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대도시 가치조사(2): 출산과 가족에 대한 서울 청년의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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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3-07-27 10:34 조회857회 댓글0건본문
특별기획: 아시아 대도시 가치조사(2)
출산과 가족에 대한 서울 청년의 인식
한국의 출산율 하락 추세가 더욱 심해져 합계 출산율 0.7대에 이르렀고 이미 인구의 자연감소가 시작되었다. 인구감소로 인한 부정적 영향이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 한국사회는 대책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의 심각한 저출산에 대해 여러 전문가들이 다양한 원인을 진단하고 대책을 제시하였으나 출산율을 올리기는커녕, 저출산 추세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인간 사회는 진공 속에 존재하지 않기에 사회문제에 있어 원인을 명확히 찾는 것은 극히 어렵다. 또 문제를 단숨에 해결할 유일한 해결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본 글에서는 2022년 수집된 아시아 대도시 가치조사 데이터에 나타난 서울의 청년 세대의 결혼과 가족, 그리고 자녀에 대한 인식을 타 도시의 청년들과 비교하여 살펴볼 것이다. 이를 통해 그동안 저출산의 원인으로 지목된 가족주의 가치와 부양의 부담이 다른 도시와 비교하여 얼마나 심각한지 살펴본다.
저출산이라는 증상: 실패한 한국사회
저출산은 그 자체가 질병이라기보다는 현상이며 증상(Symptom)이다. 발열처럼 신체의 면역체계가 외부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고열이 아니라면 해열제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 영유아 사망률이 높고 생산성이 낮은 시대였다면 국가의 유지를 위해 높은 출생률이 필요하겠지만 근대 이전보다 낮은 출산율 자체가 사회적 존립을 위협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현재 한국사회의 극도로 낮은 합계 출산율은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며, 단순히 여성의 사회진출의 증가나 경제발전으로 인한 결과로 여길 수 없는 정도로 낮다.
‘집단 자살’이라고까지 묘사되는 초저출산율은 인구자연감소를 야기하여 이미 지방 소멸과 노동력 부족 등 한국 사회에서 약한 고리부터 인구감소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한국정부는 지난 15년간 280조의 예산을 사용하고, 대통령직속 위원회를 구성하고 TF팀을 조직하는 등 적극적으로 저출산대응을 해왔다고 알려져 있다. 280조 원이라는 막대한 예산 중 직접적인 저출생 대책에 사용된 부분은 극히 일부라는 비판을 차지하고서라도 지난 15년간 우리는 저출생 증상을 멈추기는커녕 출산율 감소의 속도조차 늦추지 못했다는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 글에서는 아시아 대도시 가치조사 중 서울에 거주하는 청년세대(18-30세)의 가족과 돌봄에 대한 인식을 살펴본다. 한국 청년세대가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이유로 거론되는 부분을 다른 도시의 청년들과 비교함으로써 출산과 가족에 대한 한국 청년세대의 인식을 입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결혼을 위한 경제적 준비의 필요성은 타도시에 비해 높지 않아
그동안 한국사회는 경제적인 안정이 결혼의 선결조건이며 이에 대한 기준이 높아 결혼을 기피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서울 청년들이 결혼을 위해 경제적 안정, 좋은 집을 갖추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다고 느끼는지 알아보았다. 서울청년 80~90%가 결혼 전 경제적 조건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에 동의하였는데 안정된 직업의 중요성은 91%, 경제적 안정은 89%가 동의한 반면, 좋은 집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에는 78%만이 동의하였다.
그런데, 서울 청년들이 다른 대도시 청년들보다 결혼 전 경제적 조건을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서울청년들 중 괜찮은 집을 결혼 전 갖추어야 하는 것에 동의한 비율은 15개 대도시 중 3번째로 낮았다. 연구 대상 도시들 역시 서울만큼, 혹은 서울보다 주거 비용이 높다. 서울 청년들이 유독 결혼 전에 갖추어야 할 경제적 조건으로 안정적 주택을 중요하게 인식하지 않는 것으로 응답한 걸로 보아 서울의 높은 부동산 가격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겠다.
