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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왜 중도를 가르치는가 / 이중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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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종교와젠더연구소 작성일20-09-02 21:24 조회3,61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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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붓다는 무엇을 가르쳤는가? 

붓다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쳤는가? 그 답이 맛지마 니까야 18. 《꿀덩어리경(Madhupiṇḑika-sutta)》에 있다.

 

단다빠니 싹까는 세존과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공손한 인사말을 나눈 후에 지팡이를 짚고 한쪽에 서서 세존께 말씀드렸다. 

“사문(沙門)은 어떤 교리를 가지고, 무엇을 가르치는 사람입니까?”

“존자여, 나는 천신(天神)과 마라(Māra)와 브라만(Brahman; 梵天)을 포함하는 세간(世間) 가운데서, 그리고 사문과 바라문과 왕과 사람들을 포함하는 인간 가운데서 누구와도 다투지 않고 세간에 머무는 교리를 가지고, ‘감각적 욕망에서 벗어나 살아가는 의혹이 없고, 회한이 없고, 유(有)와 무(無)에 대한 갈애[愛]가 없는 바라문은 개념[想]에 사로잡히지 않는다’1)고 가르치는 사람이오. 존자여, 나는 이와 같은 교리를 가지고, 이와 같이 가르치는 사람이오.”

이렇게 말씀하시자, 단다빠니 싹까는 머리를 가로젓고 혀를 차면서, 이맛살을 찌푸리고 눈을 찡그리며 지팡이를 짚고 떠났다.

 

붓다의 답변에 혀를 차면서 실망하고 떠나가는 단다빠니 싹까처럼, 인간을 초월하는 견성성불((見性成佛)이 불교의 목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실망스러운 말씀이지만, 붓다는 분명히 이 경에서 불교의 목적은 모든 다툼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다투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이 “감각적 욕망에서 벗어나 살아가는 바라문은 의혹이 없고, 회한이 없고, 유(有)와 무(無)에 대한 갈애[愛]가 없어서 개념[想]에 사로잡히지 않는다.”라는 말씀이다. 간단히 말하면, 모든 투쟁은 개념에 사로잡혀서 살아가기 때문에 나타나며, 개념에 사로잡히지 않으면 다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하중략...)

 

 

출처: 불교평론 [81호] 2020년 3월 1일(일)

http://www.budreview.com/news/articleView.html?idxno=2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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