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dosa): ‘정의로운 분노’가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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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8-04-04 12:37 조회3,748회 댓글0건본문
쓰나미처럼 몰려오던 미투 운동에 ‘펜스룰(남성들의 과도한 여성 경계)’이니 ‘유투(You too, 남성들끼리 너도 당했냐 나도 당했다는 의미)’가 등장하고 있다. 서 검사의 성추행 폭로사건은 두 달이 지나도 진전이 없고, 안희정 씨 구속영장은 기각되었고, 정봉주 씨는 피해자에 대한 사과도 없이 정계 은퇴를 발표했다.
인터넷에서는 외모가 뛰어난 유명한 걸그룹 가수가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을 읽었다는 이유로 일부 남성 팬들이 그녀의 사진이 태우는 등 논란이 한창 진행 중이다. 이 책은 30대 여성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성차별이 작동되는 방식을 보여주며, 15주 연속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화제작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었다는 것은 페미니스트임을 증명하는 거라며, 예쁘고 순진하게만 보였던 그녀에게 배신감과 분노를 느꼈다는 것이 이 소동을 일으킨 남성 팬들의 주장이다.
또 다른 한 편에서는 남성 역차별을 주장하며 ‘90년생 김지훈’이라는 소설의 인터넷 펀딩을 시도하다가 중단되었다. 이를 주도했던 남성들은 여성들이 갖은 특혜를 누리면서도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면서 여성들에게 반발하는 반면, 이 남성들을 보는 여성들은 여태껏 누려왔던 가부장적 질서가 해체될 수 있다는 현실을 위협적으로 받아들이는 남성들의 반격으로 이를 해석한다. ‘
미투 운동’(#Me Too)은 성별 대립이 목적이 아니라, 상대 성(性)을 대상화하거나 상품화하면서 성적 모욕감을 주는 비인격적인 행위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그런데 작금의 현실은 성적 혐오와 비난으로 견고한 성별 전선이 구축된 것 같다.
수잔 팔루디는 ‘백래시’에서 사회나 정치적 변화로 인해 자신의 중요도나 영향력, 그리고 권력이 줄어든다고 느끼는 불특정 다수가, 강한 정서적 반응과 함께 변화에 반발하는 현상을 ‘백래시(Backlash, 반격)’로 정의하고 있다.
백래시가 주로 성적, 인종적, 종교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의 기제로 작용한다고 그녀는 분석하는데, 다수의 성폭력 피해자가 여성 불자인 불교계에서 팔루디의 주장이 일면 타당한 것 같다.
왜냐면 불자들은 성폭력 피해자를 지지하기도 하지만, 외부로 알려지면 창피하니까 교단을 위해서 덮어 두자거나, 전생에 나쁜 업을 저질러서 피해자가 과보를 받는다거나, 불자로서 가해자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거나, 여자는 유혹자라는 등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상황을 은폐하려는 주장들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여성운동이 발전하면서 성평등을 위한 일련의 진보적인 움직임들이 나타나면, 이에 대한 반동으로 지배체제 내 남성들이 여성을 의도적으로 억압하려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과거 ‘호주제 폐지운동’ 등에서도 경험했다.
이 과정에서 여성의 역량에 따라 성평등이 일보 진전할 수도 있지만, 남성들이 이를 위협으로 인식하게 되면 여성을 억압하기 때문에 성평등은 후퇴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그리하여 성평등의 발전은 진전 혹은 그 반동으로 인한 퇴보를 반복하면서 나타나게 된다.
그렇다면 불교계 미투 운동과 백래시에 대해 불자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불교는 모든 생명은-남녀를 포함하여- 인드라망의 그물코처럼 연결된 평등하고 존귀한 상호 연기적 존재로 본다. 그러기에 붓다의 가르침 안에서 성차별은 무의미하다.
또한 불교는 미래가 아니라 ‘지금 여기’를 중시하고, ‘고(苦)’를 강조하기보다는 행복을 추구하며, 선업(善業)을 쌓기 위해 노력한다. ‘선업’이란 나도 좋고 남도 좋고 나와 남이 좋은 행위를 말하고, 악업(惡業)은 나도 나쁘고 남도 나쁘고 나와 남도 나쁜 행위를 말한다.
그러므로 만약 어떤 재가여성이 성폭력 피해를 당한다면, 그녀는 공동체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를 받으며 자신이 당한 피해를 말할 수 있어야 하고, 가해자에게 사과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하고, 또 성폭력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붓다는 ‘숫타니파타’의 ‘정의로운 삶의 경’에서 무엇이 공동체를 위한 정의이며,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즉,
“마치 똥구덩이가 세월이 지나면 똥으로 가득 차듯,
부정한 자는 참으로 깨끗해지기 어렵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은 자는, 실제로는 세속에 묶여,
악을 원하고 악한 의도를 갖고 있는 자로서,
수행의 초원에서 악을 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라.
그대들은 화합해서 그러한 사람을 물리치고,
쌀겨처럼 그를 키질하여 쓰레기처럼 날려 버려라.
그리하여 수행자가 아니면서 수행자인 체하는
악한 욕망에 사로 잡혀 있고, 수행의 초원에서 악을 행하는 자들,
그 쌀겨들을 날려 버려라.”
수행자가 아니면서 수행자인 척 하는 자, 악한 의도를 가지고 악한 욕망에 사로잡혀 악을 행하는 자들에 대해서, 그 인간이 아니라 그가 저지른 잘못된 행위에 대해 붓다는 ‘정의로운 분노’를 허용한다.
세속에 묶여 악을 행하는 자의 행위가 깨끗해지기 어렵기 때문에 쌀겨처럼 키질을 해서 쓰레기처럼 날려버리듯이, 성범죄 가해자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화합해서 물리쳐야 한다.
그리고 진정한 불자라면 출ㆍ재가를 막론하고 성폭력과 같은 잘못된 행위에 대해 ‘정의로운 분노’를 해야 하며, 계율이 성성하게 살아있고 종법이 분명하게 적용됨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옥복연(종교와젠더연구소장)
출처: 불교포커스 '여시아사' 중에서 2018.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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