자녀를 기쁨보다 부담으로 인식, 노후 보탬 기대 안해
자녀를 갖는 것이 경제적 부담이 된다는 것에 동의한 서울 청년은 82%로 다른 대도시 청년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다. 또 79%가 자녀가 태어나면 부모의 자유가 제약되며, 80%가 자녀를 가지면 부모 중 한 명은 커리어를 이어나갈 기회가 제한된다고 생각하였다. 특히 경제적 부담과 커리어 제약에 대한 동의 정도는 타 대도시의 동의비율에 비해 20-40%이상 높았는데, 자녀로 인한 경제적 부담을 느끼는 정도가 그만큼 크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자녀에 대한 긍정적 인식과 노후에 자녀로부터 경제적 도움에 대한 기대는 타도시 청년들에 비해 크게 낮았다. ”자녀는 인생의 가장 큰 기쁨이다“에 동의한 서울 청년은 58%로 도쿄 청년(53%) 다음으로 낮은 비율이었으며 타도시 청년들의 77~96%가 이 문항에 동의한 것에 비하면 서울과 도쿄 청년들의 자녀에 대한 긍정적 인식은 크게 낮았다.
자녀에 대한 경제적 부담에 동의한 비율이 자녀를 인생의 가장 큰 기쁨에 동의한 비율보다 더 높은 곳은 서울과 도쿄 뿐이었는데 자녀의 경제적 부담에 동의한 비율(82%)과 긍정적 인식에 동의한 비율(58%)의 차이는 도쿄청년(각, 53%과 64%)에 비해 훨씬 컸다. ”성인 자녀는 노후에 큰 보탬이 된다“에 동의한 서울청년은 39%로 역시 가장 낮았다.
15개 대도시 중 서울과 도쿄 청년은 자녀에 대한 긍정적 인식보다는 부담을 크게 느끼고 있으며. 특히 서울 청년들은 자녀에 대한 효용보다는 비용에 동의하는 비율에 비해 크게 높았다.
가족 상호 지원의 기대: 다른 대도시에 비해 높지 않아
다음으로 가족 간 상호 부양에 대한 기대를 알아보았다. ”성인자녀는 노부모의 생활비 일부 혹은 전부를 지원하여야 한다“, ”부모는 자녀의 교육을 위해 경제적 능력의 최대치만큼 지원해야 한다“, ”부모는 자녀가 손자녀를 낳으면 양육에 도움을 주는 것이 좋다“ 세 가지 항목에 대한 동의비율이다.
서울 청년은 성인자녀의 노부모의 생활비를 부담해야 한다는 데에 46%만이 찬성하여 도쿄(31%) 청년 다음으로 낮았으며 노부모의 손자녀 돌봄에 대한 기대는 39%만이 동의해 타이페이(20%), 도쿄(25%) 청년 다음으로 낮았다. 또 ”부모는 자녀의 교육을 위해 최대한의 지원을 해야 한다“에는 44%만이 동의해 응답 도시 중 가장 낮았다. 서울 청년들의 가족 간의 상호 부조에 대한 기대는 서구 대도시 등에 비해서도 낮은 편으로 나타났다.
자녀에 대한 경제적 부담: 서울만 하위계층일수록 높아
그동안 한국에서는 경쟁적 입시, 즉 자녀 교육에 투입되는 경제적 비용, 특히 사교육비 부담이 출산기피의 주요원인으로 지목되어 왔다. 아시아 대도시 가치조사에서도 서울 청년들이 자녀를 기쁨으로 받아들이기보다 경제적 부담으로 여기는 비율이 타도시 청년들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자녀로 인해 경제적 부담을 가장 많이 느끼는 계층은 누구일까? 언뜻 생각하면 경제적으로 어려울수록 자녀는 경제적 부담으로 인식할 것이라 예상하기 쉬우나 조사결과에 나타난 것처럼 서울을 제외한 대부분의 도시에서는 상류층일수록 자녀는 경제적 부담이라는 문항에 동의하는 응답이 많았다. 이유는 여러 각도로 짐작해 볼 수 있다. 먼저 조사 대상이 된 도시들은 각 국가에서 엘리트 집단이 거주하는 도시로 교육열 또한 높다. 뉴욕이나 싱가포르, 뉴델리, 베이징 등에서 초등학교 혹은 그 이전부터 시작되는 입시경쟁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도시들은 이르면 초등학교(primary school) 혹은 중등교육(secondary school)부터 치열한 입시가 시작되는데 아이가 어릴 때부터 이 과정을 준비하고 지원할 경제적 정신적 여력이 있는 가족은 일부 집단으로 한정된다. 또 이른 연령부터 시작된 여러 단계의 입시제도는 학생들의 입시 스트레스를 가중시킬 수 있지만 역설적으로 일찍 탈락한 학생과 가족은 경쟁에서 벗어날 수 있다.
