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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나 꼴뚜기다"-현경(미 유니온신학대 종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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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2-12-05 16:33 조회4,03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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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세계교회협의회 총회에서 일약 세계적인 여성 신학자로 떠오른 현경 교수는 초교파를 연구하는 기독교 신학자인 동시에 숭산 스님으로부터 '대광명'이란 법명을 받은 불교학도이기도 하다.
 
그는 종교 간 벽을 허무는 신학자에서 벗어나 생명여성주의 쪽으로 나아가 있다.
달라이 라마를 비롯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들로 구성되어 있는 세계 종교평화위원회 최연소 회원이기도 한 현경교수는 자신을 '살림이스트'라고 말한다.
 
지구와 생명을 살려내는 사람. 그가 교육방송 특강에서 '내 안에 있는 여신을 찾자'고 주장하는 까닭도 생명평화 운동과 연관된다.
 
하지만 보수 진영에서는 그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 젊은이들은 힘찬 박수를 보내고 있지만, 보수 교회는 그에게 '레드카드'를 내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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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신을 강조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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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의 시대, 모계사회가 훨씬 길었다. 청동기, 철기시대, 그리고 기마민족과 무기의 도입과 함께 가부장제가 더 발전했다. 긴 인류 역사를 놓고 보면 5천 년을 이어온 가부장제는 트림 한 번 하는데 불과하다. 너무 초조하게 남자와 평등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웃음).
 
물론 여성에 대한 불평등은 그대로 남아 있다. 성폭력을 비롯해 직장에서 여성이기 때문에 당하는 불이익은 아직도 여전하다. '간 큰 남자' 시리즈 같은 것은 남자들의 엄살이다.
 

-여신은 누구인가?
 

마리아 김바투스같은 고고학자가 일생을 두고 가부장제 이전의 여신 문명에 대해 연구했는데, 그분의 연구에 의하면, 신이 여신이던 시대, 모계 시대가 훨씬 평화롭고, 군사력보다는 농경 문화와 예술이 꽃을 피웠다고 한다. 인간 안에 있는 공격성은 스포츠로 표현되고 군대는 방어 위주의 소규모였다고 한다.
 
수직 관계가 아니라 수평관계이다. 문명의 핵심이 정복이 아니라, 축제와 나눔, 돌봄이었다. 이것이 에코 페미니스트들이 말하는 21세기 새로운 문명이다. 호주제 폐지, 가족법 개정, 남녀 고용평등제 등도 기본적으로 중요하다.
 
나는 사람을 가장 억압하는 것이 종교적, 상징적 억압이다. 제도나 의식보다는 상징, 영성, 종교성 등 무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왜 기독교신학을 선택했는가?
 

학생운동 때문이다. 신학은 전혀 생각하지 않던 문학소녀였다. 그런데 내가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계엄령이 선포되었고, 우리 선배들이 남자들에 의해 개끌려 가듯이 끌려갔다.
 
그 이유가 뭔지 알고 싶어 했는데, 서울대에 다니던 남자 선배가 그 이유를 알려주겠다며 데리고 간 곳이 창녀촌이었다. 그 빈민촌에서 야학 교사를 했고, 청계 피복 노조의 오락 교사도 했다. 3대째 기독교 집안인데, 창녀촌과 거기 사는 아이들을 보고 나서 '하나님 없다. 있다면 직무유기다.
 

나는 하나님을 파면시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어린 마음에 하나님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순진한 신앙을 갖고 있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게 되었다. 신과 싸워야 답이 생길 것 같았다. 나는 원래 예술가가 되고 싶었다. 이제 신학을 25년하고 나니까 다시 예술가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초교파에 관한 연구는 언제 시작했나?
 

숭산 스님의 제자가 되면서 불교 명상을 시작했고, 7년 전에 세계종교평화위원회에 들어갔다. 달라이 라마를 비롯해, 불교 이슬람 지도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들과 일하는데 그분들이 너무 존경스러웠다.
 
그분들을 만나면서 어, 종교는 언어시스템이구나, 영어, 불어, 한국어가 있듯이 다 다른 말로 궁극적 존재에 대해 표현할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 우주의 눈으로 보면 기독교, 불교, 이슬람이 다 우주의 자녀이다.
 
그래서 한국에 오자마자 거기를 찾아갔다. 나는 그 절이 어떤 절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놀라운 사건이 벌어졌다. 너무너무 커다란 관세음보살이 서 있었다. 갑자기 내 인생의 퍼즐이 착착착 맞아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난 기독교의 신학 박사학위를 쓰면서 절망의 구렁텅이에 떨어져 있을 때, 나를 도와준 신화적 인물이 중국의 여신이었고, 그것은 관세음보살의 현현이었다, 그리고 나는 관세음보살이 나타나는 낙산사에 와 있는 것이었다.
 

주지스님한테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부터 정식으로 불교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융이 이런 얘기를 했다. 우주에 신화적인 것들이 떠돌다가 어느 순간에 동시적으로 나타나 얘기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내가 하바드 교수로 있을 때 숭산스님을 만나 불교에 대한 속성 과외를 받고 제자가 되었다. 매일 두 시간씩, 할아버지가 손녀 가르치듯이 '옳지, 옳지' 하시며 가르쳐 주셨다. 숭산스님이 '대광명'이라는 법명을 내리셨다.
 
 그때 하바드 대학원생으로 있던 현각 스님도 만났다. 그 다음에 틱낫한 스님도 만나 그분의 제자가 되었다.
 

-한국 개신교에 대해서 할 말이 많을 텐데.
 

한국 개신교는 깨어나야 한다. 자기만 옳다는 아집에 빠져 있다. 예수처럼 자기 주머니를 털어서, 사회적 약자를 보살펴야 한다.
 
내가 왜 기독교인이냐면, 기독교처럼 가난한 자, 창녀와 세리 등 밑바닥 삶이 가장 먼저 천국에 간다고 한 종교가 없기 때문이다. 부서진 사람들에 대한 예수의 사랑 때문에 나는 기독교인이다. 그게 너무 아름답다.
 
 
-시사저널 665호(2002년) 현경교수와의 인터뷰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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