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의 젠더갈등과 해소 방안 모색 / 옥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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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종교와젠더연구소 작성일20-12-12 18:45 조회2,588회 댓글0건본문
특집 | 한국사회의 갈등, 그 극복을 위한 청문(聽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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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기
지난 5월은 ‘강남역 살인사건’ 발생 4주기로, 이 사건은 우리 사회의 젠더갈등을 증폭시키면서 ‘여성혐오’가 공식담론으로 등장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경찰은 가해자가 불특정인을 대상으로 충동적으로 저지른 ‘묻지 마 범죄’로 결론 내렸지만, 다수 여성들은 ‘여성에게 무시를 당해 범행했다’는 가해자의 진술과 여자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가 저지른 범행은 범죄의 대상이 불특정인이 아니라 ‘여성 중 불특정인’이었다며 ‘여성혐오 범죄’로 규정하였다. ‘강남역 살인사건’을 굳이 몰젠더화(gender-blinded)하는 것 자체가 여성차별이라며 여성들은 분노했는데, 젠더갈등이 공개적으로 폭발한 것은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피해자 추모 운동이 시작된 이후였다.
전국적으로 추모 열기가 퍼져나가며 여성혐오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일부 남성들은 잠재적인 범죄자 취급을 당하는 것이 억울하다며 추모 현장에서 논쟁이 벌어졌고 이는 물리적인 충돌로 이어지며 경찰이 출동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이 사건은 인터넷에서 메갈리아(여성혐오의 글과 말을 그대로 남성에게 적용하는 ‘미러링’을 주로 사용함)와 일베(일간베스트)가 격렬하게 부딪히며 격렬한 전선을 형성하게 되었고, 젠더갈등은 여혐(여성혐오)과 남혐(남성혐오) 관련 각종 신조어가 양산되면서 배틀(battle)이 이어졌다. 여성혐오는 여성멸시와 여성비하를 넘어서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일상화되어 현실에서 나타난다.
그러므로 여성혐오는 구조적, 제도적으로 널리 용인되어 그 사회의 규범으로 자리 잡은 폭력이며, 성차별과 여성에 대한 억압을 합법적으로 재생산하는 기제이자 현실 운용원리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는 부정적이고 열등한 여성관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여성의 지위가 향상될수록 젠더갈등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개인 간의 섹슈얼리티 영역에서부터 노동시장의 성차별적 관행 및 법 · 제도나 정책 수립 과정 등 남성과 여성의 이해가 대립하는 사회의 제반 영역에 이르기까지 어김없이 젠더갈등이 나타나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젠더갈등이 가시화된 것은 1990년대 문민정권의 등장과 함께 여성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경제활동에 참여가 활발해지면서 등장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여성의 정치 세력화와 세계 여성운동의 발전으로 각국에 성평등 정책을 요구하면서 젠더갈등은 섹슈얼리티와 같은 사적인 영역에서부터 여성 할당제나 동일임금과 같은 공적 영역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등장했다. 이는 2010년대 이후 언론에서도 주요 이슈로 등장하기에 이르렀고, ‘강남역 살인사건’을 거쳐서 ‘미투운동’ 이후 특히 젊은 세대들에서 치열하게 확산하고 있다. 최근 한 조사에 의하면, 우리 사회의 심각한 갈등으로 빈부갈등(35.4%), 이념갈등(22.4%) 다음으로 성 갈등(20.4%)이라고 응답했는데, 20대 절반 이상은 성 갈등이 가장 심각하다고 응답했다. 20대에서 성별 차이도 심각한데, 20대 여성 62.0%는 성 갈등이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답했고, 특히 20대 남성, 미혼, 대도시 거주, 학력과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성 갈등이 심하다고 응답하여 청년세대의 젠더갈등은 매우 우려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사회적 갈등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부차적이거나 중요치 않은 문제로 다뤄지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4년이 흐른 지금, 우리 사회의 젠더갈등은 어떻게 변했을까? 집권 여당은 4주기를 맞아 발표한 성명에서 이 사건은 명백한 여성혐오 범죄임을 규정하며 성차별 근절을 위한 법 · 제도의 정비를 약속했다. 하지만 젠더 폭력은 강남역 사건 이후 몰카범 강력 처벌 요구 혜화역 시위, 미투운동, 스토킹 범죄, 텔레그램 n번방 사건 등 더욱 흉악한 범죄가 되어 여성의 일상을 위협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글은 두 가지 전제에서 출발하고자 한다. 첫째, 젠더갈등이 특히 젊은 세대에서 더욱 심화되고 있기에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사회적 갈등으로 규정한다. 둘째, 가부장적 기존 질서를 유지하면서 젠더갈등적인 요소를 보완하려는 소극적인 방식으로는 섹슈얼리티, 노동, 출산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심화되는 젠더갈등을 해소하기 어렵다.
