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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여성만의 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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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6-11-09 12:08 조회3,54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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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 태, ,    여 성 만 의     죄 인 가?


지난 10월 3일,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를 비롯한 전국 60여 개 도시는 검은 옷을 입은 폴란드여성들로 넘쳐났다. 임신부의 목숨이 위태로운 경우를 제외하고는 낙태를 전면 금지하는 법안 에 반대하기 위해 학교와 일터에서, 혹은 집안일을 거부하며 거리로 나온 여성들 때문이었다. 

10만 여 명이 넘는 여성들이 출산을 선택할 권리를 뺏긴 것을 애도하면서 검은 옷을 입고 나와서 ‘검은 시위’라고 불렀는데, 거세게 항의하는 여성들에 놀란 정부는 이 법안을 철회했다.

낙태문제는 미국의 대선에서도 항상 중요한 이슈이다. 얼마 전 미국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클린턴 후보는 “여성 입장에서 낙태는 매우 어려운 일”이라며 정부가 법으로 금지할 것이 아니라 여성들이 직접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고, 트럼프 후보는 낙태를 ‘출산 전 태아 살해’라며 정부가 낙태를 법으로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는 근대화를 거치면서 낙태가 권장되던 시절도 있었다. 1973년「모자보건법」으로 낙태를 금지했지만, 급격한 인구증가 때문에 이는 사문화되었다. 

배꼽수술이나 정관수술은 무료였고, 사람들은 낙태수술을 피임법의 일종으로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2000년대 급격한 저출산 사회로 접어들자, 정부는 출산장려로 인구정책을 전환하면서 낙태수술을 한 의사를 처벌하는 등 낙태 금지법을 강화했다. 

‘낙태반대운동연합’이나 ‘프로라이프 의사회’ 등은 태아의 생명 존중권을, 여성계는 ‘여성의 선택권’을 주장하며 격렬하게 논쟁했지만 결국 낙태는 특별한 경우 외는 불법이 되었다. 그 결과 원치 않는 임신을 중단하고자 하는 여성들 중 일부는 중국 등으로 가서 수술을 하거나, 돌팔이의사들의 불법시술을 받거나, 비싼 비용과 수술 부작용 등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 9월, 보건복지부는 낙태수술을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규정하고 낙태 수술을 한 의사의 처벌을 강화하는 시행규칙 개정안을 내놓았고, 이는 ‘낙태죄’ 폐지 운동을 재점화하였다. 

그리하여 지난 10월 15일, 서울 한복판에서 500여 검은 옷의 여성들이 모여 “여자도 사람이다”, “내 자궁은 내 것이다.”, “우리는 애 낳는 기계가 아니다.” 라고 외치며 ‘검은 시위’, 즉 ‘임신중단 합법화 시위’를 했다. 국가가 강요하는 출산에 여성들은 거세게 반발했고, 결국 복지부는 관련 규정을 재검토하겠다고 한 발 물러섰다. 

임신과 출산은 여성의 몸에서 이루어지고, 여성의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키는 중대한 일이다. 자신의 몸에서 만들어진 새 생명이 누군들 소중하지 않겠는가? 낙태를 결정하는 것이 여성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보면 성적 문란 때문에 낙태를 하는 미혼 여성보다 경제적인 이유나 터울 조절, 혹은 직장 때문에 낙태를 원하는 기혼여성들이 훨씬 많다. 

임신과 출산, 양육의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하면서 생명이 소중하니까 무조건 낳으라고 한다면, 임신중단의 책임은 남녀 모두에게 있는데 ‘남성’은 비가시화되고 여성만 책임져야 한다면, 이는 명백한 여성 차별이다. 

낙태를 하면 ‘살인자’ 혹은 ‘낙태충’이 되고, 낳으면 ‘미혼모’ 혹은 ‘맘충’이 되는 이 사회, 왜 여성만 범법자가 되어 평생 죄책감으로 괴로워해야 하는가?

생물학에서는 정자와 난자가 결합해서 수정란이 되면 생명의 시작으로 본다. 하지만 불교에서는 이 수정란에 식(識)이 결합되어야 생명체인 중생(Satta)이 된다. 그런데 『잡아함경』의 ‘타태경(墮胎經)’이나 『장수멸죄경』에는 낙태한 여성이 지옥에 떨어져 백·천세 동안 한없는 고통을 받는다는 무시무시한 내용들이 담겨 있다. 

반면에 남성은 그 어떤 처벌을 받았다는 언급이 없다. 이 경전에 의하면 낙태의 악업을 피하기 위해 산모의 생명이 위험하더라도 절대로 낙태하면 안되고, 아들선호사상 때문에 딸을 낙태하면 그 악업은 모조리 여성의 몫이며, 태아가 태중에서 심각한 질병에 걸려도 사산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태아의 생명 앞에는 여성의 생명도, 여성의 행복권도, 가족 유지도 중요치 않다는 것이다. 

불자라면 누구나 불살생계를 지켜야 하며, 낙태는 가능하면 피해야 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태아의 생명과 산모의 생명 중에 무엇이 더 소중하다고 말할 수 없고, 모든 생명체는 상호 의존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연기론적 관계이므로 현실적으로 덜 고통스러운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여성이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배아가 아무리 소중한 생명체라고 할지라도 난치병 치료를 위해서 희생을 선택할 수 있고,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가축을 살생하지만 그 고기로 얻은 힘을 더 큰 ‘살림’을 위해 쓸 수도 있다. 이러한 선택이 불살생계를 어겼다고 할 수 없다. 

어떤 이유로건 낙태를 결정하는 것은 여성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평생을 죄책감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여성에게 ‘살인자’라고 낙인찍고 ‘지옥’ 운운하며 저주한다면 그 여성은 물론, 그 가족, 더 나아가 그 여성이 속한 공동체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 

낙태를 경험한 여성이 참회하는 마음으로 더 많은 아이들을 살리는 자선단체 등에서 봉사하거나 후원하며 사랑을 베푼다면, 그 여성에게 더 큰 깨달음과 성장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 이웃과 주변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자애심을 베푼다면, 희생된 태아에게도 그 선업이 미치리라.


옥복연(2016.10.24 불교포커스 시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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