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연구 개발 지출은 높은 정부 비율을 특징으로 한다. 2020-2021 회계연도 기준으로 인도 연구 개발 총지출의 43.7%를 중앙정부가, 6.7%를 주 정부가 담당했다. 민간 기업이 36.4%, 공기업이 4.4%, 고등 교육 기관이 8.8%를 차지했는데 , 중앙정부, 주 정부, 공기업을 더한 공공 분야의 지출이 54.8%를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인도 고등 교육 연구 개발은 주로 IIT 같은 국공립 대학이 맡고 있다. 중앙정부의 연구 개발 지출 중 30.7%가 국방 분야, 18.4%가 우주 산업 분야, 11.4%가 핵 에너지 분야 연구 개발에 사용된다. 민간 기업과 공기업의 산업 분야 연구 개발 비용 역시 대부분 제약, IT, 교통, 방위 산업에 치중되어 있다.
이론적으로 정부의 R&D 지출 비중이 높으면 기초/공공 연구를 강화할 수 있고, 국가 전략과의 일관성을 확보할 수 있으며, 인재 양성 기반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민간에서 투자하기 어려운 우주 산업, 원자력 산업, 농업 등 분야를 안정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 한편, 기술이 연구 단계에 머무르고 산업화/상품화로 이어지지 않는 ‘R&D – 시장 단절’이 발생하기 쉽다. 또한 관료적 절차와 낮은 인센티브 구조로 인해 연구 개발이 성과 중심보다는 예산 집행 중심이 되기 쉽다. 기술의 상용화 속도가 느리고, 정부 연구 과제가 안전하고 예측 가능한 분야에 집중되기 쉬워 파괴적 혁신이 일어나기 어려운 단점도 가지고 있다.
인도 성장의 역사: 공정 특허와 제도적 공백
연구 개발 지출 이외에 인도 혁신과 관련된 두 가지 특징으로는 공정 특허 도입과 정부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대기업 중심의 경제 발전을 들 수 있다.인도가 복제약 중심으로 제약 산업을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공정 특허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1947년 독립 이후 인도는 식민지 시기 도입된 제품 특허제로 인해 다국적 제약 회사가 시장을 지배하고 약가를 높게 유지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인도 정부는 약품 접근성 확보와 자국 산업 육성을 위해 1970년에 특허법(Indian Patents Act, 1970)을 제정하여 의약품을 포함한 분야에 제품 특허를 금지하고 공정 특허만 인정하는 체계로 전환했다. 또한 식품, 의약품 등 분야의 특허 기간도 5년~7년 수준으로 줄였다. 그 결과 인도 기업은 외국의 신약을 분석해 대체 공정으로 저렴한 약을 생산할 수 있었으며, 의약품 가격이 대폭 낮아지고 국내 제약 산업을 성장시킬 수 있었다. 리버스 엔지니어링(Reverse Engineering) 능력을 확보하여 화학 합성 및 제조 기술을 빠르게 발전시킨 것도 중요한 성과다. 하지만 신약 제품에 대한 독점권이 부정되면서 연구 개발 투자 유인이 크게 약화되었고, 인도 제약 회사는 제품 개발 능력을 기르지 못하고 모방과 개량 중심의 혁신에 집중하게 되었다. 다국적 제약사의 인도 진출과 기술 이전 역시 이루어지지 않았다(Chaudhuri, 2005). 2005년 인도가 WTO 회원국으로 TRIPs 협정을 준수하기 위해 특허법을 대규모 수정하면서 공정 특허가 다시 제품 특허로 변경되었지만, 인도 제약 산업은 여전히 복제약 중심의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인도는 릴라이언스, 타타, 아디트야 비를라 등으로 대표되는 대기업 중심으로 경제를 성장시켰고, 이는 현재도 진행형이다. 이들 기업 집단은 미성숙한 금융시장, 불완전한 법 규제 체계, 낮은 정보 투명성으로 대표되는 제도적 공백(institutional voids) 속에서 시장 기능의 대체자(institutional substitute)로 성장했다(Khanna & Palepu, 1997, 2010). 이들은 내부 자본 조달, 인력 양성, 계열사 간 거래 네트워크를 통해 외부 제도의 결핍을 보완하며 규모를 확장했고, 결과적으로 인도 산업의 핵심 주체로 자리 잡았다.
