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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시대’ 이후의 국가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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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7-04-03 10:52 조회4,0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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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시대’ 이후의 국가를 생각하며


오늘(3월 31일) 새벽, 박 전 대통령이 구치소로 향하는 그 시간에, 3년 동안 바다 속에 가라앉아 있던 세월호가 육지를 향해 출발했다. 

아이들이 탄 세월호가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생중계로 지켜봐야 했던 국민들은 그날 이후 집단 우울증에 빠졌고, 국가의 역할이나 의무 등이 철학적인 문제가 아니라 지극히 실존적인 자신의 문제로 와 닿기 시작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며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던 우리 세대에게 국가란,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내야 할 숭고한 가치체계이자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고귀한 그 무엇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국가는 국민인 우리들에게 너무나도 낯선 모습을 보여 주었다.

4대강 사업으로 강바닥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부었고, 그 결과 강은 죽어가고 있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그 돈이면 초·중·고등학교 무료급식은 물론 전국 대학의 반값 등록금도 가능하다며 다수 국민이 반대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국가가 주도한 개성공단은 또 어떤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공장에 접근조차 할 수 없고, 안보라는 국가적 대의(?)를 들이밀며 개인의 재산권 포기를 강요당했다. 

메르스 사태에서 방역에 실패한 국가는 환자를 양산하면서 전국민을 공포에 떨게 했고, 책임자 처벌은커녕 피해를 은폐하고 축소하는 등 무능한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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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9일 동국대 학생들이 박근혜구속을 촉구하며 벌인 퍼포먼스의 한 장면(불교포커스 자료 사진)

 한창 젊은 나이에 군대를 가고, 없는 돈에 꼬빡꼬빡 세금을 내는 이유는 내가 위험에 처하면 국가가 나를 보호해 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하지만 국가는 더 이상 내가 생각하는 ‘그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왜, 언제부터 국가는 이렇게 변했을까? 신권이나 왕권이라는 절대 권력에 복종하던 시대를 넘어서 근대자유주의의 등장과 함께 ‘근대적 개인’이 등장하고, 인권이 국가의 법· 제도로 보호받기까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다. 

단두대에서 처형을 당하거나 사상범으로 낙인찍혀 평생을 도망자로 고통 받는 등 실로 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대가를 치렀기에 가능했다.


인권 개념을 정립한 대표적인 영국 철학자 토마스 홉스는 사람마다 그 능력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지만, 재화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은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수는 전쟁을 원치 않기 때문에 평화를 위해서는 세 가지 약속을 하게 되는데, 그 첫째는 평화를 추구하고 이를 지키려고 노력해야 하며, 두 번째는 평화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모든 수단을 통해 자기 자신을 방어할 수 있어야 하며, 세 번째는 모든 사람은 신뢰로써 맺고 있는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수가 동의하는 국가와 같은 합의체를 만들고 자신의 권리를 일정 부분 양도하는 대신 국가로부터 안전을 보장받고자 했다. 이 때 개인은 주권자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요구할 수도 있고 국가의 무조건적인 복종에 대한 거부권도 있지만, 반대로 국민이 무능력하면 주권이 억압당하거나 제한당하기도 한다. 

어쨌든 자유주의국가는 국민의 생존과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존재 이유였다.

하지만 후기국민국가로 접어들면서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영토, 주권, 국민의 개념이 급속하게 바뀌게 된다. 전 세계적으로 끊임없이 영토 분쟁이 발생하면서 영토는 언제든지 유동적이 되었고, 국민주권시대라고 하면서도 사드의 한반도 배치 정보가 제한되는 등 주권은 상대적인 개념으로 변질되고, 유학이나 취업 등으로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유목민생활은 국민이라는 경계를 넘어선 글로벌 시민을 양산한다. 

그리고 이러한 국가는 또다시 신자유주의 국가로 변화한다. 국가가 더 이상 국민의 보호자가 아니라며 국민을 방치하고, 국민의 건강보다 자본을 추구하며 의료 민영화를 추진하는 등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적인 문제로 돌린다. 

국가가 민족자본을 무시하고 영토 밖으로 나가서 글로벌 자본과 결합하거나, 고용은 국가의 책임이 아니라며 개인의 무능을 탓한다. 이러한 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개인이 가진 자원을 총동원하게 되는데, 외모도 주요 자본이 되면서 여성은 일생동안 성형과 다이어트에 매달린다. 

경제적 기반을 만들지 못한 개인은 부모의 자본에 기대게 되고, 부모의 자본 정도에 따라 흙수저론과 같은 계급론이 부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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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해 11월 촛불집회 현장의 모습(불교포커스 자료사진)


‘최순실 시대’는 “돈이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천민자본주의를 넘어서, 신자유주의 무한경쟁 사회이자 신분사회에서 개인의 생존 방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대통령직은 더 큰 자본 확보를 위한 도구가 되었고, 국가 정책은 대대손손 안정적인 자본 창출의 수단이었다. 인간관계는 철저하게 자본으로 환원되었고, 자본만이 숭배의 대상이었다.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모르는 그들을 욕하면서도 그들이 가진 자본을 욕망하는 사람들로 인해 또 다른 최순실이 여기저기서 양산되었다. 

‘최순실 시대’에 최순실은 누군가의 엄마이자 이혼녀, 그리고 ‘여왕이 된 공주님’의 하녀이자 대리인이기도 했다. ‘강남의 무식한 아줌마 나부랭이’가 비선 실세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주류 남성들은 더 큰 분노를 표출했고, 그녀는 지역, 학벌, 성별, 연령, 신분 등에 기초한 온갖 혐오의 대상이자 신자유주의 계급사회에서 무능하고 염치없는 국가의 상징이 되었다.


그렇다면 ‘최순실시대’ 이후의 국가는 어떠해야 하는가? 

<맛지마니까야>의 ‘꼬삼비 설법의 경’에 의하면, 붓다는 승가라는 공동체 내에서 사랑을 만들고 존경을 만들고, 도움으로 이끌고 논쟁의 불식으로 이끌고, 화합으로 이끌고, 일치로 이끄는 여섯 가지 원리를 가르친다. 

즉, 자애로운 신체적, 언어적 행위, 정신적 행위를 일으키고, 정당하게 얻어진 것을 함께 나누고, 결점이나 마찰이 없는 계행을 지키며, 고귀한 가르침을 실천할 것을 가르친다.

이러한 조직이 가능할까 의문을 가질 수도 있지만, 우리는 이러한 조직 원리가 작동하는 공동체의 유경험자들이다. 천 만 명이 넘는 국민들이 그 추운 겨울날 광장으로 나와 평화적으로 촛불을 들었고, 어떤 협박과 거짓에도 굴하지 않았고, 잘못된 권력자를 국민의 손으로 교체한 주체들이다. 

그러기에 ‘최순실시대’ 이후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국가는 희망이 있다. 

그리고 국가가 더 이상 생명을 ‘죽이는 권력’이 아니라 생명을 키워내고 양육하는 ‘살리는 권력’이 될 수 있도록 국민 주권의 이름으로 지속적으로 감시해야겠다.


(출처: 옥복연- 불교포커스, "여시아사" 중에서, 2017.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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