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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bhaya): 두려움을 보는 비구가 총무원장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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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7-10-16 15:27 조회3,73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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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려 움 (b h a y a) : 두 려 움 을  보 는  비 구 가  총 무 원 장 이  되 기 를.

불과 4년 전 까지만 해도 여자는 자전거도 탈 수 없었던, 아랍에서도 가장 보수적이라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국왕의 칙령으로 여성 운전이 허용되었다. 그동안 여성 억압의 상징이었던 여성운전 불가 방침에 사우디 여성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저항해왔고, 그 결과 여성들은 투옥되거나 추방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 여성들은 남편이나 남성운전사의 도움 없이도 어디든 운전할 수 있게 되었으니, 무엇보다도 국왕의 결심은 사우디의 모든 여성들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킨 가장 큰 요인임은 부정할 수 없다.

이처럼 남성중심사회에서 지도자 한사람의 가치관이나 태도는 그 사회에 속한 여성들의 삶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한국불교 최대 종단이라는 조계종단에서 종무행정의 최고 책임자인 총무원장을 뽑는 선거가 눈앞에 다가왔다. 지도자 한 사람의 가치관이 여성불자나 비구니 승가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기대도 크고 바램도 많아야겠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다.

지난 5월부터 직선제를 염원하는 일인 시위가 시작되었고, 종단 적폐를 청산하고자 하는 보신각 촛불법회와 범불교도대회로 확대되었다. 직선제가 요원하자 명진스님을 비롯한 비구스님들의 천막 릴레이 단식농성이 이어졌고, ‘비구니들도 참회하고 발원합니다.’라는 현수막을 걸고 비구니스님 두 분이 단식 대열에 동참했다.

그러나 승려들의 잘못을 조사하는 종단의 호법부는 단식중인 비구니스님들께 집단으로 몰려와서 큰소리로 이름을 부르면서, 비구스님들에게는 등기 우편으로 보내던 통지서를 직접 받으라고 윽박질렀다.

공권력으로 포장하여 비구니스님들을 협박한 이러한 행위에 여성불자들이 항의하자, 호법부 스님들과 종무원들은 여성불자들에게 폭언을 퍼붓고 폭력을 가했다. 단식중인 비구니스님들의 텐트를 밀어붙이고 이를 막아선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결국 경찰 수십 명이 출동해서야 공포스러운 이 상황은 종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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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5일 단식 중인 비구니 스님에 대한 호법부의 집단행동을 규탄하는 시위에서 한 호법부 스님이 불자들의 피켓을 찢고 사람들을 밀치는 일이 발생했다. 사진은 당시 불자들이 폭력 행위에 항의를 표하며 총무원 청사 앞에 앉아있는 모습.


단식중인 비구니스님들을 향해 이처럼 거친 폭언과 폭력이 행사될 수 있는 이유는, 조계종단이 비구중심의 종단이기 때문이다. 비구니스님이 비구에 비해 종단의 법과 제도 등에서 차별받고 억압받고 있다.

첫째, 조계종단의 종헌과 종법에는 종정을 비롯하여 원로회의, 총무원장, 교육원장, 포교원장, 호계원장, 교구본사주지 등 지도적인 위치는 “비구”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능력 있는 비구니라고 할지라도 종단의 지도자가 될 수 없다.

심지어 비구니는 중앙종회의원 총 81명 가운데 10명에 불과하며, 사찰 주지만 산중총회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사찰 운영과 관련된 정책에서도 소외되어 있다.

둘째, 조계종단에서 비구니스님들은 반드시 비구스님들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팔경계”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팔경계”의 일부 조항에는 비구니는 반드시 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하고, 비구의 허물을 말하거나 죄를 드러낼 수 없으며, 백 살이 된 비구니도 새로 구족계를 받은 비구에게 먼저 절을 해야 한다.

즉 비구니가 비구에게 잘못을 지적하거나 저항하는 것은 계율을 어기는 엄청난 잘못이 되는 것이다.

셋째, 현재 조계종단은 비구와 비구니의 숫자가 비슷하지만, 극소수 비구니를 제외하고는 비구들에 의해서 종단이 운영되고 있다. 헌법과 유사한 종헌에는 비구· 비구니·남· 녀 불교신자 등 사부대중에 의한 종단운영을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소수 비구에 의해 종단은 운영되고 있다.

그러므로 똑같은 교육과 수행, 법문과 포교 활동을 하는 비구니의 뜻이 종단 정책에 반영되는 것은 쉽지 않고, 특히 총무원장 선거는 321명에 의한 간선제이므로 사부대중의 뜻이 반영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총무원장 직선제로 종단 운영 참여를 확대하자는 요구들이 촛불법회에서 쏟아져 나온 것이다.

현 총무원장의 재선 공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81%가 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직선제는 관철되지 못했다. 그리고 소수 비구스님들에 의해 새로운 총무원장이 선출되고, 소수 비구스님들에 의해 종단이 운영될 것이다. 출가자의 수행지침서라 할 수 있는 『청정도론』에 의하면, 비구(bhikkhu)는 “윤회에서 두려움을 보는 자”를 말한다.

지금 하는 행위는 반드시 업을 유발하고, 그 업이 조건을 만나게 되면 다시 존재로 윤회하게 된다. 그러므로 윤회의 두려움은 행위의 두려움을 말하며, 비구라면 마땅히 사소한 잘못에서도 두려움을 보고 학습계율을 받아 배워야 한다.

종단이 소수 비구에 의해 운영된다면, 이 세상은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 것일까? 『앙굿다라니까야』의 「세상의 법 경」에 의하면 붓다는 이득과 손실, 명성과 악명, 칭송과 비난, 즐거움과 괴로움, 이 여덟 가지에 의해서 세상이 움직인다고 가르친다. 즉, 배우지 못한 범부는 이득, 명성, 칭송, 즐거움에 마음이 사로잡히고, 손실, 악명, 비난, 괴로움은 적대시하므로 고통, 절망,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이득, 명성, 칭송, 즐거움이 생기면 그것이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기 마련이라는 것을 꿰뚫어 알기 때문에 이러한 것들에 마음이 사로잡히지 않고, 그 결과 해탈의 길로 갈 수 있다.

현재 종단은 비구니차별, 여성차별은 물론, 금권 선거나 은처, 부정부패와 승려 복지 등 청산해야 할 적폐들이 쌓여 있다. 새로 뽑힐 비구 총무원장에게 이득, 명성, 칭송, 즐거움을 멀리할 것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단 한 가지, 자신의 행위에서 윤회의 두려움을 보는 비구가 총무원장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옥복연(불교포커스 '여시아사"중에서, 2017.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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