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성소수자를 품다 / 효록 > 불교


불교

불교

불교, 성소수자를 품다 / 효록


페이지 정보

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3-09-14 14:35 조회800회 댓글0건

본문

불교, 성소수자를 품다

 

“어린 조카가 물었어요. ‘삼촌은 여친 안 사귀어?’ 그런 순간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옛날에도 비슷한 질문을 조카가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엄청 당황했어요. 나를 설명해줘야 하는 상황이 생기는데, ‘준비를 해야겠구나!’ 어느 선까지 이야기를 해야 할까, 조심스럽게 고민했어요. 그러다가 ‘거짓말은 하지 말자’라는 기준이 생겼어요.”

최근 성소수자 한 분과 나눈 대화의 일부이다. 오늘날 한국은 자신의 성정체성과 성지향성이 일반적이지 않을 경우, 자신을 숨기거나 스스로 설명해야 하는 슬픈 사회이다. 차라리 생판 남이라면 설명하기 쉬울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말해야 할 때 이해나 공감을 받지 못한다면, 모두에게 가혹해진다.

내가 성소수자 법회 지도법사를 맡은 지 몇 년쯤 지난 어느 설날에 가족이 모처럼 모였다. 오랜만에 만난 사랑스러운 조카들이 술을 한잔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이야기 주제가 성소수자로 옮겨갔다. 술 때문이었는지 서로의 견해 차이가 커서였는지 아니면 토론의 미숙함 때문이었는지 대화의 결말은 참혹했다. 조카들은 두 편으로 나뉘어 말싸움이 시작되더니 급기야 몸싸움까지 하게 되어 모두가 놀랐다. 그날 이후 우리는 성소수자에 대해서 말을 꺼내지 않는 분위기가 되었다. 우리 사회가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혐오가 뿌리내리는 동안 불교계는 그동안 무엇을 했을까. 내가 불자 성소수자 법회의 지도법사를 맡은 이후에 자주 받는 질문은 ‘어떻게 성소수자분들과 인연이 닿았는지?’이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이후, 나는 2014년 5월경 팽목항으로 자원봉사를 하러 내려갔다. 갈 때는 심리상담을 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나, 그곳의 상황은 목탁을 치며 기도하는 것이 전부이자 최선으로 보였다. 봉사하러 가기엔 늦은 감이 있다고 생각했으나, 전국에서 기도하러 온 비구니 스님들이 여럿이었다. 우리는 밤늦도록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그곳에서 만난 한 스님이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소개해주었다. 그 무렵 나는 나-중심성에서 다소 벗어나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마음이 열리던 때였다. 나는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 싶었지만, 누구와 무엇을 함께 할 수 있을지 아는 바도, 관계망도 없었다. 이런 심정을 위원장에게 이야기했더니, 그는 2015년 봄에 불자 성소수자 법회의 소임자들을 소개해주었다. 

그때까지 불자 성소수자들은 자신들끼리 15년 동안 한 달에 한 번씩 서울의 한 법당에서 예불하고, 식사와 차담을 나누며 불심을 키웠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자신들을 이해하고 이끌어 줄 스님을 찾았다는 것이다. 나는 성소수자에 대해서 아는 바가 거의 없었고, ‘불교는 자비의 종교이자 평등의 종교이니 당연히 성소수자에게도 평등하겠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며 함께하게 되었다. 

법회 소임자들은 나를 미리 만나고 싶어 했다. 성소수자에 대한 나의 이해 수준이 궁금했을 것 같다. 나도 그들도 서로 알아야만 했다. 우리가 만났을 때 나는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동성애를 다룬 심리학 책도 읽고 영화도 몇 편 보면서 준비했지만, ‘동성애자’를 ‘동성연애자’라고 말하는 실수를 할 정도로 성소수자에 대해 무지했다. 

