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6월 29일 7명의 여성 사제가 다뉴브강에서 서품을 받았다.
2002년 8월 5일 교리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다뉴브의 7인은 파문당했다.
2008년 시빌 다나 레이놀즈가 미국에서 최초로 여성 주교가 되어 다른 여성에게 사제 서품을 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되었다.
2010년 교황청이 여성에 대한 사제 서품을 소아 성애와 같은 수준의 ‘중대한 죄악’ 목록에 추가했다.
2019년 로마가톨릭 여성 성직자 협회에는 라틴아메리카 최초의 여성 주교인 올가 루시아 알바레스 벵후메아를 포함한 5명의 여성 주교가 소속되어 있다.
이탈리아 출신의 사진작가 줄리아 비안키는 뉴욕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지역 신문을 훑어보다 ‘세례하는 여성 사제, 공동체의 중요성’이라는 헤드라인의 기사를 보고 크게 놀랐다. 여성도 사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체 인구의 62.6%가 가톨릭 신자인, 가톨릭교회가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는 이탈리아에서 온 비안키는 가톨릭 신도인 여성이 종교와 관련한 직업을 갖고자 한다면, 수녀가 되는 길밖에 없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곧이어 이런 의문이 들었다. 남성은 얼마든지 사제가 돼 영적 지도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데, 왜 여성은 무보수로 노동력을 착취당하면서 성직자로 인정받지도 못하는 수녀에 머물러야 하는 것인가? 가톨릭교회는 이러한 원칙을 교리로 내세워 수세기 동안 고수해 왔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최근의 공식 입장이라 할 수 있는 교황 교서 사제 서품(Ordinatio Sacerdotalis)를 통해 여성의 사제 서품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가 모두 남자였다는 이유로 ‘세례를 받은 남성만이 거룩한 사제 서품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규정한 가톨릭교회법 제1,024조의 맥락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7명의 여성은 이러한 교리에 반기를 들었다. 2002년 6월 29일, 유럽에서 두 번째로 긴 강인 다뉴브강에서 로물로 안토니오 브라스치(Rómulo Antonio Braschi) 주교와 페르디난트 레겔스베르거(Ferdinand Regelsberger) 주교가 7명의 여성을 로마가톨릭 사제로 서품한 이래 사람들은 그녀들을 ‘다뉴브의 7인(The Danube Seven)’이라 부르고 있다. 교황청은 이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면서 2002년 8월 5일 다뉴브의 7인에게 “그들이 저지른 매우 심각한 죄악에 대해서 어떠한 뉘우침도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파문령을 내렸다. 지금은 교황 베네딕토 16세라는 교황명으로 더 익숙한, 당시의 요제프 라칭거(Joseph Ratzinger) 추기경이 서명한 이 파문령은 교회는 여전히 여성을 사제로 임명하는 일을 금지하고 있음을 확인해주었다. 그러나 현재 여성 사제의 수는 2백63명에 달할 정도로 증가하는 추세이며, 또한 로마가톨릭 여성 성직자 협회(Association of Roman Catholic Women Priests, ARCWP)가 세계 5대륙에 걸쳐 활동하고 있다. 대다수 여성 사제는 미국에 거주하며 미연방 34개 주 공동체에서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녀들은 ‘여성에게 사제 서품을 허용하라’ 혹은 ‘여성은 어디에 있는가? 여기 여성도 있다’ 등의 슬로건을 외치며 교회에 항거하고 있다.