우리 사회의 가부장적 성 역할과 젠더 관계가 급격하게 변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이 글은 우리 사회 젠더갈등의 특징을 분석하고 그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진다. 이를 위해서 최근 젠더갈등의 대표적인 사례로 등장하고 있는 ‘이 남자’ 현상, 성 착취물, 낙태죄 등의 특징과 쟁점들을 분석하고, 불교 초기경전에 나타난 붓다의 젠더갈등과 대응 전략도 살펴보면서 젠더갈등을 약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고자 한다.
2. 우리 사회 젠더갈등의 특징과 쟁점들
페미니즘에서 젠더를 강조하는 이유는 남녀 신체적인 성별(sex)이 사회 · 문화적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성별 정체성이나 성별 역할이 특정 역사적 상황에서 재구성되고 변화하는 것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예를 들면 여성폭력과 젠더 폭력은 엄밀한 의미에서 구분되는데, 여성폭력은 여성에 가해지는 모든 종류의 폭력을 의미하지만 젠더 폭력은 사회적으로 주어지는 성별에 대한 기대와 가치, 성 역할 규범 등이 폭력을 정당화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특정한 문화나 가치를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성별에 기초한 젠더 폭력이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에서는 정당한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므로 젠더에 대한 몰이해는 특정한 사회에서 일반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젠더 폭력을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성적 차이와 차별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통합으로 나아가는 것이 쉽지 않다.
근대 우리나라에서 젠더갈등이 공식적으로 표출된 최초의 사건은 1898년 9월 1일 발표된 최초의 여성인권선언인 〈여권통문(女權通文)〉으로 볼 수 있다. 조선시대 서울 북촌에 사는 이소사, 김소사 등 여성들이, 대낮에 서울 한복판에 모여서 여성 억압과 성차별에 문제를 제기하며 남성과 동등한 교육권 · 직업권 · 참정권을 요구하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이후 젠더갈등 사례는 1916년 일본이 식민지 조선에 설치한 공창 폐지 운동이 있고, 해방 이후 조혼과 축첩반대· 호주제 폐지 운동 등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 젠더갈등이 쉽게 드러나지 못했던 원인은 ‘여성’의 범주가 단일하지 않고 세대나 계층, 지역 등의 요인과 교차하고, 특히 결혼이나 가족관계 등 사적인 영역과 연관되어 공적 담론으로 이슈화되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장에서는 우리 사회 젠더갈등의 특징과 주요 쟁점을 세 가지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1) ‘이 남자’의 등장
한국사회에서 페미니즘이 급속하게 전파되면서 예능 프로그램이나 출판은 물론, 탈코르셋과 ‘꾸밈노동’ 거부 등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는 페미니즘의 일상화를 주장한다. 하지만 일부 20대 남성들은 페미니즘에 대한 거부감을 여성혐오로 반격(backlash)하고 있다. “때린 건 여자 감옥 간 건 남자, 경찰서 가니 뒤바뀐 운명”이라는 구호에서 알 수 있듯이, 최근 이십 대 남성들은 남자들이 피해자임을 토로한다. 또한 《82년생 김지영》에 《82년생 김철수》가 출판되고, ‘여성의 전화’는 ‘남성의 전화’로, ‘여성학’에 ‘남성학’으로, ‘육아 독박’은 ‘군대 독박’으로 대척점을 이룬다.
남성들만의 커뮤니티에는 여자가 무슨 벼슬이냐며 여혐 글들로 넘쳐나고, 학생들은 여학생과 경쟁해야 하는 남녀공학을 회피한다. 이들은 현 정부가 친페미니즘적이라며 세대 중 가장 낮은 정권 지지율을 보이고, ‘이 남자(이십 대 남자)’ ‘이대남 현상(20대 남성의 보수화 현상)’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하기에 이르렀다. 여태까지 우리 사회는 여성이 약자이고 차별받는다고 주장했고, 남성들은 여성우대 정책이 과도하다는 의미로 역차별당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 남자’의 세계에서는 남성이 약자이고, 여성이 더 많은 이득을 얻기 위해 약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남자들은 역차별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차별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 남자’에게 현재의 페미니즘은 남성을 비난하기 위한 도구이며, 남자의 지위를 끌어내리려는 수단이라며 박탈감을 호소한다. 안전한 밤길을 요구하는 여성들에게 남자가 잠재적 가해자냐며 분노하는 이들은, 기성세대 남성들이 누렸던 가부장적 특권에 대한 부채 상환을 자신들에게 요구하고 있다며 부당함을 주장한다.
‘이 남자’는 기성세대에 비해 덜 가부장적이지만 같은 세대의 여성들과 사회적 인정투쟁을 벌여야 하는 “햄버거 사이에 껴 있는 패티” 같다고 억울해한다. 젠더갈등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이 남자’의 의식은 같은 세대 여성은 물론, 남성들 가운데서도 연령대별로 차이가 난다. 예를 들면 젠더갈등에 대한 정부의 대처에 대해 20대 초반보다 20대 후반이 군대나 취업 시기와 맞물리면서 불만이 더 크고, 20대 여성에 비해서도 불만족도가 높다. 20대가 가장 낮은 대통령 지지도를 보이는 이유로 20대 여성은 일자리 문제를 드는 반면 20대 남성은 여성우대 정책이나 군복무 가산점은 물론 정권이 친페미니즘적이라는 것이다.
