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Avyāpajjha) : 사드, 분열을 막고 평화를 가져올 것인가?
페이지 정보
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6-07-27 11:42 조회3,767회 댓글0건본문
평화(Avyāpajjha) : 사드, 분열을 막고 평화를 가져올 것인가?
최근 대한민국을 강타하고 있는 이슈는 단연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THAAD)’이다. 지난 13일, 정부는 북한의 핵으로부터 우리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최소한의 주권적 조치라며 경북 성주에 ‘사드’를 배치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사드’의 성능이 검증되지 않았다거나 한반도 방어에 적합하지 않다거나, 강력한 전자파의 부작용은 물론, 외교와 경제적 분야에서 득보다는 실이 더 많다며 강하게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사드의 효용성은 논외로 하고라도, 국가 존립이 걸린 ‘사드’ 배치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정부는 국민과 일체 소통하지 않았다. 배치를 검토한다고 했다가 안한다고 했고, 올 연말에 결정한다고 했다가 갑자기 배치 결정을 발표함으로써 국민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특히 사드 배치 지역으로 통보받은 성주군민들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격이었다. 아무런 사전 논의도 없이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군사무기가 자신들이 살고 있는 동네에 배치된다니, 주민들이 극렬하게 반대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군수는 단식에 들어가고 군의회의원들은 혈서를 쓰고, 여고생이 촛불을 들고, 수많은 지역민들은 생업도 접어두고 서울로 올라와 항의 시위를 했다.
사드 성주배치 반대 범군민비상대책위원회는 “사드 배치는 군민 4만5천 명의 60%가 참외 농사를 짓는 성주 생존권을 위협하는 것”이라며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부지 선정 배경을 설명하겠다며 성주에 갔던 국무총리는 성난 군민들의 달걀 세례를 받고 양복저고리가 벗겨지고 핸드폰과 수첩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도 강경하다. 사드 배치와 관련된 국민들의 불안감이나 의문들을 ‘사드 괴담’이나 ‘유언비어’로, 성주군민이 아닌데 사드반대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불순세력’으로 규정했다.
사드가 어찌 성주군민만의 문제일까 마는, 대한민국 국민들은 졸지에 성주군민과 불순세력, 보수와 진보, 애국자와 빨갱이, 그리고 지역 이기주의자와 이성적 현실주의자로 나뉘어져 버렸다.
여성계나 시민사회단체들은 사드 배치를 반대한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공론화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사드 배치를 결정한 정부는 누구를 위한 정부냐”며 정부는 어떤 정보도 제대로 공개하지 않으면서 그저 믿어달라는 식으로 밀어붙이고 있다고 정부의 불통을 규탄했다.
그리고 “모든 차별과 폭력을 반대하는 우리 여성들은 한반도를 전쟁 위협으로 몰아가고, 온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사드 배치 결정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사드’가 분열을 막고 평화를 가져올 것인가? 『맛지마니까야』의 「싸마가마 마을의 경」에서 붓다는 논쟁으로, 고발로, 범죄로, 절차로 인해 발생하는 네 가지 송사(四諍事)를 해결하기 위한 일곱 가지 해결책을 가르친다.
즉, 대면하게 함으로써, 기억을 환기시켜줌으로써, 과거의 착란을 인식하게 함으로써,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게 함으로써, 대중의 의견을 따름으로써, 상대에 죄악을 물음으로써, 풀로 덮어둠으로써 송사를 그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대중과의 대화와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치며, 그 어떤 경우라도 폭력으로 갈등을 해결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법구경』에 의하면 붓다는 “모든 존재는 폭력을 두려워하고, 모두가 죽음을 무서워한다. 남을 자신과 견주고는 남을 죽여서도 안되고, 남을 시켜 죽게 해서도 안된다.”고 가르친다.
‘모든 존재’라 함은 동물이나 식물, 길거나 크거나 중간치이거나, 짧거나 작거나 뚱뚱하거나, 보이는 곳이나 보이지 않는 곳에 살든, 먼 곳이나 가까운 곳에 살든, 태어난 것이든 태어나려고 하는 것이든, 하나도 빠짐없이 모든 생명을 포함하고 있음을「자애경」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모든 생명을 폭력의 희생자로 만드는 전쟁을 막는 방법은 없을까? 붓다는 사랑과 존경을 낳고, 협조, 평화, 조화, 일치로 이끄는 여섯 가지 새김의 원리를 가르친다.
즉,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상대방에게 자애로운 신체적, 언어적, 정신적인 행위를 유지하고, 계행을 갖추고, 견해를 갖추어 동료와 함께 지낸다면, 오랜 세월 번영하는 행복한 공동체가 된다는 것이다.
아직도 한반도는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 분열을 막고 평화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남을 죽이거나 남을 시켜 죽게 하는 무기의 배치가 아니라, 북한에 대한 자애심을 잃지 않고 견해가 일치하도록 지속적으로 대화하고 타협하는 것이 아닐까? 왜냐면 폭력으로는 결코 폭력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옥복연(불교포커스 2016.07.23)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