우리는 2015년 부처님오신날을 몇 주 앞두고 노동위원회에서 마련해 준 조계사 근처의 협소한 법당에서 첫 법회를 가졌다. 마음을 편히 갖고자 했으나 몸은 긴장되었다. 좁은 법당이 가득 찰 정도로 찾아온 성소수자들을 보고 놀랐고, 잘생기고 평범한 외모 때문에 한 번 더 놀랐다. 텔레비전에서 본 것처럼 한눈에 알아챌 정도의 외모나 목소리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성소수자에 대해 연구하다

나는 지금까지 성소수자를 주제로 두 번의 연구를 진행하였다. 처음엔 2015년 여름경 대한불교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로부터 성소수자에 관해 연구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주제, 대상, 방법 등은 나에게 일임하였다. 나는 성소수자를 직접 인터뷰하여 결과를 도출하는 질적 연구를 선택했다. 성소수자에 대해 관심을 보여준 종단에 감사했고, 무엇보다 그들이 사회에서 존중받는 분위기 조성에 더 없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며 의미를 부여했다. 

2016년 4월, 이 연구 보고서를 발표하는 자리에는 종단의 대표적인 매체들은 보이지 않았고, 일부 불교계 언론사만 참석하였다. 교계의 한 신문사는 보도자료만 참고해서 연구의 본질을 흐리는 자극적인 제목을 뽑아 기사를 쓰기도 했다. 터무니없는 제목을 수정해 달라고 몇 번이나 요청하고 나서야 기사가 바뀌어서 실망감이 컸다. 불교계가 성소수자에 대해 관심이 있기도 하지만, 무관심하다는 인상도 함께 받았다. 이 연구는 〈불자 성소수자가 경험하는 한국불교-남보다 한 가지 고민을 더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남았다. 이 연구 내용의 일부라도 소개하고 싶으나 지면의 한계로 다음 기회로 미루고자 한다. 

위 연구를 진행하는 동안 성소수자와 관련된 국내 선행 연구를 검색한 결과 두 개의 논문을 찾을 수 있었는데, 피터 하비(Peter Harvey)의 저서 일부를 번역하거나 인용한 내용이었다. 이때 나는 승단 초기에 성소수자들이 차별 없이 출가하여 수행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언젠가는 빨리어 율장에 등장하는 성소수자를 분류하고 싶었는데 이것이 두 번째 연구가 되었다. 

번역어의 오해와 성소수자 용어

불교를 공부할 때 넘어야 할 산은 바로 언어의 장벽이다. 나는 사띠(sati) 번역어의 문제점을 잠깐 짚고 싶다. 고대 인도어를 현대어로 번역할 때, 번역자의 의도에 따라서 붓다의 뜻과 얼마나 멀어질 수 있고 혼란을 일으킬 수 있는지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sati(산 smriti, 빨 sati, 念)’를 최초로 ‘mindfulness’라고 옮긴 리스 데이비즈(Thomas William Rhys Davids 1843~1922)는 사띠가 문자로는 ‘기억’이라는 걸 알았다. 타니사로 비구(Thganissano Bhik-khu)에 의하면, “그는 ‘현재의 목적 있는 활동에 적용되는 기억’이란 의미를 담는 영어 단어를 찾으려고 애썼다. 영어에는 적절한 동의어가 없다고 결론짓고, mindfulness란 자신의 단어를 만들었다. 물론 완전한 창작은 아니었다. 사실은 리스 데이비즈의 선택은 ‘다른 사람의 필요를 늘 마음에 새겨라. 즉 그들의 필요를 항상 마음에 간직하라.’라는 미국인의 기도 문구에서 명백히 영감을 받았다.”며 이 단어의 배경을 설명한다. 그러니까 mindfulness는 기독교 영향을 받은 번역어인 셈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진행된 국내 사띠 논쟁을 보면, 9명의 전문가 사이에서 7개의 다른 번역어가 등장한다. 그들은 ‘알아차림’ ‘마음챙김’ ‘마음 지킴’ ‘주의-관찰’ ‘주의집중’ ‘순수한 주의’ ‘정념’ 등으로 각각 번역했으며, 그 외 ‘새김’도 있다. 이 중에서 ‘마음챙김’으로 거의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다양한 용어 가운데 ‘기억’이라는 의미를 살린 번역어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혼란은 영어권에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대니얼 골먼과 리처드 데이비드슨도 이 용어를 두고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면서, 사띠를 두고 모든 전문가가 동의하는 단 하나의 번역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번역어가 혼란스러우면 붓다의 가르침에 가닿는 데 어려움이 생긴다. 

