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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hiri)과 창피함(ottap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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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6-03-25 19:04 조회3,97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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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hiri)과 창피함(ottappa)

 

“필리버스터 여전사 은수미”, 여당의 ‘테러방지법’에 반대하는 야당국회의원들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가 끝난 후, 그녀는 가장 핫한 국회의원이 되었다. 국회방송이 생중계로 전국에 나가는 상황에서, 아픈 허리를 두드려가며 국회 연단에 서서 10시간 18분 동안 연설을 했다. 그녀가 한사코 ‘테러방지법’을 반대한 이유는 과거 그녀가 국가안전기획부(현 국정원)에서 한 달 동안 가혹한 고문을 당했던 끔찍한 경험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평소 존재감이 미미했던 야당 여성의원의 65.3%가 이 필리버스터에 참가했으니 여성의원들의 활약도 대단했다. 이 회의는 인터넷방송으로만 500만 뷰 이상을 기록했고, 3,000명 이상이 국회로 와서 방청했으며, 세계 최장시간의 필리버스터를 기록하며 막을 내렸다.


왜 사람들이 이처럼 필리버스터에 열광했을까? 이는 아마도 욕설과 몸싸움 대신 소통의 장이 만들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밤을 새워서라도 토론해 봅시다.”, “우리가 함께 이야기 해 봅시다.” 국회에서 이 얼마나 오랜만에 듣는 말인가? 

“필리버스터 스타”, “머리에 쏙 들어오는 명연설”, “필리버스터 영웅” 등을 낳

은 이번 필리버스터를 보면서 한 편으로는 흥미로웠지만, 한편으로는 우울해졌

다. 


조계종단 역시 국회와 유사한 기능을 하는 중앙종회가 있다. 국회는 국가 운영

과 관련된 법을 만들고 중앙종회는 종단 운영과 관련된 법을 만든다.

 

국회는 장관과 같이 국가 운영의 주요 책임자들을 인준하고 중앙종회는 종단 최

고 책임자들을 인준한다. 국회의원은 회기 중에 체포할 수 없는 불체포특권이

있고, 중앙종회의원 역시 중앙종회기간에는 체포할 수 없다. 이처럼 국회나 중

앙종회는 최고의 의결기관이자 입법기관으로 유사한 점이 많다.


하지만 국회와 중앙종회는 다른 점도 많다. 첫째는 결격사유가 없는 국민이면 누구나 국회의원이 될 수 있지만, 종회의원은 출가자만 할 수 있다. 아무리 사찰 업무에 열성적이고 뛰어난 신자라 할지라도 절대로 중앙종회의원이 될 수 없도록 종법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남녀 누구나 국회의원 자격이 있고, 여성을 배려해서 30% 할당제를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중앙종회의원은 전체 81명 가운데 10명 만 비구니에게 할당되어 있고, 71명은 비구의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10명의 근거는 종헌이나 종단법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셋째, 국회는 모든 언론에 공개되어 있어 국내외 언론사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지만, 중앙종회는 몇 몇 언론사의 종단 출입조차 금지하고 있다. 범계행위를 지적하면 범계 행위가 아니라고 입증하면 될 텐데, 이를 지적하는 언론사를 아예 종단 출입조차 못하도록 하고 있다. 심지어는 광고나 인터뷰조차 금지시키며 경제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넷째, 국회는 시민사회단체가 만든 국회모니터단이 활동하고 있으며 모니터단을 위한 공간을 제공하는 등 지원하고 있지만, 중앙종회는 2012년 불교시민사회단체가 결성한 “중앙종회NGO모니터단”의 출입을 막았다. 중앙종회에 대한 감시와 비판에 대해 형평성과 중립성에 어긋난다며 모니터단의 출입을 막기를 반복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앙종회NGO모니터단”은 더 이상 공정하고 정의로운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지난 2015년 11월 잠정적으로 중앙종회 모니터링 중단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붓다는 부끄러움(hiri)과 창피함(ottappa)을 모르는 사람은 불자로서 자격이 없다고 가르치셨다. ‘부끄러움’은 몸과 말로 짓는 잘못에 대해서 비록 다른 사람이 모를지라도 자기 스스로 떳떳하지 못한 마음이고, 창피함은 인과를 믿기 때문에 잘못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는 마음이다. 탐·진·치라는 마음의 오염물은 이 두 가지 때문에 제거될 수 있고, 이 두 가지 때문에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붓다는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아는 것은 혼탁하고 부패한 이 세상을 더 이상 썩지 않게 만든다면서, 이 둘을 세상을 지키는 감시자들 혹은 수호자들이라고 까지 말씀하셨다. 만약 계율을 지키지 않고서도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모르는 출가자들이 모여 있다면 아집과 독선만이 가득할 것이다. 소통하고 공감하기 보다는 권위와 강압으로 공동체를 지배할 때, 그 공동체는 타락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제, 나 자신을 위해, 타인을 위해, 더 나아가 종단을 위해 잠시 부끄럽고 잠시 창피해하자. 그리고 인간평등을 강조한 붓다의 제자라면 출가자와 재가자가 함께 종단 운영에 참여하고, 비구와 비구니를 평등하게 대우하고, 불교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중앙종회NGO모니터단”의 활동을 지원하자. 

속세의 물질적 가치를 떠난 출가자들이 모인 종단 지도부가 소위 말하는 ‘종단 비판세력’과 “밤을 새워서라도 토론해 봅시다.”, “우리가 함께 이야기 해 봅시다.”라며 소통하는 그날을 기다리며...

 

-불교포커스 시론 여시아사에서, 옥복연, 2016.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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