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중 참여를 통해 본 지장신행 양상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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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5-06-10 15:10 조회90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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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 참여를 통해 본 지장신행 양상 연구 1-복사.pdf (3.9M) 0회 다운로드 DATE : 2025-06-10 15:10:48
본문
<초록>
본 연구는 백중 의례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지장신행자로 구분하여 고찰한 논고이다. 불교는 ‘믿는다’고도 하지만 ‘한다’라고도 한다. 신행은 그 ‘한다’ 의 불교적 표현이다. 조선후기의 불교는 억불에 의한 경제적 문제와 양란이 라는 정치 사회문제에 의해 토속신앙과 융합한 시기이다. 지장신앙 역시 죽 음과 관계되는 의례를 지향하며 명부세계의 주존과 시왕의 심판이라는 지옥 사상이 결합하여 불교 신앙사에 아주 중요한 체계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신앙은 한국 민속문화와 습합하여 불교민속 혹은 민속불교라는 이 름으로 주체가 다른 종교행사로 거듭났다. 여기에는 참여라는 신행이 따른 다. 부처님오신날 다음으로 사찰에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이는 불교행사는 백 중날이다. 『우란분경』(盂蘭盆經)에서 비롯된 구모시식이 일반인에게는 선망 조상구제 행사라는 인식으로 정착하였기 때문이다. 그런 인식은 사찰에서 행 해지는 불교민속의 백중행사와 무속에서 치러지는 민속불교라는 이중 형태로 나타난다.
같은 날 치러지는 행사에 주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참여, 즉 신행에 방점을 찍기 때문이다. 이렇게 여기게 된 데에는 민속불교가 뿌리 내 린 조선후기의 정치상황과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백종(百種)이라는 전통 풍속 이 만난 결과이다.
그러나 백중은 어디까지나 경전에 의거한 불교의례이며 회향이라는 포괄적 대상을 상대로 한 대승불교의 요점이다. 따라서 사찰의 백중과 무속의 백중 의례에는 분명한 교리적 차이가 있음을 교육과 홍포를 통해 알려야 할 의무 가 따른다.
Ⅴ. 맺음말
세시풍속 백종에서 시작하여 사찰에서 선망조상 구제행사인 백중으로 자리잡은 과정을 살펴보았다. 억불숭유정책이 조선시대 내내 이어졌음 에도 지장신앙이 번창할 수 있던 이유는 효라는 유교의 명분과 불교의 무주고혼을 위한 망자천도, 49재라는 의례의 개념이 일치하였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동안 한국인의 정신적인 토양이었던 고유신앙을 포섭하여 사찰경내로 편입하면서 불교민속적인 경향을 보이기까지 하였다.
오늘날 농촌사회의 쇠퇴와 도시 중심의 생활은 농촌의 풍요를 위한 백종의 의미를 소멸하게 하였다. 대신 사찰에서 행하는 백중 의례에 참 여라는 형식의 신행이 자리잡게 된다. 백일기도, 천일기도 등 특별한 의 례 외에 일반인이 신행과 결부시킬 수 있는 행사는 백중 참여이다. 불교는 ‘믿는다’고도 하지만 ‘한다’라고도 한다. 백중참여는 한다에 방점을 찍는다. 거기에는 매일 해야 하는 신행이라는 의무감에서 벗어나 편하게 참여할 수 있는 가벼움이 있다. 거기다 선망조상과 자신의 위 무를 위하는 발원이라는 속성이 있다. 이 가벼움과 발원은 한날 한시에 수백 명이 모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백중 의례는 불교민속에 의한 공동체로서 사회적인 현상으로 안착하면서 그에 필요한 신앙행위 즉 신행을 해 나가는 구심점이다. 근래 들어 백중이 당일 행사가 아닌 칠칠재의 형식으로 입재부터 회향까지 하는 사찰이 늘어가는 추세이다. 또는 입재와 초재를 별개로 회향까지 8회에 걸쳐 치루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형식 변화는 계를 지키며 재를 행하는 동안 신행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많게는 8번, 최소한 회향의 참여로 마음속 기도로 끝나지 않고 실천하는 신행으로 발전하게 한다.
칠칠재는 지장신앙의 소의경전에서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는 교리이다. 그러므로 대중의 백중 참여는 지장신행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비록 齋를 祭와 한가지로 생각하여 재계(齋戒)를 지켜야 하는 불교 본래의 뜻이 바랬다 해도 이는 교육을 통해 바꿔나갈 수 있다. 지장신앙은 정체 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역동적인 신앙이다. 음력에 맞춘 재일이 퇴색해가는 요즈음의 시점에 오히려 백중은 신행으로서의 충분 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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