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페미니즘이라는 기대의 역설: 페미니스트 ‘번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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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종교와젠더연구소 작성일24-09-13 15:10 조회326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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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페미니즘이라는 기대의 역설: 페미니스트 ‘번아웃’
이정연(이화여대 여성학과 석사과정 졸업)
| 목 |
Ⅰ. 들어가며
Ⅱ. 페미니스트 ‘번아웃’의 의미와 사회적 배경
Ⅲ. 페미니즘은 ‘안전’한 공간이리라는 갈망의 역설
Ⅳ. ‘번아웃’이 다뤄지는 방식 및 다른 페미니스트 되기
| 초록 |
본 연구는 강남역 이후의 페미니스트들이 페미니즘 때문에 ‘번아웃’을 느낀다고 호소하는 현상을 분석한다.
‘번아웃’이 만들어지는 배경과 그 내용, ‘번아웃’이 다뤄지는 모습을 분석함으로써 강남역 이후 운동이 실행되어 온 조건들과 운동에 참여하는 것이 개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파악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번아웃’을 느낀 적이 있는 페미니스트들을 심층 면담했다. 연구 결과, ‘번아웃’은 부정적 정동을 포괄하는 용어로, 페미니즘과 연관된 고통스러운 상태를 소통하게 하는 기표다.
젠더 기반 폭력의 가시화와 반페미니즘적 정서로 인해 페미니스트들에게 사회는 안전하지 못한 곳으로 인식되었고, 상대적으로 페미니스트 공동체는 안전한 공간으로 의미화되었다. 구성원 간의 동질성이 안전을 담보한다는 기대로 인해 ‘노선’ 갈등이 격화되었고 이는 역설적으로 고립을 만들어냈다.
또한, 페미니스트 간의 문제가 ‘페미니즘’ 자체의 문제로 받아들여졌다.
이로 인해 페미니스트들은 고통스러워했지만, 페미니즘은 안전한 공간이라는 이상이 깨지면 반페미니즘적인 공격이 더 심해질 것을 두려워해 고통을 발화하지 못했다.
고통은 사회적 차원에서 설명되지 못하면서, 정신의학을 통해 ‘번아웃 왔다’는 말로 표현되었다.
연구 결과를 토대로, 본 연구는 강남역 이후 페미니즘 운동이 신자유주의적 불안정성 위에서 동일성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으며, 그 속에서 페미니즘은 안전과 동일시되었음을 포착한다.
또한, 이러한 구조가 ‘번아웃’을 만들었음을 드러내고 페미니스트들의 고통을 사회화함으로써,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페미니즘 운동을 지속할 방법을 고민한다.
주제어: 번아웃, 페미니즘 운동, 고통, 안전, 신자유주의
Ⅰ. 들어가며
1. 문제 제기
본 연구는 페미니스트들의 ‘번아웃’1) 호소 현상을 해석함으로써 강남역 이후의 페미니즘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정치학을 드러내고자 한다.
메갈리아와 강남역 살인사건 전후의 불타오르던 정동은 “페미니즘 대중화”(정희진, 2018)라고 불릴 만큼 많은 사람들 사이에 존재했고, “페미니즘 리부트”(손희정, 2015a)라고 불릴 만큼 새로운 양상의 운동을 만들어냈다.
강남역 이후 7년, 그 페미니즘은 이제 어디에 와 있는가?
본고는 어느 순간부터 ‘번아웃’, 피로, 지침과 같은 가라앉은 정동이 열의의 자리를 차지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페미니즘 관련 이슈가 자주 올라온다고 알려진 온라인 커뮤니티 <쭉빵카페>와 <여성시대>에 ‘페미’와 ‘번아웃’을 키워드로 하여 검색해 보면 페미니즘 때문에 힘들고 지쳤다는 글들(쭉빵카페, 2020.1.7.; 여성시대, 2021.5.2.)2)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글에서 페미니스트들은 서로 검열하는 분위기, 페미니스트 간의 조롱과 싸움, 자기 안의 모순, 바뀌지 않는 현실과 법적 공방 등으로 인해 지쳤고 힘들다고 호소한다.
‘번아웃’을 호소하는 글들은 2018년부터 서서히 등장하며, 2020년 이후에는 ‘번아웃’을 겪는 서로를 격려하는 내용(쭉빵카페, 2020.12.1.)도 올라와 있다.
페미니스트 유튜브 채널의 제작자도 채널을 운영하면서 겪은 공격으로 인해 번아웃이 와서 잠시 쉬겠다는 내용3)을 블로그에 게시했고, 이 글은 1,775개의 ‘하트’와 418개의 댓글을 받으며 여타 커뮤니티에 공유되었다.
페미니스트 ‘번아웃’을 다룬 기획기사도 발행된 바 있다(「여성신문」, 2020.12.31.).