불교심리치료 학자들은 sati의 ‘기억’의 중요성에 주목한다. 정신건강과 심리치료의 핵심에서 ‘기억’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성장 과정에서 해리되거나 억압해서 기억[의식]할 수 없게 된 상처는 다시 불러들여 통합할 수 있을 때 치유되기 때문이다. 흔히 ‘무의식의 의식화’라고 표현하는데, 이것은 ‘무명에서 명’으로, ‘무지에서 지’로 가는 방향과 일치한다. 

붓다 당시나 한역 율장엔 ‘성소수자’라는 단어[어휘, 말]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을 기억하자. 불자들에게 ‘황문(黃門)’이나 ‘이근자(二根者)’의 뜻을 질문해보라. 뭐라고 말할까? 황문은 빤다까(paṇḍaka)의 한역어인데 오늘날 사용하지 않는 용어라서 성소수자로 인식하는 데 한계가 있다. 

전재성은 빤다까는 어원적으로는 불분명하지만 ‘알이 없는 사람’ 즉, 고환이 없는 자에게서 유래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붓다고사(Buddhaghosa)는 빤다까에 대해서 다섯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는데, 첫째는 ‘뿜어내게 하는 빤다까’로 다른 남자의 성기를 입으로 빨아 사정에 이르게 함으로써 자신의 욕망을 해소하는 동성애자, 둘째는 ‘시샘하는 빤다까’로 다른 사람의 성행위를 지켜보며 질투심으로 자신의 욕망을 해소하는 관음증 환자, 셋째는 ‘야기되는 빤다까’로 어떤 특수한 수단으로 야기되어 자신의 정액을 분출시키는 자위 행위자, 넷째는 ‘보름간의 빤다까’로 과거의 업력으로 음력 한 달 가운데 절반인 2주간만 빤다까가 되는 자, 다섯째는 ‘남성이 아닌 빤다까’로 임신 순간부터 남성성이 결여된 자를 뜻한다고 해석하였다. 그런데 붓다고사와 붓다 사이의 시차는 거의 천 년이나 된다.

붓다고사의 설명에, 과거의 업보로 인해서 특정 기간에만 성적 행동이 달라진다는 묘사가 있다. 이것은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면, 자신의 성별을 신체적인 성별[지정된 성별/태어나진 성별]로 정체화하지 않고, 다른 성별에 대한 감각을 가진 사람으로 읽을 수 있다. 이러한 사람들을 지금은 ‘퀘스처너리(Questionary)’ 혹은 ‘젠더퀴어(Genderqueer)’ 혹은 ‘젠더플루이드(Genderfluid)’ 혹은 ‘투 스피릿(two spirit)’이라고 한다. 

성소수자는 주류인 이성애자를 제외한 모든 소수성을 가진 사람을 포괄하는 단어이다. 여기에는 트랜스젠더, 양성애자, 동성애자, 무성애자, 범성애자, 젠더퀴어, 간성, 제3의 성,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가진 사람을 포함하며 성정체성, 성별, 신체상 성적 특징, 성적 지향 등과 같이 성적인 부분에서 사회적 소수자의 위치에 있는 이를 말한다. 

