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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랜튼과 하워드의 여성선교에 대한 비교연구 / 안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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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종교와젠더연구소 작성일20-09-11 14:11 조회2,64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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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랜튼과 하워드의 여성선교에 대한 비교연구

안 신 (배재대)

 

 

1. 서론: 여성과 선교 그리고 교육

 

스크랜튼과 하워드는 이화여자대학교와 배재대학교의 설립자다. 매사츠세츠주에서 출생한 메리 스크랜튼(Mary Fletcher Scranton, 1832-1909)은 52세 고령의 나이에 미국감 리회 해외여선교회의 선교사로 파송되어 1885년 6월 20일에 조선에 도착했다. 다음해에 이 화학당을 설립하였고 23년 간 선교활동을 하다가 1909년에 75세의 나이로 소천했다. 한편 미국 조지아주에서 출생한 클라라 하워드(Clara Howard, 1895-1995)는 28세의 젊은 나이 로 미남감리회 여선교회의 선교사로 파송되어 개성에서 유치원교사로 활동했다. 1945년부 터 1955년까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교수로 봉직했고 60세가 되던 1955년 4월에 대전으로 내려가 대전여자보육대학을 설립했다. 1964년에 하워드는 40년 7개월의 선교생활을 마치고 미국으로 귀국했다. 이후 헨리 아펜젤러 선교사가 세운 배재학당(1885년 설립)과 1978년에 합병하여 지금의 배재대학교가 되었다.

 

스크랜튼은 아들과 함께 의료선교사로 조선에 파송되었다. 아들 윌리엄(William B, Scranton 1856-1922)은 1907년 6월에 감리회선교연회에서 선교사직을 사임하였고 독자적 으로 의료활동을 하다가 일본 고베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보다 먼저 1909년에 사망한 스크 랜튼은 양화진 선교사 묘지에 안치되었다.1) 그 후 14년 뒤에 개성에 온 하워드는 선교활동 을 마친 후 그의 고향 조지아주에 묻혔다.

 

스크랜튼과 하워드는 각각 미국의 북부와 남부에서 태어났고 전자는 미망인으로 후자 는 미혼의 독신으로 한국에서 ‘여성으로서 여성을 위한 선교’ 활동을 하였다. 스크랜튼이 한 국여성의 근대적 교육에 전념했다고 한다면 하워드는 유아교육의 선구자로 기여했다. 두 사 람 사이에 공통점도 많이 발견된다. 먼저 미국여성으로서 조선선교를 결행했다는 점이며 교 육을 통하여 기독교를 전하려했고 둘 다 모두 감리교 전통에 서 있었다는 점이다. 물론 두 사람은 서로 만난 적은 없지만 하워드는 스크랜튼이 설립한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교수로 10 년 동안 봉직하면서 스크랜트의 꿈을 새로운 맥락에서 창조적으로 구현한 인물로 평가된다.

 

본 논문은 스크랜튼과 하워드의 여성선교를 종교현상학적 입장에서 비교하려고 한다. 물론 시공의 차이, 문화적 차이, 신앙적 차이, 세대적 차이가 있겠지만 두 여성의 활동을 연 결해 주는 유사한 패턴들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이는 20세기 미국에서 멀리 한국으로 건너 온 감리교 여성선교사들의 선교활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기독교가 지구적 지 역화를 어떻게 감행했는지 구체적 사례를 통하여 살펴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하여 두 선교사의 생애를 중심으로 한국에서의 활동을 분석한 후에 유사점과 차이점을 제시할 것 이다.

 

 

 

출처: 한국종교학회 2013년 후반기 학술대회 자료집 (2013.11.23)

https://www.koars.org/modules/bbs/index.php?code=board&mode=view&id=3&page=1&___M_ID=60&sfield=&s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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