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bhariyā): 영부인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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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8-05-09 12:10 조회3,687회 댓글0건본문
아내(bhariyā): 영부인의 정치학
4.27 남북정상회담은 참으로 많은 이야기와 웃음을 안겨 주었다. 김정은의 소탈함이나 도보다리에서의 두 정상의 환담 그리고 나비가 철조망을 날아다니던 대형 스크린의 화면 등은 오랫동안 감동을 주었다.
그 와중에도 단연 눈길을 끄는 주제가 ‘사상 최초의 남북정상 영부인들의 만남’이다. 두 사람이 만날 수 있을 것인가부터 시작해서, 만남 이후에는 두 여성의 전공이나 옷 색깔 등 공통분모 찾기에 바쁘더니, 이어서는 귓속말을 주고받았다는 등 얼마나 다정 했는가 등의 뉴스가 시시각각 전달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역사에 길이 남을 사건에, 영부인들이 정치 뉴스의 전면에 등장해서 그녀들의 손짓과 표정들이 곧바로 뉴스가 되는 현실이 참으로 흥미롭다.
4월 27일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숙 여사와 북한의 리설주 여사가 만났다. 사진=청와대. |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남성중심 사회였기 때문에, 여성은 주로 집안에서 가사와 자녀 양육을 전담하므로 ‘안사람’ 혹은 ‘집사람’으로 불렸고, 남성은 사회 활동을 하기 때문에 ‘바깥양반’ 혹은 ‘주인양반’으로 불렸다. 부인은 ‘사람’인데 남편은 ‘양반’인 것처럼, 남성은 호명에서도 존칭을 붙였다.
어르신세대에서는 여전히 이 단어가 통용되고 있으니, 남성의 영역인 정치영역에서 아내, 특히 지도자 부인이 공식적으로 등장한 것은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물론 이는 여성의 지위가 상승했음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붓다 재세 시 인도사회에서 아내의 지위는 어떠했으며, 붓다는 아내의 역할에 대해 어떻게 가르쳤을까? 당시 인도에서 여성의 지위는 매우 열악했고 아버지나 집안사람이 선택한 남성과만 결혼을 해야 했다.
어릴 때는 아버지, 결혼하면 남편, 남편 사후에는 아들에게 의지해야 하고, 남편이 아무리 잘못해도 인내하고 순종해야만 했다. 남편 사후에는 그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도록 순장하는 사티 전통이 오랫동안 이어졌으니, 아내의 생사여탈권도 남편에게 있었다.
강력한 가부장사회에는 다양한 방식의 아내가 존재했는데, 불교경전인 ‘근본유부율’에서는 아내를 재물로 사거나, 욕망으로 데려오거나, 의복이나 물건 등을 주고 데려오거나, 생계가 어려워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거나, 여성 노예나 하녀, 전쟁 포로여성을 아내로 삼았다는 내용도 전해져 온다.
심지어는 기녀에게도 임시 아내라는 명칭을 썼을 정도이니 당시 여성의 지위가 얼마나 취약한가를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한 아내들 사이에는 엄격한 위계가 있었으며, 왕족이나 귀족 등 계급이 높은 집안에서는 아내나 딸들의 성을 엄격하게 규제했다. 왜냐면 이 아내는 자신의 가문을 잇는 자녀를 생산할 것이며, 이 딸들은 재산처럼 팔거나 높은 지위를 거래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이 여성들은 ‘존중받을 여성’으로 분류되어 국왕의 법과 전통으로 보호받았지만, 하녀나 기녀, 노예여성 등은 ‘존중받지 못할 여성’으로 분류되어 남성에 의해 성노예로 전락하거나 돈으로 팔리기도 했다. 남성들은 이 두 부류의 여성들을 구분하기 위하여 베일 씌우기를 발명했는데, ‘존경받는 여성’에게는 그 표식으로 베일을 씌웠다. 만약 ‘존중받지 못할 여성’이 베일을 쓰면 엄격하게 처벌할 정도로 법과 제도, 전통과 관습으로 여성들을 위계화 하였다.
하지만 일부 여성들은 존중받을 여성임에도 베일을 쓰는 것을 스스로 거부하기도 했는데, 불교 경전에서도 이러한 사례는 등장한다. 싯달타의 부인 야소다라가 결혼 직후 궁전으로 들어오면서 베일을 쓰기를 거부했는데,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얼굴을 드러낸 그녀를 사람들은 비난하기는커녕 당당하고 위엄 있음에 칭송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붓다가 칭송한 뛰어난 10대 재가 여성 제자들 가운데 ‘보시 제일’인 위사카는 교단의 어머니로 존경받았다. 어릴 때부터 어질고 현명하기로 소문이 자자했던 그녀였기에 마을 사람들이 결혼하는 그녀를 따라 이사를 왔을 정도로 뛰어난 여성이었다.
그런 그녀도 결혼해서 시댁으로 들어갈 때 베일을 쓰지 않고 얼굴을 드러내고 들어갔다고 한다. 이처럼 베일을 거부하고 당당한 삶을 살고자 했던 두 여성들은 불교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붓다는 아내의 의무와 남편의 의무에 대해서 어떻게 가르쳤을까? 재가자의 삶에 대한 가르침이 담긴 ‘디가니까야’의 <씽갈라에 대한 훈계의 경>에서 붓다는 아내와 남편의 의무를 가르치고 있다. 주석서에 의하면 남편은 ‘마누라여’, ‘대비여’라며 아내를 존중해서 부르고, 하인이나 노예처럼 경멸하고 모멸하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하며, 바람을 피우지 않고, 가정의 권한을 넘겨주고, 장신구를 사줘야 한다고 가르친다.
아내도 의무가 있는데, 맡겨진 일을 잘 처리하고, 하인이나 아랫사람들을 잘 챙기고, 바람을 피우지 않고, 남편이 벌어온 재산을 잘 보호하고, 가사일 등에서 능숙하고 게으름을 피우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처럼 붓다는 아내가 가정경제의 주체였으며, 아내와 남편은 서로 배우자에게 충실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붓다는 남편과 아내가 상대를 존경하고 계를 잘 지키는 부부를 ‘앙굿따라니까야’의 <결혼생활의 경>에서 ‘신과 여신이 만난 결혼’으로 부른다.
2600여 년 전, 아내는 남편의 재산으로 여겨졌던 인도사회에서, 평등한 부부만이 현세는 물론 다음 생에서도 행복할 것이라고 가르쳤던 붓다. 그는 페미니스트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옥복연(종교와젠더연구소)
불교포커스 '여시아사' 중에서 2018.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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