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안에 도달하면 뗏목은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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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6-09-05 13:24 조회4,554회 댓글0건본문
*뗏목의 비유의 경
세존) 수행승들이여,
나는 그대들을 해탈하게 하고 집착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하여 뗏목의 비유를 설할
것이다. 그대들은 듣고 잘 새겨야 한다.
수행승) 세존이시여,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 예를 들어 수행승들이여,
어떤 사람이 여행을 가는데 큰 물이 넘치는 강을 만났다.
이 언덕은 위험하고 두렵고 저 언덕은 안온하고 두려움이 업는데 이 언덕으로부터 저
언덕으로 가는 나룻배도 없고 다리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생각했다. ‘내가 풀과 나무
와 가지와 잎사귀를 모아서 뗏목을 엮어서 그 뗏목에 의지하여 두 손과 두 발로 노력해
서 안전하게 저 언덕으로 건너가면 어떨까?
수행승들이여,
그래서 그 사람은 풀과 나무와 가지와 잎사귀를 모아서 뗏목을 엮어서 그 뗏목에 의지
하여 두 손과 두 발로 열심히 저어 안전하게 저 언덕으로 건너갔다. 저 언덕에 도달하
지 그는 이와 같이 생각했다. ‘이 뗏목을 머리에 이거나 어깨에 메고 갈 곳으로 가면 어
떨까?
수행승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렇게 하는 것이 그 사람이 그 뗏목을 제대로 처
리하는 것인가?
수행승) 세존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어떻게 해야 그 사람이 그 뗏목을 제대로 처리하는 것인가?
수행승들이여, 그 사람은 저 언덕에 도달했을 때 ‘이제 나는 이 뗏목을 육지로 예인해
놓거나, 물 속에 침수시키고 갈 곳으로 가면 어떨까’라고 생각했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해야 그 사람은 그 뗏목을 제대로 처리한 것이다.
이와 같이 수행승들이여, 건너가기 위하여 집착하지 않기 위하여 뗏목의 비유를 설했
다. 수행승들이여, 참으로 뗏목에의 비유를 아는 그대들은 가르침마저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가르침이 아닌 것이랴?
=> 뗏목은 자신이 발을 딛고 있는 땅에서 자라는 풀과 나무와 가지 등으로 만들어져 있
다. 이는 자신의 존재 조건 속에서 출발해야 함을 의미한다.
뗏목에 단지 올라타거나 매달렸다고 해서 피안으로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두
손과 두 발로 저어야 한다. 그리고 피안에 도달하면 뗏목은 버려야 한다. 진리는 정견
의 이론적 내용으로 세속적인 차안의 언어와 사유를 수단으로 엮어진 것이다. 단지 그
것을 외우거나 거기에 집착한다거나 개념적으로 확장한다고 해서 우리의 목표인 피안
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다.
=> 가르침마저 버리라고 함은 ‘멈춤’과 ‘통찰’을 말하고 있다. 즉 일정한 경지에 이르러
서는 ‘멈춤’과 ‘통찰’과 같은 고요한 상태에 대한 탐욕과 집착마저 버릴 것을 가르침
=> 뗏목의 비유의 원형적인 출처
(MN 1-3. 뱀에 대한 비유의 경, p. 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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