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윤리적 고투 과정으로서 임신중지: 한국 가톨릭 신자들의 경험을 중심으로
페이지 정보
작성자 종교와젠더연구소 작성일24-09-13 15:25 조회284회 댓글0건첨부파일
- 여성의 윤리적 고투 과정으로서 임신중지 한국 가톨릭 신자들의 경험을 중심으로.pdf (738.4K) 0회 다운로드 DATE : 2024-09-13 15:25:57
본문
여성의 윤리적 고투 과정으로서 임신중지: 한국 가톨릭 신자들의 경험을 중심으로
강석주(서울대학교 여성연구소 객원연구원)
| 목차 |
Ⅰ. 여는 말
Ⅱ. 선행연구 검토
Ⅲ. 연구방법과 대상
Ⅳ. 임신갈등 상황 해결의 책임
Ⅴ. 자기통합을 통한 사회적 주체되기
Ⅵ. 맺는 말
| 초록 |
한국에서 낙태죄가 실효된 지 4년차에 접어들고 있지만 아직 임신중지가 개별 여성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인지 알려진 바는 거의 없다.
이 연구는 현상학적 질적 연구방법을 통해 여성들의 경험을 직접 조사하였고, 가톨릭 신자들의 경험을 우선 탐구하였다.
이를 통해 임신중지가 여성 주체에게 성찰성과 책임성을 수행하도록 만드는 윤리적으로 중요한 사건임을 주장한다.
연구참여자 여성들은 임신갈등 상황에서부터 자신 앞에 놓인 긴박한 문제를 책임감 있게 직면하고 태아 생명을 포함하여 남성 파트너와 관계의 질, 가용한 자원의 범위, 자기 생애기획 등을 종합적으로 숙고한 뒤 최선의 판단으로서 임신중지를 결정하였다.
이들에게 임신중지는 삶의 한 시기 우발적으로 겪고 마는 부정적 사건이 아닌 자아성찰의 성실한 과정을 통해 자기통합을 이루게 만드는 중요한 계기였다.
또 재생산적 신체를 갖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자신의 여성됨을 깊이 이해하게 만들어준 기회였으며, 다른 여성들의 재생산 활동에 관심을 갖고 관련 돌봄을 실천하게끔 이끌었다.
이 연구는 여전히 침묵으로 남아 있거나 흔히 비윤리적인 것으로 상상되는 임신중지 경험을 여성의 윤리적 고투 과정으로 전유했다는 의의가 있다.
여성이 자기 삶 속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윤리적 질문들을 외면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풍부한 언어로 담아낼 사회ㆍ학술적 접근은 앞으로 더욱 많이 필요하다.
주제어: 임신중지, 여성 경험, 윤리적 고투, 재생산 실천, 자기통합성
Ⅰ. 여는 말
지금 당장 아이를 갖겠다고 준비하는 여성이 아닌 한, 성관계를 하는 이성애자 여성이라면 임신갈등1) 상황과 임신중지 필요성에 직면할 리스크는 그녀 삶 속에 거의 항상 존재하는 것이다.
피임법이 발전되어 왔음에도 아직까지 100% 완벽하고 안전한 피임이란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2)
이에 임신중지는 여성의 삶에서 언제나 일어날 수 있지만3) 그 구체적인 이야기와 목소리는 잘 들을 수 없다.
한국에서 임신중지 경험에 대한 탐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대체로 정부출연 연구기관들의 실태조사 형태로 이뤄져 왔다.
때문에 여성의 경험을 듣고자 노력했던 경우에도 그 경험에 대한 해석이 법ㆍ제도적 맥락에 의해 규정되는 경향을 띨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불충분한 가시성 및 특정 목적을 위해 인간의 경험을 활용하는 방식은 여성의 임신중지 경험의 의미를 계속 추상적이고 분절적으로 이해되게끔 만들며, 동시에 아직까지 ‘낙태’에 대해 작동되는 도덕적 낙인4)을 벗어날 출구가 되어주지도 못한다.
서구에서 임신중지는 1973년 미국 ‘로 대 웨이드 판결(Roe vs. Wade)’의 법적 틀 안에서 여성의 자기 몸에 대한 선택의 문제로 논의돼왔다.
‘태아 생명 대 여성의 선택’이라는 권리 이분법의 자장 안에서 여성의 자기결정 권리는 터치 받지 말아야 할 사생활의 일로 치부되기 쉬웠고 여성 개개인이 뜻밖의 임신을 마주하며 가질 수 있는 딜레마 등 여러 윤리적 고민에 대한 관심은 크지 않았다.
