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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함(akusala): 사랑이라는 이름의 아내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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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8-11-07 12:02 조회3,27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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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함(akusalā)’: 사랑이라는 이름의 아내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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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유리창. 사진=픽사베이.

“아주 친밀한 폭력”, “사랑이라는 이름의 폭력” 공적인 장소가 아닌, 지극히 사적인 공간인 가정에서 일어나는 아내폭력을 일컫는 말들이다. 

한 때는 우리 사회도 가장인 남편의 아내폭력이 훈육이며 아내를 원인제공자라 부르고, 경찰에 신고해도 부부문제라며 외면하고 법원은 여태까지 살았는데 둘이 화해하고 살라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최근 우리 사회는 여성들로부터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남성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등 여성의 지위가 높아지고 있지만, 얼마 전에 있었던 이혼한 전부인 살인사건은 오늘날 이 땅에서 살아가는 여성의 처참한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이혼 후 전화번호를 바꾸고 개명하고 이사해도 안 되고, 결국 한 쪽이 죽어야 해결되는 것이 가정폭력이라더니, 이번 사건이 딱 그랬다. 25년 동안 끔찍한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이혼 후에도 협박을 당했지만 보복이 두려워 숨어살다시피 했고, 법원이 ‘접근금지명령’을 내리기도 했지만 결국 살해를 결심하고 변장까지 하고 나타난 전남편 앞에서는 더 이상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이혼 과정에서 쌓인 감정 문제 등으로” 전 아내를 죽였다니, ‘아내’와 ‘폭력’도 어울리지 않는데 ‘죽음’까지 연결되는 아내폭력은 더 이상 부부싸움이나 집안일이 아니다. 이젠 국가가 강력하게 개입해서 아내들을 위한 안전망을 마련해야 한다.

가정폭력의 심각성은 수치로도 드러난다. 작년 한해 가정폭력으로 검거된 인원은 3만8천여 건에 이르고 피해자의 74.6%가 여성이며, 애인이나 남편에 의한 여성 살해사건은 28.7%에 달한다. 

사랑을 빙자한 친밀한 관계이지만, 재범율은 4년간 1.8배 증가했다. 그런데 아내폭력은 우리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에서도 살해당한 여성의 42%는 가해자가 과거 혹은 현재의 파트너남성이었고, 브라질이나 태국 등은 절반에 달한다고 한다. 임신 중 남편의 구타가 기형과 유아 사망의 주원인이며, 5년간 '아내 폭력'으로 사망한 여성 숫자는 베트남 전쟁에서 사망한 미군 숫자와 비슷하다고 한다.

일본도 기혼여성의 5% 정도는 아내폭력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니, 가히 아내폭력은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는다. 

아내폭력에는 의처증, 경제 통제, 협박, 외도, 폭언 등 언어적, 신체적, 심리적, 경제적, 성적 폭력 등을 동반하는데, 그렇다면 우리사회에서 폭력 남편은 어떤 처벌을 받을까? 

놀랍게도 이들의 구속율은 0.8%에 불과하고 기소율은 26.7%인 반면, 가해자 처벌이 아닌 가해자 교정을 위한 ‘보호처분’ 비율은 34%에 이른다. 

처벌이 이토록 약하니 “과태료를 물고 그 여자를 죽이겠다.”며 남편들은 큰소리칠 수 있다. 오죽하면 이번 사건의 딸들이 아빠를 사형선고를 내려달라고 청원했을까...

가부장사회에서 아내폭력은 남편이 아내를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며, 여성은 본성 자체가 무식하고 게으르기 때문에 때려서라도 버릇을 가르쳐야 한다는 남성우위의 성적 권력 관계에서부터 출발한다. 

똑같은 사람인데 어쩌다가 이렇게 차별적으로 생각하게 되었을까? 

그 시작은 아주 오래 전인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는 여성이 열등하고 불완전한 타자, 즉 제 2등 인간으로 간주했다. 

예를 들면 그리스 최고의 사상가, 서양철학의 대표, 인류의 위대한 스승 중 한 사람으로 오늘날도 칭송받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여성이 존재론적으로 그리고 생물학적으로 미성숙하고 열등한 존재라고 규정했다. 

그는 새 생명의 잉태 과정에서 완벽한 생명체를 만드는 것은 남성이며 여성은 단지 그 생명체를 담아주는 그릇 역할만 할 뿐이라고 했다. 

정상적인 인간은 남자인데 남자가 결함이 있어서 잘못 태어나 여자가 되었다고 했으니, 여자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결함 있는 인간’ 혹은 ‘잘못된 남자’였다.


“여성과 남성의 관계에 있어서 불평등은 영원한 것”이며, “남자의 용기는 명령하는 것에서, 여자의 용기는 순종하는 것에서 나타난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중세 가장 대표적인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그대로 이어져 여성혐오사상으로 계승되었다. 

그리고 오늘날 인터넷에서 ‘삼일한’(삼 일에 한번은 여자를 때려서 버릇을 고쳐야 한다)이라는 말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인식의 전환이 쉬운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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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상. 사진=픽사베이.


그렇다면 아리스토텔레스보다 200여 년 앞서 인도에서 태어났던 석가모니는 여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을까? 이들 사이의 인식 차는 하늘과 땅만큼 엄청나다. 

예를 들면 붓다는 남성 혼자 생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자, 난자, 그리고 태어나야 할 존재, 이 세 가지가 조화를 이루어 생명이 만들어지며, 남성의 몸이 우등하고 여성의 몸이 열등한 것이 아니라 먹거리로 인해 남녀 몸의 특징들이 달리 나타난 것뿐이라고 한다. 

또한 『앙굿다라니까야』의 ‘여자의 경’에는 여자의 감촉처럼 남자를 사로잡는 감촉은 없다고 하고, ‘남자의 경’에서는 남자의 감촉처럼 여자를 사로잡는 감촉은 없다고 가르친다. 여성만이 유혹자가 아니라 남녀 모두 상대 성에게는 유혹자라는 것이다.

또한 붓다는 ‘결혼생활의 경’에서 가치 있는 남자와 여자가 있고 보잘것없는 남자와 여자가 있는데, 이들의 조합으로 결혼생활은 네 종류가 있다고 한다. 

남자라도 보잘것없는 남자가 있고, 여자라도 가치 있는 여자가 있는데 그 기준이 계를 지키느냐에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디가니까야』의 ‘싱갈라까에 대한 훈계의 경’에 아내는 물론 남편의 의무도 있다. 

남편은 아내를 존중하고, 노예나 하인을 때리고 학대하며 말하는 것처럼 경멸하고 모멸하여 말하지 않고, 다른 여성을 사귀어 신의를 저버리지 않고, 권한을 넘겨주고, 장신구를 사주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언어적으로 폭력을 절대 금지하고 있다.

서구에서 아내는 남편으로부터 훈육을 받아야 한다고 가르칠 때, 그보다 200여 년 전에 태어났던 붓다는 남편의 첫 번째 의무가 아내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남편은 명령하고 아내는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남편과 아내는 소중한 도반임을 강조했다. 그야말로 바르고 완벽하게, 시공을 초월한 진리를 가르친 위대한 스승 붓다가 아닐 수 없다.


옥복연 (종교와 젠더연구소장)


출처: 불교포커스 '여시아사' 2018.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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