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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위기 시대,비인간 전회와 회절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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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종교와젠더연구소 작성일24-09-13 11:25 조회29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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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위기 시대,비인간 전회와 회절의 정치


김은주(서울시립대학교 도시인문학연구소)

 

 

|목차|

1. 들어가며: 다중위기 시대 그리고 괴물들의 약속

2. 비인간 전회(Nonhuman Turn): 주체에서 행위자로

   1) 비인간전회에 관하여

   2) 행위자-네트워크

3. 행위자들의 얽힘을 드러내는 회절

   1) 회절

   2) 간섭의 패턴을 그리는 회절

4. 전유할 수 없는/부적절한 타자들(inappropriate/d others)과 회절의 장소

5. 나가며: 인정의 정치를 넘나드는 회절의 정치 

 

 

|초록| 

이질적 현상들의 복합 위기를 뜻하는 다중 위기의 상황은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을 기점으로 지구 행성적 재난으로 본격화되고 있다.

이 글은 ‘비인간전회’를 통과해 다중위기상황에서 새로운 정치적 이행을 모색하는 행위자(actor)와 그 연결을 살핀다.

 

글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우선 비인간 전회의 의미를 짚고, 브루노 라투르의 행위자 네트워크 개념을 해러웨이가 제안한 광학적 기구가 행하는 회절(diffraction)과 연결하여 설명한다.

행위성은 다양한 행위자들의 행위의 중첩과 얽힘 그리고 연결에 따른 것이라는 점에서, 간섭의 패턴으로서 회절이라는 개념과 연관한다.

이러한 회절 은바라드의 양자적 이해를 통과해 중첩과 얽힘 그리고 전유할 수없는 타자들의 간섭한패턴으로 구체화된다.

바라드는 이러한 얽힘이 타자화의 흔적에 얽매여 있는 관계이기에 다른 것과 얽혀 있는 의무의 관계를 드러낸다고 설명한다.

바라드는 특히 회절의특징은 모호성과 미결정성을 강조하며 이분법적 사유를 넘어서 인간 행위자와 비인간 행위자 연결을 강조하는 회절의 정치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주제어: 다중위기, 바라드, 비인간전회, 해러웨이, 행위자-네트워크, 회절

 

 

 

1. 들어가며: 다중위기 시대 그리고 괴물들의 약속

 

프랑스의 사상가인 에드거 모랭(Edgar Morin)은 20세기를 야만의 세기로 21세기를 불확실성의 세기로 진단한 바 있다.

불확실성의 세기는 경제적기술적 진보가 사회 정치적 도덕적 성장을 추동하는 원동력이라는 단순한 진보 개념과 역사의 예정된 진보를 필연성으로 바라보는 목적론을 폐기하고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미지의 모험으로 역사를 이해하면서 사회현상의 다차원적 성격과 주체이자 대상이 되어버린 인간 존재의 상황을 제시한다.(모랭, 1999)

 

모랭(Morin)에 따르면 이러한 상황에서 위기는 단일한 것이 아니라 다중위기(Multiple Crises)로 나타난다.(Morin& Kern, 1999) 

다중 위기는 “다른 모든 문제가 종속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로 등장하거나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중요한 문제가 있고,가장 중요한 문제는 재난, 적대감,위기,통제되지 않는 과정,지구의 전반적인 위기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모랭& 케른, 1999: 74)이다.

 

위기는 생태학적 위기, 경제 위기, 정치 위기,사회 위기,지식과 교육의 위기 등다종의 복합적이자 복수적인 것으로서 그 중어느 하나 더 중요하다고 여겨질 수 없고 지구 행성 차원에서 연결되어 있다. 결국 다중위기는 분리될 수 없는 이질적 현상들로 

연결되어 일어나는 지구 행성 차원의 복합 위기이며 보편과 추상으로 수렴, 환원될 수 없는 복수의 특이성과 우연성으로 겹쳐진 위기로 나타난다.

 

이러한 다중 위기의 상황은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을 기점으로 행성적(planetary) 재난으로 본격화되고 있다.