지친 페미니스트는 늘 있었는데, 왜 최근의 지친 페미니스트에 주목해야 하며, 이 현상을 ‘번아웃’이라는 용어를 통해 설명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번아웃’이 현재의 사회상을 드러내고, 강남역 이후의 페미니스트들이 어떤 담론적 배경 위에서 살아가는지, 이 시기의 페
미니즘 운동이 어떤 사회 구조 위에서 펼쳐져 왔는지 읽을 수 있게 하는 키워드이기 때문이다.
번아웃 증후군은 ICD-11에 등록된 정신의학 용어임에도 대중 사이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번아웃’이라는 말을 포함한 기사 수는 2011년 37건, 2014년 311건, 2020년 670건, 2021년 867건4)으로, 이 말이 한국 사회에서 2014년을 기점으로 많이 사용되기 시작했고, 2020~2021년에 그 사용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번아웃 증후군이 스트레스 상황에서 무언가를 위해 계속 노력하다가 지친 상태를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됨을 고려할 때, 이는 한국 사회에 신자유주의적 자기착취가 만연하며, 우리가 치유 문화의 영향 아래서 부정적인 감정 상태를 정신의학적 언어로 표현하는 데 익숙하다는 의미다.
페미니스트들의 곤경을 ‘번아웃’을 통해 들여다본다는 건 그들의 삶이 부정적인 감정을 빨리 치유해서 생산성을 낼 수 있는 인적 자원으로 돌아가기를 요구하는 시대(일루즈, 2010) 속에 있고, 페미니즘 운동도 이와 무관할 수 없음을 드러낸다.
따라서 ‘번아웃’은 페미니즘과 연관된 부정적인 상태를 사회적으로 통약 가능한 장에서 표현하는 언어적 기표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번아웃’이 의료적 정의뿐 아니라 지친 상태를 다양하게 포괄하여 사용되는 만큼(「한국일보」, 2020.11.17.),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도 그러하다.
페미니스트들이 호소하는 ‘번아웃’ 중에는 정신의학적 기준에서 우울증에 부합하는 상태도 있고, 감정적 언어로 독해되지 못한 신체적 상태도 있다.
이 기표를 들여다봄으로써, 우리는 강남역 이후 페미니즘에 어떤 기대가 들어있었는지, 이 운동에 참여한 페미니스트들은 어떤 사회적 조건에서 페미니즘을 어떻게 생각하며 운동에 참여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구조적 조건 속에서 좌절되었는지 알 수 있다.
그를 통해 최근의 페미니즘 운동이 어떤 정치학을 둘러싸고 전개됐으며, 그 속에서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는 개인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그것이 다시 페미니즘 운동에 어떤 흐름을 만들어내는지 설명할 수 있다.
한 가지 눈여겨볼 부분은 페미니스트들이 성차별이나 가부장제가 아니라 페미니즘 때문에 ‘번아웃’을 겪는다고 호소한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이 페미니스트에게 안식처가 아니라 피로감을 유발하는 꺼리가 된다는 것은 페미니스트 공동체5)나 여성들만 모인 공간에 대해 유토피아적인 상상이 공유되는 시대에 쉽게 말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그러나 페미니스트들은 ‘완벽한’ 페미니스트가 되지 못해 검열당하는 데 지쳤고, 페미니스트끼리 싸우는 데 지쳤고, 다른 페미니스트에게 상처받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이 페미니즘 때문에 ‘번아웃’ 왔다는 말로 호소됐을 때 검열과 싸움 대신 연대하고 공감해야 한다는 반응이 힘을 얻고, 발화자는 페미니즘을 ‘멈출 수 있게’ 된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페미니즘 ‘번아웃’ 관련 글과 유튜브 제작자의 글에 대한 반응 역시 페미니스트끼리 그만 싸우자는 내용, 페미니즘 운동은 장기전이니 쉬고 스스로 돌보아야 한다는 내용이 많다.
다시 말해, ‘번아웃’은 페미니스트라면 어떠어떠해야 한다는 기대와 요청에서 잠시 멀어져 페미니즘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어떤 페미니스트로 살아갈 것인지 생각하게 하는 효과를 지닌다.
이러한 기대와 요청, 멈춤을 포착하기 위해, 본고는 반페미니즘이 아니라 페미니즘 때문에 ‘번아웃’이 왔다고 하는 사례에만 주목할 것이다.
강남역 이후, 페미니스트들이 호소하는 ‘번아웃’은 어떤 상태인가?
페미니즘 운동 내부에서 페미니스트들을 ‘번아웃’되게 만드는 구조는 무엇인가?
이 ‘번아웃’은 페미니즘 운동에 어떤 영향을 끼치며 페미니스트들은 ‘번아웃’을 어떻게 통과하는가?
이러한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본고는 페미니스트들이 고통을 느낀 경험을 가시화함으로써 이를 공적인 영역으로 이동시키고, 이 고통의 사회화를 통해 앞으로의 페미니즘 운동을 어떤 조건 속에서 지속해나가면 좋을지 고민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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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 별도 첨부
출처 : 한국여성학 제39권 4호 (2023년) p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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