‘이 남자’의 젠더갈등에는 가부장적인 성 역할 고정관념이 영향을 미친다. 또래 여성들에게는 성평등을 요구받지만 기성세대에게는 남성성을 요구받으며, 또래 여성들에게는 ‘한남충’으로 경멸당하지만 기성세대에게는 ‘나약하다’고 비난받는다. 또한 ‘이 남자’의 젠더갈등에는 최악의 청년 취업난이 있다. 부모의 능력에 따라 금수저와 흙수저로 나뉘며, 양극화가 극심한 상황에서 우리 사회는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로 상징되는 ‘신(新)계급사회’가 고착화되고 있다. 취업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며 ‘이 남자’는 더욱더 여성을 차별받는 약자로 인정할 수 없다. IMF 이후 우리 사회의 남성 생계부양자 역할의 부담으로 인해 ‘아버지’ 자리의 무게에 대한 괴로움을 호소했지만, 오늘날 ‘이 남자’는 맞벌이로 인해 생계부양자의 역할과 동시에 가정에서의 돌봄 담당자도 요구받으며 억울해한다.
‘이 남자’의 젠더갈등에는 세대 간의 갈등도 존재한다. 부모세대보다 출세할 기회도 적어 삼포(연애 · 결혼 · 출산 포기), 오포(삼포+내 집 마련 · 인간관계 포기)에 이어 N포(모두 포기)세대라며 자조한다. 부모세대보다 출세할 기회도 적고, 집 한 칸 마련하기도 쉽지 않은 ‘이 남자’는 아프면 ‘아프니까 청춘’이고, 힘들면 ‘젊으니까’ 참을 것을 강요당한다. 기성세대에 밀려 취업도 어렵고, 국민연금을 넣고 있지만 혜택을 받을지도 불안하다. ‘이 남자’는 기성세대에 의한 착취와 여성에 의한 착취로 스스로 약자로 자리매김한다.
2) 몰카에서 성 착취물로 진화
UN의 ‘여성폭력 철폐선언’에 의하면 여성에 대한 폭력은 젠더에 기초한 폭력 행위 내지 그러한 행위를 하겠다는 협박이나 강제, 임의적으로 자유를 박탈하는 것은 물론, 공/사적 영역에서 여성에게 신체적 · 성적 · 심리적 침해나 괴로움을 주는 모든 행위를 말한다. 이러한 여성폭력은 폭력이 행해지는 방식이나 법에 따라 가정폭력 · 성폭력 · 성매매 등으로 구분하고 있지만, 사회가 변화하면서 새로운 폭력 유형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데 기존의 젠더폭력에 포함되지 않는 폭력이 사회적으로 공분을 사며 여성폭력으로 인정받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며, 잔혹한 범죄 내용에 비해 사법부가 그 심각성을 인지 못 하거나 처벌할 법조항이 없는 경우도 있다.
우리 사회는 인터넷의 발전으로 편의성과 효율성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지만, 이로 인한 부작용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익명성에 의한 디지털 성범죄의 등장이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 성범죄는 새로운 유형의 젠더폭력으로, 카메라 등 디지털 기기를 이용하여 신체를 촬영하거나 유포, 유포 협박, 저장, 전시 등 정보통신 기술을 매개로 온 · 오프라인 공간에서 발생한다. 이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일대일이 아니라 다수 대 다수가 되거나 가해와 피해의 경계가 불분명한 경우도 있고, 초기에는 야사(야한 사진)나 야동(야한 동영상) 등에서 점차 그 수법이 잔인하게 진화하면서 직접 성 착취물을 생산, 판매 혹은 유통하면서 다수의 피해자가 양산되었다.
또한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피해가 발생하며, 인터넷의 익명성으로 인해 가해자 처벌하기까지 시간도 많이 걸린다. 예를 들면 1999년 국내 최대 음란물 사이트 ‘소라넷’은 100만 회원을 거느리며 화장실이나 샤워실 등의 도둑 촬영, 성관계 몰카(몰래카메라), 악성 합성사진은 물론, 골뱅이녀(술 취한 여성) 성폭행, 리벤지 성폭행(헤어지자는 여친 성폭행) 등 잔혹한 영상들을 인터넷에 올리면서 디지털 성범죄의 온상이 되었다. 하지만 이 사이트는 해외에 서버를 두었다는 이유로 이를 폐지하는 데만 17년이 걸렸으며, 국내에 서버를 둔 ‘웹하드’는 여성의 일상을 성적 도구로 사고팔면서도 오랫동안 무법지대였다.