성소수자, 부처님 품에 출가하다

나는 출가 후 한역 율장의 일부만을 열람했을 뿐이고 성소수자에 대해 아는 바도 관심도 없었다. 대한불교조계종의 경우, 승려 교육에서 율장 공부는 우선순위도 의무 교육도 아니며, 구족계를 받은 후에 원하는 사람에 한해 학습이 이뤄지기 때문에 승려가 붓다 당시 성소수자의 출가 생활을 알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 보니 신도 교육을 할 때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나는 그들의 수행 생활을 알아보기 위해 전재성 박사가 세계 최초로 완전 복원하여 번역 출간한 《마하박가》 《쭐라박가》 《빅쿠비방가-율장비구계》 《빅쿠니비방가-율장비구니계》를 순서대로 읽고 성소수자 사례를 분류하였다. 이러한 순서는 율장의 중요도보다 내용적 성립 순서를 고려한 것이다. 붓다는 계율을 정할 때 미리 정하지 않았고, 어떠한 맥락에서 제정하더라도 수정할 필요성이 대두되면 변경하거나 없앴기 때문이다. 빨리어 율장에 나타나는 성소수자 사례에 대한 연구는 〈빨리어 율장에 등장하는 성소수자의 수행 생활〉이란 제목으로 《종교교육학연구》 제65호에 등재하였는데, 아래의 내용은 이 논문의 일부를 인용 · 수정한 도표이다. 

1) 《마하박가》

《마하박가(Mahāvagga: 大品)》는 율장에 속하긴 하지만 오히려 경장과 유사한 측면이 있고, 율장과 경장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마하박가》와 디가 니까야의 《대반열반경》을 합하면, 붓다에 대한 가장 신뢰할 만한 원형적인 생애와 가르침이 복원된다. 《마하박가》는 구족계, 포살, 안거, 자자, 주요한 일상생활을 규정하는 의약의 조달, 의복의 제조, 승단 회의와 분열에 관련된 규제 등 붓다의 깨달음과 승단의 성립, 제도, 규정, 중요한 행사 등을 다루고 있다. 

《마하박가》에 처음 등장하는 성소수자는 남자 동성애(Gay)와 양성애(Bisexual) 사례이다. 석가족 출신의 장로 우빠난다에게 깐다까와 마하까라는 두 사미가 있었는데, 그들이 서로 동성애를 행하였다. 당시 장로 우빠난다에게 내려진 죄목은 악작죄(惡作罪)인데, 이는 고의로 범한 경우에는 한 사람 앞에서 참회하고, 고의가 아닌 경우에는 마음속으로만 참회하면 되었다. 스승이 제자들의 동성애를 미리 알았는지 또는 허용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여기에서는 사미들에게 내린 처벌은 보이지 않고 승가에서 퇴출당하지도 않는다. 이때 제정되는 ‘한 비구가 두 사미를 거느려서는 안 된다.’는 계율은 이후 총명하고 유능한 비구는 사미를 훈계하며 가르쳐서 섬기도록 노력하는 한, 혼자서 두 사미를 거느리는 것이 허용되는 쪽으로 바뀌게 된다. 

사미 깐다까가 비구니 깐따까(Kaṇṭakā)를 능욕하는 일이 벌어졌는데, 비구들은 그를 비난하며 이 일을 붓다에게 알린다. 이때 붓다는 열 가지 사유에 해당하는 사미는 멸빈(滅擯, nāsana)시키는 것을 허용한다. 《빅쿠비방가》에 의하면, 깐다까는 붓다의 가르침을 잘못 해석하는 악견이 생긴다. 그는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에는 즐거움이 적고 괴로움이 많고 근심이 많으며, 위험은 더욱 많다.’고 설한 붓다의 가르침을 ‘그것들을 수용하는 자에게는 장애가 되지 않는다.’며 성교를 범한다. 그것에 대해 비구들이 바로 잡아주고자 노력했으나, 그는 악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이 일에 대해 붓다는 크게 꾸짖으며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승가는 사미 깐다까를 멸빈시켜야 한다. …… 오늘 이후 세존을 스승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야단쳤고, 승가는 사미 깐다까를 멸빈시킨다. 사미 깐다까는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성적으로 끌리는 양성애자(Bisexual)로 볼 수 있다. 

