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와 비구니승단의 어제와 오늘,그리고 내일 -일운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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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2-10-05 13:09 조회3,332회 댓글0건본문
기조발제: 한국불교와 비구니승단의
어제와 오늘,그리고 내일
종단이 5대 결사를 통해 새롭게 나아가고자 하는 오늘날, 이렇게 전국비구니회와 중앙종회 비구니의원 등 비구니승가가 한자리에서 비구니승가의 위상과 역할을 고민하는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만시지탄, 늦은 감이 있지만, 참으로 감회가 새롭습니다. 이러한 자리를 격려해주신 총무원장스님, 중앙종회의장스님 등 종단내 여러 어른스님들께 감사드리고, 또한 비구니승가의 발전에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이 자리에 참석한 재가신도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한국의 비구니승가는 불교가 한국에 전래되던 때부터 시작되어 1,600여 년의 오랜 역사와 수행전통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제 식민지와 해방, 한국전쟁과 이승만정권, 그리고 군사정권 등 격동의 시기마다 한국불교를 지켜내기 위한 지난한 세월을 보내야만 했고, 불법 수호를 위해 비구니승가는 비구승가와 힘을 모았습니다.
조계종단 탄생의 어려운 고비마다 비구니승가의 간절한 염원과 노력이 함께하였기에, 종단 내부 분규를 극복하고 종단을 수호하고자 하는 비구니승가의 노력은 당연한 것이며, 비구니승가는 종단 발전을 위해 앞장서야 할 역사적 책무가 있습니다.
한국불교는 외형적으로는 많은 성장을 했습니다. 하지만 사회적 의식을 가지고 한국 사회 전체를 올바로 보지 못했기에 권위적,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고, 불교가 사회를 걱정하기보다 사회가 불교를 걱정하는 결과를 낳기도 하였음을 자성합니다.
종단이 소통과 화합을 화두로 수행, 문화, 생명, 나눔, 평화의 5대 결사에 나선 지금, 이부승가의 한 축인 비구니승가 역시 종단내 비구승가와 소통하고, 재가신도와 소통하여 진정한 사부대중이 함께 화합하는 종단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지금 비구니승가가 나아가야 할 상구보리와 동시에 하와중생의 중대한 의무를 다시 한번 깊이 되새기고자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지구시민공동체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너와 나, 국가와 국가를 넘어 지구가 하나이며, 전 인류의 삶이 국경을 넘어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지구시민공동체는 당면한 수많은 고통들이 있습니다. 과학기술의 발달과 물질의 풍요로움에도 불구하고 세계경제는 불안정하며, 빈곤과 기아, 불평등과 불균형으로 고통 받고 있습니다. 종교, 인종,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폭력과 전쟁이 난무하고, 무분별한 자연의 훼손은 전세계적으로 지구온난화와 환경문제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국내적으로도 정치. 경제는 갈등과 증오가 팽배해있으며, 출세지향적인 사회에서 폭력이 정당화되고 있습니다. 개발 논리에 앞서 뭇생명을 지켜내지 못하고 죽음으로 몰고 간 엄청난 공업을 반성하며, 공존과 상호존중을 통해 조화로운 세상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면서 꿈을 키울 수 있어야 하고, 청년들이 끊임없는 도전정신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하고, 어른들은 정의롭고도 타인을 배려하는 삶이 행복한 삶이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에 지구상의 뭇생명들을 품어 안고 인간존중과 평등, 그리고 차별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비구니승가는 노력해야 합니다.
종단내적으로 비구니승가의 역할을 되돌아볼 때 자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중앙종회는 종단의 최고 의결기관으로서 종단의 운영에 대한 막중한 책임과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종회 비구니의원으로서 6,000여 비구니승가를 대변하여 종단 내 비구니승가의 자랑스러운 위상을 확보하지 못했음을 자성합니다.
중앙종회 비구니의원들은 변화하는 현실에서 비구니승가의 열망을 제대로 수렴하지 못했고, 종단 내 비구니승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데도 부족했습니다. 그리하여 이제 종단 내 비구니승가의 위상을 올바로 정립하고, 사부대중과 함께 발맞추어 그 역할을 찾아 성실하게 수행하고자 합니다.
