 상좌불교국가는 출가자의 계율이 매우 엄격해서 성범죄를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컨퍼런스는 한국의 법륜스님과 최초의 서양비구니인 텐진 팔모스님께서 깨어남을 위하여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기조연설부터 시작했고, 오후에는 평화와 사회 정의에 관련된 네 분과 토론이 있었다. “불교에서의 미투운동과 성평등을 위한 연대”라는 제목의 우리 분과는 내가 주제 발표를 했다. 미국 출신 비구니스님이 진행을, 인도와 스리랑카의 여성 활동가가 토론을 해주었고, 비구, 비구니, 수행녀, 그리고 남녀 불자 등 약 30여 명이 참여했다.
먼저 한 토론자는 자신이 얼마 전에 병원을 다녀왔다고 말문을 열었다. 어린 비구가 비구로부터 지속적인 성폭행을 당한 후 크게 상처를 입어 입원을 했다는 것이다. 스리랑카는 불교 국가이기 때문에 7살 정도가 되면 사원에 들어가서 일정 기간을 보내는 것이 관례이지만, 그녀는 13살이 된 아들을 사원에 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왜냐면 비구들만의 닫힌 공동체에서, 혹여 잘못된 젠더인식을 갖게 될까봐 두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른 토론자인 인도 여성은 자신이 낮은 계급 출신이라며, 너무나도 심각한 성차별 때문에 이슬람교와 기독교에도 가보았지만 도움이 되지 않아서 불교로 개종했다고 했다. 하지만 불교 역시 다를 바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주제 발표에서 술락 시바락사 박사가 남성중심적인 교단에서 가부장제와 여성혐오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연대하라, 네트워크를 만들어라, 조직하라, 그리고 무엇보다 먼저 담마를 실천하라”는 주자을 인용했다. 그리고 한국에서 지난 5년 동안 전문직에 종사하는 성범죄 가해자의 직업군에서 성직자가 1위라는 자료를 제시하면서, 종교 내 여성신자들이 가정, 교단, 사회의 남성중심 가부장제라는 ‘삼중의 굴레’에서 고통 받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종교 내 성범죄 피해 여성이 성폭력사실을 말하지 못하는 원인으로, 교단은 여성들에게 권위로 복종이나 침묵을 강요하거나 사건을 은폐, 혹은 외면하고, 신자 공동체는 잘못을 여성에게 돌리거나 그 여성들을 무시, 비난, 심지어는 거짓말이라며 위협을 가하는 등 2차· 3차 피해를 가하기 때문이다. 사회는 종교 내부의 일이라며 개입을 거부함으로써, 교단 내 성범죄는 드러나기 쉽지 않고, 막상 드러난다고 할지라도 이는 성직자의 사소한 실수라거나 중요치 않은 일로 치부되었다. 결국 남성중심의 사회와 가부장적 종교에 의한 침묵의 카르텔은 더욱 공고화되었다.
그러지만 불교 여성들은 더 이상 침묵에서 깨어나야 하는데, 왜냐면 성범죄는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의 문제, 교단의 문제이며, 성범죄는 붓다의 가르침을 위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별 여성이나 개별 단체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므로 전지구적 연대가 필요한데, 사회 변혁을 위한 불교인의 참여와 실천을 강조하는 INEB은 성평등한 교단을 위해 연대를 지원해야 함을 주장했다.
발표 후, 반응은 놀라웠다. 한 여성은 어릴 때 엄마와 함께 사찰에 갔다가 비구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이후로 “한 번도 사찰에 가지 않았다”고 그 자리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고백했다. 그러자 한 비구는 “우리 비구들은 밖에서 땀을 흘리며 힘든 일을 하는데 비구니(동남아국가는 비구니가 없는데, 비구니와 수행녀를 함께 사용하기도 한다)는 부엌에서 편하게 일한다. 그럴 때마다 우리들끼리는 비구니가 부럽다고 말한다. 그리고 비구니는 남들 앞에 나서거나 가르치는 일을 싫어하기 때문에 그 역할을 맡기지 않을 뿐이다. 이는 결코 성차별이 아니다.”라고 항변했다.
그러자 일본 승려가 “우리도 교단 내 성문제가 심각하다. 이는 한국처럼 남성중심의 유교문화의 영향이 큰 것 같다.”고 말했고, 한 남성불자는 “사실 교단 내 성문제가 이토록 심각한 지 잘 몰랐다. 여성들의 고통에 관심이 없었다. 남성들도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말해서 여성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다른 한 비구는 “우리들은 무엇이 성폭력인지, 여성신자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들은 바가 없다. 여성신자들은 우리들에게 비판하거나 거부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무엇이 성폭력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태국에서 온 매치(태국도 비구니승단이 없기 때문에, 비구니대신 매치라고 한다.)들은 조용히 듣고 있었다.
토론은 한 시간 정도 더 이어졌고, 마침내 마무리를 했을 때 스리랑카의 한 비구가 나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그는 아주 진지하게 “오늘 이런 발표가 매우 놀랍다. 붓다의 가르침을 따르는 불자들에게 성범죄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 비구들이 몰라서 그런 경우가 많을 것인데, 우리들이 반성해야 한다. 이렇게 나쁜 성범죄가 사라질 수 있도록 앞으로 계속 도와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참으로 반가웠다.
집단 토론을 통해서 우리는 성평등을 위한 연대활동이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진행되어야 하는 매우 중요한 활동이며, 또한 시급하게 진행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활동 내용도 비구 대상의 성평등교육, 재가여성들을 위한 성폭력 예방교육 등, 모든 불교국가에서 동시에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전지구적인 활동이 되어야 함에 공감했다. 그래서 우리는 대화방을 만들어 상호 의견을 교환하면서 INEB에서 성평등을 위한 조직적인 활동을 위해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가자고 약속했다.
발표 전에 참가자들에게 나누어주었던 질문지를 수거했는데, 거기에도 다양한 의견들이 있었다. “교단 내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도 성범죄 피해자가 된다. 이 문제의 해결은 비구와 남성들에게 인권을 교육하고 성범죄를 예방하는 법제도를 강화해야 한다.”, “성평등의 문제는 지식의 부족 때문이다. 남성우월 사회에서 남성들이나 비구들이 우월감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들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고 성평등이 뭔지도 잘 모른다. 그러므로 보다 더 오픈해서 이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 “성역할 고정관념에 대해 깨어나서, 실천해야 한다.”, “인간의 권리를 실천해야 한다.”, “젠더 이슈에 대해 세미나나 워크샵이 필요하다.” “자비심을 가져야 한다.”, 성범죄 생존여성들에게 이메일 등으로 도움을 주고, 의료지원을 해야 한다.“ 등등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다.
이 시간을 통해서 성평등한 교단을 위해 각 나라 불교여성들은 연대를 약속하고, 비구스님과 남성불자들의 젠더 파트너쉽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성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불교인들이 연대하고, 네트워크를 만들고, 조직하고, 실천하는 소중한 첫 걸음을 시작된 것이다.
출처 : 여성신문 오피니언 (젠더마이크), 2019.11.11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4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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