반면 한국의 입시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학입시를 의미하고 입시의 규칙은 엄격히 규격화되어 있어 사교육의 범위가 수능과 내신으로 상당히 한정되어 있다. 여기에 뿌리깊은 학벌주의가 강력한 한국 사회에서 대학입시는 양질의 직업을 갖는게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견고한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의 전환을 극히 어렵게 만들어 사다리를 쉽게 오를 수 없다. 경제적 여력이 없는 저소득층 부모도 자식의 입시를 등한시할 수 없는 이유이다.
한국사회의 지속가능성
2022년 아시아연구소와 한국리서치가 수행한 아시아 대도시 가치조사에서 서울 청년들은 다른 도시에 비해 결혼 선결조건으로서의 경제력 기준은 높지 않았다. 그러나 자녀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극히 낮았고, 이에 비해 자녀로 인한 경제적 부담을 훨씬 크게 느끼고 있어 긍정인식과 부정인식 차이가 15개 도시 중 가장 컸다. 특히 도쿄를 제외한 모든 도시의 청년들이 자녀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부정적 인식에 비해 크게 높았기에 서울 청년들의 인식은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서울 청년들은 15개 도시 중 자녀를 가짐으로써 개인의 자유와 직업의 기회가 제약받는다는 의견에 가장 많이 동의하였는데, 막상 자녀양육에 노부모의 도움을 기대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자녀가 노후에 보탬이 되리라는 기대도 극히 낮았다. 즉, 자녀로 인한 비용은 크게 느끼지만 효용은 낮게 평가하는데, 출산과 육아라는 어려운 과정에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특이한 점은 서울만이 사회경제적 계층이 낮을수록 자녀에 대한 경제적 부담을 크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특유의 학벌주의로 인해 대학 입시 결과로 인한 직업 경로가 결정되는 정도가 심하고 경직된 노동시장으로 인해 경로 수정이 극도로 어려운 한국사회에서, 대학 입시라는 경쟁에 모든 계층의 가족이 뛰어든 결과로 보인다.
그러나 경제적 부담을 모두 입시 경쟁을 위한 사교육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2023년 3월 교육부가 발표한 “초중고사교육비 조사결과”에 따르면 2022년 총 사교육비는 전년에 비해 10%이상 증가하여 역대 최고액수를 기록하였다. 이중 초등학생의 사교육 참가율은 85%로 고등학생(66%)의 참가율에 비해 크게 높았다. 이는 초등학교의 공적 돌봄이 극히 부족한 한국사회에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사교육은 대부분 돌봄의 수요를 반영한 것이다. 게다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조부모의 도움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극도로 부족한 공적 돌봄이 사교육 수요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 것으로 생각된다.
조사에 나타난 서울 청년들의 인식은 충격적이다. 서베이 방법을 사용하여 국가 비교연구를 수행할 때 응답 패턴에 체계적인 문화적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한계를 인정한다 해도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인식이 극단적으로 낮은 저출산율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서울의 청년들은 자녀로 인한 정서적 이득보다 사회경제적 비용을 극히 높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비용을 치를 만한 가족 및 사회적 부양에 대한 믿음도 낮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사회의 극단적 저출산이 비단 시민들의 인식만으로 야기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동일한 현상이나 제도에 대한 인식은 사회마다 차이가 있다. 구조적 문제와 더불어 그 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을 함께 살펴봄으로써 사회의 구성원들이 개별 요소들에 대한 인식 정도의 를 차이를 가늠한다면, 여러 요소 중 주된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을 위한 다양한 정책적 대안의 우선 순위를 정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출처: 아시아 브리프 2023학년도 제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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