2012년부터 줄리아 비안키는 남성 중심의 권위주의에 반대하는 그녀들을 만나기 시작했고, 지난 7년간 프로젝트를 이어오고 있다. 조사를 위해 가장 처음 찾아간 곳에서 비안키는 가르멜 수도회의 한 수녀가 사제 서품을 받는 현장을 목격했으며, 바로 그 장소에서 설교단에 서 있던 ‘불타는 듯이 머리가 붉은’ 한 여성을 알게 되었다. 야니체 세브레 두신스카(Janice Sevre-Duszynska)라는 이름의 이 여성과 비안키는 이후 수년 동안 같은 길을 걸어왔다. 로마가톨릭 여성 성직자 협회의 주요 회원이자 대변인인 재니스 세브레 두신스카는 동부 해안 지역으로 이주하기 전에는 켄터키주에 살았었다. “저는 다뉴브강에서 처음으로 사제 서품을 받은 여성 중 하나가 될 수 있었지만 함께 활동하는 동료들을 위해서 지금 거주하고 있는 렉싱턴에서 서품을 받기를 기다렸어요.” 여성이 사제 서품을 받는 것은 단순히 종교적인 문제만은 아니다. 폴란드계 미국인인 그녀에게 이 문제는 현실이다. 그녀는 스스로 ‘사회적인 사제’라 칭하면서 “저는 종교적 전통은 물론 권위에 도전하는 활동가이자 여성 사제의 삶을 살고 있어요”라고 말한다. 2008년 8월 8일, 미국의 첫 번째 여성 주교인 캘리포니아주의 시빌 다나 레이놀즈(Sybil Dana Reynolds) 주교에게 렉싱턴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재니스는 어느 상황에서든 비폭력을 주장하며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여성에 대한 사제 서품을 옹호하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체포되었고, 2001년에는 미국 사관학교를 반대하는 주장을 펼치다가 4개월의 수감 선고를 받기도 했다. “검은 사제복에 보라색 영대를 걸치고 사‘ 랑 있는 곳에(Ubi caritas)’를 부르다가 체포된 적도 있어요.” 재니스는 자신이 주님의 부름을 받았으며, 자신의 신앙과 사제 서품, 사회적 활동가의 역할 모두 마땅히 해야 할 소명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미시간호 근처 밀워키의 폴란드계 가톨릭 지역 사회에서 자라난 그녀는 일찍부터 교회와 함께 삶을 이어왔다. 그녀는 “저는 신부님의 설교에 여러 번 이의를 제기하던 어머니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그 영향으로 남성의 권위뿐 아니라 사제의 설교에 대해서도 도전할 수 있는 지금의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었어요”라며 과거를 회상한다. 재니스의 어머니는 가족에게 식사를 차려주거나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줘본 적 없는 신부의 지혜가 가족 문제에서 자신보다 우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재니스 역시 자신이 살면서 겪은 것을 무엇보다 가치 있다고 여기고 있다. “어머니는 자신의 실제 경험을 소중히 여겼어요. 하느님도 그러하시니까요.”
재니스는 자신의 신앙심에 대해서는 어떠한 의심도 품고 있지 않다. 그가 단절이 아닌 변화를 촉구하는 이유다. 지금의 권력관계에 이의를 제기하는, 수녀이거나 신학자인 여성들은 교회를 떠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녀들은 다만 교회의 위계적 구조를 개혁하고 싶을 뿐이다. “교회는 평등한 공동체를 외치고 있지만 가부장적 질서가 지배하는 곳이에요”라고 재니스는 설명한다. 여성 사제를 위한 운동을 벌이면서 지금처럼 공개적인 불복종 방식은 세간의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에 유효하다. 줄리아 비안키는 “언론에서 여성의 사제 서품 문제를 언급할 때마다 교회는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왔어요. 이제 교황청은 침묵으로 돌아섰는데, 이 여성들에게 어떠한 희망도 주지않기 위해서는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재니스는 여성에 대한 사제 서품 문제는 거스를 수 없는 보편적 투쟁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예수님은 종교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혁명적이시잖아요. 그러므로 우리 역시 전통과 권위에 도전하라고 가르칠 필요가 있어요. 그것이 우리 신앙의 목적이에요.” 이것이 그녀가 바티칸의 교황청과 그 높은 권위에 맞서 여성에 대한 사제 서품을 승인해줄 것을 끈질기게 요구하는 이유다. 재니스는 2011년 교황이 필라델피아를 방문했을 때 그 장소에 있었으며,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이 베네딕토 16세의 뒤를 이어 교황이 되었을 때는 성 베드로 광장에 있었다.
여성에 대한 서품 문제에 대해 이제 교회는 어떤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종교 내 성차별을 종식시키고자 하는 이 싸움은 교회 제도 자체의 실존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몇 해 전,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여성에게 사제 서품을 행하는 것이 소아 성애와 같은 수준의 중대한 죄악이라고 말했는데, 지혜롭지 못한 발언이라고 생각해요. 교황이 그런 말을 할 정도로 이 문제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음을 알 수 있어요”라고 줄리아 비안키는 추측한다. 2010년에 제정된 가톨릭 교회법을 해석한 새로운 문건은 여성에 대한 사제 서품을 이단, 분열, 배교와 같은 수준의 ‘중대한 죄악(delicta graviora)’ 중 하나라고 재확인해주었다. 여성 사제들의 불복종은 앞으로도 갈 길이 멀다. 그러나 멈추지 않고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