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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대도시 가치조사(3) :집단적 자기애와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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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3-07-27 10:39 조회84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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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아시아 대도시 가치조사(3)
집단적 자기애와 민주주의

 

하상응 (서강대학교)

최근 심리학계를 중심으로 민주주의의 퇴보, 포퓰리즘의 득세, 권위주의로의 회귀와 같은 거시적인 정치 구조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집단적 자기애(collective narcissism)라는 개념을 활용하고 있다. 집단적 자기애는 자신이 소속감을 느끼는 집단이 폄하되거나 무시당하는 것을 참지 못하고 공격적으로 대응하는 심리기제를 의미한다.

 

집단적 자기애 정도가 높은 사회에서는 갈등의 정도가 심각하고, 폭력과 테러의 발생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할 수 있다. 15개국 주요 도시 시민들을 대상으로 수행한 설문조사 결과, 집단적 자기애 정도가 높은 도시들이 최근 민주주의가 쇠퇴한 나라 혹은 권위주의 국가에 집중되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집단적 자기애와 민주주의 정도 간의 상관관계를 보다 명확하게 규명하는 작업은 최근 심각하게 논의되고 있는 권위주의적 민주주의와 포퓰리즘 현상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줄 것이다.

 

<그림 1> 이스탄불 집회에 참석한 에르도안 대통령 지지자들
출처: https://static.independent.co.uk/


정치 갈등과 양극화


21세기 들어와서 가치관, 문화, 정체성과 관련된 사회과학 논의가 눈에 띄게 활발해졌다. 이러한 움직임은 사회의 급속한 변화와 맞물려 있다. 자유무역의 확산으로 서로 다른 문화권 간 접촉이 빈번해지고, 이민이 활성화됨에 따라 당연하게 여겨졌던 국가 정체성(national identity)이 도전받게 된 것이다. 한때 국가의 주류에 속했던 사람들이 더 이상 주류가 아닌 상황이 벌어짐에 따라, 세상을 과거로 다시 돌리려는 반발이 생기기도 한다. 구체적으로 인종, 종교, 성지향성, 종교에 기반한 정체성을 둘러싼 사회 갈등이 첨예해졌다. 차별받아왔던 소수 인종, 이질적인 종교, LGBTQ+에 대한 포용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대해 주류에 속한 사람들은 자신의 표현과 행동의 자유를 침해하지 말라는 불만으로 답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사회 갈등은 집단 간 양극화(polarization)로 이어진다. 집단 간 갈등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항상 존재해 왔던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의 양극화는 한때 사회의 주류로 취급된 집단 소속 사람들이 자신을 ‘피해자’ 혹은 ‘희생자’라고 보는 경향이 강하다는 독특한 특징을 보인다. 과거의 집단 간 갈등은 스스로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다수가 열등하다고 여기는 소수를 차별하는 과정에서 비롯되었다면, 최근 관찰되는 집단 간 갈등은 목소리가 높아진 소수 때문에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가해자 취급을 받는다고 믿는 다수의 불만과 저항에 바탕을 두고 있다. 2016년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트럼프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Make America Great Again)”는 선언이 이러한 입장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트럼프의 메시지와 유사한 정치 수사(rhetoric)는 유럽을 비롯해 일부 아시아 국가에서도 꾸준히 확인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지난해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와 한국리서치가 진행한 <아시아 대도시 가치조사>에서 15개국 주요 도시의 시민들(도시별 n=700)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최근 논의되는 집단 간 갈등과 양극화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논의되는 집단적 자기애(collective narcissism) 정도의 차이를 살펴본다. 집단적 자기애는 자신이 정체성을 느끼는 집단이 폄하되거나 무시당하는 것을 참지 못하고 공격적으로 대응하는 심리기제를 의미한다. 집단적 자기애 정도가 높은 사회는 갈등의 정도가 심하고, 폭력과 테러의 위험성이 높다고 예상할 수 있다.

