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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7] 조선시대 왕실여인들은 사찰의 ‘대화주’였다 / 탁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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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8-11-09 12:30 조회2,90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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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실여인들은 사찰의 대화주였다

탁효정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과정)

 

머리말

 

광해군이 인조반정으로 왕위에서 물러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새어머니 정순왕후를 유폐시키고 배다른 동생 영창대군을 뜨거운 방에서 태워 죽이는 강상의 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결집시켜 국가를 위기에서 구해내고 중립외교를 통해 청과 명 사이의 외교에서도 성공한 그는 정치적인 측면에서만 본다면 조선의 왕 중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유능한 군주였다.

하지만 그는 후궁에게서 배출된 왕자 즉 서자라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반면에 영창대군은 비록 후실이나마 왕비의 아들이었다.

종법 질서가 이데올로기로 기능한 조선시대에 그것은 너무도 중요한 문제였다. 동생이 자신의 자리를 빼앗을지도 모른다는 신분적 콤플렉스는 그로 하여금 무리수를 두게 했고, 이는 결국 광해군을 왕위에서 몰아내는 부메랑이 되었다.

  

출처:

조선시대 왕실여인들은 사찰의 대화주였다 / 탁효정

(불교평론 28호, 2006.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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