두 번째 성소수자는 빤다까로서, 이들에 대한 차별적인 사례가 다수 발견된다. 이들은 구족계를 받아서는 안 되고, 아직 받지 않았다면 줘서도 안 되며, 이미 받았다면 멸빈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동성애나 유사성행위로 교단의 질서가 파괴되는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어떤 빤다까는 친교사[upajjhāya, 은사, 화상, 계사]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친교사는 가정교사나 후견인과 같은 스승으로, 제자를 출가시키고 구족계를 줄 수 있는 자격을 갖춘 법랍 10년 이상의 승려를 말한다. 한때 비구들이 빤다까를 스승으로 삼은 자들에게 구족계를 주었는데, 이 사실을 알고 붓다는 구족계를 주면, 악작죄가 된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은사 빤다까에 대한 처벌은 보이지 않고, 비구들이 구족계를 주면 악작죄가 되기 때문에 참회해야 했다. 

그러나 포살을 행하기 위해 위임을 할 때나 받을 때, 계율을 송출할 때, 안거할 때, 자자 참여를 위해 위임을 받을 때나 전할 때, 자자를 행할 때, 안거를 끝내고 옷감이 생기지 않아 환속할 때나, 옷감이 생겼지만 분배되기 전일 때, 승가를 구성할 때나, 구성된 갈마에서 구성원으로서 갈마를 행할 때, 사면복권 등의 장면에서 그가 빤다까나 남녀추니라고 ‘자인한다면’ 차별이 주어진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자인한다면’이라는 단서이다. 이것은 스스로 성정체성을 인정하고 자신을 드러내는 적극적인 태도로서, 커밍아웃과 유사하다. 빤다까는 양성구유인처럼 신체적으로 성적 특징이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자. 그가 자인하지 않는다면 외형만으로 그의 성정체성을 타인이 알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세 번째 등장하는 성소수자는 남녀추니[양쪽 성의 성적 특징을 다 가지고 있는, 양성구유 인간(ubhatobyañjanakapi)]이다. 이들도 빤다까와 같은 이유로 차별을 받았다. 율장에서는 이들이 동료 비구나 비구니를 유혹하여 섹스를 할 가능성 때문에 이들은 출가시켜서는 안 된다고 되어 있다. 

2) 《쭐라박가》

《쭐라박가》는 승단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계율에 관해 설명하고, 끝부분에는 제1결집과 제2결집에 관한 이야기가 첨가되어 있다. 붓다는 “연장자를 공경하는 사람은 진리를 잘 깨우치고 지금 여기서 칭찬받고 미래에 좋은 곳으로 간다.”는 가르침을 설하면서, ‘인사를 받을 수 없는 열 가지 유형의 사람’ 가운데 빤다까는 인사를 받을 수 없다고 설한다. 

빤다까와 남녀추니가 차별받는 장면은 정사를 세우는 수리 일과 연관된 세 장면에서 등장한다. 구족계를 받은 여성 출가자들 가운데 성징이 없는 여인, 성적으로 결함이 있는 여인, 월경이 없는 여인, 음순이 긴 여인, 여자 빤다까, 남성적 여자, 남녀추니[이근녀(二根女)] 등이 존재하여 세존께 알리게 되고, 붓다는 구족계를 줄 때 24가지 장애법에 대해 일일이 묻고 청정한지 확인하도록 한다. 처음에는 비구들이 직접 물었는데 자매들이 부끄러워 대답할 수 없게 되자, 후에 비구니 승가에서 한 번 구족계를 받고 나서, 비구 승가에서 구족계를 다시 받는 것으로 바뀌게 된다. 자매 중 24가지 장애법에 해당되는 사람은 구족계를 받을 수 없었는데, 이들 중 성소수자라 할 수 있는 경우는 여자 빤다까, 남성적 여자, 남녀추니이다. 이 외에 성징이 없는 여인, 성적으로 결함이 있는 여인, 월경이 없는 여인, 음순이 긴 여인 등에 대해서는 의학 전문가의 해석이 필요하다. 

《쭐라박가》에서 여자 빤다까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승단 초기에는 남자 빤다까와와 마찬가지로 여자 빤다까도 출가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남성적 여자’가 외모로 구분됨을 의미하는지, 성적 지향이 여성에게 끌리는 레즈비언인지 명료하지 않다. 