성 착취물의 무분별한 유통을 부추긴 것은, 수많은 여성의 고통에 비해 성범죄에 무관심하거나 남성의 성에 관대한 우리 사회의 성 인식도 큰 원인이 되었다. 대검찰청의 통계에 의하면 몰카 발생 건수는 2007년에 비해 2017년은 10배 이상 늘어서, 10년간 전체 성폭력 범죄 중 가장 큰 폭의 증가세를 보였다. 또한 몰카 범죄 검거율은 94.6%에 달했지만, 기소율은 2013년 53.6%, 2014년 43.7%, 2015년 32.2%로 점차 낮아졌다. ‘잘못을 반성하고, 우발적인 범죄’라는 이유로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했기에 여성들은 화장실이나 탈의실을 이용할 때마다 불안과 공포에 떨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2018년, 한 여성이 남자 누드모델의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린 ‘홍대 몰카 사건’이 발생했고, 사법부는 여성 가해자를 12일 만에 구속했다. 이에 젊은 여성들은 편파 수사로 항의하며 혜화역 시위를 주도했는데, 광화문에서 열린 4차 시위에는 약 6만여 명이 참석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이는 한국 여성운동사에서 여성들이 주도한 가장 조직적이고 큰 규모의 시위로, 젊은 여성들의 분노가 얼마나 강력했는가를 보여준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디지털 성범죄 처벌은 미약하기 그지없다. 그 예로, 전 세계 128만 명이 가입한 세계최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의 20대 남성 운영자는 3년 가까이 불법 사이트를 운영했지만 처벌은 1년 6개월의 징역형에 불과했다. 성 착취물에 대한 미비한 처벌은 더욱 잔혹한 범죄로 이어지면서, 2020년 끔찍한 ‘n번방 사건’이 발생한다. 여중 · 고생들을 신상정보로 협박하여 성 착취 사진을 올리게 하고, 더 나아가 피해 여성들을 ‘노예’로 호명하면서 물건처럼 성폭행했다. 경악할 만한 사실은, 이 사이트의 핵심 운영자들이 대학생, 군인 등 평범한 10대와 20대 남성이었으며, 잔혹한 성 착취물을 거래한 남성이 26만여 명에 이른다는 것이다. 끔찍하게 진화 중인 ‘디지털 성범죄’는 강력 처벌로 재발을 방지하고, 성인지 감수성을 위한 성교육이 절실하며, 또래 집단이나 목격자가 방관자나 공범이 되지 않도록 하는 공동체 의식이 절실하다고 하겠다.
3) 낙태는 더 이상 죄가 아니다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현행 형법의 낙태죄 조항이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는 헌법 불일치 판결을 내려, 낙태는 죄가 아님을 선언하였다. 1953년 낙태죄가 제정된 이래 66년 만에, 2012년 헌재가 낙태죄 합헌 결정 이후 7년 만의 일이다. 여성이 임신하면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무조건 낳아야 한다면 해당 남성에게도 동등한 책임을 지워야 한다. 하지만 남성은 비가시화되고, 여성에게 출산과 양육의 책임을 지우는 것은 가부장제 지배규범을 이용하여 여성에게 가하는 일종의 억압이며, 생물학적 조건을 절대화하여 여성을 사회적으로 무력화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태아의 생명권(pro-life)과 여성의 자기결정권(pro-choice)이라는 젠더갈등 속에서 오랜 세월 여성들은 희생과 봉사를 강요당해왔다. 1973년 제정된 ‘모자보건법’은 모성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고 건강한 자녀 출산과 양육을 목적으로 제정되었는데, 이는 낙태 수술의 허용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인구가 증가하면서 정부는 ‘하나 낳아 잘 키우자’며 가족계획정책을 수립하고 앞장서서 낙태를 권장했기에, 한때 우리나라는 낙태 천국으로 불렸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와 저출산 · 고령사회 문제가 심각해지자 그동안 사문화되었던 이 법을 내세워 낙태를 법으로 금지하기에 이르렀고, 여성이 낙태를 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시술한 의사는 ‘2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받았다.
아무런 준비 없이 아이를 낳거나, 어쩔 수 없이 임신 중지를 해야 할 경우 여성들은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터무니없는 수술비용을 요구받거나 안전하지 못한 수술로 인해 건강과 생명에 심각한 위협을 받기도 했고, 평생 수술 후유증이나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비혼의 임신은 성적으로 문란하거나 무책임한 여성으로 비난받았고, 대부분의 남성은 아버지임을 부인했다. 그 결과 여성은 임신과 출산 과정에 수반되는 신체적 고통과 위험뿐만 아니라, 출산 이후의 광범위한 사회 · 경제적 고통까지도 강요당했다. 국가는 여성의 임신과 출산을 강제하며 여성의 삶과 섹슈얼리티를 통제했고, 종교계는 낙태는 살인이라고 소리 높였다. 낙태 반대 의사들의 모임인 ‘프로라이프 의사회’는 낙태 수술을 한 병원들을 고발하면서 여성들은 외국으로 ‘원정 낙태’에 나서기도 했고, 이혼이나 결별을 해서 홀로 낙태한 여성들만 처벌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일부 남성들은 헤어진 여성에 대한 복수나 괴롭힘의 수단, 혹은 가사나 민사소송의 압박수단 등으로 악용하기도 했다.