국내에서 임신중지는 67년간 불법이었어도 필요하면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사회적 논쟁의 대상조차 되지 않았고 인구통제를 위한 국가정책 이슈로만 다루어졌다.
2010년 ‘프로라이프 의사회’5)가 촉발시킨 ‘낙태 단속’ 국면을 계기로 임신중지가 실질적인 ‘사회 문제’가 되면서 국가는 ‘낙태 처벌’을 저출산 극복 방편의 하나로 삼고자 했다.
당시는 산부인과 병원들이 임신중지 비용을 위험부담금 격으로 기존의 10배 가까이 올리고 헌법재판소도 ‘낙태죄’가 합헌이라 판결했지만(2012년), 2015년 이후 대중 페미니즘의 폭발적 성장 흐름 위에서 ‘낙태죄 폐지’는 여성운동의 중심 의제가 될 수 있었다.
2016년 10월부터 수많은 시민들이 거리에 나와 여성의 성과 재생산 실천에 대한 국가 통제의 철폐를 주장했고, 결국 2019년 4월 ‘낙태죄’가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는 판결을 이끌어냈다.
최근까지 국내 여성운동과 페미니즘은 여성 몸에 대한 가부장적 억압에 맞서 임신중지를 여성의 권리, 재생산 건강, 섹슈얼리티 실현의 이슈로 자리매김하는 데 전력을 다해온 한편, 여성들이 임신중지 경험을 통과하며 겪는 내적 갈등의 내용과 이를 해결해가는 구체적 과정에까지 주목할 여력은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임신은 여성이 태아와 한 몸을 공유하는 만큼 여성으로 하여금 굉장히 밀접한 상호의존성을 경험하게 만드는 윤리적 사건이다.
임신중지 또는 유지의 결정은 어떤 방향의 것이든 그 결정을 돌이킬 수 없다는 점에서 인간관계 내의 책임과 돌봄의 문제들을 극적으로 심화시킨다(길리건, 1997: 206).
태아와의 관계뿐 아니라 가족 및 친족에 대한 고려를 포함하여 여러 중요한 존재와 상황을 동시에 종합적으로 판단함은 임신한 여성이 처한 필연적 조건이다(하정옥, 2010: 27).
이러한 내용은 2019년 4월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요지에도 담겨 있다.
임신중지가 인간 존엄성에 터 잡고 있는 주제이며, 여성이 자신의 인생관ㆍ사회관을 바탕으로 자신이 처한 신체적ㆍ심리적ㆍ사회적ㆍ경제적 상황에 대한 깊은 성찰과 고민의 결과에 입각한 ‘전인적(全人的) 결정’을 내린다고 쓰고 있는 것이다(「형법 제269
조 제1항 등 위헌소원」). 추가로 지적돼야 할 것은, ‘깊은 성찰’이란 임신중지에 이르는 과정에서 끝나지 않으며 여성들이 임신중지 이후에도 그 경험이 발생시키는 다양한 내적 고민과 딜레마를 개인적ㆍ사회적 상황 속에서 직면하게 되는 가운데 이와 매우 분투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서구의 여성 윤리학자들은 임신중지 윤리(abortion ethics)의 대부분을 구성해온 기존 ‘생명 윤리’ 담론이 여타의 도덕 가치들을 태아 출생이라는 단일 원칙에 복종하게 만들면서 여성의 희생을 미덕이라 전제해 온 관행이 윤리적 이치에 맞지 않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여성의 임신중지 경험과 관련한 윤리적 관심의 초점이 되어야 하는 것은 오히려 다음의 사항들이어야 한다고 말해왔다.
임신갈등 상황에서의 다양한 조건과 숙고의 내용, 임신중지 맥락과 이유, 임신중지와 연결된 인생의 다른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성찰, 여성들이 맺고 있는 관계의 질과 진실성의 문제, 이 때 발생되는 책임의 의미와 내용이 무엇인지를 살피는 것이 중요한 윤리적 문제라는 것이다(Gilligan, 1982; Hursthouse, 1991; Porter, 1994; Shrage, 1994; Hogan, 2007; Harrison, 2011).
이 연구에서는 여성 개개인이 임신중지라는 사건을 통과하며 생애 안에서 지속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고투와 성찰의 내용을 직접 포착하고, 이를 드러내는 과정에서 여성들의 윤리적 주체성과 능동성을 확인한다.
이를 통해 지금도 한 편에서 계속 건재한 비난과 편견들, 즉 부도덕하고 문란하며 이기적이고 경솔한 일부 여자들의 일로 임신중지를 상상하는 일각의 시선에 정면으로 도전하고자 한다.
.
.
.
* 전문 별도 첨부
출처 : 한국여성학 제40권 1호 (2024년) pp.1∼34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