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 조띠가스님 법문 9-3> ‘only k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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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8-12-14 19:59 조회3,061회 댓글0건본문
<우 조띠가스님 법문 9-3>
‘only know'
There is one short but very important instruction by the Buddha for meditators.
In seeing, there is only seeing.
In hearing, there is only hearing.
In smelling/tasting/sensation(touching) on the body, there is only .....
In knowing, there is only knowing.
이 내용은 경전에 나오는 것으로 부처님께 이 한마디 듣고 그대로 하면서 돌아가다가
도중에 소에 치여 죽었는데, 이 사람은 그 사이 이대로 해서 해탈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보고, 듣고”가 나옵니다.
이 경은 보고 듣고 뿐 아니라, 냄새 맡고, 맛보고, 촉감을 느끼고, 생각을 할 때도 알아라.
이렇게 '할 때 하는 줄'을 “강하게 지속적으로 안다, ‘only know'”면 해탈함을 믿어라.
아마도 이런 법문 내용이 생략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自燈明 法燈明
Be islands unto yourselves, refuges unto yourselves, seeking no external refuge;
with the Dhamma as your island, the Dhamma as your refuge, seeking no other refuge.
자신을 섬으로 삼아 지내거라.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라. 다른 귀의처를 찾지 마라.
담마를 섬으로 삼아라. 담마를 귀의처로 삼아라. 다른 귀의처를 찾지 마라.
‘여기서 자신을 섬으로 삼아라.’ 가 무슨 의미인가를 부처님께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셨다.
간혹 늙고 변해가는 자신의 몸뚱아리를 귀의처로 삼으라고 이해하는 분은 없겠지만...
“이제 아난다야,
빅쿠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세속의 욕망과 슬픔을 극복하고
분명한 알아차림으로 지낸다.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
세속의 욕망과 슬픔을 극복하고 분명한 알아차림으로 지낸다.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세속의 욕망과 슬픔을 극복하고 분명한 알아차림으로 지낸다.
담마에서 담마를 관찰하며,
세속의 욕망과 슬픔을 극복하고 분명한 알아차림으로 지낸다.
라고 하셨으니, 결국 사띠빳타나 사념처 수행을 하고 있는 자신을 의지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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