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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말(Sammā- vacca): 군대는 왜 성범죄에 관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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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7-12-02 23:40 조회3,73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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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스커트 짧을수록 좋다.” 며칠 전 국방장관이 했던 발언이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자처하는 정권의 장관이 한미장병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이런 말을 했으니, 언론으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을만하다. 

하지만 이 기사 아래 댓글들은 “저런 말이 거슬린다면 미니스커트를 입지 말아야”, “농담 한마디 가지고 왜 멀쩡한 사람 죄인 만드냐”, “군장병들 사기 좀 올려줄려고 했는데 뭐가 잘못됐나?”, “짧은 미니스커트 좋아하는 거 남자라면 상식 아닌가?” 등의 내용이 줄줄이 달려있다.

몇 년 전 3성 장군 출신으로, 국회 내 ‘군 인권 개선 및 병영문화 혁신 특별위원회’에서 활동하던 한 국회의원의 말도 생각난다. 

그는 여군 부사관을 성폭행한 혐의로 체포된 육군 여단장 사건에 대해 발언하던 중 “(그 여단장이) 지난해 거의 외박을 안 나갔다. 40대 중반인데 성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측면을 우리가 한번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사 계급장을 달고 있는 피해 군인을 “하사 아가씨”로 불렀다. 외박을 못나가서 성폭행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는 그의 말은, 모든 남성이 성충동을 억제할 수 없기 때문에 군인의 성폭행은 관대하게 봐주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남성의 성욕을 해소하지 못하면 성폭력이 발생할 수밖에 없으며, 여군은 군인이기 이전에 아가씨로 인식했던 ‘쓰리스타’ 출신의 국회의원 주장에 여성들은 경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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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는 타민족의 침략으로부터 자국을 보호하기 위한 조직으로, 철저한 명령과 통제에 의한 위계질서를 중시하며, 전시의 살상을 준비하는 국가 기관이다. 그러므로 군대는 폭력적이며 남성우월적인 남성성을 정상으로 인식하게 하는 제도이며, 이를 기반으로 여성을 비하하고 성적 대상화를 일상화한다. 

그리고 젊은 남성 개개인의 자유를 제약하는 대신 성충동에는 관대하다. 즉, 성충동을 ‘참는’ 것은 ‘남자답지 못한’ 것이 되고, 군대와 사회의 경계에는 성폭력이 합법적으로 용인되는 ‘배설의 공간’인 성매매 집결지를 만들고, 성욕이 일어날 때는 ‘따먹어야’ 용감한 남자로 인정받고, 좋아하는 여자는 ‘정복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군대 내 성인식은 ‘일본군 성노예’인 위안부나 미군을 대상으로 하는 ‘양공주’에서도 드러난다. 그러므로 젊은 남성들에게 집단적ㆍ개별적 폭력을 훈련하는 군대에서 ‘우연히’ 여성이 폭력의 주요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군대가 남성들의 우월성을 각인하는 ‘그들만의 리그’인 동시에 여성을 성적 존재로 폄하하는 장(場)임을 훈육하면서, 군대를 다녀온 남성들의 성적 가치관에 일생동안 영향을 미치게 된다.

폭력은 단순히 성적 문제만은 아니다. 초인적인 극기를 요구하는 군대 생활을 이겨내게 만드는 정신적 장치는 남성우월주의의 내면화에 있다. 보호자로서 남자는 강하면 강할수록 그 능력을 인정받는데, 군에서 강하다는 것은 곧 폭력과 연결되기 쉽다. 

남성성에 대한 강조가 강하면 강할수록 폭력은 조장되고 묵인되고, 또한 성적으로 남성이 여성을 억압하는 것도 허용된다. 이것이 보호자로서 남성의 정체성을 조작하는 군사주의가 동시에 여성에 대한 폭력과 억압을 용인하도록 만드는 경로이다. 

그러므로 군대내 성폭력에 심각한 우려를 드러내고, 군대 최고지도자인 ‘별’들이 무심결에 던지는 성희롱적인 말 한마디에 여성들이 경기(?)를 일으키듯이 반응하는 이유이다.

군인들이 전쟁 준비를 위해 타인을 비인간화하도록 훈련되며, 이러한 과정에서 그들의 폭력성을 상징하는 남성성은 상대적으로 약자인 여성에게 발산되거나 표출되기도 한다. 

국가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군인들에게 강요된 폭력성은 일상에서 언어로, 생각으로 그리고 행동으로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말 몇 마디 실수한 것은 관대하게 용서하고 넘어가고, 행동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은 참으로 위험한 것이다. 

더 큰 폭력을 야기하는 언어적 성희롱을 특히 군대 지도자들은 조심해야 한다. 왜냐면 이들은 무조건적으로  복종해야 하는 이등병이 아니라, 전시건 평시건 명령을 내리는 상급자이기 때문에 특히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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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경전에서는 언어를 잘못 사용할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가르치고 있을까?

『맛지마니까야』 의 〈외투에 대한 경〉에는 빠세나디왕이 평소 존경하는 존자 아난다에게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나 현명한 사람들에게 비난받을 만한 언어적 행위는 어떠한 것입니까?’라고 묻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자 아난다는 ‘폭력에 매인 악하고 불건전한 언어적 행위’는 비난받아야 한다고 대답한다. 폭력적인 언어라 함은 언어적 성희롱도 포함된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폭력적인 언어는 악하고 불건전하다는 것이다.

폭력에 매인 언어적 행위는 왜 악하고 불건전할까? 아난다존자는 그 이유로 ‘괴로움’을 초래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이 ‘괴로움’은 스스로를 해치고, 남을 해치고, 나와 남 둘 다를 해친다는 것이다. 언어적 성희롱에서, 가해자만 괴롭거나 피해자만 괴로운 것이 아니라, 가해자나 피해자 모두가 괴롭다는 것이다. 

또한 이는 악하고 불건전한 것들을 키우고, 착하고 건전한 것들이 줄인다고 가르친다. 결과적으로 보면, 언어적 성희롱은 나와 상대를 괴로움에 빠뜨리고, 나의 악업을 증장시키고 선업을 감소시키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그동안 군대는 남자만이 나라와 여성을 포함한 가족을 지킨다는 이유로 남성 우월성을 강화해왔고, 이러한 남성에게 복종하는 것이 여성의 미덕임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오늘날 여군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고, 여성만의 권리보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의 권리를 존중하고, 전쟁보다는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그러므로 여성 스스로 작은 성폭력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우리 안의 성차별 의식과 싸워야 하고, 군대 내 성범죄에 경각심을 가지도록 끊임없이 ‘지적질’을 해야겠다.


옥복연(불교포커스 2017. 12. 02, "여시아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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