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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sukha): 동성애자는 행복할 수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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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6-07-08 11:54 조회3,99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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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s u k ha ):  동성애자는 행복할 수 없는가?
 
 퀴어문화축제 현장의 모습. 사진=퀴어문화축제 홈페이지.

지난 11일 ‘제17회 퀴어문화축제’가 서울광장에서 열렸다. 주최측 추산 5만 여 명이 모였다고 하니, 우리 사회의 변화가 놀랍다. 필자가 처음으로 ‘퀴어축제’를 본 것은 2004년 미국에서 공부할 때였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동성애라는 말 자체를 입에 올리기도 쉽지 않았기에,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두 시간동안 차를 달려 ‘퀴어축제’가 열리는 한 주립대학을 찾았다. 대학의 한 건물에서 이틀 동안 세미나, 전시회, 공연은 물론 단체들 홍보와 벼룩시장이 열렸다. 백인ㆍ흑인ㆍ황인종 등 다양한 인종과 할아버지부터 여중학생에 이르기까지 연령층도 다양했다. 참으로 떠들썩한 축제 한마당이었다.

 

일반적으로 사춘기가 되면 이성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남성은 여성에게, 여성은 남성에게 강한 성적 매력을 느낀다. 이성과 사랑을 나누고, 결혼을 하고, 또 아이를 낳기도 한다. 이처럼 자신의 성과 다른 성을 사랑하는 이들은 이성애자(異性愛者)이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이성에게 마음이 끌리는 것은 아니다. 자신과 같은 성에 성적 매력을 느끼는 동성애(레즈비언, 게이)도 있고, 남녀 모두에게 호감을 느끼는 양성애자, 자신의 타고난 성을 바꾸는 트랜스젠더도 있다. 이들은 이성애자에 비해 소수이기 때문에 ‘성소수자’, 혹은 ‘퀴어’라고 부른다.

 

원래 ‘퀴어’란 ‘이상한’ 혹은 ‘색다른’ 등을 의미하는 단어인데, ‘성다수자’인 이성애자의 관점에서 볼 때 출산도 하지 않고 남편의 권위도 없는 ‘퀴어’는 ‘정상이 아닌’ 사람들일 수 있다. 성소수자들은 이성애자와는 다른 성적 정체성/지향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정신병자로 취급당하기도 했고, 중세시대에는 악마라며 화형을 당하기도 했고, 에이즈를 옮기는 몹쓸 사람들로 치부되기도 했다. 그래서 자신의 성적 지향성을 드러내는 순간, 가족으로부터 외면당하거나 회사에서 해고당할 수 있기에, 애써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숨기며 살아왔다. 하지만 “나는 퀴어다”라고 자신의 성정체성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이번 축제는 성소수자들 뿐만 아니라 구글과 같은 다국적 대기업은 물론 미국, 캐나다 등 14개국 대사관도 참여했다. 매스컴은 앞 다투어 이를 보도하며, 우리 사회가 동성애에 관대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성소수자에 대한 갈등과 대립은 여전히 격렬하게 진행 중이다. 일부 기독교단체들이 주축이 되어 올해 ‘퀴어축제’를 못하도록 ‘공연ㆍ음란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출했다. 또한 이들은 축제 당일에는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퀴어축제 반대 국민대회’를 열어 설교와 찬송가를 이어가기도 했고, 행진을 막기 위해 길 위에 드러눕기도 했다. 21세기 서울의 한 복판에서 “우리 모습 그대로를 긍정할 수 있는 세상”을 요구하는 목소리와 “패륜적이고 야만적인 의상과 행사를 자제하라”는 주장이 격렬하게 부딪히고 있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동성애가 치료할 수 있는, 아니 치료해야 하는 정신질환자라고 주장하거나, 에이즈를 전파하는 위험한 사람들이라고 외면하기도 한다. 일부 기독교인들은 “여자는 남자의 옷을 입지 말고 남자는 여자의 옷을 입지 마라. 이런 짓을 하는 자는 모두 너희 하나님 야훼께서 역겨워하신다”라는 구약성서를 내세우며 동성애자를 악의 근원으로 치부한다. 하지만 동성애는 질병도 아니고, 동성애자라고 해서 모두 에이즈 보균자는 아니다. 퀴어적 기질을 타고난 사람들은 귀가 크거나 손이 작거나 하는 것처럼 ‘원래 그렇게 태어난’ 사람들이다. 노력해서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퀴어’라서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다.

 

  
 

초기경전에 의하면, 사람의 성(性)이란 수없는 윤회를 거듭하면서 바뀔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 생애 동안에도 바뀔 수 있는 것으로 본다. 『율장』에는 성전환을 한 출가자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붓다는 과거 남성에서 여성의 몸으로 바꾼 비구니는 비구니의 계율을 따라야 하고, 여성에서 남성의 몸으로 바꾼 비구는 비구의 계율을 따라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붓다는 모든 존재는 하나이고 동시에 각자 다른 존재임을 가르쳤기에 ‘퀴어’를 비정상이라고 할 수 없다. 게이나 레즈비언이라고 해서 수행할 수 없는 것도 아니고, 이들도 노력하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맛지마니까야』의 ‘짱끼의 경’에서 붓다는 “이것이야말로 진리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결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눈먼 봉사들이 줄을 선 것과 같이, 앞 선 자도 보지 못하고 가운데 선 자도 보지 못하고 뒤에 선 자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다. 이성애자만이 정상이 아니며 성소수자라고 해서 이성애자보다 못난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차별과 편견 때문에 국내 청소년 성소수자 가운데 두 명 중 한 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시도를 할 정도로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다.

 

붓다는 ‘전도선언’에서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sukha)을 위해” 전도의 길을 떠나라고 주장할 정도로 불교는 행복을 추구하는 종교이다. 나 혼자만이 아니라 내 이웃도 행복해져야 한다. 만약 내 문제가 아니라고 침묵한다면, 이웃이 고통스러울 때 내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내가 고통을 당할 때 누가 과연 나를 도와줄 수 있을 것인가? 성소수자들의 고통에 귀 기울이고, 나부터 그들에 대한 아집과 편견에서 벗어나자.

 

“성소수자가 행복할 권리는 당신이 행복할 권리와 같습니다.” 축제 참가자의 이 구호가 붓다의 말씀과 뭐가 다를까?

 

 옥복연(불교포커스 2016.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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