 

집단적 자기애


집단적 자기애는 심리학 개념인 자기애(narcissism)의 연장선상에서 살펴볼 수 있다. 자기애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1) 자신이 대단하고 엄청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자기 과신(self-aggrandization), (2) 자신이 남에게 대접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특권 의식(sense of entitlement), (3)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분노와 공격성(anger and aggression).

 

따라서 집단적 자기애 성향이 강한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이게 된다. (1) 자신이 속한 준거 집단(reference group)에 대한 과장된 긍정 인식, (2) 준거 집단이 남에게 인정받아야 한다는 신념, (3) 준거 집단이 비판받는 경우 보여주는 즉각적인 공격성, (4) 준거 집단이 항상 외부로부터 위협받고 있다는 환상, (5) 준거 집단은 완전무결하다는 믿음, (6) 준거 집단에 해를 끼친 개인 혹은 집단에 대한 과도한 복수심.

 

기존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집단적 자기애를 강하게 보이는 사람들은 집단의 영광이 곧 자신 개인의 영광이라는 태도를 보인다. 예를 들어 집단적 자기애가 강한 멕시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겠다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계획을 모욕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집단적 자기애 정도가 높은 폴란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에 팽배했던 반유대주의(anti-Semitism)를 분석한 학술서적이 폴란드인을 모욕하고 있다며 생각한다. 

 

집단적 자기애는 자신을 피해자로 인식한다는 의미에서 민족주의와는 구분된다. 민족주의자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우월성을 과시하지만 집단적 자기애가 높은 사람은 자신이 속한 집단이 무시당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집단적 자기애는 자신의 준거집단을 보호하기 위한 심리 기제로 작동하게 되고, 이에 근거한 다른 집단에 대한 편견은 복수심의 일환으로 이해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집단적 자기애가 높은 사람은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단지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한 사람 혹은 집단을 상대로 언제든지 보복 행위를 할 수 있다.

 

집단적 자기애: 도시별 비교


우선 설문 응답자들에게 자신의 준거집단이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을 던졌다. (“귀하는 다음의 집단 중 어느 집단에 가장 강한 소속감을 느끼십니까?”) 선택지로는 국가, 가족·집안, 종교집단, 학교동창, 직업, 기타가 제시되었다. 종교, 직업, 기타를 선택한 경우 응답자가 정보를 직접 기입하도록 하였다.

 

그 다음, 집단적 자기애를 측정하기 위해서 9개의 진술들로 구성된 설문도구를 사용하였다. 9개의 진술들은 각각 다음과 같다. (1) 나는 다른 사람들의 나의 집단의 권위를 인정해 주길 바란다. (2) 나의 집단은 특별한 대우를 받을 만하다. (3) 나의 집단이 합당한 대우를 받을 때까지 만족할 수 없다. (4) 다른 사람들이 나의 집단을 비난하면 화가 난다. (5) 나의 집단의 영향력이 확대되면 세상은 더 나아질 것이다. (6) 나의 집단의 성과를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지 못해도 상관없다. (7) 나의 집단의 소중함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8) 나의 집단의 진정한 가치를 남들이 오해하고 있다. (9) 나는 나의 집단이 합당한 존중을 얻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각 진술에 대한 응답은 7점 척도(‘매우 반대[0]’부터 ‘매우 동의[6]’까지)로 제시되었고 6번 진술에 대한 응답은 역코딩(reverse coding)하였다.

 

<그림 2> 가장 강한 소속감을 느끼는 집단

 

<그림 2>는 각 도시의 응답자들이 어떤 집단에 대한 소속감을 가장 강하게 느끼는지를 보여준다. 놀랍게도 서울의 경우 다른 도시에 비해 자신의 국가(대한민국)에 대해 가장 강한 소속감을 느낀다고 답한 비율이 낮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서울 응답자의 약 15% 정도가 가장 강한 소속감을 느끼는 집단으로 대한민국을 선택한 반면, 약 72%가 자신의 가족·집안을 선택한 것이다.

