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karun): 나도 한때 저러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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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6-05-27 16:36 조회3,932회 댓글0건본문
연민(karunā): 나도 한때 저러한 사람이었다
“나 같은 여자들이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해야지요.”
“한 마디라도 진실한 사죄의 말을 듣는 게 소원이죠.”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이 일본군 ‘위안부’의 잔혹한 실태를 널리 알리고, 다시는 이런 아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개관했을 때 ‘위안부’ 할머니들이 한 말이다. 4년 전 5월 5일 어린이날에 이 박물관을 개관을 한 것은 “평화로운 세상을 아이들에게 선물한다”는 이유였다.
이 박물관은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편견의 벽에 부딪혀 여러 번의 건립 위기를 넘겨 거의 십 년 만에 문을 열었다. 서울시가 서대문구 독립공원 내 부지를 기부해 공사를 시작하자, 독립군들을 모신 구역에 망신스럽게 위안부가 웬 말이냐며 독립유공자 단체가 반대하고 나섰다. “순국선열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며 거세게 반발한 이들 때문에 건립위는 성미산 자락으로 장소를 옮겨야 했다.
박물관 건립을 위한 기금 마련도 쉽지 않았다. 정부는 일부 금액만 지원했고, 기업들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지원하는 일은 ‘기업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며 후원을 거부했다.
과거 병자호란 때, 청나라로 강제로 끌려갔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처녀들을 ‘환향녀(還鄕女)’라고 불렀다. 이들은 어렵게 살아 돌아왔지만 ‘더럽혀진 여자’라며 마을에서 쫓겨나거나 집안에서 내쳐졌다. 서글픈 이 여성들의 이 역사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똑같이 재현된 것이다. 하지만 의식 있는 시민들의 모금으로 이 박물관은 어렵사리 문을 열었고,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전쟁의 참상을 가르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다시 핫이슈로 등장한 것은 한국과 일본 정부 간에 위안부 문제가 합의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난 2015년 12월 말이었다. 1991년 8월 고 김학순 할머니의 공개 증언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진 일본 ‘위안부’ 문제는 일본 정부의 공식적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며 매주 수요일 12시 일본대사관 앞에서 수요집회로 이어졌다.
1,200여 회 수요 집회를 이어가는 동안 일본 정부는 할머니들의 요구를 철저히 외면했고, 수요집회는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이어진 집회로 국내외에 일본군 ‘위안부’의 실상을 알려왔다.
하지만 작년 말, 일본 정부의 사과 같지 않은 사과와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한 재단 설립금 10억 엔에, 한국 정부는 위안부 문제를 더 이상 제기하지 않기로 일본과 정치적으로 합의했다. 피해 당사자들도 모르게 역사적 화해란 이름으로 강행된 이 굴욕적 합의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며 ‘합의 무효화’를 외쳤다.
2011년 일본 대지진때 한국에서 일본에 전달한 모금액이 560억 원이었는데, 100억 원으로 민족의 자존심을 팔아버렸다는 말도 나왔다. 또한 합의문에는 일본 정부가 그토록 불편해하던 소녀상 철거도 들어 있다는 소식도 있었다. 누군가는 비가 오면 소녀상이 비에 젖을까 우비를 입혔고 눈이 오면 털실 머플러로 소녀상을 감싸주면서, 마치 ‘위안부’ 할머니들의 어린 시절을 돌보듯이 사람들은 소녀상을 아껴왔다. 그러기에 철거를 막기 위해 일부 대학생들과 시민들은 그 추운 한 겨울에 소녀상 옆 땅바닥에서 노숙을 이어가기도 했다.
일부 사람들은 이러한 사태에 대해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안보를 위해 일본과의 화해는 필수라느니, 이미 지나간 옛 일로 되돌릴 수도 없다느니, 전쟁 중에는 이보다 더한 참혹한 일도 많다느니, 여생이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그냥 편안하게 사시게 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군 ‘위안부’는 전쟁 중에 발생한 여성폭력의 상징적인 사건임은 분명하다. 이는 단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민족의 문제요, 피해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인 문제이다. 또한 성문제가 아니라 전시 하 범죄행위이며, 과거 일이 아니라 지금까지 피해자들이 고통 받고 있는 현재의 일이다.
그런데 사실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을 공감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책이나 영화로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고, 이분들의 고통을 이해한다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큰 고통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불쌍하다, 동정심이 간다고 말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의 처지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연민(憐愍)이라고 하는데, 불교에서는 연민(karunā)은 단순히 공감 혹은 동정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연민은 고통에 처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상관없이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연민은 고통스러운 상황이나 사람을 보거나 혹은 이야기를 듣거나 할 때 마음속에서 일어나는데, 동일한 경험을 해 본 사람은 더 잘 일어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병상에 누워 투병 생활을 해 본 사람은 나와 상관없는 환자를 보기만 해도 그 고통이 이해가 되고, 또 ‘빨리 나았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기도 한다.
또한 연민은 상대방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일어난다. 갑자기 내가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서 극심한 고통을 당할 때, 자기연민을 통해 스스로 자기 자신을 돌볼 수 있다. 일이 잘못되면 ‘모든 게 내 잘못이야’ 라며 자학하고 더 깊은 고통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고 스스로 위로하며 다시 기력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렇게 고통을 겪고 나면 더욱 성숙해진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는 ‘위안부’ 할머니, ‘세월호 희생자 가족’, ‘옥시 제품으로 희생된 아이들의 부모’, ‘5.18 광주사태 희생자 가족’ 등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어떻게 하면 이들에게 진정으로 연민을 느끼게 될까? 어떤 마음으로 이들을 대해야 할까? 『상윳따니까야』에서 붓다는 고통 받는 불쌍한 사람을 볼 때 그냥 불쌍하다고 여기지 말라고 가르친다.
‘과거 오랜 세월을 나도 한때 그와 같은 사람이었다’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 사람보다는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우월감이 생길 수 있고, 나처럼 고통 받는다고 생각하면 동등감이 생기고, 내 고통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면 열등감에 빠질 수 있다.
이 오랜 윤회의 세월을 지나오면서 나도 한때 저런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면, 진심으로 상대방의 고통을 이해하고 또 그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를 바랄 수 있다. 나도 한 때 저러한 사람이었기에, 그들의 고통을 외면해서도 안 되고, 외면할 수도 없으며, 그들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옥복연(출처: 불교포커스 2016.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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