모키어(Mokyr, 1992)는 기술 진보가 단순한 지식 축적이 아니라, 새로운 아이디어가 사회적으로 수용되고 제도적으로 확산되는 환경에서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도의 혁신은 정부 주도의 강한 R&D 체계에도 불구하고 기술·시장·사회 간의 연결이 충분히 작동하지 않는다. 지식은 빠르게 생산되지만 활용과 확산의 속도가 느리고, 연구 개발이 산업화로 이어지지 않는 구조가 지속된다. 정부 지출 비중이 높고 연구 개발이 특정 분야에 집중되면서, 혁신이 폭넓은 산업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분야에 머무르는 경향이 있다.
아기옹(Aghion)과 하윗(Howitt)의 이론에 비추어 보면, 인도의 혁신 체계는 경쟁과 시장 진입의 역동성이 부족하다. 공공 부문과 대기업 중심의 R&D 구조는 안정적 성장에는 기여했으나, 새로운 기업의 도전과 기술의 파괴적 전환을 제약한다. 공정 특허 제도와 제도적 공백 속에서 형성된 대기업 중심의 산업 구조 또한 혁신의 다양성과 창조적 파괴를 약화시켰다. 결과적으로 인도의 혁신은 지식의 축적은 활발하지만, 경쟁과 진입을 통한 파괴적 혁신의 순환이 미약한 점진적·보존적 혁신 체제로 남아 있다.
맺음말: 검소한 혁신(frugal innovation)을 넘어 창조적 파괴로
여러 한계를 딛고 인도가 변하고 있다. 인도 혁신을 대표하는 개념으로 검소한 혁신(frugal innovation)이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다. 검소한 혁신은 인도의 자원 제약 환경에서 등장한 저비용·고효율 혁신 모델로, 최소한의 자원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기술과 제품 개발을 의미한다. 이 개념은 2008년 타타 자동차의 초저가차 나노(Nano) 출시 이후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기 시작했고, The Economist (2009)의 “frugal innovation” 보도와 Radjou, Prabhu, Ahuja(2012)의 저서 Jugaad Innovation을 계기로 확산되었다. 주가드(Jugaad)는 힌디어로 ‘임기응변’ 또는 ‘즉흥적 해결책’을 뜻하며, 복잡한 제약을 창의적으로 우회하는 인도 식 실용적 사고를 가리킨다.
인도의 검소한 혁신과 주가드는 자원 제약 속에서도 창의적 문제 해결과 사회적 포용을 이끌어낸 실용적 혁신 모델로 높이 평가되었으나, 최근 인도 학계와 정책 담론에서는 이를 넘어서는 새로운 혁신 패러다임이 요구되고 있다. 모키어의 관점에서 보면 검소한 혁신은 즉흥적 창의성은 높지만 지식의 축적과 제도적 확산이 약해 지속 가능한 기술 진보로 이어지지 못하며, 아기옹과 하윗의 창조적 파괴 이론으로 보아도 경쟁과 진입의 순환을 유발하지 못한다. 이러한 한계를 인식한 인도는 “Beyond Jugaad”, “From Frugal to Frontier Innovation”이라는 구호 아래, 저비용 중심의 생존형 혁신에서 벗어나 제도화된 지식 생산과 파괴적 혁신이 공존하는 체계적 혁신 구조를 구축하려 하고 있다. 이는 인도가 단순히 ‘값싸게 잘 만드는 나라’를 넘어, 지속 가능하고 제도 기반의 혁신 국가로 전환하려는 방향성을 보여준다.
인도의 혁신 현황은 글로벌 혁신 지수 순위 상승과 ICT 서비스, 유니콘 기업 가치 등 혁신 산출 부문에서의 높은 효율성이라는 뚜렷한 장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는 낮은 R&D 지출, 정부 주도 및 대기업 중심의 구조적 한계, 그리고 부족한 혁신 투입이라는 약점 위에 놓여 있다. 과거의 검소한 혁신(frugal innovation) 모델을 넘어, 인도가 창조적 파괴와 지식의 제도적 확산을 위한 체계적 혁신 구조를 구축할 수 있을지, 그 변화의 방향과 결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저자 소개: 맹현철(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이다. 홍콩과학기술대학교(HKUST)에서 마케팅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인도 방갈로르 인도경영대학(IIM Bangalore)에서 약 6년간 마케팅 조교수로 재직하였다. 2024년부터는 한국을 기반으로 인도와 마케팅을 아우르는 다양한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인도 게임 및 e스포츠 산업, 인도 소비시장, 對인도 개발협력, 인도 미디어·콘텐츠 산업, 인도 고등교육 및 R&D 시스템이며, 관련 주제로 다수의 논문과 연구보고서를 집필하였다.)
출처: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아시아브리프, 2025년 18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