 

도쿄와 파리의 경우에만 과반수 이하의 응답자가 가장 강한 소속감을 느끼는 집단으로 자신의 국가를 선택했을 뿐, 나머지 도시에서는 최소 50% 이상의 응답자들이 자신의 국가를 가족·집안보다 우선시한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강한 소속감을 느끼는 집단으로 국가를 선택한 비율이 60%가 넘는 도시는 베이징(63%), 하노이(64%), 뉴델리(76%), 예루살렘(71%)이 있다.

<그림 2> 가장 강한 소속감을 느끼는 집단

(2) 일부 표본 (가장 강한 소속감: ‘국가’)

(1) 전체 표본(2) 일부 표본 (가장 강한 소속감: ‘국가’)

<그림 3> 집단적 자기애: 도시별 평균값


<그림 3>은 각 도시별 집단적 자기애 지수의 평균값을 보여준다. (1)에서는 전체 표본을 사용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고, (2)에서는 가장 소속감을 강하게 느끼는 집단을 ‘국가’라고 답한 응답자만을 활용한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우선 확인할 수 있는 흥미로운 점은 집단적 자기애 지수의 평균값이 대체로 높게 형성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최댓값이 6점인 7점 척도임을 고려해 볼 때 대부분의 도시에서 평균값이 4점대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집단적 자기애 지수의 평균값이 높은 도시는 앙카라(튀르키예)로 5.1점(전체 표본 기준)에 달한다. 동시에 특이한 사실은 서울 응답자들의 집단적 자기애 정도가 상대적으로 매우 낮다는 것이다. 서울 응답자의 평균값은 3.5점으로 도쿄(3.4점)와 싱가포르(3.8점)와 더불어 평균값이 가장 낮은 집단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패턴은 가장 소속감을 강하게 느끼는 집단을 국가라고 답한 응답자로 한정시켰을 때에도 유사하게 확인된다.

 

집단적 자기애와 민주주의


집단적 자기애 정도가 가장 높은 순서대로 몇 도시를 나열하면 앙카라, 뉴델리, 하노이, 리야드, 자카르타, 베이징이다. 공교롭게도 이 도시들이 위치한 국가들은 민주주의가 쇠퇴한 국가들(튀르키예, 인도, 인도네시아) 혹은 권위주의 국가들(베트남, 사우디아라비아, 중국)이다. 이는 민주주의가 공고하지 않은 국가(를 대표하는 도시)에 사는 사람이 민주주의 사회에 사는 사람에 비해 집단적 자기애 정도가 높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그림 4> 집단적 자기애와 민주주의 간의 상관관계

 

집단적 자기애와 민주주의 간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작업의 결과가 <그림 4>에 제시되어 있다. 여기서 민주주의 지수는 The Economist Intelligence Unit(EIU)에서 매년 발행하는 국가별 민주주의 평가에서 차용하였다. 민주주의 지수는 국가 단위, 집단적 자기애 지표는 도시 단위이기 때문에 분석단위가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추측한 대로 집단적 자기애 평균값이 높을수록 민주주의 지수가 낮은 상관관계(r=-0.548)를 보임을 확인할 수 있다.

 

원인 결과 관계를 명확하게 밝히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작업이 필요하지만, 이러한 탐색적 분석 결과는 최근 심각하게 논의되는 민주주의 퇴행 현상과 집단적 자기애 성향의 증가가 서로 맞물려 돌아감을 시사해 준다. 사회 주류에 속했던 사람들이 자유무역과 이민을 통한 인구 구성 및 국가 정체성 변화에 적응을 하지 못하면서 자신을 피해자라 규정하고, 전통적인 질서와 가치관을 되살리려는 과정에서 집단적 자기애가 배양되었을 수 있다.

 

집단적 자기애가 높은 사람들은 무시당하는 것을 싫어한다. 따라서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주겠다고 약속하는 권위주의적인 정치인(트럼프, 에르도안, 모디 등)에게 쉽게 동조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마도 집단적 자기애가 높은 사람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과 제도의 변화를 지지하는 동시에 국가 내 소수자들에게 국가 재원을 배분하는 일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포퓰리스트로서의 모습을 보일 수 있다. 후속 연구에서 치밀하게 확인해야 할 내용이다.

 

출처: 아시아 브리프 2023학년도 제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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