3) 《빅쿠비방가-율장비구계》

승단이 구성되고 나서 처음부터는 아니었으나, 붓다는 출가자의 성교를 반대했고 금지했다. 하지만 빨리어 율장에는 출가자의 다양한 종류의 성교 형태가 방대하게 묘사되고 있다. 호너(Horner)에 의하면, 율장의 성애적인 표현의 보존에 관한 한 세 가지 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그것들은 일반 대중을 위해서 송출되거나 기술되어서는 안 되고, 오직 순결을 맹세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자들을 위해 송출되거나 기술되어야 하는 점이다. 그것들이 송출되고 기술되어 온 동기는 충격을 유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청정하지 못하고 감각적 쾌락에의 탐욕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부당한 행동 유형에 대하여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상세한 기술이 전개되는데, 그것은 일반적인 계율에서의 실제적 · 가능적 일탈을 상세히 묘사하여 일탈을 방지하려 했기 때문이다. 

《빅쿠비방가》의 비구 의무계율[Pātimokkha, 해탈을 목표로 하는 학습계율의 목록]은 저지른 죄의 경중에 따라 8장으로 나뉘는데, 제1장 승단추방죄는 용서할 수 없는 죄이고 나머지는 용서할 수 있는 죄이다. 승단추방죄는 사음(邪淫)과 관계된 성교 문제가 가장 중한 죄로 다뤄진다. 그 때문에 율장은 성교를 승단추방죄법뿐만 아니라 승단잔류죄(saṅghādisesa, 僧殘)법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다른 항목보다 맨 앞에 두고 특별히 상세하게 분석하고 있는데, 다른 죄법에서의 성(性)과 관계된 계율까지 합치면 그 분량이 무려 3분의 1을 넘어설 만큼 방대하다. 하지만 승단추방죄 죄목 안에는 경중을 따져 악작죄나 무죄로 다루는 경우도 있다. 붓다는 성교를 범했다고 해서 무조건 멸빈하거나 승단에서 추방하지는 않았다. 

제1장 승단추방죄법[Pārājika, 바라이(波羅夷), 단두죄(斷頭罪)] 서문에서 붓다는 “어떤 번뇌를 일으키는 조건들이 승가 안에 나타날 때까지 스승은 제자들에게 학습계율을 시설하지 않고 의무계율을 부과하지 않는다.”며, “승가가 세월의 연륜에 도달하면, 승가에 어떤 번뇌를 일으키는 조건들이” 나타나게 되고, “그때 스승은 번뇌를 일으키는 조건들을 몰아내기 위해 제자들에게 학습계율을 시설하고 의무계율을 부과한다.”고 설한다. 붓다는 ‘승가가 모임의 광대화, 이익과 배움의 극대화에 도달하면’, 그때 제자들에게 학습계율을 시설하고 의무계율을 부과한다는 것이다. 

비구계에 의하면, 비구의 성교 대상은 인간[여성, 남성, 양성]뿐만 아니라 비인간과 축생도 등장한다. 비구는 ‘세 가지 여성’[① 인간의 여성 ② 비인간의 여성 ③ 축생의 여성], ‘세 가지 양성’[④ 인간의 양성 ⑤ 비인간의 양성 ⑥ 축생의 양성], ‘세 가지 빤다까’[⑦ 인간의 빤다까 ⑧ 비인간의 빤다까 ⑨ 축생의 빤다까], ‘세 가지 남성’[⑩ 인간의 남성 ⑪ 비인간의 남성 ⑫ 축생의 남성]과 성교가 가능하다. 비구는 ① 인간의 여성부터 ⑥ 축생의 양성까지는 세 가지 방식[항문, 성기, 구강]으로, ⑦ 인간의 빤다까부터 ⑫ 축생의 남성까지는 두 가지 방식[항문, 구강]으로 성교를 행하면 승단추방죄를 범하는 것이 된다.  