형법상 낙태죄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며, 여성이 임신이나 출산으로 인해 겪는 사회적 · 경제적 현실을 담아내지 못한 채 모성신화만을 강요했다. 성적 자기결정권은 여성이 존엄한 인격권을 바탕으로 자율적으로 자신의 생활 영역이나 가정을 형성할 수 있는 권리가 포함되고, 임신한 여성이 자신의 신체를 임신 상태로 유지할 것인지, 출산할 것인지, 엄마가 될 것인가의 여부를 결정할 권리가 포함되어야 함에도 부정당했다.
헌재의 낙태죄 조항 헌법 불일치 판결에는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은 임신한 여성의 신체적 · 사회적 보호를 포함할 때에야 비로소 실질적 의미를 갖는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인간의 존엄성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헌법상 보호되어야 할 권리이며, 임신과 출산이 공동체와 국가에도 공동의 책임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헌재는 임신한 여성에게 낙태 여부를 판단할 ‘결정 가능 기간’을 제공해야 하며, 독자적인 생명으로 인정되는 태아의 범위는 ‘임신 22주부터’이므로 임신 초기의 낙태는 허용될 수 있음을 판결했다. 낙태는 단순한 결정이 아니라 이로 인해 여성의 삶 전체가 달라지므로, 여성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낙태죄’ 헌법 불일치 판결은 사법부가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으로 젠더갈등을 만든 것은 잘못임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으로, 여성의 행복추구권과 평등권, 성적 자기결정권, 재생산권을 합법적으로 보장하는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3. 우리 사회 젠더갈등 극복을 위한 전략
1) 경합하는 남성성 담론과 드리워진 명암
한 사회는 다양한 욕구와 상이한 경제적 · 문화적 자원을 가진 개인들의 집합체이므로, 다양한 유형의 갈등이 발생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특히 젠더갈등은 성별보다는 미혼, 청년세대, 학력이나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실업자 혹은 임시일용직 근로자, 보수적 정치 성향일수록 더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친밀한 사적 영역에서의 일상적 습관이나 태도와 같은 개인적 영역에서부터, 젠더 질서나 성 역할 규범 등의 변화와 관련된 법 제 · 개정 등 다양한 층위에서 성별 갈등이 발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10년 이후 젠더갈등과 충돌은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여성 비하나 혐오 표현들로 퍼져나갔는데, 특히 이는 남성의 피해의식, 여성혐오 담론, 안티 페미니즘이라는 세 요소가 결합하면서 혐오범죄를 불러오기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오늘날 젠더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전략으로 단지 사회적으로 배제된 집단에 혜택이나 기회를 제공하면서 전통적 가치 질서에 포섭하려고 하면 통합은 불가능하다. 가부장적 규범과 질서가 사회적 갈등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기 때문에, 기존의 남성 중심적인 가치관이나 사회 통념들을 근본적으로 변혁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
최근의 젠더갈등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성별, 세대별로 기존의 성 역할 규범에 대한 인식과 태도의 차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면 남성 역차별의 프레임으로 인해 젊은 세대 남성에게는 반페미니즘인 부정적인 인식이 강화되고, 그 결과 젠더갈등이 더욱 심화되는 악순환을 반복하기 때문에, 성별이나 연령에 따라서 갈등 해소 전략도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다양한 남성들의 요구와 문제 제기는 이에 따른 다양한 실천 전략이 요구되는데, 이는 젠더갈등의 한 축인 남성성에 대한 보다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한 이유이다. 그런데 남성성의 중요성에 비하면 그에 대한 연구 많지 않은데, 이는 남성성이 가부장 사회에서 항상 기준이나 정상으로 여겨졌기에 연구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남성성은 매우 다양하고, 사회의 변화에 따라 변화 가능하며 때때로 전복되기도 한다. 이는 과거 기성세대에서 통용되었던 남성성이나 남성의 권위에 따른 성별 위계가 더 이상 당연시되지 않으면서 ‘남성성 위기’ 담론과 이에 대응하는 반동적 남성성도 등장하게 되고, 헤게모니적 남성성을 해체하려는 변화에 대한 저항도 등장한다.
한국사회에서 남성/성에 대한 연구는 ‘위기에 처한 남성성’이라는 한 축과, ‘패권적 남성성’이라는 축이 존재한다. 예를 들면 해방부터 유신 정권에 이르는 기간을 패권적 남성성(hegemonic mascu-linity)이라고 할 수 있고, IMF 이후의 신자유주의 사회를 남성성의 균열 및 변화 시점이라고 볼 수 있다. 남성성은 성평등을 실현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데, 서구의 남성성 개혁가라고 할 수 있는 킴멜(Kimmel)은 정치, 군대, 직장, 학교 등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성평등을 실현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남성의 행동과 태도이며, 이들의 변화 없이는 성평등을 이룰 수 없다고 본다. 또한 코넬(Connell)은 성평등한 사회라는 결실은 성평등을 위한 노력에 필요한 자원들을 통제하고 권한을 행사해 온 남성들의 변화 여부가 매우 중요함을 주장한다.
