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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잠’ : 그 시선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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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7-02-01 18:36 조회3,64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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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잠’: 그 시선의 정치학


 

      ▲ 이구영 작가의 ‘더러운 잠


이구영 작가의 ‘더러운 잠’이 화제이다. 표현의 자유 대 인간 존엄의 파괴, 풍자 대 여성 모독이라는 논쟁이 연일 뜨겁다.

여성성이나 모성 등을 중시하는 ‘한국여성단체협의회’는 “비열한 여성 인격 모독 행위”라고 반발했고, 성평등을 중시하는 ‘한국여성단체연합’은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성적대상화나 여성혐오로 표현되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보수와 진보여성단체들이 매우 이례적으로 유사한 주장을 하고 있다.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이라는 소위 여성혐오 사건에서도 입을 다물었고, ‘대한민국 출산지도’로 여성들의 공분을 샀던 여성부도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며 논평을 냈다.

각 정당에 속한 여성정치인들 또한 보기 드물게 결론은 일치한다. 여성혐오라며 작품 전시 철회와 사과를 요구하거나 국회 윤리위에 제소할 것을 주장한다.

특히 새누리당 전국여성의원협의회는 이 전시회를 후원한 국회의원 표창원을 비난하며 “‘더러운 잠’에 표창원 네 마누라도 벗겨주마”라는 성희롱 문구가 담긴 손피켓을 들고 기자회견도 했다. 이들의 저급한 수준에 놀라울 따름이지만 표 의원은 사과했고, 민주당은 그를 당 윤리심판원에 회부하기로 했다.

이구영 작가는 정권이 주도한 예술인 블랙리스트에 항의한 전시로, 어느 시대이건 대통령은 패러디의 대상이 되었다며, 표현의 자유와 패러디가 여성비하로 확대 해석되고 있음을 항변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술의 자유, 풍자와 해학의 자유를 주장하며 작가를 옹호한다. 지난 2004년 미국 워싱턴의 시립박물관에도 이 그림과 유사한 그림이 전시되었다. 당시 대통령이던 조지 부시가 누드로 누워 있고, 그 옆에는 부통령이 왕관을 들고 서 있다. 하지만 이 그림은 하루 만에 내려졌다.

남성 혐오 논란이나 정치적 논란이 문제가 아니라 시립박물관이라는 장소가 아동들도 이용하는 장소였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처럼 애국보수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난입해서 그림을 내동댕이치거나 소란을 피우는 일은 없었다.

또한 작년 미국 대선 기간에 여성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은 수많은 패러디의 주인공이었다. 성매매여성으로 묘사되기도 했고 벌거벗기도 했지만, 이 패러디들을 그 누구도 인간 존엄의 파괴나 여성 모독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패러디에 그 어떤 권력이나 차별이 개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럽미술사에서 여성의 누드는 매우 다양한데, 대표적인 작품 가운데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는 아름다운 여성이 비스듬히 누워서 평온하게 잠들어 있다. 이 여성은 ‘보여지는 여성’으로 당시 남성의 시선으로 소비되던 누드화의 전형을 보여준다.

하지만 티치아노는 신화나 성경 등에서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육체를 가진, 다소곳한 여성의 누드에 반기를 들었다. 그의 작품 ‘우르비노의 비너스’는 지극히 현실적인 몸매를 가진 성매매여성이, 그 누구의 시선도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남성에게 보여지는, 시선의 대상이 아니라 시선의 주체가 된 이 여성은 남성의 성적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시선에 불편을 느낀 당시 남성 비평가들은 “음란하다” 혹은 “외설적이다”라고 혹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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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네의 '올랭피아'(왼쪽)와 미국 대통령 부시를 남자 올랭피아로 패러디한 작품.


마네가 그린 ‘올랭피아’는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와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를 차용한 작품으로, 작품 속 그녀는 성매매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도도한 눈빛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남성의 시선의 대상이 아니라, 그 남성을 쳐다보는 ‘시선의 전복’이다. 가장 억압받는 계급이라고 할 수 있는 성매매여성이 권력 전복과 성평등의 주체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더러운 잠'은 마네가 그린 ‘올랭피아’를 패러디한 작품으로, 국정을 최순실에게 맡기고 프로포폴로 잠에 취한 권력자의 나태함을 비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현실 속에서 여성의 몸은 종종 열등하고 부정하며 음탕하게 재현되기도 하고, ‘여성’정치가의 무능력은 ‘여성’의 무능력으로 치환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왜냐면 여성의 몸 위에서 성별 권력이 새겨지기도 하고 사회적 통제가 직접 새겨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더러운 잠'에서 박근혜는 정치적 무능과 부패는 그 자체로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성적으로 대상화되는 여체로 환원되어 부정적이고 열등하게 재현된다. 여성‘대통령’이 아니라 ‘여성’대통령이 비난받는 것이다.

경전에서도 여성의 몸은 유혹자 혹은 악마로 등장하곤 하는데, 예를 들면 붓다는 “나는 옛날 깨달음을 얻기 이전에 갈애와 혐오와 애욕의 세 ‘마녀’를 보고서도 그녀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욕망이 일어나지 않았다.”라고 했다.

이때 세 마녀는 극복해야 할 장애인 갈애․ 혐오․ 애욕의 상징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라는 ‘기표’는 '여성=유혹자, 깨달음을 방해하는 자, 악마'라는 ‘기의’를 가진 채 불교에서 유통되어 여성혐오로 발전했다. 몸뿐만 아니라 죄의 개념도 젠더화 된 것이다.

‘올랭피아’를 박근혜로 묘사한 ‘더러운 잠'은 최고 권력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정치적 해석으로 구속하는 것이 아니다.

메시지가 아무리 정당할지라도 여성성을 희화하는 방식은 젠더위계에 의한 폭력이자 차별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권력에 대한 비판과 견제라는 의도가 아무리 정당해도 그 방법에 있어서는 성평등한 관점을 유지해야 한다.


옥복연(불교포커스, 2017.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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