필자는 제1장 승단추방죄법에 등장하는 비구의 성교를 12가지 대상, 방식[항문, 성기, 구강], 원인, 상태[정신착란이나 술 취한 상태 등], 순서, 방법[적용 시, 삽입 시, 유지 시, 인발 시], 때[시기], 즐거움의 여부 등에 따라 약 2,019여 건[멸빈 15건, 무죄 393건, 승단잔류죄 17건, 승단추방죄 1,420건, 악작죄 3건, 추악죄 169건, 변성 2건]으로 분류할 수 있었다. 본 연구 목적에 초점을 맞추고자 이 가운데 인간이 아니기에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없는 비인간[신 · 야차(유령, 도깨비, 요정, 괴물) · 나찰 · 다나바 · 건달바 · 긴나라 · 마호라가 등]과 축생은 제외하였다. 

제1장 승단추방죄법에 등장하는 성소수자 사례는 양성인(兩性人)과의 성교 사례 185건(무죄 36, 승단추방죄 133, 추악죄 16), 남자 동성 성교 사례 243건(무죄 47, 멸빈 10, 승단추방죄 166, 추악죄 20), 빤다까와의 성교 사례 140건(무죄 27, 승단추방죄 101, 추악죄 12), 기존 성과 다른 성징이 드러나는[변성(變性)] 사례 2건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570여 건의 사례로 확인되었다. 

붓다고사는 양성인(兩性人)을 남녀 성기를 다 갖추고 있는 남녀추니라고 보았고, 전재성 역시 남녀추니와 양성인의 빨리어가 동일하기 때문에 문맥에 따라 양성인 또는 남녀추니로 번역하였다고 확인해주었다. 《빅쿠비방가》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두 건의 변성 사례는 죄가 되지 않아서 별도로 분류하였다. 

비구에게 여성의 특징이, 비구니에게 남성의 특징이 드러난 것에 대해 전재성은 성적 행위의 특징이나 성기의 특징, 양쪽으로 해석이 다 가능하다고 열어둔 바 있다. 흥미로운 것은 붓다는 성징의 변화가 공동체 생활이나 수행에 방해되지 않는다고 본 점이다. 수행 중에 기존과 다른 성징이 드러나더라도 성교와 관련된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붓다는 비구에게 여성의 특징이 드러날 경우는 비구니들과 만나는 것을 허용하였고, 비구니에게 남성의 특징이 드러날 경우는 비구들과 만나는 것을 허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대한 안옥선은 성전환[변성(變性)]이 승가로부터 병적인 현상이나 치료의 대상으로 간주되지 않았으므로 추방이나 처벌 사유도 아니었다는 점을 언급한다. 그녀는 붓다는 성전환 현상을 자연스럽게 수용하고 요구되는 조치를 취했다는 점을 들어 트랜스젠더는 인정되고 존중된 것으로 해석한다. 

무죄를 받는 기준은 성교를 알지 못했거나, 성교 시에 동의하지 않아 즐거움을 느끼지 않았거나, 정신착란자이거나, 마음이 심란한 자이거나, 애통해하는 자이거나, 초범자이거나, 자의에 의한 누정이 아닌 경우 등이다. ‘성교를 알지 못했다’라는 의미가 심신미약 등으로 인해 성교가 일어났음을 알지 못했다는 것인지, 무지로 인해서 그런 행위가 성행위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는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멸빈은 영원히 승단에서 추방하는 것으로서, 이 가운데 성소수자와 상관있는 상황은 10가지 사례이다. 승단추방죄와 승단잔류죄를 범하려다가 미수로 끝난 중죄인 추악죄(醜惡罪, thullaccaya)는 48건으로, 이 죄는 결계 밖으로 가서 4인의 비구에게 참회해야 회복이 가능하였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종교와 젠더연구소서울 중구 동호로24길 27-17 우리함께빌딩 3층Tel. 070-4193-9933Fax. 02-2278-1142

COPYRIGHT ⓒ 종교와젠더연구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