비구니승가는 최근 우리사회에서의 여성의 변화에도 주목합니다. 여성의 정치 참여 증가 및 경제적 지위의 향상, 그리고 전문영역에로의 활발한 진입 등 남녀평등적인 사회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여성의 특수한 상황, 여성특유의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하고 여성의 능력을 개발하고 성평등을 이루기 위해 국가가 앞장서서 법을 고치고, 다양한 여성정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비구니의 위상과 역할 확대에 장애가 되는 종단 내 비구니차별적인 법.제도와 관습을 바로잡고, 현대사회의 요구에 발맞추어 진정 국민과 소통하고 사회와 함께하는 종교로 거듭나기 위해 쇄신하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비구니승가는 중생구제라는 원력을 이루기 위해 불교계 내의 모순과 차별을 지양하고 평등과 해방을 주창한 붓다의 공동체정신을 이어가고자 합니다. 새의 양 날개처럼, 수레의 두 바퀴처럼 이부승가에서의 비구니승가의 위상을 올바로 정립하고, 불교발전에 앞장서는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하고자 합니다.
더 이상 주저하거나 미룰 수 없습니다. 부처님의 제자로서 투철한 사명감으로 불교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을 살려내고, 비구니승가의 위상을 정립하여 진정한 불교로 거듭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시대적 사명을 제안합니다.
첫째, 인간이 살아가는 생태계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은 똑같이 소중하기에 아끼고 보호해야 한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여법하게 실천해야 합니다. 인간은 생태계의 수많은 생명들과 함께 존재하며, 이 모든 생명은 상호의존적으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연기적 존재입니다. 인간의 이기심과 눈앞의 개발 이익을 위해 강산을 파헤치거나 인간만을 위해 수많은 동식물들을 함부로 대하는 인간우월주의는 결국 인간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존중사상을 훼손하는 어떠한 종류의 폭력과 분쟁, 그리고 전쟁도 거부합니다. 인간의 이기심에 의한 뭇생명들의 죽음은 재해와 생태계 파괴로 인간에게 되돌아오는 것을 알기에, 지혜와 자비로 생태계를 보호하고 생명살림에 앞장서야 합니다.
둘째, 모든 인간은 불성을 가진 존재로, 누구나 깨달음에 이를 수 있기에 평등합니다. 그러므로 인종차별, 빈부차별, 종교차별 등 우리 사회의 어떠한 종류의 차별에도 반대합니다. 부처님은 당시 엄격한 카스트제도에도 불구하고 불가촉천민을 교단에 받아들이셨고, 남녀차별적인 가부장제에서도 여성교단을 설립하셨으며, 또한 사부대중에 의한 공동체임을 강조하셨습니다.
비구니승가를 비하하거나 여성을 차별하는 것은 최초로 비구니교단을 설립하신 부처님을 모욕하는 일이며, 뛰어난 여성 제자들을 인정하신 부처님의 업적을 훼손하는 일입니다. 평등사상과 자비사상에 근거하여 비구와 비구니, 남성과 여성이 종단발전을 위해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부처님 법대로” 불법을 따르는 수행자로서 사부대중이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회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셋째, 급격한 사회변화로 가치관이 혼란스러운 오늘날, 불교는 개개인에게 삶의 의미와 존재적 가치를 일깨워주어야 합니다. 불교적 가치가 지역과 인종을 넘어서 세계 곳곳에 널리 퍼지고 있는 이 때, 한국불교는 전통과 관습에만 머물지 않고 현대 사회에 맞도록 불교 교리를 재해석하고, 평등한 법.제도로 타의 모범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종단은 갈등과 분리가 아닌 조화와 공존을, 폭력과 강제가 아닌 소통과 화합의 가치를 바탕으로 한 열린 종단, 소통하는 종단이 되어야 합니다. 불교인으로서의 자존감과 긍지를 심어줄 수 있는 사회적 윤리와 도덕적 가치기준을 제시하여, 현실에 충실하며 미래지향적인 불교로 진취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넷째, 수행력과 자비정신으로 중생구제에 앞장서는 것은 승가 본연의 역할입니다. 하지만 비구니승가는 그동안 사회의식에 기반한 현실참여가 부족했음을 자성하고, 무엇보다도 비구니의 위상정립을 위해 노력했던 비구니정혜결사의 정신을 이어받지 못한 점을 반성합니다.
오랜 관습에 젖어 현실에 안주하며, 잘못된 현실을 바로잡기보다는 이를 애써 외면하고 합리화하였고, 개선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한 것은 그 어떤 말로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이제 비구니승가는 사부대중의 수행공동체로, 이부승가의 평등공동체로서의 위상을 정립하기 위해 무엇보다 비구니승가 스스로가 뼈를 깍는 노력을 할 것입니다.
비구니승가의 자성과 쇄신을 위한 오늘의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부디 비구니승가가 올바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혜의 말씀을 나누어주시어, 비구니승가가 앞으로 나아가는데 디딤돌이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2. 02. 28 중앙종회비구니회장 일운
-2012년 2월 28일 자성과 쇄신 결사를 위한 비구니승가의 위상과 역할 토론회 기조발제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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