그런데 남성성에 대한 한 연구에 의하면, 최근 우리 사회의 남성성이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연구는 남성성을 세 가지 유형, 즉 전통적 성 역할 고정관념에 기초한 여성의 역할과 기질을 수용하는 ‘고전적 남성성’, 전통적 성 역할 고정관념을 중시하지만 변화 과정에 있는 ‘과도기적 남성성’, 그리고 전통적 남성성을 거부하며 여성적 역할과 기질을 수용하는 ‘비전통적 남성성’으로 구분해서 조사했다. 이 세 유형 가운데 젊은 층일수록 상대적으로 고전적 남성성에서 벗어났으며, 성 역할 고정관념이나 남녀 이중적인 성 규범에서 상대적으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 사회의 성차별에 대한 남성들의 인식을 분석한 또 다른 연구에 의하면, 성차별 의식도 변화의 과정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는 남성들의 성차별 의식을 세 유형, 즉 성평등을 기존의 남성 권력에 도전하는 것으로 보는 ‘적대적 성차별주의’, 전통적 역할을 따르는 여성은 보호하고 돌보려는 ‘온정적 가부장주의’, 그리고 성차별을 반대하는 ‘반성차별주의’로 분석했다. 그 결과 2030세대의 절반 이상이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지만, 온정적 가부장주의가 44%로 가장 높게 나왔고, 남성 3명 중 1명은 반(反)성차별주의로 드러났다. 청년층에서 강하게 표출된 적대적 성차별과 반페미니즘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남성들은 미투운동 63%, 낙태죄 폐지 운동 60%, 혜화역 시위 51%, 탈코르셋 운동 42%의 지지율을 보였다. 또한 남성들은 성평등 실천 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 화이트리본 운동(남성 폭력 반대), 히포시 캠패인(성평등 운동), 성매매 반대 운동 등에 3명 가운데 1명이 찬성하며, 남성의 ‘돌봄 노동’에 대해서도 절반 이상이 찬성했다.
이 조사 결과에 의하면 2030세대 남성들의 성 의식은 변화의 과정에 있지만 그 한계는 분명했다. 이들이 성차별에 반대하는 입장은 여성의 동등권을 바탕으로 하는 통합이 아니라, 전통적인 남성들의 여성관인 여성-약자에 대한 ‘보호’라는 입장이었다. 2015년 ‘양성평등기본법’은 남녀의 동등한 권리와 책임, 참여 기회를 법적으로 보장하며 대사회적으로 여성차별 극복이라는 목적으로 제정되었다. 하지만 젠더갈등을 극복한 성평등은 양적 평등과 효율성만이 아니라 사회정의로 나타나야 하는데, 이는 여성이 단지 사회통합의 대상이 아니라 여/남성 모두가 주체가 될 때 가능할 것이다.
2) 경전에 나타난 젠더갈등과 대응 전략
종교에서 젠더갈등은 종종 남성-성직자 · 지도자 · 규율 제정자, 여성-신자 · 봉사자 · 신자 재생산자라는 지배와 억압의 강력한 젠더 위계를 구성하며 성 역할 이분화가 공고화된다. 불교도 이와 유사한데, 평등과 해방을 강조한 붓다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여성혐오증으로 의심할 만한 내용들이 경전을 통해 전승되고 있음을 불교학자 포르(Faure)는 비판하였다. 그렇다면 인류사에서 가장 여성의 지위가 낮았다고 할 수 있는 당시 인도사회에서, 붓다께서는 여성혐오를 기반으로 한 젠더갈등을 어떻게 해소했을까? 경전에 전해오는 대표적인 젠더갈등으로는 ‘여성의 출가 여부’를 들 수 있는데, 붓다는 다양한 이유로 이를 세 번이나 거절했다가 결국 비구니 교단이 성립된다. ‘여성의 깨달음 가능 여부’도 논쟁적이었는데, 깨달음을 성취한 비구니들의 시집인 《위대한 비구니》에서도 여성의 깨달음은 확인할 수 있지만 붓다 사후에 이르면 ‘변성성불론’이나 ‘여성성불 불가론’이 지배한다.
또 다른 젠더갈등은 ‘여성 몸 담론’을 들 수 있는데, 경전에는 감각적인 욕망을 경계하기 위해 남녀의 몸은 ‘부정관(不淨觀)’을 통해 수행의 도구로 제시되었다. 하지만 여성의 몸만이 남성을 파멸로 이끄는 ‘유혹자’로서 전승되고, 심지어 여성의 몸은 죄와 벌의 상징이라는 ‘업설(業說)’로 연결되는데, 이는 열등한 여성관을 합리화하면서 남성에게는 관대하고 여성에게는 엄격한 이중적인 성 규범을 강화했다. 그 결과 성별 권력 관계는 남-지배, 여-복종이라는 관계뿐만 아니라 여성을 교환가치로 환산하는 남-남 간의 권력 관계인 동시에, 이를 ‘자기혐오’로서 내면화하는 여-여 관계로 만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붓다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경전에서는 젠더갈등을 어떻게 해소할까? 붓다 재세 시 인도사회는 딸을 땔감 한 묶음과 바꿀 정도로 여성혐오와 성차별이 당연시되던 시대였지만, 성평등과 인간평등이라는 획기적인 사상을 실천한 붓다는 분명 페미니스트였다.
