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세속화 시대, 붓다를 사유하기 / 명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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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종교와젠더연구소 작성일20-09-02 21:34 조회3,622회 댓글0건본문
오늘날 종교는 여전히 중요한 문제이며, ‘종교를 사유하기’ 역시 중요한 과제이다. 오늘날 ‘종교적인 것의 회귀’라고 불리는 사태가 급박하게 철학적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철학이 다시 종교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계몽이 베버가 명명했던 ‘탈주술화’라는 이름으로 종교를 배제한 후에도 종교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멈추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테러리즘 시대에 철학이 종교에서 찾지 않으면 안 되었던 구원은 무엇일까? 어쩌면 바티모가 “철학이 서구의 몰락에 뒤따르는 여러 책임들을 떠맡을 때, 철학은 과학보다는 종교에 더 가깝게 닮아간다. 그렇게 닮아가는 것을 많은 철학자들은 잊고 있었다. 이를 상기시키고 그 의미를 발전시키는 것이 아마 오늘날 철학이 수행해야 할 주된 임무일 것이다.”라고 밝혔듯이 이성의 해체를 수행해온 철학 스스로 종교를 사유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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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속 시대 ‘붓다를 사유하기’는 ‘붓다’의 죽음을 해체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그것은 붓다를 이론적 차원이 아니라 실천적 차원에서 회복하는 일이며, ‘오늘의 불교’를 사유하는 일이다. 후미히코가 암시하듯이 타자론의 입장에 선다면 대승불교의 실천정신은 새롭게 이해될 수 있다.
(이하중략...)
출처: 불교평론 [79호] 2019년 9월 1일 (일)
http://www.budreview.com/news/articleView.html?idxno=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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