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 계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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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7-04-03 13:12 조회5,819회 댓글0건본문
*학습계율에 대하여
*일좌식: 붓다는 하루 한끼만으로 수행하고, 이를 비구들에게 요구하자 밧달리는 못하겠다고 함, 하루 두끼를 허용하자 그것도 못하겠다고 함, 붓다는 밧달리에게 계율의 항목(오후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식사 금지)을 지키지 않았다며,
-그대는 내가 학습계율을 알리고 수행승들이 그 학습계율을 받아들일 때에 그것을 감당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밧달리여,
그러나 그대의 잘못을 잘못으로 보고 법도에 맞게 대처했으므로 우리는 그대를 용서하겠다. 왜냐면 앞으로 삼갈 수 있도록 자신의 잘못을 잘못으로 보고, 법도에 맞게 대처하는 것은 거룩한 계율 안에서 성장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MN 2-2, 말룽끼야뿟따에 대한 큰 경, pp. 721-722)
* 계율을 제정하는 이유
<밧달리>
오늘날 많은 학습계율로도 보다 적은 수행승이 궁극적인 앎을 성취하는 원인은 무엇이고 조건은 무엇입니까?
<세존>
교단이 세속적 소유의 절정에 이르지 않고 명성의 절정에 이르지 않고,
번쇄한 학문에 이르지 않고, 오랜 세월에 이르지 않는 한,
교단에 번뇌의 뿌리가 되는 것들이 나타난다.
그러면 스승은 번뇌의 뿌리가 되는 것들을 제거하기 위해
제자들을 위한 학습 계율을 세운다.
마치 날쌘 젊은 준마가 지속적인 반복과 점차적인 훈련으로 그 상태에 적응하게 되면,
그 다음에 현명한 조련사는 그에게 마구들을 씌우고 그를 훈련시킨다.
점차 적응하게 되면 그 다음에 현명한 조련사는 그를 쓰다듬고 어루만져 칭찬하여
왕이 타기 적합하고 왕의 보살핌을 받고 왕이 갖추어야 할 것들 가운데 하나로 여겨진다.
=> 열가지 배움(팔정도 + 올바른 궁극의 앎 + 올바른 해탈)을 뛰어넘는 원리를 갖추면
그는 공양받을 만하고 대접받을 만하고, 보시받을 만하고, 예배받을 만하고,
세상에서 위없는 공덕의 밭이 된다.
(MN 2-2, 밧달리 경, pp. 736-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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