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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알리 대장경의 결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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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종교와젠더연구소 작성일20-10-09 10:46 조회3,97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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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알리대장경의 결집은 여섯 차례가 있었다.

 

(1) 제1차결집 

디가니까야 주석서 『쑤망갈라빌라씨니』(묘길상찬 妙吉祥贊, Sumaṅgalavilāsini)에 따르면, 부처님이 돌아가신 직후에 라자가하 시, 칠엽굴에서 장로 마하 깟싸바가 주도하여 오백 명의 거룩한 님들이 모여 정법의 수호를 위해 경전을 합송하여 결집함.

 

(2) 제2차결집

디빠방싸(Dīpavaṃsa)와 마하방싸(Mahāvaṃsa)에 의하면 아자따쌋뚜 왕의 후손인 깔라쇼까왕 치세시에 몇몇 계율의 해석을 둘러싸고 불멸후 100년 경에 베쌀리 시에서 일어났다. 칠백 명의 수행승들이 밧지 족 출신의 수행승들이 주장한 금은을 수용하는 것 등의 열가지 주제에 대하여 비법으로 규정함으로써 보수적 상좌부(上座部 Theravāda)와 진보적인 대중부(大衆部 Mahāsaṅgika)로 근본분열이 일어났고 각각의 부파에서 자신들의 경전을 결집함.

 

(3) 3차결집

디빠방싸와 마하방싸』에 의하면, 불멸후 236년 아쇼카 대왕의 후원 하에 빠딸리뿟따 시에서 장로 목갈리뿟따 띳싸(Moggaliputta-tissa)의 주재로 1,000명의 거룩한 님이 참여하여 분별설(分別說) 이외의 비정통파를 교단에서 추방하고 논사(論事 Kathavathu)를 완성한 것을 말함.

 

(4) 제4결집

불멸후 500년 경 스리랑카의 밧따가마니(Vaṭṭagāmani) 왕의 치세시에 남인도의 비불교도들의 침입으로 인한 전란과 한발에 의한 기근으로 수많은 사람들과 많은 승려들이 죽어가게 되어, 더 이상 암송과 합송에 의거하여 구전으로 불경을 전수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자 마하비하라(Mahāvihāra)파의 스님들이 불전을 오늘날의 형태로 문자로 기록한 것을 말함.

 

(5) 제5결집

미얀마 북쪽의 만달레이(Mandalay)에서 1871년 민돈 왕의 후원으로 개최되어 빠알리 삼장이 729개 대리석의 석판(율장111개, 경장410개, 논장208개)위에 새겨지게 된 것을 말함.

 

(6) 제6결집

1954년에서 1956년에 걸쳐 미얀마의 양곤 근처의 인공바위굴에서 2,500명의 불제자가 참여하여 삼장을 교열한 것을 말함. 

 

 

(한국빠알리성전협회, 디가니까야 pp.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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