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간 대화로 성평등한 세상만들기】 불교: 성별을 뛰어넘은 보디사트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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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3-06-30 16:47 조회818회 댓글0건본문
불교: 성별을 뛰어넘은 보디사트바
석가탄신일을 앞두고 심택사를 찾았다. 현대식 사찰 복도와 층계에는 박종혁 화백의 개인전 <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가 진행되고 있었다. 사찰은 역사의 기록뿐 아니라 꿈꾸는 이들을 위한 예술의 현장이기도 하다. 대웅전의 석가모니 앞에서 삼배하고 나오니 대웅전 마당의 미륵부처 앞에 관욕단이 있었다. 부처님이 태어날 때 아홉 마리 용이 물을 뿜어 씻어주었다는 신화에 따라 만든 의례단이다. 사람들은 아기 부처의 몸을 씻으며 자신의 번뇌와 미혹을 씻어버린다. 기독교의 세례 같기도 하고, 예수의 세족식 같기도 하다. 일상이 구도의 이야기로 펼쳐진다.
불교 내부의 성차별
참여불교재가연대 전문기관인 불교아카데미(사) 원장 옥복연박사는 <성별을 뛰어넘어 보디 사트바를 만나다> 라는 제목의 강연을 하며 불교 내부의 성차별 문제를 꺼냈다. “조계종단의 최고 자리에는 오직 비구만이 올라갈 수 있다. 여성을 보살이라고 부르고 남성을 거사라고 부르는데, 젊은 스님이 70대 할머니에게 ‘어이 보살 잘지내나?’ 라며 아랫사람 대하듯 하기도 한다. 게다가 기복적이며 자기 가족의 안위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보살 불교라고 칭하고 스님과 불교 철학을 논하고 불교 발전을 고민하는 것을 거사 불교라고 부른다.” 불교계는 여성을 보살이라고 부르지만 사실상 여성을 평가절하하고 있다.
보살의 의미는 재해석되어야
옥복연 박사는 지금 불교내에서 성차별적으로 사용되는 ‘보살’이라는 호칭의 의미를 다시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살은 깨달은 존재라는 보디사트바의 준말로, 모든 중생을 구하기 위해 해탈을 미루고 이 세상에 남아있는 존재들이다. 역사학자 토인비는 보살 사상이 있는 대승불교가 인류를 구하는 사상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을 보살이라고 부르면서 이런 큰 의미를 외면한듯하다. 여자가 하는 일은 그저 아무나 다 하는 하찮은 일, 사적인 일, 자기 가족에게만 묶여있는 편협한 일로 여기지 않았는가?
불교 전통 안에 보살들이 많다. 지장보살은 산스크리트어로 크리스티 가르바(Kristi Garbba, 땅 자궁)라는 의미로 무수한 씨앗을 품고 다닌다고 해서 지장이다. 엄마를 구제한 소녀에서 유래했지만, 지옥에 있는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분이다. 생명을 잉태하고 지옥까지 달려가 생명을 구제하는 것은 여성, 여신의 모습이다. 티베트불교에는 따라보살은 소원을 들어주는 어머니 같은 여신이다. 그는 여자의 몸으로 모든 중생을 도우리라고 서원한다. 관세음보살은 이마, 손에 눈이 그려져 있어서 실시간 세상 중생들의 고통을 살피고 있다. 이처럼 많은 경우 보살은 여성의 모습을 하고 추앙받는 여신이다.
남성이나 아이의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하며 지혜를 관장하는 문수보살은 유독 티벳에서는 여성으로 재현된다. 그는 손에 검을 들고 있는데, 모든 번뇌를 단칼에 끊어버린다. 자식을 위해, 생존을 위해 강하게 살아온 여성들이 떠오른다. 중국의 경우 관세음보살은 모두 흰 옷을 입은 여성이다. ‘관세음보살’ 한마디 외치면 달려가는 그는 마치 ‘엄마’라는 한마디에 달려오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종교학자는 모든 종교를 관통하는 본질을 연민이라고 주장한다. 규범과 언어에 묶여있는 근본주의자들이 잃어버린 마음이다. 이처럼 여성의 삶의 특성이 영성이며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문수보살이 그것을 구현하고 있었다.
▲ 옥복연 박사 강의자료 |
<여자들이 하는 일이 보시, 세상을 구하는 일>
‘돈이 있어야 좋은 일도 하지’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자본주의 사회는 사랑도, 진심도 돈으로 표현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사람 노릇을 하기 어렵다. 옥박사는 돈이 없어도 베풀 수 있는 일곱 가지 보시를 소개했다. 마음을 헤아리기, 자리 양보하기, 작은 일 돕기, 따뜻한 마음 갖기, 부드러운 눈빛으로 대하기, 밝게 웃어주기, 좋은 말 하기. 이 시시해 보이는 일들은 이미 여자들이 해온 일들이다. 아니 여자들에게 요구했던 것이고 오죽하면 세상은 이런 것을 여성성이라 여겼을까? 이미 여자들은 세상을 위한 보시를 실천하며 세상을 바꾸고 있었다. 고작(?) 여자들이 하는 물레를 돌렸지만 결국 인도의 독립을 쟁취했던 간디가 떠오른다.
< 불교의 오랜 수행 방식, 명상>
심택사의 종교체험은 재마스님(예술 명상 연구소 대표)이 이끄는 자애명상이었다. 기독교 신학은 논쟁의 역사다. 옳고 그름을 밝히기 위해 격렬한 논쟁이 있었다. 생각에 생각을 더하는 것이다. 서양 철학과 함께 발전했다. 불교의 수행 방식인 명상은 생각을 멈추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 낯선 표현, 호흡에 집중하라는 말. 어떻게 하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재마스님은 설명이 아니라 씽잉볼 소리로, 알 수 없는 파도 같은 소리로 온몸의 감각을 건들며 생각을 흩어놓았다. 생각을 멈추려고 생각하지 않고 소리에 나를 맡겼다. 나를 매몰시켜버렸던 온갖 생각이 멈추는 그곳에서 비로소 창의적 통찰의 싹이 움튼다.
▲ 아기 부처님의 목욕을 시켜드리는 관욕단 |
< 나를 잃지 않는 종교 >
마르크스는 종교를 아편이라고 비판한다. 여성, 노동자계급, 소수자들의 고통을 위로해 그 체계에 안주하고 묵인하게 한다고 말이다. 옥박사는 한 청년과 성철스님의 대화를 들려주었다. 자신의 사주가 형편없어 자기 인생이 실패한 것 같다고 말하며 손금을 보여준 청년에게 주먹을 쥐어보라고 말했다. “봐라. 모든 것이 네 손안에 있지 않나?” 불교는 개인을 무력하게 만들어 주체성을 앗아 가스라이팅하는 종교가 아니다. 사람들이 성철스님을 자꾸 찾아오니 “왜 나를 만나러 오나? 부처를 만나야지. 나도 땡중이니 내말 믿지 마소” 라고 응답하였다. 지금 9개의 종단을 모아 대화와 배움을 시도하는 불교아카데미는 뒤로 물러나 있지 않고 혼돈과 분열의 사회에 적극 말을 걸고 있지 않은가?
심택사 마당에 거칠 것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서로에게 배우고 듣기 위해 모인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퍼진다.
‘스님, 너무 섹시해요!’ 영성을 회복해 얼굴에 빛이 나는 비구니에게 친구 같은 말을 건넨다. 그의 경험과 구도의 길에서 얻
은 평화가 어느새 내 마음에도 전해졌다. ***
최형미 객원연구원( 2023.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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