팬데믹과 포스트 팬데믹의 상황은 우리로 하여금 디지털 기술의 의존성을 높이는 동시에 기술의 접근과 활용 그에 따른 경제적 구조의 양극화를 심화했다.

이 뿐 아니라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민주주의 체제로 인한 각국의 정치 위기는 국제질서의 균열로 이어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등 세계의 ‘화약고’가 폭발하는 대리전 형태의 전쟁이 곳곳에서 발발해 민간인들의 학살과 살곳을 잃은 난민들이 점점 더 증가한다.

 

무엇보다도 극심한 가뭄과 홍수 등 예측 불가능한 기후 변동과 생태계 교란이 보여주듯 기후 위기는 지구 행성의 심각한 위기이다.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의 지적처럼 “오늘날 주요 문제인 지구온난화와 팬데믹은 중대하게 연결”(라투르, 2021:12-13)되어 있기에 코로나를 이어 넥스트 팬데믹을 맞이하게 할 수 있는 바이러스의 출현과 보건 위기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위기와 재난 상황이 불안과 증오 그리고 사회적 우울을 가속화하면서 우리 삶을 포위하는 다중위기의 시대가 동시대의 풍경이다. 

 

그렇다면 다중위기 시대,어떻게 행위 할것인가? 앞서 다중위기를 제시한 모랭은 어떤 문제를 측정하는 것이 그장소 바깥에서가 아니라 문제가 발생하는 주어진 장소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하면서 재난의 상황에 실재적으로 대처하는 변화를 이끌어낼 것을 호소한다.

이는 인간이 더 이상 주체만이 아니라 대상이자 객체라는 것을 의미하며 근대의 이분법의 논리에서 벗어나 세계의 복잡성, 불확실성, 모호성을 이해하고 인간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다르게 사유하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모랭이 다중위기를 예측한 1999년 보다 앞서,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는1992년에 쓰여진 「괴물들의 약속」에서 20세기 후반 인간과 동물, 유기체와 기계, 물리적인 것과 비물리적인 것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과정 중에 등장한 경계적 피조물인 ‘괴물’을 조명한다. 

‘괴물’은 ‘자연’을 자본주의가 제시하는 자원이나 소유물, 투시법적 시선에서 읽어내야 할 비밀스런 텍스트 혹은 계몽의 대상 그리고 대문자 ‘인간’으로 표상되는 서구 남성 중심 문명에 상처 입은 어머니로 여기는 바를 반박한다.

해러웨이에 따르면 이와 같은 설명은 자연을 마치 미리 거기에 존재하는 ‘용기’로 전제하며 자연과 문화, 자연과 인공을 이분법적으로 분리한다.(Haraway, 1992)

 

해러웨이는 영장류학에서 인간의 자연성과 본능을 대표하는 존재인 ‘원시인’으로 영장류를 은유하는 가부장적 내러티브의 정당화 매커니즘을 발견하고 비판하면서 자연의 ‘재발명’을 확인한다. 

중요한 것은 ‘누가’ 자연을 발명 하는지, 그리고 그 누군가가 어느 위치에 있는 가이다.

다시 말해, 지식은 언제나 ‘위치 지어진 지식(situated knowledge)’이며, 어느 위치에 있는 지에 따라 관찰하는 것이 달라지는 특정한 관점에 의존한 체화된(embodied)  실재라는 것이다.(해러웨이, 2007) 

 

캐런 바라드(Karen Barad) 역시 해러웨이에게 동의하며, 지식 추구의 에로티시즘과 인식론적 유혹이란 은유를 바탕으로 한 기술과학의 상상 아래에서 비밀을 지닌 여성과 같이 그려지는 자연과 그러한 비밀을 밝히기 위해 위대한 기술자인 남성적 과학자를 주연으로 삼는 인식론적 각본에 문제를 제기한다.