붓다는 다양한 전략으로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개혁했는데, 첫째, 전통적인 사회질서를 유지하기보다는 소통과 공감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붓다는 고타미의 출가 요청을 세 번이나 거절하지만 제자 아난의 설득에 마음을 바꾸는데, 이는 소통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붓다는 재가 여성 비사카의 건의로 새로운 계율을 제정하기도 했는데, 이는 붓다와 여성 제자와의 소통을 통해 교단을 운영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붓다의 소통 방식으로 대화법은 매우 중요했는데, 그는 불가피한 경우는 침묵으로 허락하지만 일상에서는 “때에 맞게, 진실하게, 부드럽게, 유익하게, 자비를 담아서” 말했다. 딸을 낳아 슬퍼하는 왕에게는, 여성의 역할을 지혜의 완성자는 물론 국가 경영자로 그 능력이 제한이 없다고 설득했고, 십대 재가 여성 제자들을 비구 제자들 앞에서 그 특성에 맞게 칭송하며 수행을 격려했다. 또한 비사카가 데리고 온 재가 여성들에게는 그녀들의 처지를 묻고 그에 맞게 설법을 하거나, 남성 재가자와의 대화에서는 그가 참으로 유익한 아내를 두었다며 그 아내를 칭찬하기도 했다.
젠더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붓다의 전략으로 둘째, 인간평등, 성평등을 관점으로 한 지속적인 가르침으로 모든 중생이 스스로 진리를 꿰뚫어 볼 수 있도록 인도하였다. 가르침을 설하는 방법으로 “순서에 맞게, 논리적으로, 자비에 입각해서, 재물을 위하지 않고, 자신과 타인을 해침이 없는 설법”을 중시했다. 당시의 남성 중심 사회 규범이나 관습이 깨달음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성, 인종, 신분 여부에 상관없이 누구든지 ‘와서 보라’며 가르쳤다. 예를 들면 남녀는 우열이나 종속 관계가 아니라 단지 신체적인 차이만 있을 뿐임을 《세계의 기원의 경》으로 설명하고, 신체 특성의 다름을 인정하도록 가르친다. 앙굿따라 니까야의 《여자의 경》에서는 남자의 모습, 목소리, 향기, 맛, 감촉이, 《남자의 경》에서는 여자의 그것들이 서로 유혹적인 존재이며, 《아내의 경》과 《남편의 경》에서는 남편과 아내 모두 순결한 성관계를 강조한다. 섹슈얼리티에 있어서 남성은 성적 욕구가 충동적이고 억제할 수 없고, 여성은 성적 욕구가 없는 무성적인 존재라는 당시 인도사회의 이중적인 성 규범을 부정하며, 남녀 모두 성적 존재임을 가르친다.
젠더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붓다는 셋째, 많은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당시의 성 규범이나 가치관을 전복한다. 오랜 세월 열등, 결핍, 부족, 선하지 못한, 열등한 여성의 몸으로 차별받았지만, 붓다는 바라문 계급을 비롯한 모든 인간이 “여성의 자궁으로부터 태어난 존재”라며 열등하고 부정한 여성의 몸을 생명을 낳는 존귀한 몸으로 전복시킨다. 바라문 계급도 신의 입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여성의 자궁에서 태어났다는 주장은 계급 차별이나 인종차별뿐만 아니라 성차별도 거부함을 보여준다. 여성의 출산 능력을 신비화하기보다는 여성의 출산 능력을 인정하도록 요구하며, 오염되고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던 여성의 생리는 출산을 위한 몸의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설명하면서 당시의 가치 규범 체계를 뒤흔든다.
이처럼 붓다의 젠더갈등 해소 방법은 여성을 배제하거나 기존 사회질서를 강요한 것이 아니라 소통과 가르침, 전복을 통해 변화를 받아들이고 공존과 상생을 중시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불교 최대종단이라고 할 수 있는 조계종단은 비구/출가자 중심의 종단 운영으로 성차별과 신분 차별을 고착화하고, 최근 n번방 사건 등 각종 성범죄에 승려가 연루되어 사회적 지탄을 받기도 한다. 이에 종단은 비구니와 재가불자를 차별하는 종단 법 · 제도를 성평등, 신분평등하게 개선하고, 성평등 교육 확대나 성 인지적 할당제를 적용해서 명실상부한 사부대중의 평등한 수행공동체로 나아가야 한다. 재가불자들 역시 모든 중생을 위하는 보살의 마음으로 젠더폭력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성평등을 위한 여정에서 ‘방관자’가 아니라 ‘동반자’로 역할을 해야 한다.
