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답게(Dhammikā): 여성이 안전한 나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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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7-09-07 14:45 조회3,434회 댓글0건본문
법답게(Dhammikā): 여성이 안전한 나라로
‘여성이 행복한 도시’ ‘여성이 행복한 화장실’ 요즘 지하철이나 화장실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구들이다. 여성의 사회 활동이 증가하면서 우리 사회가 무척이나 여성을 배려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전체 경제활동 가능 여성의 절반이 ‘일하는 여성’이며, 법조인과 의사 4명 중 1명이, 공무원 10명 중 4.5명이 여성이니 그럴 만도 하겠다.
하지만 현실은 여성에게 가혹하다. 일하는 여성들 가운데 41%가 비정규직이고, 여성 임금은 남성 임금의 평균 3분의 2에도 못 미친다. 나이든 여성들은 ‘할머니육아’로 혹사당하니, 젊으나 늙으나 여성은 2등 시민이라는 여성들의 자조 섞인 불만이 나온다.
그렇다면 여성들은 자신의 삶이 안전하다고 느낄까?
2017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한국여성 절반이 우리 사회가 안전하지 않다고 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강력 범죄 가운데 피해자 89%가 여성이며, 이는 2000년과 비교하면 약 4.5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긴급전화 상담 내용 가운데 62%가 가정폭력 상담인 것을 보면, 부인 앞에서 눈을 부릅뜨기만 해도 ‘간 큰 남자’라는 우스갯소리는 이러한 통계수치 앞에서 공허해진다.
최근 혼밥, 혼술, 혼숙 등 혼자 사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지만, 여성 독신 가구 중에 우리 사회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13%에 불과했고, 그 중 20대 젊은 여성들은 63%가 불안하다고 답을 했다.
어린 여아에서부터 70대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성폭력 공포에 노출되어 있고, 혼자 사는 여자는 배달 음식을 시킬 때나 우편물 받을 때 현관에 남성 신발을 둔단다. 이처럼 ‘여자’, 특히 ‘젊은 여자’는 우리사회에서 혼자 사는 것이 결코 안전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사적 관계에서 여성들은 안전한가?
며칠 전 데이트폭력 현장이 매스컴을 통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는데, 더욱 놀란 것은 이를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데이트폭력을 친밀한 연인 사이에서의 사랑싸움으로 여기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도 하며, 피해 여성들은 수치심이나 보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신고조차 꺼리기도 한다.
하지만 여자친구가 자기 말을 듣지 않는다고 길 한복판에서 폭행하고서는 트럭으로 돌진하는 20대 남성이 있는가 하면, 헤어지자는 말에 여자친구를 때려 숨지게 한 남성도 있다. 지난 5년간 데이트폭력으로 경찰 신고 건수가 3만 여 건에 달하며, 그 가운데 233명의 여성이 목숨을 잃었다.
한 해에 평균 46명의 여성이 남자친구에게 죽음을 당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년 한 해 약 8,300여 명이 데이트폭력으로 형사 입건되었지만 고작 449명만이 구속되었다. 우리 사회가 데이트폭력에 여전히 관대함을 보여준다.
인터넷상에서 여성은 안전한가?
얼마 전에 여성을 비하하는 웹툰 작가를 ‘한남충(한국 남자는 벌레)’으로 불렀다고 한 여성이 모욕죄로 30만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온라인에서 오랫동안 회자되던 ‘맘충’, ‘김치녀’, ‘메갈X’ 등은 고소조차 받아주지 않으면서 남성을 벌레에 비유했다고 처벌하는 것은 명백한 성차별이라며, 여성들은 사법부를 비난했다. 결론적으로 보면 대한민국의 여성, 특히 젊은 여성은 공ㆍ사적 공간에서 안전하지도, 행복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페미니스트 정권을 표방한 문재인정부에서 여성은 좀 더 안전하게 살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 또한 만만치 않아 보이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여성부가 소위 정부 부처 내에서도 가장 ‘힘없는 부서’임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에 제출할 여성부의 내년 예산안은 예산 규모 1위인 교육부 예산의 1%에 불과하며, 전체 예산의 약 0.18%에 불과하다. 현실의 젠더 폭력 실태를 생각하면, 이 눈곱만한 예산으로 여성 안전을 위한 대책 마련은 턱없이 부족하다.
초기경전에는 뛰어난 재가여성은 자기 혼자만 깨닫는 것이 아니라 많은 대중들과 함께 깨닫는 경우가 종종 등장한다. 예를 들면 비사카는 많은 여성들을 붓다께 데려가서 한꺼번에 수다원과에 오르게 만들었고, 여종 뿐나가 거친 빵을 붓다께 보시한 덕택에 그녀를 포함한 수많은 라자가하 시민들도 깨달음의 길로 들어섰다. 깟띠야니는 도둑들을 출가시켜 훗날 아라한이 되게 했고, 마띠까의 어머니는 육십 명 비구들을 아라한으로 만들었다.
『맛지마니까야』의 ‘밧차곳따의 큰 경’에서 붓다는
“밧차여, 나의 제자로서 흰 옷을 입고 청정한 삶을 살며,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결박을 끊고, 홀연히 태어나, 거기서 열반에 들어, 이 세상으로 돌아오지 않는 재가의 여자신도가 백 명이 아니고, 이백 명이 아니고, 삼백 명이 아니고, 사백 명이 아니고, 오백 명이 아니고, 그보다 훨씬 많습니다.” 라고 말씀하신다.
당시 붓다를 따르는 수많은 재가여성 제자들이 있었으며, 그 여성들 가운데는 붓다의 가르침대로 여법하게(dhammikā) 수행하고 그 가르침을 실천한 결과 수많은 깨달은 여성들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담마를 따르는 진리의 길에서 남녀차별이 무의미함을 붓다의 이 가르침으로 보여준다. 그러므로 오늘을 살아가는 불자들은 여법하게 신체적ㆍ정신적ㆍ언어적 성폭력을 스스로 멀리하고, 또 타인의 성차별적인 언행을 방관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올바로 고쳐주어야 한다. 이것이 담마를 배운 대로 실천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릇된 행위를 할지라도 우리는 바른 행위를 하리라”고 다짐하며, ‘여성이 행복한 사회’, ‘여성이 안전한 사회’가 되기를 함께 노력하는 것이 진정한 불자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출처: 불교포커스(2017.09.02, "여시아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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