더 나아가 과학이 자연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이고, 비밀과 숨겨진 상태라는 것이 없다면 과학과 기술의 역할은 어떻게 이해될지 묻는다.1)(Barad, 2008)

 

해러웨이는 자연을 복수종들의 상호 작용 속에서 ‘재생성’된 자연이자 “인공주의(artifactualism)”의 바깥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설명하고, 이 자연의 풍경을 통과하는 여정을 제안한다.(해러웨이, 1992)2) 

이러한 자연은 허구이자 사실로서 만들어진 것이며 그저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세계를 변화시키는 기술과학의 실행들과 특정 시공간 속의 특정한 집합적 행위자들에 의해 생산된 것이다.이는 자연을 인간만이 아닌 행위자들의 구축물로 제시하고,기술과학이 실행하는 생산은 탈자연화가 아니라, 자연에 대한 특정한 생산이자 “재자연화”로 제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재자연화는 근대의 인간중심주의의 자연/문화 이분법의 자연으로 되돌아가기를 결코 칭하지 않는다.

해러웨이는 자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자연은 우리가 갈 수 있는 물리적 장소도 아니고, 

울타리나 둑으로 에워싸야 할 보물도 아니며, 

구원하거나 침범해야 할 본질도 아니다.

자연은 숨겨진 것이 아니며 따라서 드러내져야 할 필요도 없다.

자연은 수학과 생의학적 코드로 해독해야 할 텍스트도 아니다.

자연은 기원, 재생,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타자’도 아니다. 

어머니도, 유모도, 노예도 아니고, 인간의 재생산을 위한 모체도 자원도 도구도 아니다. 

그러나 자연은, 보편적 주제들(themes)을 숙고하기 위한 장소로서 

토포스(thopos)라는 수사학자들의 의미에서, 

관습적인 주제이자 장소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자연은 공통의 장소(commonplace)이다. 

우리는 우리의 담화를 질서 있게 정리하고 기억을 구성하기 위해 이 주제에 의지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자연은 17세기 영국에서 ‘토픽(topik) 신들(gods)’이 지역 신들(local gods), 

즉 장소들과 민중들에게 고유한 신이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다른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다면 수사학적으로 이러한 혼(spirits)이 필요하다. 

우리가 다시 거주하기 위해,보다 정확하게는 공통의 장소,

즉 폭넓게 공유되고,불가피하게 지역적이고, 세속적이고, 기운찬,

다시 말해 시사성 있는 위치,현장(locations)에 다시 거주하기 위해 그들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자연은 공적 문화를 다시 세우는 장소이다. 

자연은 또한 말의 수사(trope)이자, 전회, 회전(trópos)이다. 

자연은 형상, 구성물, 인공물, 운동, 전치이다. 

자연은 또한 구성 이전에 존재할 수 없다.(해러웨이, 1992: 297)

 

 

이 글은  “지역/글로벌 괴물들”이 안내하는  “여기와는 다른 곳(elsewhere)”으로 향하는 해러웨이의 30여년 전의 여정에 2024년이라는 시간과 한국이라는 공간이라는 위치에서 동행하며 이를 ‘비인간전회’를 통과해 다중위기상황을 새로운 정치적 이행으로 모색하는 행위자(actor)와 그 연결을 살피고자 한다.

이는 해러웨이가 언급한 “문자 그대로 ‘괴물(monsters)’이며, ‘보여주다(demonstrate)’라는 단어와 어근 이상의 것을 공유”한경계적 피조물인 비인간 행위자와 인간 행위자가 구축하는 새로운 배치의 가능성에 접근하여, 생산된 자연의 재생성(regeneration)의 체현된 현장(embodied location)에서 불확실성을 긍정하며 “패턴화된 비전(patterned vision)”을 얻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 이 글은 우선 브루노 라투르의 행위자 네트워크 개념을 해러웨이의 여정과 겹쳐 읽고 해러웨이의 광학적 기구가 행하는 회절(diffraction)을 바라드의 양자적 이해의 방법을 통과해 중첩과 얽힘과 함께 이해해보고자 한다.

이는 다중 위기 시대에 위치 지어짐(situatied)을 강조하고, 이곳에서 상상의 다른 곳을 위한 ‘연결(connection), 체현(embodiment), 책임/응답능력(responsibility)’을 생산하기 위한 실행이자 회절의 정치의 모색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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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 별도 첨부 



출처 : 부산대학교 여성연구소 > 학술지활동 > 학술지원문 > <여성학연구> 제34권 1호 pp.7-34

https://women.pusan.ac.kr/women/73175/subview.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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