4. 나가기
신자유주의 무한경쟁 사회에서 공정성이 젠더 불평등과 연계되고, 여성혐오가 현실 사건과 결합하면서 거리에서의 젠더폭력으로 나타나고 있어 젠더갈등은 우리 사회에 그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그런데 가부장적 성 규범과 성 역할 고정관념이 굳건한 사회에서 동등한 기회 제공만으로는 공정성과 평등성을 요구하는 젠더갈등을 해소할 수 없다. 이는 기존의 남성 중심적인 규범에 맞추는 ‘통합’ 전략이 아니라 성평등, 인간평등의 관점에서 새로운 규칙(rule)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 과정은 폭력이 아니라 소통과 공감으로 나아가야 하며, 그 결과 젠더 파트너십(Gender-Partnership)을 형성해야 한다. 심화되는 젠더갈등에도 불구하고, 20대 남성 절반 이상이 여성차별 반대운동을 지지하며 여성 인권에 대해 기성세대보다 진보적으로 변화하는 것이 매우 다행스럽다. 젠더갈등의 해소는 여성은 물론 남성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남성과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하는데, 이는 붓다의 가르침처럼 “때에 맞게, 진실하게, 부드럽게, 유익하게, 자비를 담아서” 해야 한다.
또한 젠더갈등을 약화시키기 위해 정부가 법 · 제도 개선 등을 시행할 때, 각 이슈에 대해 현상적 접근이 아니라 사회운영 방식에 대한 구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남성들은 능력과 노력에 따른 보상의 공정성을 중시하고, 여성들은 경제적 평등과 일상에서의 차별 없는 사회를 중시한다. 남성들은 여성 할당제 · 군복무제 등 주로 공적 영역에서의 역차별에 문제를 제기하고, 여성들은 동등한 기회뿐만 아니라 성 역할 고정관념과 같은 사적 영역에서의 차별에 주목한다. 이러한 갈등들은 근본적인 원인을 분석하고 구조적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예를 들면 군복무제에 대한 남성 불만의 기층 구조를 분석하고, 여성 할당제는 여성이 일과 가정을 양립하지 못하는 구조적인 원인을 찾아 그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특히 20대 남성 세대는 ‘낀 세대’로 불만도 있겠지만, 기성세대나 여성들과의 소통을 가능하게 하고 변화를 추동하는 매우 중요한 세대이므로 이들을 위한 대책이 절실하다.
젠더갈등 해소의 또 다른 전략은, 많은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가부장적 규범이나 가치관을 전복해야 한다. 여남 모두에게 공정성과 평등성이 보장되는 새로운 젠더 규범은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평가와 보상 체계가 요구된다. 단지 자원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것만으로 갈등을 해소하는 전략이 될 수 없는 이유는, 어떤 가치에 사회적으로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며 차별을 지속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남자다움’과 ‘경제활동 참여’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거나 ‘여자다움’이나 ‘가사노동’은 열등하게 보는 성 역할 고정관념에 서 벗어나고,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은 ‘양성 생계부양자’모델로 전환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젠더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인간평등이 인류의 공동선이며 이를 위해 성평등 · 인간평등의 가치관을 교육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예를 들면 부정하고 열등한 여성관, 혹은 깨달음의 주체이자 자비와 지혜의 보살이라는 긍정적인 여성관에 따라 여성에 대한 가치관, 기대, 역할 등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러므로 성평등 교육은 젠더갈등의 인식 전환에 필수적이다. 또한 최근의 성 착취 범죄는 가해자의 저연령화, 잔혹화, 비인간화, 개별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는데, 이는 남성성 헤게모니나 여성의 성적 대상화 등 가부장적 성 규범을 극복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성교육과 다양한 폭력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인권 교육이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모든 교육과정에서 요구된다.
비전통적 여 · 남성성을 새롭게 구축하고 배제와 독식이 아닌 공존과 상생을 모색하는 것은 국가, 종교, 그리고 개인 모두의 과제이다. 불교도 사회 변화에 따라 성평등한 교단으로 변화하지 않는다면 다수 여성들로부터 외면당할 것이다. 특히 젠더갈등은 성, 인종, 종교, 지역 등 모든 종류의 차별과 연계된 복합적인 갈등 구조로써 공·사적 영역에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인드라망의 그물처럼 온 생명 공동체가 하나로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
옥복연 / 종교와젠더연구소 소장. 서울대 문학박사(여성학전공). 서울대 여성연구소 선임연구원과 국민대 강사 역임. 주요 논문으로 〈붓다의 재가여성 십대제자에 대한 불교여성주의적 분석〉 〈불교 경전에 나타난 여성혐오적 교리 해석〉 〈다시 팔경계를 소환하며〉 등이 있고, 공저로 《붓다의 길을 걷는 여성》 《불교와 섹슈얼리티》 《붓다에게는 어머니가 있었다》 등과 역저로 《불교페미니즘: 가부장제 이후의 불교》 등이 있다.
출처: 불교평론 [83호] 2020년 9월 1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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